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2)
2차 튜토리얼에서 존재하는 마왕성에는 설화가 있다. 아니, 누군가 짜놓은 시나리오라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어느 날 마왕이 남해태양궁의 장남 남태영의 연인인 백화수를 빼앗아간다.
남태영은 백화수를 구하기 위해 마왕의 성에 직접 침입하게 되지만 너무도 많은 적 앞에서 무릎을 꿇고 되려 포로가 된다.
이때 생존자들이 나타나서 도와주는 것이다.
정말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삼류 스토리지만 등장하는 적들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최후의 보스인 마왕은 판도라에서 마족을 다스리는 진짜 마왕 루시뷀트를 구현해 놓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이곳에 끝까지 도전하여 살아 나온 사람은 없었다.
모든 생명체를 억압하게 만드는 암흑투기와 강력한 데스마법.
어느 정도까지 구현이 되어있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것만은 분명했다.
만약, 이 마왕성의 루시뷀트가 원본과 같은 스킬을 전부 가지고 있다면 마왕의 능력치와는 상관없이 고행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
“그러니 전에 말했던 대로 우리는 백화수의 구출만 돕고 잽싸게 빠질 거다.”
“그럼 우선 남태영이라는 사람을 부터 찾는 게 시급하겠네.”
“그렇지. 앞서 간 자들이 먼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외각 지역을 걷고 있는 그들 앞으로는 하급 마기병들이 이리저리 쓰러져 있었다.
성을 지키던 문지기도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는 상황.
반면 생존자들의 시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기병들의 수준이 통로에서 만났던 중간 보스급 보다 약간 딸린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생존자들을 이끌고 있는 리더는 굳이 김수현이 아닐지라도 확실히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이강호는 내부로 돌입하기 전 이전 말했던 것을 다시 한 번 더 당부했다.
“내가 밟은 곳만 따라 밟으면서 따라와라. 절대 다른 곳은 밟지 마.”
“그래, 알고 있어.”
“예! 걱정 마세요!”
“그리고 두 번째. 적을 해치운 다음엔 뭐라고 했지?”
“재빨리 거리를 둬라?”
“그래, 맞아.”
성 내부에 등장하는 마기병들은 외각 지역을 지키는 마기병들과 달리 4가지의 스킬을 중 2가지를 랜덤으로 가지고 있다.
지옥불, 마수화, 광폭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폭.
그중에서도 자폭이라는 스킬은 2가지의 스킬 중 필수적으로 지니고 있는 스킬인데, 자신의 육신을 바쳐 시전하는 만큼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다.
그러니 만약 방심을 했다가 정통으로 얻어맞게 된다면 아무리 기본 능력치가 높을지언정 강한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펑!
갑작스레 성 내부에서 연쇄적인 폭발음이 들려왔다.
필히 전투가 시작된 것이리라.
참마를 고쳐 쥔 이강호가 앞으로 나섰다.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았군. 우리도 출발하자.”
유세현과 일행은 곧장 성 내부로 돌입했다.
제일먼저 눈에 띤 것은 산산조각 난 채 주위에 흩뿌려져있는 장기와 잔뜩 그을려 부서져 있는 성벽내부.
그들은 얼마 안가 먼저 도착해 휴식을 취하고 있던 생존자들과 조우 할 수 있었다.
국방색 무늬의 옷과 전투화.
군인과 일반 생존자가 섞여있는 집단이었다.
후방을 경계하던 군인 한명이 일행을 발견함과 동시에 외쳤다.
“부소대장님! 후방에 생존자 세 명입니다!”
“고작 세 명? 전원! 전투준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인만큼 그들은 곧장 전투태세를 취했다.
군인이 좌측 생존자들이 우측.
순식간에 움직여 각자의 위치를 고수하는 것이 한두 번 합을 맞춰본 솜씨가 아니었다.
“정지!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더 이상 다가오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전방으로 튀어나온 중사가 외쳤다.
자리에 멈춘 유세현은 일단 양손을 들어 올려 공격의 의사가 없다는 것을 표했다.
“저희는 생존자입니다.”
“생존자? 고작 세 명이란 말인가! 믿을 수 없다! 너희가 진짜 생존자라면 그냥 돌아가라!”
단호한 거절.
말투를 보아하니 그들은 현재 속해있는 인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인간으로 둔갑한 마수로 오해하고 있거나.
유세현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저희는 진짜 생존자 입니다. 우연히 이곳에 들어오게 됐죠.”
“흠. 그렇다면 진짜 생존자라는 증거가 있나?”
“음...지금 이런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게 증거 아닐까요?”
“...그래도 믿을 수 없다.”
중사는 직업 군인답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강호의 참마가 자연스레 앞으로 향했다.
마왕성의 통로가 중간까지 외길인 만큼 일단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저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
비록 목숨을 노리지 않은 만큼 죽이진 않을 테지만 일단 무력으로 심신을 제압해 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강호야 일단 기다려봐.”
그때 유세현이 재빨리 이강호를 말렸다.
“응? 왜?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입씨름을 할 바에는 그냥 차라리 내가 나서서...”
“알고 있어 짜샤. 좋은 방법 생각났으니깐 일단 참마부터 내려 봐. 더 경계하잖아.”
중사가 말하는 뉘앙스로 볼 때 지금 그들은 자신들을 악인인지 선인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인가 아닌가를 보고 있는 것.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은 생각보다도 아주 간단했다.
시력이 증가한 유세현의 두 눈이 군인들의 부대마크를 훑었다.
새겨져있는 것은 별의 모양.
유세현은 이강호가 전투태세를 풀기 무섭게 말했다.
“거기 있는 군인 분들은 6사단 소속이시군요.”
“......”
“저도 병장으로 만기제대를 했습니다. 3사단 22연대 소속으로 당신들 바로 옆 동네에 위치해 있었죠. 군번은 10-73085529. 제가 군에 있을 때는 6사단하고 KTCT 뛴 적도 있는데...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세현의 말을 들은 군인들은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군을 제대한 일반 생존자들도 이해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이라면 이런 것은 말하지 못 할 테니까.
매서운 눈초리를 하고 있던 중사가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부대가 위치해 있던 장소가?”
“강원도 철원.”
“의심한 것 미안하네.”
“아닙니다.”
잠깐 동안 이어졌던 대치는 중사가 검을 거두며 끝났다.
생각보다 쉬운 상황 정리에 이강호가 볼을 긁적였다.
오랜 시간 판도라에서 살아온 그로서는 전혀 생각도 못한 방법이었다.
암흑지대에 사는 도플갱어라는 몬스터는 모습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기억까지 깡그리 흡수하니까.
이는 아직 판도라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기에 나올 수 있는, 아니 상황판단이 빠른 유세현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일반 생존자들이라면 당황하여 감정에만 호소했을 것이다.
‘김수현은 있나?’
일반 생존자 진형으로 다가간 이강호의 두 눈이 사람들의 얼굴을 쓰윽 훑었다. 그중에서는 찾으려 했던 2명을 제외하고도 익숙한 얼굴이 2명이 더 있었다.
우선은 김수현과 그의 형 김주환.
그리고 이전 크낙사스의 초원에서 도망치듯 쫓겨난 여성 두 명.
본래라면 코인을 별로 흡수하지 못한 만큼 몬스터에게 당하는 게 정설이지만 정말 운 좋게 이들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부지한 모양이었다.
여성 두 명을 발견한 김주희가 번듯 눈을 빛냈다.
“아! 당신들!”
“엇!”
두 명의 여성 또한 당황한 눈초리를 감히 숨기지 못했다.
옆에 위치해 있던 김주환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승혜씨 희수씨 아시는 분들입니까?
“아...그게...이전...”
이제는 이 생존자 집단 밖에 위탁할 곳이 남지 않은 그들이 남을 속이려 했던 일을 어찌 발설할 수 있겠는가.
이를 괘씸하다고 생각한 김주희가 먼저 말을 꺼내려 하는 찰나였다.
유세현의 손이 김주희의 입을 갑작스레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별 대수롭지 않은 양 말했다.
“아, 그냥 이번 스타트 지점이 같았습니다. 중간에 헤어졌죠.”
“......”
“안 그런가요?”
“예, 예? 아예! 맞아요!”
유세현이 스윽 눈치를 주자 유승혜와 강희수가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 그녀들은 그러면서도 고개를 살짝 숙여 고맙다는 표현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으음...”
이 셋을 보는 김주환의 눈에는 잔뜩 의구심이 섞여있었으나 그렇다고 유세현을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지금 이 집단의 리더는 엄연히 자신과 동생 김수현이었으니까.
“뭐, 승혜씨와 희수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그보다 아까 말한 진형 말인데 수현아 너는 어떻게 생각...”
김주환은 잡념을 떨치고 곧 다시 생존자 틈으로 섞였다.
이강호가 이를 살짝 흘겨봤다.
자연스레 생존자들에게 둘러싸여 의견을 나누고 있는 둘.
그 모습은 역시 추후 떠오를만한 신예다운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이번에 태양 심법을 얻는 건 나다.’
“유세현, 가자.”
“그래.”
둘은 곧장 그들을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김주희도 뒤를 쫄래쫄래 따랐다.
이에 깜짝 놀란 몇몇 군인들이 재빨리 셋의 앞을 가로 막았다.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
“이곳의 마물은 지금까지의 몬스터와는 많이 다릅니다. 저희랑 같이 진형을 짜서 가시는 게 훨씬 안전...”
“괜찮아요. 저희는 저희끼리 알아서 할게요.”
“그게 무슨...”
군인뿐만 아니라, 가만히 있던 여타 생존자들까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이렇게 지 마음대로 할 거면 왜 굳이 군번까지 대며 오해를 풀려했단 말인가.
“그냥, 무익한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럼 이만.”
이윽고 셋이 통로 저편으로 사라졌다.
보고 있던 중사와 김주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만, 성 내부의 마물은 지금껏 봐왔던 상대보다 상상을 초월한다.
여태까지 잘 버텨온 그 강한 생존자조차도 벌써 2명이 당하지 않았던가.
중사와 김주환은 다음에 그들을 만났을 때에는 필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을 거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콰직!
쾅!
예상은 제대로 빗나갔다.
둘은 덮쳐오는 마기병 5마리를 상대로 단지 버틸 뿐 만 아니라 제대로 된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앞으로 스킬을 시전 하는 이강호의 모습이 보였다.
‘인탱글.’
상대방을 속박시키는 1서클의 보조스킬.
땅에서 솟아난 나무뿌리들이 매섭게 마기병들의 몸을 감쌌다.
당황한 마기병들은 나무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들고 있던 다급하게 배틀엑스를 휘둘렀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황.
채 벗어날 틈도 없이 유세현의 롱소드가 곧장 머리를 목을 향해 날아왔다.
서걱!
키에엑!
목이 잘려나간 마기병의 혈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면 단번에 몸집이 부풀어 올랐다.
이것이 앞서 봤던 생존자 2명을 형체도 알 수 없도록 골로 보낸 자폭 스킬.
둘은 잽싸게 몸을 뒤로 빼는 것으로 폭발 범위에서 간단히 벗어났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일반 생존자들과 군인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어, 어떻게 이런...”
“마, 말도 안돼.”
그들이 마기병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6명이나 되는 인원이 달라붙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마기병들을 각기 2마리씩 상대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대, 대단해.”
“장난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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