마왕성(3)
생존자들의 눈이 이번에는 곧장 김주희에게 향했다.
그녀 또한 마기병 한 마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장창의 긴 리치를 이용해 찌르고 빠지고 찌르고 빠지는 것을 반복하는 단순한 공격임에도 어찌나 속도가 빠르고 매서운지 마기병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푹!
쾅!
이윽고 그녀가 상대하던 마기병도 목숨을 잃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김주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미친! 이건 말도 안돼!’
김주환과 김수현은 1차 튜토리얼 때 통로 2개의 몬스터를 싹 몰아 잡고 제단을 클리어 했다.
또한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곳까지 오면서 직접 몬스터를 찾아 죽이면서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일까.
김주환은 이제껏 실전무술과 탁월한 격투센스를 지닌 동생 김수현보다 강한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정도일 줄이야...’
최고 전력인 김수현 조차 마기병을 아직 1:1로 밖에 상대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 세 명은 각각이 그야말로 괴물.
‘경계 해야겠군.’
김주환은 그룹을 세심히 이끄는 데에 더욱 힘을 쓰기 시작했다.
* * *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동안에도 내부를 지키는 마기병들은 점점 늘어 10마리까지 불어났다.
“하아압!”
“하앗!”
챙챙!
치이익!
생존자들이 휘두르는 병장기와 마기병의 배틀엑스가 부딪치며 불꽃이 튀고 파열음 공간을 가득 메웠다.
유세현과 이강호는 그런 생존자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옆에서 이전과 똑같이 4마리를 나눠서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스텟이라면 둘이서 마기병 전부 상대하는 게 가능했으나, 무익하게 독식을 하는 멍청한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를 나아갔을까. 그들의 눈앞으로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군인과 여타 생존자들의 입에서 심호흡을 내뱉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상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 들어왔지만, 한번 제단을 경험해본 이상 긴장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는 것.
김주환이 곧장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이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스 몬스터가 있을 겁니다. 이미 알고계시죠?”
“예.”
“그렇다면 보상도 알고 있겠군요.”
“그렇죠.”
본래 그는 이곳에서 얻는 아이템이나 스킬을 동생 김수현에게 많이 몰아주려했다.
할당량으로 우선권을 매겨도 해도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
허나, 이것은 괴물 같은 셋이 있는 이상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어떻게든 합의를 보는 것뿐이었다.
지금의 자신들에게는 그래도 수적우세와 김수현이라는 강한 전력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보상 분배는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뭐, 당연히 할당률로 해야겠죠.”
“...만약. 보상이 하나라면?”
“그럼 더욱 할당률이 높은 사람이 먹어야죠.”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나온 코인을 분배해서 드시면 되겠죠.”
“......”
자신이 여태껏 행했던 일을 유세현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자, 김주환은 할 말이 없어졌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었고 사실상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갈 생각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지금까지 자신이 한 것을 번복하는 것은 신뢰감에 금을 가게 만들기 때문에 다른식으로 나아갈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김수현이 적을 베는 장군이라면 치자면 김주환은 탁월한 모사꾼.
휘둘릴 수만 없다고 생각한 김주환은 강수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저희 그룹은 보스공략에 빠지겠습니다. 단순히 코인을 먹자고 목숨을 바쳐가며 보스를 공략하기에는 조금 많이 석연찮네요.”
이것은 무려 70명이 되는 생존자 중 군인을 제외한 50명이 빠진다는 뜻.
문 앞에 존재할 보스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만큼 자칫 잘못하면 전멸의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김주환은 도움을 받기 위해 결국 유세현이 협상을 제시해올 것이라 생각했다.
나머지 생존자들도 그리 생각하는지 반박하지 않는 상황.
허나, 이것은 오산 중에 아주 큰 오산이었다.
피식 웃은 유세현이 말을 이었다.
“그러면 그렇게 하시죠.”
“예?”
“저희 끼리 잡겠다는 뜻입니다. 아! 그 쪽 군인 분들의 의견은 아직 못 들었군요.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같이 잡으실 건가요. 아니면 이들처럼 빠지실 건가요.”
“......”
군대에서 행정보급관의 눈칫밥만 5년 먹은 정동호 중사가 유세현과 이강호의 얼굴을 살폈다.
우수한 능력치와는 별개로, 공격할 때는 공격하고 빼야할 때는 뺄 줄 아는 그 판단력과 날렵함.
그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단단히 붙어 있었다.
부상을 입기 전 자신의 특전사 때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
정동호가 소대원 모두를 향해 말했다.
“다들 나를 믿고 따라올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부소대장님!”
“맞습니다. 저희는 정동호 중사님의 판단을 끝까지 믿을 겁니다.”
“저도 믿고 따라가겠습니다. 소대장 때의 일만 생각하면...”
얼타는 장교 때문에 죽을 뻔한 고비가 있었는지 병사 한명이 이빨을 으득으득 갈았다.
고개를 끄덕인 정동호가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대신, 만약 보상이 하나라면 우리가 코인을 전부 먹고 싶다만 그 정도는 상관없겠지?”
“알겠습니다.”
정동호 중사가 말하는 것은 애초에 보상을 포기한다는 뜻과도 같았기에 유세현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럼, 출발하죠.”
“알겠네. 각 분대 전투준비!”
“예!”
기합과 함께 문이 열렸다.
김주환과 생존자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믿기지 않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먼저 내부로 진입 한 것은 선두에 있던 이강호와 유세현.
발을 앞으로 한걸음 내딛자 바닥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냉기가 발끝으로 느껴졌다.
내부는 이전 제단과 같이 그렇게 넓지 않았다.
기껏해야 50평 정도.
우선적으로 제일 눈에 띤 것은 잔뜩 녹이 슬어 지면 곳곳에 박혀있는 무기들과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해골들이었다.
그들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전후좌우 그리고 높지 않은 천장까지.
파앗!
중앙까지 다가가자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달빛이 어느 장소를 비추었다.
썩어 문드러진 의자위에 황금 왕관을 쓴 해골이 앉아있었다.
이강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건!’
일개 스켈레톤으로 부활하여 갖은 전장을 겪고 고위 몬스터 데스나이트나 듀라한과도 어깨를 마주하게 된 유일한 최하급 몬스터.
스켈레톤 킹!
지잉!
키아아!
뻥 뚤린 눈이 붉게 타오르며 대검을 집어든 스켈레톤 킹이 자리를 박찼다.
노리는 것은 이강호보다도 살짝 전방에 서 있던 유세현.
유세현은 방패를 들어 올려 방어를 하려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강호가 외쳤다.
“유세현! 방패를 버려! 이제 그거로는 못 버틴다!”
“큭!”
콰드득! 쾅!
균열이 가있던 방패가 일격에 부서지며 파편이 튀었다. 그 틈 사이로 곧장 커다란 대검이 쇄도해왔다.
무식한 크기에 맞지 않은 빠른 속도였으나 데스크라토스를 상대했었던 유세현이 보기에는 반응이 가능한 움직임.
“합!”
유세현은 타이밍에 맞춰 재빨리 롱소드을 휘둘렀다. 허나.
치이이익!
트득!
대검의 두꺼운 검신과 맞닿기 무섭게 F랭크 최하급 무기인 롱소드의 칼날이 부러져 나갔다.
안 그래도 죽은 생존자의 검으로 막 교체한 검이거늘.
스켈레톤 킹이 쓰는 무기는 여태까지 여타 몬스터가 들고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뭔 놈의 무기가...”
유세현은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그사이 군인들이 스켈레톤 킹을 노렸다.
“하아압!”
“죽어라! 해골!”
진형을 잘 짜맞춰 빈틈을 노리는 것이 확실히 좋은 팀 플레이었으나 아쉽게도 군인의 공격은 적에게 닿지 못했다.
키아악!
괴성과 함께 스켈레톤 킹의 몸에서 새까만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죽음의 근원이 되는 어둠의 마력을 형상화시켜 사용자의 육체능력을 강화시키고 정신력이 낮은 적의 심신을 제압하는 스킬.
암흑투기.
오직 마왕에게 권능을 하사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모,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아!”
“이, 이게 무슨!”
암흑투기에 짓눌린 군인들 대부분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몇몇 군인들은 아예 무릎까지 꿇은 상황.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스켈레톤 킹은 무자비하게 군인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크아악악!”
“김상병님!”
미처 대응 하지 못한 군인 한명이 팔이 깎여나가듯 잘려나갔다.
만약 이대로 계속 나두게 된다면 엄청난 피해가 속출 할 수도 있었다.
허나.
“물러나라. 방해만 된다.”
앞으로 나선 이강호의 발이 스켈레톤의 대검의 검등을 후려쳤다.
날렵하게 움직이는 그는 몸동작에서는 암흑투기에 의한 그 어떤 제약도 느껴지지 않았다.
파앙!
키이익!
순간적으로 파공성이 일으며 스켈레톤 킹의 육체가 뒤로 밀려났다.
곧장 스켈레톤 킹의 시선이 이강호를 향했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이 무리 중에서 누가 가장 위협스러운지 본능적으로 깨우친 것.
솨아악!.퍽!
이강호는 현란하게 움직여 적의 공격을 피하며 기량을 가늠키 시작했다.
마력량이 많이 부족한 지금 무턱대고 최고 수준의 파이어 에로우를 구사하는 건 사치다.
그리고 그사이 유세현은 멀쩡한 병장기를 찾아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허나 아무리 봐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잔뜩 녹이 슬어있는 무기 뿐.
‘젠장...나도 체술을 잘했더라면...’
한탄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에라이!”
그래도 맨손으로 싸우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한 유세현은 롱소드와 비슷한 종류의 무기를 집어 들어 올렸다.
시야 좌측 아래로 아이템의 정보창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아이템명: 저주받은 망령의 검
등급: 노말 [B Rank]
상세정보: 룬페라 제국의 성기사 루카스가 사용하던 검이 입니다. 스켈레톤 킹에게 패한 분함이 저주가 되어 되려 루카스의 영혼을 묶고 있습니다. 루카스의 망령을 제압하면 무기 본연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소비마력: 0
“뭐?”
유세현의 당황어린 탄성과 함께 검안에서 어두운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점점 형상을 갖추는 모습이 한 눈에 보기에도 사람이었다.
유세현은 그가 루카스의 망령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걸 제압한다면 된다는 거지?’
루카스의 망령이 검을 빼드는 순간이었다.
사르륵.
순간적으로 냉철하게 판단을 내린 유세현이 땅에 녹아들듯 낮은 자세로 루카스를 향해 질주했다.
적이 완벽한 자세를 취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은 만화에서나 하는 행동.
무방비할 때야 말로 적을 확실히 벨 수 있는 찬스다.
후웅!
서걱!
단 한 번의 일격.
그것만으로 채 검이 휘두르기도 전 목이 떨어져 나간 루카스는 그대로 바람에 섞여 순식간에 사라졌다.
곧바로 아이템 정보창이 개선되었다.
아이템명: 루카스의 검
등급: 노말 [B Rank]
상세정보: 룬페라 제국의 성기사 루카스가 사용하던 검이 입니다. 이전 주인의 특수한 힘이 담겨있습니다.
특수능력: 최하급 신성 [노멀 C Rank]
소비마력: 25
환한 빛과 함께 녹이 벗겨지며 칼날이 번뜩였다.
유세현은 곧장 이강호의 옆으로 뛰어가 가세했다.
챙!
치이익!
루카스의 검은 스켈레톤 킹의 대검에 정면으로 맞서도 부러지지 않았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무기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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