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1화 (31/612)

중간다리(4)

죽이지 못하면 이젠 데스크라토스에게 죽게 될 것임으로.

“못 할 것도 없지.”

[크흐흐흐. 크하하하하! 재미있군 재미있어! 내 몇 십 년을 이곳을 지켜왔지만 너희 같은 놈들은 처음이다! 좋다! 당연히 안될 것도 없지!]

광소와 함께 알림창이 개선되었다.

[시련이 변경되었습니다. 데스크라토스를 잡아야만 이곳을 지나갈 수 있습니다. 제한시간은 무제한입니다.]

트드득!

오랜 기간 몸을 쓰지 않아 생긴 나무껍질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위로 뻗어있던 5개의 나뭇가지들 또한 손처럼 마저 구부러졌다.

6개의 손과 6개의 움직이는 뿌리를 가진 크기 6m의 거대한 고목.

데스크라토스의 본 모습이었다.

[크흐흐! 나를 좀 더 즐겁게 해봐라!]

선공은 데스크라토스에게서 이어졌다.

촤아악!

이제는 손이 된, 여러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가 그들을 향해 일제히 날아왔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공격이지만 보통의 생존자들이라면 반응하지 못하고 즉사할 정도의 속도.

이강호는 방어 동작을 취함과 동시에 김주희를 뒤로 밀쳤다.

“김주희! 너는 뒤로 빠져 있어라! 절대 끼어들지 마!”

“예, 예! 선배!”

방해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김주희가 재빨리 멀찍이 떨어졌다.

“유세현!”

“알았어!”

신호와 함께 유세현은 방패로 공격을 막으며 준비했던 대로 지금까지 곤히 간직하고 있던 물건을 사용했다.

1차 튜토리얼 얻은 유일한 아이템.

[부서진 골렘의 핵]

촤아악!

은은하게 발광하는 보랏빛과 함께 핵에 공명한 주위 흙더미들이 상공으로 떠오르며 뭉치기 이루기 시작했다.

커다란 몸체와 각이진 팔과 다리.

형체를 점점 갖춰가자 지금까지 한 번도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데스크라토스에게서 경악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저건 설마!]

쿵!

마침내 완벽히 모습을 드러낸 자이언트 머드골렘!

유세현은 곧장 명령을 내렸다.

“싸워라! 때려 눕혀!”

[크으으...크흐흐흐!! 재밌구나! 그래! 나와 싸우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단번에 서로의 몸체를 붙잡은 데스크라토스와 자이언트 머드골렘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데스크라토스는 상대적으로 스텟이 고르게 균등 되어 있는 E랭크 몬스터.

같은 E랭크라지만 물리저항력만 높은 자이언트 머드골렘과는 사실상 급이 달랐다.

괜히 중간다리의 파수꾼 역할을 맞고 있겠는가. 상대적으로 여타 몬스터와 수준을 가늠할 수 없으니 파수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쿵!!

힘에서 밀린 자이언트 머드골렘이 뒤로 고꾸라졌다.

틈을 노리고 있던 유세현과 이강호는 재빨리 좌우로 협공을 펼쳤다.

[크크크! 제법 재빠르지만! 가소롭구나!]

하지만 수족이 많은 데스크라토스는 날아오는 무기를 재빨리 쳐냈다.

E랭크의 내구력을 지니고 있는 단단한 나뭇가지와 부딪힐 때마다 F랭크 최하급 무기인 참마와 롱소드의 이가 서서히 나가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본체를 직접 가격해도 사실상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하는 상황.

하지만, 이는 이미 다 예상되어있던 바였다.

노리는 것은 어차피 이강호의 한방.

“유세현!”

“알고 있다!”

유세현은 프로즌 디퓨전을 전개했다.

땅을 타고 흐른 차가운 공기가 데스크라토스의 몸체에 와 닿았다.

상대적으로 보다 더 날카롭고, 재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이강호를 주시하고 있던 데스크라토스의 눈동자가 유세현을 향했다.

[크흐흐! 켈투자드를 잡고 얻은 스킬인가!]

“...!!”

역시 1차 튜토리얼의 몬스터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이어지는 데스크라토스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이 힘과 속도. 그리고 골렘. 그렇다면 마지막 던전까지도 클리어 했겠군. 내가 너희와 비슷한 놈들을 한 번도 상대해 본 적이 없는 줄 아느냐! 가소롭구나!]

다시금 달려드는 머드골렘을 확인한 데스크라토스가 뿌리를 지면으로 박아 넣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커다란 머드골렘의 육체에 떠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모습이었으나 유세현은 이상하게 발밑이 싸했다.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느낌.

단순한 감각이 아니었다. 이 느낌은 맨 처음 프로즌 디퓨전을 제어하려 애쓸 때와 느꼈던 것과 무척 비슷하다.

불안감에 땅을 살짝 흘겨보는 유세현의 두 눈으로 자신을 향해 매섭게 다가오는 보랏빛 빛이 일렁였다.

데스크라토스의 스킬을 읽은 이강호가 황급히 유세현을 향해 외쳤다.

“유세현 발밑을 조심...”

하지만 유세현은 말이 끝나기도 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지면을 구르고 있었다.

이강호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단순히 느낌만으로 눈치 챘다는 것인가.

말이 되지 않는다.

‘역시...저건 재능이다.’

이전 보여주었던 마나의 흐름을 읽고 다루는 재능. 그 중에서도 유세현은 상상이상으로 특출 나다.

촤아악!

이윽고 뿌리가 유세현이 위치해있던 지면을 뚫고 올라왔다.

자세를 다잡은 유세현은 입을 악물었다.

만약 저 자리에 계속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크흐흐! 제법 감이 좋구나! 자 덤벼라! 그래서는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

“큭!”

시간이 지날수록 데스크라토스의 공격은 더욱 매섭게 이뤄졌다.

허나, 그 사이 조금씩이지만 프로즌 디퓨전의 효과 또한 확실히 중첩되고 있었다.

이동하는 데스크라토스의 본체와 나뭇가지들의 움직임이 느려진 것이 그 증거.

본래라면 몸체를 좀 더 냉각시키고 싶었지만 이제는 유세현의 마력이 다 떨어졌을 뿐더러 골렘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쿠궁! 쾅!

결국 일격을 맞은 머드골렘의 육체가 부서지며 핵으로 되돌아가기 무섭게 이강호의 손 주위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생겨났다.

모든 마나를 집중시킨. 자이언트 머드골렘도 일격에 보내버린 스킬.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생존자들과 전투에서도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크으! 그건 좀 위험하군!]

위협을 느낀 데스크라토스가 황급히 몸을 뒤로 내빼는 찰나였다.

‘파이어 에로우!’

한발 앞서 이강호가 발사 한 커다란 불의 화살이 데스크라토스를 꿰뚫었다.

[크아아악!]

꽁꽁 얼려져있던 몸체가 단번에 이글이글 타오르며 급격히 바뀐 온도차를 견디지 못하고 몸체에 균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을 이강호는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다가간 이강호의 참마가 고목의 중심부를 갈랐다.

약해진 나무껍질이 움푹 갈라지며 골렘의 핵과도 비슷한 동그란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격이 얕았는지 정수는 건재한 상황.

“쳇! 얕았나.”

이강호는 회전력을 이용해 한 번 더 참마를 휘두르려했다.

하지만.

[크으으 어딜!]

위협을 느낀 데스크라토스의 6개의 손이 곧장 날아왔다.

이강호는 황급히 몸을 뺄 수밖에 없었다.

“쳇!”

[크흐흐흐! 꽤 대단한 공격이었다.]

그사이 몸체가 다시 핵을 감싸기 시작했다.

승부를 건만큼 지금 끝내야 되는 게 맞았지만, 데스크라토스가 공격까지 멈추고 어찌나 방어에 치중하는지 스텟 능력치가 부족한 지금, 한 번 더 접근하여 핵을 노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강호가 입술을 살짝 곱씹었다.

‘장기전으로 가야되나.’

데스크라토스를 잡은 사람은 그가 알던 사람 중에서도 몇 명 없다.

각자 제단을 클리어 해 스킬을 얻고, 이곳까지 오며 강해진 50명의 사람들이 우연히 뭉쳐 사냥한 것이 이 파수꾼 데스크라토스였다.

그리고 사냥이 끝났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8명뿐 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레전더리 스킬을 지닌 만큼 가능할거라 생각했는데...’

죽은 생존자들의 코인을 쓸어 담았음에도 마력량이 조금 부족했다.

10%. 딱 10%만 마력량이 높았더라면 일격에 죽일 수 있는 화력을 내는 게 가능했으리라.

“유세현! 이렇게 되면 장기전으로 갈 수 밖에 없다!”

판단을 내린 이강호가 외쳤지만 유세현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기교가 좋아 체력을 잘 배분하여 움직인 이강호와 달리 유세현은 빠른 적의 공격을 몸을 굴리며 필사적으로 회피해야 됐던 탓.

더군다나 그는 홀로 움직이며 수많은 생존자들을 상대했다.

그나마 방패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더라면 지금쯤 시체가 되어 지면에 누워있을 수도 있었다.

“허억...허억...”

심장이 비명을 질렀다.

방패도 균열이 많이 간 것이 한두 번만 더 가격당하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이강호의 눈이 재빨리 유세현을 훑었다.

‘체력이 바닥났군.’

[크흐흐흐! 슬슬 지쳐가는 모양이군!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었다.]

약해진 적을 먼저 죽이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

데스크라토스 또한 상처가 적당히 아물기 무섭게 유세현을 노려왔다.

이강호가 재빨리 데스크라토스의 앞을 막아섰다.

“유세현! 일단 뒤로 물러나! 재정비를 하고오자!”

[크큭! 누구 마음대로! 비켜라! 너는 저놈을 끝내고 상대해주 마!]

이강호는 커다란 나뭇가지에 올라타는 등, 시간을 끌기위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간을 끌었다.

허나, 유세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도망칠 뛸 체력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거니와 결론적으로.

‘지금 물러나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다.’

적의 압도적인 스텟 능력치는 지금도 몸을 떨리게 만들 정도로 두렵다.

허나, 지금은 적도 어느 정도 많이 지친 상황.

또한 그들이 가려는 것은 최악의 던전이다.

지금, 이 상황을 타파해내지 못한다면 추후 우연히라도 자신보다 강한 적을 만났을 때 상대하지 못하고 굴복 할 것만 같았다.

‘아직, 이길 방법은 있다.’

잔뜩 집중한 그의 두 눈에 보랏빛이 또 다시 일렁였다.

처음에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잘 몰랐지만, 이제는 이 빛이 뭘 의미하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자신 또한 이 세계로 넘어와 얻게 된 스텟.

마력.

데스크라토스의 몸체 중앙으로 마치 투시를 하듯 소용돌이치고 있는 거대한 빛의 덩어리가 보였다.

위치를 확인한 유세현이 방패를 버리고 양손으로 롱소드를 고쳐 쥐었다.

“유세현! 너 무슨 생각...”

“이강호! 한 발 더! 한 발만 더 날려봐!”

“...알았다.”

이강호는 유세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일단 말을 들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강제적으로 제압해서 자리를 이탈했겠지만, 그가 봐온 바 유세현은 승산 없는 행동을 스스로 자처 할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화르륵!

이강호는 곧장 모든 마력을 쥐어짜 스킬을 발동했다.

이전에 비해 작아진 불의 화살을 본 데스크라토스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크크크! 위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은데! 그런 것 가지고는...]

“닥치시지.”

슈우웅!

3개의 불의 화살이 곧장 몸체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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