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서식지(3)
‘설마!’
유세현의 눈이 홉 고블린의 등을 향했다.
등에서는 예상과 같이 녹색의 가루가 내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사지에 마비를 오게 만든다는 독!
‘직접 분사가 아니라! 가루형태로 뿌리다니!’
아직까지는 직접 맞지 않은 덕에 움직일 수 있지만, 이대로 구석진 곳에서 탈출 하지 못하고 계속 있게 된다면 전신마비가 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당장이라도 신속한 구출이 필요했다.
‘하지만 뭘 해야 하지?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민첩이 어느정도 올랐음에도 홉 고블린의 공격은 너무도 빨라 잘 보이지 않았다.
또한 공격패턴도 일반 고블린 과는 달랐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 롱소드를 휘두르는 건 가능한 일이지만 저 빠른 몸돌림을 보이는 홉 고블린이 맞아줄까가 의문.
즉 구하러 가게 된다면 설상가상으로 둘 다 당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았다.
“크윽!”
잡생각 때문에 고작 1초가 지났을 뿐인데 그 사이 홉 고블린에게서 갑작스레 물줄기처럼 분사 된 독이 이강호를 덮쳤다.
독을 확인한 이강호는 황급히 몸을 움직여 피하려했으나 몸이 상당히 많이 둔해진 덕에 완전히 회피하지 못해 왼손에 독을 뒤집어썼다.
‘손을 맞다니!’
여태까지 지켜본 바, 참마는 양손으로 다뤄야 제대로 효율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왼손을 쓸 수 없다는 뜻은.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이강호는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이번에는 자신의 눈앞에서.
‘강호가...이강호가 죽는다고? 내 눈 앞에서?’
보지 못한 곳에서 사고를 당해, 유골이 되어 돌아온 가족을 봤을 때조차 훗날 자살을 결심하게 될 정도로 슬펐는데.
그런 자살을 막아주고 삶의 희망이 되어준 이강호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게 된다면?
모든 것을 잃은 자신이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
아니다. 결단코 말 하건데 없었다.
부모님의 죽음과 여동생의 실종.
그 후 여자친구의 갑작스런 이별통보.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이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면 같이 뛰어내리겠다고 팬티차림으로 서있던 저 자식 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방패를 앞으로 치켜세운 유세현은 고함과 함께 홉 고블린을 향해 돌진했다.
공격을 어떻게 막고 반격해야 할지는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직 뇌리에 있는 생각이라고는 홉 고블린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려 이강호를 구석진 곳에서 빠져나오게 만드는 것!
그 후에 일은 자신이 알바가 아니다.
크라라락!
고블린의 등에서 발사된 독이 이번에는 유세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도 온몸을 방패로 가리고 있는 덕에 독에는 닿지 않은 상황!
“뒈져버려어어어!”
홉 고블린이 마음만 먹었다면 이런 정직한 돌격은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홉고블린의 크나큰 실수는 첫 부메랑 공격을 피한덕에 방패의 경도를 만만히 보았다는 것!
콰직!
자신의 두꺼운 가죽을 믿고 단순하게 몸으로 막으려했던 홉 고블린의 오른쪽 팔뚝과 옆구리에 가시가 들어가 박혔다.
키에엑!
여태까지 동굴의 왕이었던 홉 고블린으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강한 고통!
때문에 홉 고블린은 이강호에게 몰아치던 공격도 멈추고 방패를 빼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바둥 거렸다.
그사이 유세현이 멍한 표정이 되어있는 이강호를 향해 외쳤다.
“거기서 당장 튀어나와! 짜식아!! 더 못 움직이게 되기 전에!! 아니면 차라리 끝장을 내보던가!!”
다시금 분사되고 있는 마비독을 들이키면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땅을 지지하고 있는 유세현은 자신 스스로가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잘 인지되지 않았다.
그만큼 유세현은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다급한 표정을 확인한 이강호의 머리에 어떤 장면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다.
[새끼야 내가 그러게 그런 여자 신경 끄...]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남자.
남자의 얼굴은 분명 자신을 향해 있었으나 아쉽게도 얼굴에 어두운 명암이 자욱이 칠해져 보이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기억이지?’
이강호는 최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애써 떠올리려 했다.
하지만 기억은 곧 꿈에서 깨기라도 하듯 금세 희미해져갔다.
‘내가...뭘 본거였지?’
이강호는 생각할 겨를 도 없이 곧장 오른손을 이용해 참마를 빙글빙글 돌렸다.
본래라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지친 연기를 하려 했으나 유세현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흥이 돋질 않았다.
아니, 판도라 세계를 살아왔던 자로서 당연한 시험을 한 것을 한 것임에도, 이 남자에게 연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왠지 모르게 좀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알았다. 마무리를 할 테니 조금만 버텨봐라.”
후웅!후웅!훙훙훙!
오른팔에 쥐어진 참마가 점점 속도를 더하더니 풍차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강호의 몸이 상공 높이 솟아올랐다.
홉 고블린은 어느새 유세현을 완전히 밀어내기 직전인 상황.
이강호의 몸이 갑작스레 회전에 동화되듯 녹아들어가는 모습을 자아냈다.
판도라에서 익혔었던 창법.
아르카드 창술 제 13식.
류각섬(流角剡).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워 사용하는 자가 거의 없는 드문 기술로 성공만 시킨다면 힘과 마력 그리고 회전력이 담긴 힘을 고스란히 적에게 안겨줄 수 있는 강격한 찌르기 공격법!
과거 이강호가 이무기 키아누스의 두개골을 깨부순 기술이었다.
쾅!
“크윽!”
코인으로 강화된 유세현의 다리가 버티지 못할 정도의 강한 충격파가 원을 그리며 공간을 휩쓸었다.
단숨에 뒤로 나가떨어진 유세현은 황급히 자세를 다잡기 무섭게 전방을 살폈다.
상공으로 흩날린 흙먼지 속으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가, 강호냐?”
“...콜록 콜록.”
대답 대신 들린 것이 비록 기침소리였지만 유세현은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홉 고블린이 이런 기침소리를 낼 수 있을 리 없을 뿐더러, 낼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 익숙한 기침소리는 절대로 아닐테니깐.
“이강호!”
“후우...죽는 줄 알았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타난 이강호의 표정은 굉장히 지쳐 있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연기를 하는 것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유세현은 다급하게 이강호에게 뛰어가 몸을 이리저리 훑었다.
“야! 몸은? 몸은 괜찮은 거냐?”
“후우...아퍼 짜샤!”
유세현이 어깨를 만지자 이강호가 애써 어깨를 아픈 척 연기했다.
유세현은 그런 이강호의 찡그린 표정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심각하게 다친 사람은 티가 확 나게 되어있으니깐.
저렇게 짜증을 낼 정도면 괜찮다는 표시다.
“변종 고블린은? 쓰러트린 거냐?”
“아, 그 놈? 어찌어찌 죽이는 데에는 성공한 거 같다.”
등 뒤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이강호의 너머로 흙먼지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흙먼지가 다 걷힌 그 순간 유세현은 볼 수 있었다.
땅바닥에 쓰러져있는 홉 고블린의 몸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여러 색의 빛들을.
‘코인!’
몬스터가 죽었다는 것을 확신한 유세현은 재빨리 시체의 앞으로 다가가 전리품을 살폈다.
총 나온 코인의 종류는 4개!
힘의 코인과 민첩의 코인. 그리고 한번도 본적 없는 보랏빛의 코인.
결정체의 모양이 육각형인 것을 감안했을 때 스텟에 관련된 것은 틀림없었으나 스킬과 달리 제대로 된 설명이 뜨지 않기 때문에 어떤 스텟에 영향을 끼치는지는 먹어보기 전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건...’
유세현은 3개의 코인들을 제쳐 두고 사각형 모양으로 되어있는 결정체의 정보를 살폈다.
스킬명: 홉 고블린의 마비 독 정수
등급 :노멀 [B Rank]
사용능력: 마비 독.
소비마력: 15
‘오!’
유세현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반짝반짝 빛났다.
그 강해보이던 친구 이강호의 움직임을 빼앗았었던 몬스터의 능력.
만약 이 스킬을 자신이 익히게 된다면 당분간은 자신의 어설픈 움직임을 커버하고도 남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해결해야 될 큰 문제가 있다.’
설명에도 써져있듯이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면 반드시 마력이란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현재 자신의 마력이 0%로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친구인 이강호가 이미 하나의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유세현은 보랏빛 코인을 바라보며 이강호를 불렀다.
“강호야 숨 좀 돌렸으면 일로 와봐라. 코인 떨어져 있다.”
“아 맞다. 코인! 알았어. 지금 갈게.”
이강호는 유세현이 부르기 무섭게 등 뒤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스킬 나왔네?”
“응. 그 외에도 코인이 3개 나왔어. 내가 도와준 만큼 각 두개씩 먹으면 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 하냐?”
유세현이 당당하게 말했다.
이에 이강호는 피식 웃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어떤 거 가지고 싶은데? 너가 날 살려줘서 잡을 수 있던거니깐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특별히 먼저 줄게”
“...특별히? 킥. 너답다 짜샤. 으음. 그러면 그 호의 거절하지 않고 내가 먼저 고르도록 하마.”
말을 마치기 무섭게 유세현의 두 눈이 보랏빛 코인과 스킬로 향했다.
만약 이 보랏빛 코인이 마력이라면 듬직한 능력이 하나 생긴다.
‘물어 보고 싶다.’
그래서인지 자꾸 이강호에게 보랏빛의 코인이 무슨 코인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또한 물어본다면 대답해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강호의 머릿속에 있는 무엇인가에 자꾸 기대게 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자주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이 세계는 험난하다.’
도우미가 7일 생존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음에도 이정도의 몬스터가 튀어나온다.
그런데 만약 전투라는 타이틀이 걸리게 된다면?
‘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해.’
그렇기에 유세현은 일반 코인 보다 좀 더 영롱하게 빛나는 붉은색 코인과 푸른색 코인을 집어 들었다.
뭔지도 모르는 스텟을 먹어가며 스킬을 얻는 도박을 하는 것보다 기본능력을 끌어 올리는 것을 선택한 것!
“난 이 두 개.”
“오~정말로 후회 안하겠어? 보라색 코인 이거 마력코인인데?”
“...미친놈아 알려주려면 더 빨리 알려주던가. 우리 예전에 소개팅 갈 때 만들었었던 룰 잊었냐? 바꾸기 없음.”
“......”
그런 룰을 만들었던 적이 있던가.
이강호는 진심인 듯 장난스러운 유세현의 말이 어이가 없었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는 이미 다른 스킬도 가지고 있잖아. 그저 마력이 없어서 못썼던 것 일뿐. 그러니깐 지금 그 마력코인이랑 스킬은 니가 먹어라. 그게 내가 먹는 것보다 더 훨씬 효율적일 테니깐.”
이 동굴에서 더 이상 마력코인을 얻을 수 없다는 가정 하에, 즉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둘 중에 한명이 스킬을 가지게 되면 지금 당시로서는 한명은 스킬을 가지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셈이 되는 것이니깐.
그렇기에 예전부터 들던 의문이 더욱이 커졌다.
무슨 중요한 기억이 길래 Ex아이템 신의 회종시계는 자신에게서 유세현이란 남자의 기억을 빼낸 것인가.
왠지 모를 불안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만약 일이 닥쳤을 때까지 이것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튜토리얼의 클리어과정, 아이템의 입수과정, 스킬의 입수과정 등 자질 구리한 기억 일부분을 잃어버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에 불행이 닥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생각나는 게 없으니.’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정보는 이 남자가 튜토리얼에서 죽었었다는 것.
이강호는 동굴을 다시 나아가는 동안 그 정보를 중점으로 심각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 * *
이강호와 유세현이 동굴로 들어 온지 어느덧 3일이 지났다.
그사이 그들은 3개의 동굴을 돌며 코인을 싹쓸이 하는 행동을 보였는데 첫째 날에는 힘과 민첩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던 고블린.
둘째 날은 고블린보다 빠르고 강하진 않지만 높은 물리저항과 마력저항을 바탕으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갑각류 몬스터인 암모나이트.
셋 째날이 되는 오늘은 막대한 체력과 힘을 지니고 있어 돌격을 일삼는 미노타우르스를 잡았다.
유세현은 이제는 야영지로 변한 동굴에서 가장 깊은 중심부에 위치한 공터로 돌아오기 무섭게 스테이터스를 살폈다.
이름: [유세현]
성별: [남]
나이: [25]
키: [181cm]
체중: [75kg]
<주요스텟>
힘: 45.5% [F Rank]
민첩: 30.4% [F Rank]
체력: 36% [F Rank]
내구력: 41.3% [F Rank]
마력: 0% [None Find]
<저항력>
물리저항: 10.5% [F Rank]
마력저항: 9.3% [F Rank]
<속성저항>
화: 3% [F Rank]
수: 3% [F Rank]
<스킬>
[None Find]
격렬한 전투를 해도 지치지 않게 해 주는 체력이 36%.
피부를 단단하게 해주는 내구력이 41.3%.
또한 1%였던 물리저항과 0%였던 마력저항도 처음에 비해 눈에 띄게 올랐다.
지금만약 처음 만났던 고블린들을 만난다면 7마리 던 10마리 던 혼자서 학살을 하고 다닐 수 있을 자신감이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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