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4)
“뭐, 뭐?”
“꺄아아악!”
단번에 패닉이 일어났다.
그 사이에도 모습을 드러낸 고블린 5마리는 펜션으로 진격해오는 상황.
“씨, 씨발 전부 무기 들고 벽으로 붙어!”
펜션 구석 한곳에 비치시켜두었던 무기를 재빨리 회수한 남학생들이 외쳤다.
허나, 정말 웃기게도 2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안전부절 못하며 발만 동동 구를 뿐 남학생들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
무기를 잡으면 당연히 싸워야 되지만. 잡지 않는다면 남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서 지켜줄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탓이다.
여태까지 한국사회에서 약자인 척 대접받으며 살아온 그들의 무 개념적인 생각.
“씨발! 뭐하는 거야 지금? 자기 무기 잡으라는 말 안 들려!!”
결국 참지 못 한 이한철이 입에서 펜션 내부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하지만 그가 화를 내면 낼수록 여학생들은 마치 시위를 하는 것 마냥 더욱 크게 비명만 지르며 벽에 더 찰싹 달라 붙을 뿐이었다.
“씨발 년들이 진짜!”
결국 이한철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 쳐져있는 장창 한 자루와 활을 들고 뒤로 물러났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들고 와 구석에 박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자들에게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꾸물대다가는 자신이 제일먼저 고블린의 제물이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개 같은 씨발 년들! 너희들 전부 끝나고 보자!”
이한철은 욕이란 욕은 다 내뱉으며 활시위를 당겼다.
이로서 화살로 입구 쪽을 노리고 있게 된 사람들은 총 3명.
활을 선택한 사람이 6명이나 있던 것 치고는 부진한 숫자였다.
부들부들.
또한 설상가상으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입구 쪽을 겨냥하고 있던 이한철과 2명의 학생의 팔이 거세게 떨리기 시작했다.
조악한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아 다루기 쉬워 보였는데, 막상 직접 활시위를 당겨보니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는데 생각보다도 힘이 훨씬 많이 들어가는 탓이다.
“크윽! 팔이...
“도대체 언제 들어 오는 거야? 몬스터였던 거 확실하지?”
결국 들이닥칠 운명이라면 이젠 차라리 빨리 들어와 줬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통한 것인지 괴성과 함께 입구에서 고블린 들이 차례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이다! 쏴라!”
슈수숙!
이용석의 외침과 동시에 돌진해오는 고블린을 향해 3발의 화살이 빠르게 날아갔다.
투둑!
푹!
“이런 씨발!”
그러나 엎어지면 코 닿을 만한 근접거리였음에도 적중한 화살은 단 한발 뿐이었다.
초심자들의 폐해!
또한 어찌어찌 운 좋게 적중시킨 부위도 어깨 쪽인지라 광기에 찬 돌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 오지마!”
“꺼져라 개새끼들!”
허술한 1차 방어선이 손쉽게 뚫리자 장창과 참마 일본도를 쥐고 있던 남학생들은 마구잡이식으로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는 동물이 아닌 지능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
벽을 등지고 좁은 펜션에 똘똘 뭉쳐 먼 거리에서 찌르는 장창과 참마는 그렇다 쳐도 상대적으로 짧은 일본도를 든 학생들은 휘두르는 속도가 떨어지기 무섭게 자연스레 빈틈이 만들어졌다.
키에엑!
그리고 고블린들은 이 빈틈을 놓지 않았다.‘
“오, 오지마라고!”으으으! 끄아아아악!”
결국 일본도를 휘두르던 남학생의 체력이 떨어지기 무섭게 재빨리 달려든 고블린 두 마리가 날카로운 이빨로 어깨 죽지와 목을 물었다.
남학생은 살을 파고 들어오는 서늘한 감각과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고통에 발작을 일으킬 뿐 비명조차 내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그 광경을 사람들이 넋이 나간 눈이 되어 쳐다봤다.
단번에 목을 쳐내는 이강호를 보니 자신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느꼈었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
그들은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한 것만 수용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견도 적극 수용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대비했어야만했다.
그렇다. 아까 전에 비웃음을 샀던 유세현의 추측처럼.
“허억,허억.허억,허...”
하지만 돌이키기엔 너무도 늦었다.
물려버린 남학생은 이미 숨이 끊어져 고블린 2마리의 맛있는 야식이 되고 있었다.
지구에서는 최상위 포식자였던 인간이 그저 맛있는 먹잇감으로 전락한 순간이다.
“꺄아악!”
“난 죽기 싫어!!”
눈앞에서 자신들을 지켜주고 있던 남학생이 싸늘한 시체로 변하자 김주희와 그녀의 친구 김아영은 마구잡이식으로 펜션 밖을 향해 달렸다.
그 과정에서 두 마리의 고블린에게 공격받을 수도 있었으나 식사를 하고 있던 고블린들은 신기하게도 그녀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또한 남은 3마리도 장창을 찌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입맛을 다실뿐 뒤따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건! 설마?’
그런 고블린의 이상한 행동방식은 절망에 차있던 이한철에게 어떤 수를 떠올리게 했다.
희생은 다소 있을지언정 전멸이 아닌 모두가 살 수 있는 그런 방법.
‘그러니깐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젓 먹던 힘까지 다해 장창을 휘두르고 있던 이한철은 뒤로 물러서는 척 하며 구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벌벌 떨고만 있는 여학생의 머리에 조심스레 한쪽 손을 올렸다.
“어?”
여학생은 그런 이한철의 행동에 깜짝 몸을 더욱 움츠렸다.
그렇지만 곧 자신의 머리에 있는 것이 사람 손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이내 다시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씨발련아! 이건 너가 자초한 거다!”
방심을 유도하기위해 최대한 참고 있었던 이한철은 여자의 머리채를 붙잡는 동시에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내동댕이쳤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펜션의 바닥을 구른 여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눈치.
“이한철...너...무슨...”
“씨발. 그러게 무기 들라고 했지?”
이한철을 욕과 동시에 3마리의 고블린들이 여자에게 이빨을 들이 밀었다.
“꺄아아악! 사, 살려...”
여자는 몇 마디 하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조각조각 분해되어 걸레가 되었다.
“지금이다! 찔러!”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한철이 악을 쓰며 장창을 고블린의 목을 향해 내리꽂았다.
푸슉!
아무것도 모른 채 야들야들한 인육에 정신이 팔려있던 고블린 한 마리는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씨발 지금 다 조져야 돼! 뭐하는 거야? 다 뒤지고 싶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이한철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창을 빼내기 위해 힘을 주었다.
허나 창이 목을 관통하여 여자의 육체에 같이 박혔는지 생각보다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씨발 이 개년이 죽어서도!”
이한철은 창을 포기하고 재빨리 뒤로 빠졌다.
그 사이 동족의 죽음을 확인한 고블린들이 먹던 행위를 멈추고 무작위 적으로 사람들을 덮쳐 나갔다.
“꺄아아악! 살려줘!”
“내...어깨! 어깨가아아아!”
2명의 죽음으로 냉전을 유지하던 펜션.
그 안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펜션 밖으로 도망치려던 누군가는 몽둥이에 맞아 다리가 부러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목이 부러졌다.
이리저리 튀며 섞이는 붉은 피와 푸른 피.
그리고 마침내 고블린 5마리를 간신히 전부 해치웠을 땐.
펜션 안에는 싸늘하게 주검으로 변한 11명의 학생들이 쓰러져 있었다.
* * *
무수한 나뭇잎에 가려져 한줌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새까만 밤.
폭포의 인근에 위치한 나무위에서 2시간씩 교대로 불침번을 서고 있던 유세현은 커다란 땅울림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이게 무슨 소리지?’
항상 세차게 울려퍼지고 있는 폭포의 물줄기 소리를 집어 삼킬 정도의 더한 충격음과 진동.
행여나 지진이라도 난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지진이라고 보기에는...’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진동의 폭이 너무도 일정할 뿐만 아니라 소리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
마치 거대한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것처럼.
“강호야 이건...”
“쉿! 숨소리도 내지마.”
어느새 잠에서 깬 이강호가 조심스럽게 소곤거리는 유세현의 입을 날렵하게 틀어막았다.
쿵!쿵!쿵!
빠르게 커지던 충격음은 어느덧 절정에 달한 상황!
사르륵.
그리고 마침내 무엇인가가 지나쳐 가며 나뭇가지를 살짝 떠밀어 틈으로 쏟아진 달빛이 그들이 있는 바로 옆을 비추었다.
“이, 이건!”
그 순간 유세현은 볼 수 있었다.
조형이라도 해놓은 듯 한 각이 진 육체.
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모습과는 반대로 진액을 온몸을 두르고 있는 몬스터.
[자이언트 머드골렘·]
동서남북으로 솟아있는 4개의 산을 순차적으로 거닐고 다니며 침입자를 죽이고 다니는 파수꾼으로서, 이곳 시작의 길에서 7일간 생존해야 되는 이강호가 최종적으로 잡으려하는 몬스터였다.
‘하지만 순수한 힘만으로는 녀석을 잡을 수 없지.’
골렘이란 종 자체가 상대적으로 물리적 공격에 강한 내성을 띠기 때문이다.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E랭크의 힘.
하지만 이곳 시작에 길에서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얻을 수 있는 힘의 코인은 F랭크의 코인뿐이었다.
그렇기에 판도라 대륙으로 넘어왔던 대부분의 인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냥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성공했던 자들도 있었지.’
사람들을 단합시키는데 성공하여 폭포 뒤에 가려져있는 던전의 끝을 통과한 자.
오직 그들만이 자이언트 머드 골렘을 죽이고 특전이 되는 아이템을 얻어갈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쪼록 던전의 공략이 필요하다.’
이강호는 매의 눈으로 자이언트 머드골렘의 동향을 살피다 충격음이 사라지자 그제야 유세현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뗐다.
“푸하! 강호야 저놈은?”
“자이언트 머드골렘...내 머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어.”
“...머리가 말하고 있다고?”
이강호의 아리송한 말에 유세현의 눈빛이 번뜩 빛났다.
마치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 어디서 가져온 정보를 토대로 설명해주는 듯한 말투.
“역시...뭔가 있었구나.”
“...응. 나도 내가 좀 이상하게 된 것 같아서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말해주려고 한 건데. 막상 생각해보니깐 별거 아닌 거 같아서 말이야...”
“...너의 머리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데?”
유세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반면 이강호는 대답 하는 데에 1초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게 내 머릿속으로 직감 혹은 정보 비스 무리한 게 들어온 것 같아.”
“...직감? 정보?”
“응. 앞으로 어떻게 상황을 헤쳐나가면 좋을지 알려주는 그런 거...”
“...아...”
이강호의 말을 들은 유세현은 자이언트 머드골렘 덕에 빠르게 뛰던 심장이 한순간에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여태까지 진짜 이강호인지 혹은 그 껍데기를 쓰고 있는 다른 사람인지 심각히 고민이 되었었는데 지금의 한마디가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날려주었으니깐.
“그래서 너 행동이...”
“응...그리고 이게 성격에도 좀 지장을 준것 같아...그리고 내 기억에도.”
이강호의 입에서 청산유수처럼 말이 흘러나왔다.
양심에 찔리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애초에 찔리거나 할 양심이라고는 남아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실상 조금 다른 식으로 말했을 뿐 거짓말은 아니었으니깐.
“짜식. 그런 거였냐? 아무튼 고민 많이 했을 텐데 말해줘서 고맙다.”
“고맙긴 뭘. 아무튼 내일 부터는 바쁘고 위험할거야.”
“네 머릿속에 있는 정보가 그리 말해?”
“뭐, 그렇지. 해야 될 일이 산더미다. 나를 계속 따라오는 건 위험할 수 도 있어.”
“하! 이 세계는 어딜 가도 위험해 보인다 짜샤! 내 걱정 마라.”
이강호가 은근슬쩍 떠봤지만 유세현은 실소를 내뱉을 뿐이었다.
그런 유세현의 담담한 모습을 보며 이강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은 원석이다.’
잘만 갈고 다듬으면 빛을 환하게 낼 수 있는 보석.
더군다나 그는 신기하게 맹목적으로 자신을 믿는다.
뒤통수를 맞기 쉬운 이 세계에서 처음부터 이런 아군을 얻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다.
보통 자신의 몸이 위험에 쳐하면 친구고 자시고 도망치는 자들이 대부분이니깐.
‘그러고 보니 시험을 안했었구나.’
아직은 약한 몬스터와 조우하지 않았기에 유세현이라는 남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테스트 하지 못했다.
‘내일 한번 시험해본다.’
이런 것은 빠를수록 좋다.
더군다나 만약 가면을 쓰고 맹목적으로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이 자식은 왠지 안 그럴 거 같긴 하지만.’
자신이 정해둔 규칙에 예외는 없다.
이강호는 눈을 감으며 내일 어느 부분 에서 연극을 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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