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서식지(2)
“근데 물리저항은 그렇다 쳐도 마력저항이 0%로 나오는데 그러면 이거 혹시 재수 없게 한방 맞기라도 하면 바로 죽는 거냐?”
“...음...”
뜬금포 질문에 지금까지 어떤 말도 술술 튀어나오던 이강호 또한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저항이 0%때 마법을 맞아본 적이 없던 것!
“음...그건 나도 잘. 근데 확실히 맞으면 위험할 것 같긴 하다.”
0%라는 것은 말 그대로 무방비.
그대로 노출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높은 신체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죽을 확률이 무척이나 높았다.
‘좋은 지적이다. 나도 지금은 0%인데 남쪽으로 가기 전 반드시 0.1%라도 올려놔야겠군.’
본의 아니게 하나 얻어걸린 이강호는 스테이터스를 유심히 보고 있는 유세현의 오른팔을 툭 쳤다.
“야! 거기 다친 곳...어? 진짜 안 아프네?”
“봐라. 벌써 괜찮아졌지?”
“그러게.”
색이 조금 옅어진 것이 확인한 유세현의 눈에 놀라움이 물들었다.
그 사이 이강호는 다시 방패를 등에 짊어지고 시퍼런 피가 묻은 참마를 손에 쥐었다.
“그럼. 바로 움직이자. 스테이터스는 쉴 때나 봐라.”
어제 자이언트 터틀을 잡고 손질하면서 하루가 지났다.
또한 동서남북 각 방향에 위치한 동굴을 하루에 하나씩 점령하여 코인을 얻는다고 가정했을 때 걸리는 시간은 4일.
자이언트 머드골렘을 추적하는데 1일.
계획대로 움직여야만 시간에 딱 맞출 수 있었다.
‘이곳의 코인을 싹 쓸어가서 다음에 있을 튜토리얼에서도 우위를 서야만하다.’
목표를 확실히 잡아 놨던 이강호는 유세현과 함께 동굴 더욱 깊숙한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키에엑!
단말마의 비명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이에 코인을 흡수하기위해 자연스레 다가간 유세현은 시체에서 빛나고 있는 코인의 색이 붉은 색인 것을 확인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무슨 힘 코인만 이리 나오냐.”
“구성 성분의 비중이 힘이 더 높은걸 어쩌겠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야.”
“...쳇. 그래도 아쉽네.”
도우미가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 짐작만 하고 있던 것이었지만 민첩은 역시나 순발력이나 동체시력 등을 올려주었다.
너무 순식간이라 무조건 방패로 전신을 가려 방어를 해야 했던 고블린이 공격 궤적이 조금씩이지만 보이기 시작한 것이 그 증거.
즉 이대로 민첩을 계속 올리게 된다면 이강호처럼 예측하여 반응하는 것이 아닌 공격을 확실히 보고 반응하게 되는 것이 꿈이 아니게 된다.
그러니 격투 초심자인 유세현이 힘보다도 민첩 코인을 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다음번에도 힘 코인이 나오려나...”
문제는 시작의 길에서 빠르기로는 그 누구도 울고 갈 고블린들 조차 민첩 코인을 잘 주지 않는다는 것.
코인은 이전 도우미가 말했던 대로 성분에 비례해 떨어지게 되어있는데 민첩계열의 몬스터 조차 힘 비중이 더 높기 때문이다.
아니, 민첩 코인만 잘 주는 몬스터가 있긴 한 것일까.
“아무튼 민첩 코인은 그렇다 쳐도 이젠 너도 고블린 3마리는 거뜬하네.”
“뭐, 그거야 코인을 먹었으니깐. 다 네 덕분이지.”
이강호와 유세현은 상처회복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동굴을 달려왔다.
그사이 출몰하는 고블린의 수는 7마리로 늘어 처음과 달리 3마리를 상대해야 되었지만 코인흡수와 패턴을 알아낸 덕에 이제는 익숙하게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유세현도 착실히 이세계의 법칙을 따르기 시작한 것!
‘그런데 들어갈수록 나오는 고블린의 수가 더 늘어나는 시스템인가?”
4마리까진 어찌어찌할 수 있을 것 같긴 해도 한번에 5마리 이상 되는 고블린을 한 번에 상대하는 것까지는 아직 자신이 없었다.
한 마리가 늘어난 것임에도 신경 써야 되는 것이 많아 졌는데 5마리가 된다는 것은 3마리와는 차원이 다르게 신경써야 될 것이 많을 테니깐.
그러니 만약 각 통로에 위치해 있는 고블린들이 몰려와 덮치는 일이 생겼더라면 이강호는 몰라도 자신은 무조건 적으로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는 다른 통로에 있는 고블린들은 우리의 전투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외길로 이어지고 있는 동굴의 통로.
정말 신기한 것은 분명 동족의 비명소리가 울렸을 터인데 거주하는 위치 구역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그곳에만 존재하는 것을 허락받기라도 하듯.
‘...설마?’
유세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강호를 향해 질문했다.
“강호야 혹시 들어갈수록 고블린의 숫자가 늘어 나냐?”
“숫자? 글쎄. 늘어난다고 해도 기껏해야 한 마리 정도일 거 같은데?”
이강호의 대답은 역시나 칼 같았다.
이에 유세현은 자신의 직감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고블린이라는 몬스터는 이곳에서 자유가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의외로 이 동굴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아직 이강호에게 모든 것을 듣지 못한 유세현은 내심 안도하면 롱소드에 묻어있던 피를 고블린의 겉가죽에 문데 닦아냈다.
그리고 그런 유세현의 행동을 본 이강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몬스터의 패턴뿐만 아니라 대략적인 시스템도 파악한 모양이군.’
이 차원에서 튜토리얼에 참가 되어있는 총 인원수는 30명.
또한 동굴은 동서남북으로 각 4개가 위치하여 있다.
그래서일까? 이 동굴의 난이도는 도합 평균 7인용 코인의 힘을 지닌 몬스터로 정해져 있었다.
즉 홀로 7명은 커버 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면 혼자서라도. 또는 코인을 적절하게 잘 나눈 7명 이상만 되면 동굴을 나아갈 수는 있게 만든 셈!
지구에서 강제로 끌고와 대충 던져놓은 것 치고는 생각보다 합리적인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진 않지.“
코어의 중심으로 가는 중간에는 특이종의 몬스터가 존재한다.
중간을 담당하며 지키고 있어 판도라에서는 중간보스라고 불렀었던 몬스터.
홉 고블린.
물론 이강호 자신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쓰러질 예정이었다.
유세현이 진짜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무엇인가 있음을 느끼고 정말 열심히 친한 친구를 연기하는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
* * *
크륵.크르륵.
여태까지 고블린의 음성보다는 다른, 훨씬 굵고 날카로운 음성이 유세현의 귓가를 자극했다.
이에 평소와 같이 다음 통로로 돌아 고블린을 처리하려 했던 유세현은 재빨리 몸을 벽에 밀착시킨 뒤 얼굴만 살짝 내밀었다.
여태까지 지나온 동굴이 단지 큰 길 정도였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공터는 이에 4배는 족히 되 보이는 넓은 면적에 사각형태의 경기장 모양을 띠고 있었다.
또한 그 뿐만 아니라 중심에는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몬스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저건 대체...”
2m가 넘어 보이는 커다란 육체에 굽어져 있는 등으로 부터 솟아나 있는 커다란 혹.
일반 고블린이 자신의 체구에 2/3정도 된 것을 감안하자면 비정상적으로 큰 키다.
꿀꺽.
마른침이 절로 목뒤로 넘어갔다.
유세현은 조심히 이강호를 바라봤다.
그 또한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져 있었다.
코인을 습득하지 못했을때 조차 항상 여유로워 보이던 그였는데.
그만큼 앞에 있는 놈이 위험한 놈이라는 뜻인가.
“강호야 혹시 네 머릿속에 들어온 무언가가 저놈이 많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냐?”
“...응. 좀. 등에서 마비독이 분출 된다는 것 같은데? 제대로 적중당하면 최소 1분은 움직이지 못하게 될 거야.”
“......”
이강호의 말에 유세현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져갔다.
말로 할 때는 1분이 정말 짧은 시간인 것 같지만, 사실상 전투에 있어 1분이란 시간은 몇 번이고 죽음 교차할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후우, 너가 그 정도로 말할 놈이라니...처리할 수는 있겠어?”
“물론. 실수만 하지 않는 다면.”
“...위험하다고 돌아갈 생각은 없지?”
“응. 그래서는 안 된다고 머리가 말하고 있거든.”
이강호가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호위병으로 보이는 일반 고블린 4마리. 최대한 빨리 잡고 가세해줄게. 못 이길거 같으면 무리하지 말고 잘 버티고 있어라. 2명이서 덤비면 어떻게든 되겠지.”
유세현은 정말 걱정을 가득 담아 말했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해 보였으니깐.
하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는 유세현을 향해 돌아온 이강호의 대답은 정말 가관이었다.
“하하! 가세? 가세는 무슨! 저놈이 아무리 세다지만 아마 너가 4마리를 전부 잡았을 때 쯤엔 내가 먼저 쓰러트려서 나온 코인 다 먹고 있을 거다.”
‘...아니 이자식이?’
자신을 살짝 약올리는 듯한 말투.
하지만 이 느낌이 싫진 않았다.
그 맹랑하고 활기찬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치 MT를 오기 전의 이강호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세현은 긴장이 조금 이완되는 것을 느끼며 실소어린 미소를 지었다.
“후우....위험해 보인다더니 말은 참 잘해요. 그럼 해볼 수 있으면 한 번 해보시던가! 준비됐지?”
“물론! 가자!”
이강호의 외침과 동시에 둘은 통로를 돌았다.
그 순간이었다.
한순간에 두 명을 포착한 홉 고블린의 입에서 흉폭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크라라락!
소리가 어찌나 큰지 고막에 쩌렁쩌렁 울릴 뿐만 아니라 동굴 윗벽에 반사되어 메아리가 칠정도.
유세현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괴한 음색에 심장이 붕 뜬것 같았으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저것만으로 동요하기에는 자신 또한 나름 목숨을 걸고 헤쳐 온 난관이 있지 않던가.
“흐아압!”
그 사이 힘 스텟이 앞서는 이강호가 홉 고블린을 향해 방패를 부메랑처럼 던졌다.
참마를 주 무기로 하여 방패는 잘 쓰지 않는 그가 시선을 끌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었지만 대부분의 이것에 가격 당한 고블린은 즉사를 면치 못했다.
쾅!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날린 방패는 목표물이 있던 공간을 그대로 지나쳐 공터 끝 내벽에 박혔다.
홉 고블린이 덩치에 맞지 않게 날렵하게 옆으로 움직여 간단히 피해버린 것!
‘빠르다!’
유세현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장되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유인책이 성공했다고 판단한 유세현은 이강호에게 적의를 띄고 있는 일반 고블린을 옆에서 덮침과 동시에 즉시 곧장 방패를 휘둘렀다.
중량이 무겁고 면적이 큰 만큼 빈틈이 많아져 첫 사냥 이후 쓰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혹시 모르게 생기게 될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고블린을 처리해 놔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콰직!
아니나 다를까.
첫 전투 때와 똑같이 왼손이 휘두른 방패에 맞은 고블린 한마리가 그대로 절명했다.
이제 남은 것은 셋!
유세현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몸이 딸려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방패를 손에서 놓음과 동시에 오른편에서 공격을 들어오고 있는 고블린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 놈은 머리를. 또 다른 놈들은 오른팔과 어깨를 노리고 있군.’
여태까지 상대하면서 보아 익혔던 패턴과 전진해 오면서 먹었던 민첩 코인 덕에 조금이나마 공격을 포착할 수 있게 된 유세현은, 두 눈으로 날아오는 방망이의 궤적을 확인하기 무섭게 오른쪽 어깨를 뒤로 빼며 자세를 낮췄다.
슈우웅!
그 결과 허공을 가르게 된 고블린의 일격!
유세현은 고블린이 재차 공격할 틈을 주지 않고 그대로 왼쪽 위부터 사선방향으로 롱소드를 내리 그었다.
서걱!
키에엑!
비명소리와 함께 머리를 노리기 위해 도약했었던 고블린은 상반신이, 오른편을 노렸던 2마리의 고블린들은 안면이 두 조각으로 분리되어 지면으로 떨어졌다.
유세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상반신이 잘려나간 고블린의 얼굴을 곧바로 검 끝으로 찍내렸다.
이윽고 몸을 덜덜 떨며 발작을 일으키던 마지막 고블린 조차 확실하게 숨을 거뒀다.
‘후우.후우! 해, 해냈다!’
유세현은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4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최초.
또한 안정감을 버리고 외줄타기 식으로 움직여 일합에 적을 몽땅 죽인 경우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그만큼 아슬아슬했지만 느껴지는 성취감 또한 남달랐다.
지금으로서는 절대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강호에게 아주 조금 다가선 느낌.
‘그러고 보니 강호는!’
보통 때라면 코인을 이미 회수하고 자신에게 다가왔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직 전투중이라는 것!
유세현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이강호를 바라봤다.
채채챙!
공터의 각진 구석에서 커다란 곤봉을 휘두르는 돌연변이 고블린과 이강호는 호각으로 매섭게 부딪치고 있었다.
아니, 약간씩이지만 이강호가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점점 구석으로 내몰리는 것이 그 증거.
‘뭐지? 어째서?’
뭔가가 이상했다.
이 세계에 온 이후 항상 무술의 고수처럼 절도 있게 행동하며 몬스터의 허를 찌르던 이강호의 움직임이 아니다.
고블린을 상대하는 그 잠깐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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