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다리(3)
죽이기에는 연예인 뺨치는 얼굴과 몸매가 아쉬운 것.
하지만, 저들 이외에는 대부분 8~10명 정도씩 팀을 이루고 있어 마땅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 신승훈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이렇게 된 거 어차피 인도적으로 끝날 수 없는 거 알지?”
“...그렇죠.”
김동환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김동환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대화가 쉽겠군. 이제 필요한 인원은 3명이다. 그리고 지금 3명인 팀은 한곳 밖에 없지.”
“...그렇군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래요. 어쩔 수 없겠네요.”
순식간에 몰아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제는 경계만하고 있던 다른 팀들조차 유세현과 이강호에게 시선이 쏠린 상황.
검을 빼든 김동환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자 다른 팀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천천히 그들의 주위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크큭. 형씨들! 너무하다고 생각하진 말라고! 우리도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니깐. 사람이라면 이러는 게 당연하잖아?”
“......”
유세현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냉정한 두 눈으로 사람들을 훑을 뿐이다.
‘대략. 80명 정도인가.’
이런 규모의 인원을 상대하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강호에게서 설명을 들은바가 있고 저항력을 높여놓은 만큼 절대 질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되려 이길 자신이 있었다.
사람이란 것은 지능이 낮은 몬스터와 달리 심리 상태에 크게 영향을 받는 생물이니까 기선을 제압하면 된다.
“김주희. 난 너를 지켜줄만 한 실력이 안돼. 그러니 이강호 옆에 알아서 잘 붙어있어라.”
“...선배님?”
대답과 동시에 유세현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노리는 것은 선동을 야기한 김동환 목.
“이, 이게 무슨...!”
미처 반응하지 못한 김동환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유세현의 속도는 지금까지 그가 봐왔던 어떤 존재보다도 빨랐다.
“이런 씨발 새끼가!!”
목숨이 걸려있는 만큼 되는대로 그는 있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허나, 웹 스파이더보다도 느리고 안일한 공격이 지금에 와서 먹힐리 없다.
살짝 왼손을 들어 방패를 이용해 방어한 유세현은 그대로 매끄럽게 롱소드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서걱.
“어?”
김동환의 시선이 흔들리며 순간적으로 흔들리며 세상이 점점 한쪽으로 치우쳐졌다.
마치 중력이 옆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
그리고 그것이 김동환이 본 생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형니이이임!”
“이, 새끼가!”
싸움이 몸에 밴 조폭들은 당황하면서도 복수를 위해 곧장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싸늘한 냉기가 주위를 감쌌다.
그들은 아직 가지지 못한 레어 스킬.
프로즌 디퓨전.
트드드득!
일주일간 숙련도를 75%까지 끌어올려서 그런지 마법저항력이 많이 부족한 생존자들의 몸이 빠르게 얼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내손이!”
“다리가 움직이질...”
유세현은 나머지 6명의 목 또한 순식간에 베었다.
빠르고 날카롭게 검을 휘두르는 그의 동작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한 번의 공격에 한명의 목이 날아가는 것은 그야 말로 일격일수(一激一壽).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신승훈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큭!! 다들 더 둘러싸세요! 정면 승부는 승산이...”
“끄아아악!”
“사, 살려줘!”
말을 하는 그 잠깐 사이에도 무려 3명이 쓰러졌다.
신승훈은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조건은 이미 충족되었습니다! 다들 뒤로 물러나세요! 거기! 싸우는 당신도 일단 멈...”
전투가 시작된 마당에 유세현은 멈출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수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이용해 덮쳐 놓고 이제 와서 발을 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기랄!”
이를 깨달은 신승훈 또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노리는 것은 유세현이 아니었다. 정신 나간 광전사처럼 저 남자에게는 아무리 덤벼도 이기지 못할 것 같았음으로.
‘다른 쪽을 쳐서 인질로 잡아야 된다!’
한명이 이토록 강하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다른 쪽은 이곳까지 단순히 업혀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미모의 여자. 그 여자만 잡고 협박을 한다면 이 아비규환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크아아악!”
허나, 신승훈의 그런 안일한 생각은 이강호가 위치한 쪽을 확인한 순간 싹 달아났다.
후웅!
사람들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참마의 간격에 들어간 순간 사지가 여러 토막으로 잘려나간다.
그 예로 이강호의 주위에는 덤볐던 생존자들의 시체들이 싸늘하게 즐비해 있었다.
“괴, 괴물이야!”
“젠장, 시련 따위 나중에 다시 받겠어!”
승산이 없다 생각한 몇몇은 아예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강호가 뒤에 위치한 김주희를 향해 말했다.
“김주희. 죄책감을 가지지 말고 쏴라. 전부 너를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야.”
“...알고 있어요. 선배.”
마도철을 떠올린 김주희는 봐주지 않고 활시위를 겨눴다.
슈우웅!
파바밧!
도망치는 생존자들의 등 뒤로 쏟아지는 화살비.
나무 화살이라는 재료적이라는 한계가 있는 만큼 엄청 치명적인 공격은 아니었으나 움직임을 봉쇄하기에는 충분했다.
신승훈의 입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이게 무슨...말도 안돼.”
셋 중 그 누구도 나약한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승률은 0%에 한없이 수렴한다.
‘빠, 빠져나가야 돼...’
신승훈은 행여나 날아올 활을 의식하여 조심조심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데 채 몇 걸음 이동하지 못해 몸 뒤쪽에서 목을 서늘하게 만드는 강한 강풍이 불어왔다.
‘이, 이건!’
신승훈은 확인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땅을 굴렀다. 곧이어 목이 위치해 있던 궤적을 롱소드가 스쳐 지나갔다.
유세현이 휘두른 검이었다.
스텟에 근거한 순수 힘만으로 풍압을 자아낸 것.
“말도 안돼! 어떻게 그 많은 인원을 벌써...”
신승훈의 사지가 오들오들 떨렸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유세현의 두 눈동자는 1차 튜토리얼에서 맨 처음 고블린을 조우했을 때보다도 더 큰 공포심을 자아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5명은 이미 넘었잖아! 오지 마!”
신승훈은 유세현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마구잡이식으로 검을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입을 굳게 닫고 있던 유세현이 자그만 한 실소를 터트렸다.
“죽이려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만하라니.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자, 잠깐만! 그, 그건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 생각을 해봐!”
“그래, 어쩔 수 없었겠지...”
확실히 그들 입장에서는 이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소수의 인원을 희생시켜야만 다수가 별 희생 없이 이 앞으로 나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그걸 굳이 이해해줄 필요는 없어.”
지면을 박찬 유세현의 몸이 순식간에 신승훈에게 접근했다.
어찌나 빠른지 미처 칼을 치켜들 틈도 없었다.
“큭! 무슨!”
입을 악문 신승훈은 재빨리 노말 스킬[경피부]를 사용했다.
내구력 스텟을 일정 증가시켜, 피부자체를 강화하는 능력.
하지만 애초부터 F랭크 수준의 낮은 스텟을 지니고 있던 신승훈의 피부가 E랭크의 힘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서걱.
방어한 팔이 일격에 잘려나가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끄아아악!”
고통을 못 이긴 신승훈이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온갖 욕이 그의 입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런 싸이코 새끼가!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싶냐! 이런 인간쓰레기 새끼! 지금이라도 멈춰! 멈추라고오오!”
사람의 인성을 들먹이는 단어.
허나, 유세현은 아무런 감정도 들끓지 않았다. 되려 더욱 냉정하고 차분해질 뿐이다.
세간에는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타인에게 총을 겨눌 때는 총을 맞을 각오를 하라고.
만약, 그들이 개념이 제대로 박혀있는 사람이었더라면 처음부터 이런 식의 행동을 취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으아아아! 제발 살려...”
푹.
사람을 가지고 노는 고약한 취미는 없었기에, 유세현은 일격에 신승훈의 심장을 박살냈다.
신승훈의 몸 위로 보라색, 푸른색, 초록색등의 다양한 코인이 떠올랐다.
“후우...”
유세현은 주위를 쓰윽 훑었다.
피로 얼룩진 들판 위로 형형색색의 코인들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쓰러져있는 시체만 아니라면 그야말로 절경.
“선배님 괜찮으세요!”
제일먼저 뛰어온 것은 김주희였다.
가만히 자리를 고수하며 싸운 자신과 달리, 유세현은 이곳저곳 직접 뛰어다닌 만큼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이 된 것.
하지만 유세현의 몸은 입고 있던 옷만 걸레조각이 되었을 뿐. 별다른 생채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물리저항력의 힘.
“크으으으윽.”
“꺼억...”
땅에서는 아직 숨이 멎지 않은 몇몇의 사람들이 비틀비틀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그저 방관하다가 당한 사람도 존재했다.
다가온 이강호가 유세현을 향해 물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할 거냐? 또 살려 줄 생각이냐?”
“...아니, 이번엔 죽일 거야.”
대답은 이전과 달리 무척이나 빨랐다.
유세현은 검을 들고 생존자들에게 이동했다.
새카만 그림자가 드리우자 생존자들은 연신 입에서 피를 내뱉으면서도 필사적으로 목숨을 구걸했다.
“사, 살려주세요. 저,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쿨럭.”
“제, 제발 목숨만은...”
하지만 유세현은 결코 봐줄 생각이 없었다.
이전 여자들이 취한 행동이 마도철의 협박을 받아 한 것이라면, 지금 이자들은 그런 외부 조건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순수한 자신의 의지로 방관할 것을 선택했다.
유세현은 방관도 죄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찌 보면 대놓고 죽이려 했던 자들보다도 더 질이 좋지 않다 생각한다.
은근슬쩍 타인에게 묻혀가려는 사람들. 그러다가 꼭 일이 잘못되면 은근슬쩍 발을 내뺀다.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족속들.
촤악.
비정한 검이 그들의 목을 전부 갈랐다.
이를 보고 있던 데스크라토스가 즐거운 듯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전부 죽이다니! 재미있어! 재미있는 놈들이야!]
“...일단 코인부터 분배하자.”
유세현은 그런 데스크라토스의 행동을 무시하고 곧바로 코인을 나눴다.
잘 오르지 않는 힘과 민첩 코인은 김주희에게 몰아주고 내구력이나 체력 등의 여타 코인은 이강호와 자신이 대부분 흡수했다.
그렇게 분배가 끝이 나고 그들은 데스크라토스의 앞에가 섰다.
[크흐흐흐! 오랜만에 즐거운 광경. 정말 보기 좋았다. 세 명이서 이렇게 화려하게 날뛴걸 보는 건 처음이군!]
“......”
[크크크! 하지만! 너희는 결국 시련을 실패했다! 어떻게 될 것 같나!]
곧게 뻗어있던 나뭇가지 하나가 구부러지며 일행을 겨눴다.
그 순간 이강호의 입꼬리가 다분히 올라갔다.
“아니, 아직 끝난 건 아니지.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분명 들은 기억이 있는데.”
[크흐흐. 그래. 방법이 있긴 있지...크! 설마! 너희들 이걸 일부러 노리고 전부 죽인건가! 크하하하! 진심으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렇다. 그들은 원래부터 이곳에서 데스크라토스를 잡고 갈 예정이었다.
이제부터 가려는 마왕의 성은 그 누구도 클리어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던전이기 때문.
그렇기에 그들은 이곳에서 아이템을 하나 얻을 필요가 있었다.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D랭크 이하의 스텟을 무려 25%나 증가시켜주는 아이템.
[데스크라토스의 정수]
만약 생존자들이 제물을 제대로 바치고 떠났더라면 이 자리에 남아 있다가 강제적으로 도전했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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