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서식지(1)
시작의 길의 아침 해는 생각보다 빨리 뜬다.
지구시간으로 05시 정도면 사물의 분간이 가능해지는 정도.
“좋아. 식량은 챙겼고. 이거 받아라.”
이강호는 폭포하부로 다가가기 무섭게 미리 만들어두었던 가시 돋친 방패를 유세현에게 던졌다.
“어? 이거 나 정말 써도 돼?”
“물론. 애초에 그러려고 2개 만든 거니깐. 싫으면 그냥 내가 두개 다 쓸까?”
씨익 미소 지은 이강호가 발밑에 위치해 있는 또 하나의 방패를 툭툭 차며 말했다.
그러자 유세현은 황급히 방패를 뒤로 숨기며 임금에게 절을 하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황송하옵니다. 저어언하. 사하여 주신 방패 정말 잘 쓰도록 하겠사옵니다아~”
“......”
무슨 개그를 한 것일까.
20년 간 척박한 세계 판도라에서 살아온 이강호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다.
“야야...장난이야 장난 짜샤. 머리에 이상한 정보가 들어갔다더니. 센스도 많이 굳었네. 그러니깐 그 굳은 인상 좀 펴라.”
천천히 다가온 유세현이 이강호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이 자식.’
불안으로 인해 잔뜩 긴장한 것이 역력하지만 억지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모습.
하지만 이강호는 유세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폭포를 향해 몸을 돌려 않았다.
이것은 판도라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시련.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면 해줘서도 안 되었다.
“그럼, 출발하자.”
“알았어. 이 폭포 뒤라고 했지?”
“그래. 맞아. 나 먼저 간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망설임 없이 물에 뛰어든 이강호는 보통사람의 힘으로는 버티기도 힘들어보이는 물살을 뚫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코인의 힘.
‘좋아. 나도 따라가자.’
쭉쭉 뻗어나가는 이강호의 뒷모습을 본 유세현은 곧 한 번의 심호흡 끝내 물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 * *
폭포 뒤에 위치한 동굴의 크기는 폭만 10m 높이는 대략 15m정도로 유세현이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컸다.
‘처음부터 몬스터가 나올 가능성이 높겠는데.’
곳곳에 횟불이 끼워져 있는 것을 확인한 유세현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왼손에 잡은 방패를 몸에 바짝 밀착시켰다.
그 사이 입구 주위를 훑어보던 이강호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이 앞에는 고블린이 있는 거 같다.”
“...고블린?”
“그래.”
입구주위에 떨어져있는 더러운 배설물.
그리고 뼈로 만든 몽둥이의 잔재로 보이는 새하얀 가루까지.
동서남북에 각 산에 위치한 동굴 중 북쪽으로 온 것이 틀림없었다.
‘원했던 방향은 아니지만.’
나침반이 없던 것 치고는 나쁘지는 않았다.
본래는 체력만 무식하게 높은 몬스터가 있는 동쪽을 원했었지만 남쪽에 위치해 빙계 마법을 난사하는 놈들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깐.
‘동쪽은 다음 순으로 가야겠군.’
지하로 이어져있을 동굴은 결국 한곳으로 모이게 된다.
그곳에서 방향을 읽어 동쪽에 있는 몬스터를 다음 타자로 잡으면 되는 것이다.
“좋아, 출발하자. 그놈들 빠른 건 알고 있지?”
“물론. 그것만 조심하면 되는 거지?”
“그래. 간혹 돌연변이도 있겠지만 조심만 하면 괜찮을 거야.”
방패를 등에 멘 이강호가 참마를 양손으로 쥐어 잡고 앞으로 나섰다.
유세현 또한 그에 지지 않게 행여 모를 함정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며 뒤를 따랐다.
그렇게 동굴에 들어간 지 10분쯤 걸었을 때였다.
키릭. 키리릭.
오른편으로 이어져있는 통로로 고블린 특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그래. 고블린이다.”
서로를 마주 본 둘은 눈빛을 교환함과 동시에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몸을 벽에 밀착시켰다.
고블린의 수는 총 5마리.
위치해 있는 거리는 어렴풋이 잡아도 20m가 넘었다.
즉 들키지 않고 다가갈 수 는 없다는 뜻.
유세현은 심호흡을 하며 입술을 악물었다.
처음에 보았던 고블린은 너무도 빠르고 강해보여서 혼자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염두가 들지 않았지만 힘 스텟이 잔뜩 증가한 지금은 이강호와 함께라면 어찌어찌 해볼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세 마리를 맡을 테니 네가 왼쪽의 두 마리를 맡아. 알았지?”
하지만 이강호의 말은 유세현의 생각을 완전히 어긋나게 만들었다.
“같이 협공하는 게 아니라?”
“그럼 나중에 힘들다.”
이강호는 아주 짧게 답했다.
그 말을 유세현은 금방 이해했다.
‘그래 기본기 없는 협공도 결국엔 의존이다.’
자신은 결단코 짐이 될 생각 따윈 없었다.
“후우웁...좋아! 그럼 간다! 따라와라 이강호!”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한 유세현이 통로를 먼저 뛰쳐나갔다.
그리고 이강호가 잔잔한 미소와 함께 그의 뒤를 따랐다.
솨아악!
강해진 근력 덕에 달리기 속도는 평상시의 두 배 이상이었지만 이제부터 상대하려는 생명체 또한 평범한 동물은 아니다.
지구의 상식을 초월한 존재들의 대결!
키릭? 키리리릭!!
침입자를 확인한 고블린들이 뼈로 된 조악한 몽둥이를 들어올렸다.
동시에 그 날카로운 이빨을 내비치며 제일 선두에서 달려오는 유세현을 향해 5마리가 일제히 몰아쳤다.
그 위압감이 얼마나 센지 유세현에게는 뚫어내지 못할 것 같은 커다란 바위가 덮쳐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강호를 믿는다.’
유세현은 쫄아서 돌격하는 것을 멈추거나 하지 않았다.
되려 오른쪽은 신경도 쓰지 않은 듯 왼쪽 두 마리에게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유세현과 고블린들의 거리가 5m 정도로 좁혀지는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유세현의 오른편에서 가시 돋힌 방패가 갑작스레 튀어나와 3마리의 몸을 정확히 가격했다.
미리 말했었던 대로 이강호가 맡은바 소임을 다해준 것!
‘그렇다면 나도!’
유세현은 들고 있던 방패를 맨 왼쪽 고블린을 향해 후려갈겼다.
콰직!
솨아아!
고블린의 가죽이 질기다지만 자이언트 터틀의 갑주에 비하면 철과 나무수준!
일격에 관통당한 고블린은 그야말로 꼬치가 되어 절명했다.
‘이, 이건!’
아무리 강해졌다지만 한 번에 절명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던 유세현의 눈이 화등잔만해 졌다.
이것이 F 랭크 22%의 힘!
키리릭!
하지만 미처 기뻐할 새도 없이 바로 옆에 위치 해있던 고블린의 몽둥이가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농구나 축구만 해봤지 격투기 같은 운동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던 그로서는 팔의 각도만으로 궤도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
아니 애초에 너무 순식간이라 잘 보이지도 않는다.
‘제기랄!’
그렇기에 유세현은 다루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커다란 방패를 버리고 아예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흐아압!”
그리고는 곧바로 그 강한 힘을 이용해 들고 있던 롱소드를 고블린의 짧은 다리를 향해 황급히 휘둘렀다.
서걱.
곧 경쾌하지만 서늘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몸뚱이가 땅을 뒹굴었다.
“허억! 허억! 쓰러트린 건가?”
보통 사람이 예상치도 못하게 양발을 잃게 된다면 고통이 아닌, 충격 때문이라도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블린이란 몬스터는 굉장히 질기고 억척스러운 몬스터였다.
튜토리얼때 이강호가 괜히 단번에 목을 쳐버린 게 아니다.“
‘제기랄!’
잘린 발의 단면으로 피를 한바가지 내뿜고 있는 고블린은 유세현이 도망을 치지 못하게 왼손으로 어깨를 붙잡은 반면 몽둥이를 들고 있는 오른손으로는 그의 머리를 노렸다.
‘이게!’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현재의 유세현으로서는 반격을 할 수 없는 상황.
아니, 이강호였더라면 가능했겠지만 유세현의 머릿속에는 지금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되는 데로 황급히 팔을 올려 머리를 막았다.
팔목이 부셔진다고 죽지는 않지만 머리가 부셔지면 죽는 것은 생물의 당연한 이치이다.
콰득
“크으으윽!”
조악한 뼈 몽둥이와 부딪힌 오른쪽 팔목에 강한통증이 몰아쳤다.
아무렇게나 휘두른 야구 배트에 재수 없게 머리를 얻어 맞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일반인이었던 그로서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이겨내야 된다.’
하지만 유세현은 그럴수록 입술을 꽉 깨물며 정신을 다독였다.
이런 고통에 져서는 앞으로 결단코 살아남을 수 없다.
“으아아아!”
유세현은 다치지 않은 왼손을 고블린의 목을 향해 힘껏 뻗었다.
동시에 고블린 또한 한방 더 먹이기 몽둥이를 치켜 들어올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일격을 날리려는 아슬아슬한 상황.
빠른 쪽이 승리한다.
“뒈져라! 쪼오옴!”
유세현은 젓 먹던 힘까지 다해 목을 비틀어 꺾었다.
그와 동시에 내려친 고블린의 팔이 축 늘어지며 몽둥이가 지면으로 힘 없이 떨어졌다.
완벽한 죽음.
유세현은 욱신거리는 팔을 뒤로한 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강호가 있을 방향을 살폈다.
‘이강호! 이강호는 무사한 건가?’
1:2와 1:3은 한 마리 차이라고는 하나 실상 그 차이는 무척이나 크다.
또한 자신은 강력한 힘으로 한 마리를 죽이고 시작했음에도 이리 구석에 몰렸다.
지금의 이강호가 아무리 강해 보인다고는 하나 걱정이 되는 건 당연지사.
“어? 너도 다 해치웠냐?”
하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말을 내뱉는 이강호는 유세현의 걱정과는 다르게 이미 코인의 회수해보이기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윽...그럼 나도...”
이강호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유세현은 빛이 나고 있는 푸른 코인 2개를 황급히 흡수했다.
민첩의 증가.
하지만 통증이 너무 커서 무작위로 학살하며 증가시켰을 때와 달리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다.
“크으...강호야. 넌 어디 다친데 없지?”
“응. 너 다친거야? 어디 한번 보자.”
유세현에게 다가온 이강호가 팔소매를 걷어 상처를 살폈다.
세포가 일격에 괴사당해 시퍼렇게 피멍이든 팔.
이강호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말을 툭 내뱉었다.
“이 정도는 5분이면 나을 거야.”
“...뭐? 5분? 정말로?”
“그래. 도우미가 말해줬잖아. 우리의 육체는 이제 제약이 풀렸다고.”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실컷 먹은 거 라고는 힘의 코인이 전부인데?”
“...하긴 그것도 그러네. 사실 원리는 잘 몰라. 그냥 내 머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뿐이야.”
실상은 세분화하기 애매한 체력 스텟이 수치화 되면서 적용이 된 것이지만 이강호는 그냥 믿으려면 믿고 말라면 말라는 투로 말했다.
세밀하게 말할 이유도 없거니와 괜히 쓰잘데 없는 의구심만 증폭할 테니.
“...그런가. 뭐 금방 낫는다면야 뭐 나도 바랄 것도 없지.”
유세현 또한 의외로 금방 납득하며 아픈 오른손을 움직여 롱소드를 쥐었다.
무기는 제2의 생명.
군대에서도 보았던 말이지만 여기서는 좀 더 절실하다.
“크...근데 고통이 좀 심하긴 하다. 맞은 순간 내 팔이 부러지는 줄 알았어.”
“아 그거? 나중에 물리 저항 코인을 먹으면 좀 나아질 거야.”
“물리저항?”
“응. 확인해봐라.”
유세현은 이강호의 말마 따라 스테이터스 창을 확인했다.
이름: [유세현]
성별: [남]
나이: [25]
키: [181cm]
체중: [75kg]
<주요스텟>
힘: 22.5% [F Rank]
민첩: 9.4% [F Rank]
체력: 10% [F Rank]
내구력: 10% [F Rank]
마력: 0% [None Find]
<저항력>
물리저항: 1% [F Rank]
마력저항: 0% [None Find]
<속성저항>
화: 3% [F Rank]
수: 3% [F Rank]
<스킬>
[None Find]
확실히 물리저항 수치가 매우 낮다.
또한 마력저항은 아예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이거 올리면 덜 아프게 되는 거냐?”
“응. 대충 설명하자면 그런거긴 한데. 정확히는 충격이 감소되어 적용되는 거지. 그...게임처럼 말이야.”
“게임? 아하~ 갑옷을 입는 것처럼?”
“그래 맞아.”
“오...꼭 얻어야겠네.”
지금까지는 이 세계에 떨어졌느니, 힘의 코인을 위해 자이언트 터틀을 학살하느니 정신이 하도 없어 얻은 코인 이외에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있었는데.
게임으로 치자면 제일 중요한 것을 신경쓰지 않았던 것!
유세현은 자신의 행동에 반성하며 다른 스텟 또한 세세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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