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 무림왕 (3)
(359/400)
359. 무림왕 (3)
(359/400)
359. 무림왕 (3)
2022.06.07.
“지, 지부장님!”
“지부장님은 자리를 비우셨다. 무슨 일이지?”
“으으, 큰일 났습니다!”
하오문을 뜻하는 은병과 낫이 교차된 문양을 옷깃에 새긴 허름한 차림새의 남자가 구르듯이 연경에서 가장 낡은 기루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는 숨을 몰아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지부장님께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계시지 않는다니까!”
“이를 어째!!”
하오문은 중원 전역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소외당하고 외면 받는 하류 인생들인 기생, 파락호, 잡부 등이 모여 만든 하오문은 각 주, 또는 성마다 하오문의 지부가 하나씩 있었고 그곳마다 지부장이 하나씩 있었다.
그중 연경은 하오문의 본문이 있는 남경의 하오문을 제외하고는 지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는데 그곳의 지부장이 바로 무화 임수미, 하오문주의 딸이었다.
하도 그 문도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에 지부장인 임수미의 실종 사실을 숨기고 있던 하오문의 간부는 입수를 잘근 깨물었다.
허나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는 없었다.
[검주, 검주가 나서 주기로 하였다. 그러니 절대로 비밀에 부쳐야 한다!]
하오문주인 임택평은 검주를 만나 그렇게 담판 지었다면서 호언장담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까지도 임수미가 풀려났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림맹에 하옥된 지부장님을 검주가 빼낼 수 있다고?’
검주가 천하제일인이라 하여도 홀로 무림맹을 돌파하여 임수미를 구출해 낼 수 있을 것이라 하오문의 간부는 믿지 않았다.
허나 지금은 잡고 매달릴 수 있는 동아줄이 있다고 믿는 것밖에는 하오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아가씨께서는 하필이면 천안각을 건드려서.’
부쩍 늘어난 무공으로 천안각을 넘본 것 자체가 문제였다. 말린다고 해서 들을 임수미가 아니었고, 하오문에서 그녀를 뛰어넘는 고수가 없기에 결국 이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내각대학사라니.’
그렇다고 하여 임수미를 구해 내는 조건으로 검주가 하오문에게 요구한 것은 내각대학사의 집안에 있는 한 여종이었다.
문제는 그 여종이 검주가 말한 ‘조선에서 온 공녀일 것이다.’라는 추측만 있었지, 물증이 없었기에 지금은 모든 하오문의 정보망이 그쪽으로 집중이 되어 있었다.
“그,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자미원에서 다수의 금의위와 환관들이 빠져나와 연경 시내를 쥐 잡듯이 뒤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찾고 있다고 했는데…….”
콰직!
그런데 바로 그때 ‘등루’라 쓰인 낡은 현판이 문을 뚫고는 하오문도와 간부의 발치에 툭 하고 떨어졌다.
반쯤 경첩이 떨어진 채로 헤벌레하고 입을 벌린 등루의 출입문 사이로 환관과 금의위들이 눈을 빛내며 하오문도와 간부를 쳐다봤다.
“여기가 하오문이 맞느냐?”
간드러지는 듯한 얇고 높은 환관의 목소리에 하오문도와 간부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
“멈추고.”
타닥.
호선이 팔을 내뻗으면서 말함과 동시에 선기가 호선과 방매, 권비가 있는 곳을 쑥 하고 에워쌓았다. 권비는 호선이 저렇게 할 때마다 마치 숲에서 느끼는 풀냄새 같은 것이 느껴졌기에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곤 했다.
우르르르!
“사라졌다!”
“저쪽인가?”
“산개!!!!”
그러자 곧바로 호선의 옆으로 금의위들과 환관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백성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가기에 바빴지만 그들은 바로 눈앞에 권비를 두고서도 헤매기 일쑤였다.
“흐음.”
그렇게 금의위들과 환관들이 한차례 요란하게 옆으로 지나가자 고개를 돌려 권비를 쳐다봤다. 쳐진 탓에 나른함을 풍겨 대어 묘한 교태가 느껴지는 호선의 눈에 권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그녀는 황제가 총애하는 황제의 후궁이었으나 방매가 호선에게 언니라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호선을 언니라 부르며 말을 높였다.
“아무래도 너에게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구나.”
호선 역시 인간의 신분에 얽매이기에는 500년이란 세월을 살아왔기에 그런 권비에게 편하게 말했다. 권비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호선이 권비의 소맷자락을 덥석 붙잡고는 자신의 품에 안았다.
“꺅!”
“가만히.”
킁킁킁.
그렇게 호선의 품에 안긴 권비는 자신의 냄새를 킁킁거리면서 맡는 호선을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역시. 준비가 철저하네.”
호선이 그런 권비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대고는 가볍게 휘젓자 권비의 몸에서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이 쭈욱 하고 피어올랐다.
“어쩐지 잘 쫓아오더라.”
호선은 작은 구의 형태로 뭉친 희뿌연 연기를 손바닥 위에 놓고는 신기한 듯 쳐다봤다.
“그게 뭐에요, 언니?”
방매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호선에게 묻자 빙긋 웃어 보였다.
“추종향. 한 번 묻히면 잘 지워지지도 않는 향이야. 이 향으로 가는 길마다 쫓아온 것 같은데.”
그때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울려 퍼졌다.
금의위와 환관들이 권비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산개하면서 노점이 뒤집어지고 난리가 나면서 자신의 어미가 넘어지자 그것을 본 어린 아이가 울음을 빼액 하고 터뜨린 것이다.
대여섯 살은 되었을까.
그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 것이 하필이면 호선에 의해 딱 하고 끊어진 추종향에 의해 신경질이 날 대로 난 환관의 앞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덥석.
“우, 울 엄마 괴롭히지 마요. 흐아아앙.”
노점을 하는 아이의 어미가 환관과 금의위들로 인해 노점상이 뒤집어지면서 그 아래 깔린 모양이었다. 뒤늦게 엎어진 노점상을 헤집고 달려 나온 어미가 아이를 끌어안고는 환관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나리, 죄송합니다.”
“황명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환관은 권비에게 묻혀 놓았던 추종향이 끊긴 것에 인상을 썼다.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후궁이 자미원에서 탈출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자신의 목도 간당간당하다.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웬 애새끼가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자 환관의 이성의 끈이 뚝 하고 끊어졌다.
“황명의 이행을 막는 자.”
촹!
환관이 대로 한복판에서 검을 빼들었다. 시퍼런 검의 예기가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 벌벌 떠는 어미와 아이를 향했다.
“그 누구라도 죽는다.”
주변의 다른 환관들과 금의위들도 나서지 않았다. 지금 저 환관을 가로막으면 곧 황명을 거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어미와 아이의 모습에 주변에서도 침을 삼키며 쳐다보기만 할 뿐 함부로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환관과 금의위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저자에 나가 말릴 수 있는 용기가 있는 백성이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 한 번만 용서를, 제발…….”
아이의 어미가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두 눈을 감고는 간절하게 환관에게 빌었다. 하지만 환관의 얼굴 위에는 단 한 점의 자비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황명을 거역한 자, 죽음뿐이리니.”
환관의 검날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안 돼!!!”
그때 호선의 둔갑진을 뚫고 권비가 방매도 뿌리치면서 팟 하고 튀어나갔다. 권비는 치맛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도록 내달렸는데 그 속도가 가히 바람에 가까웠다.
“언니!”
“제 의지로 한 발을 내딛으려고 하였으니, 그에 합당한 보답이란다.”
그 속도가 평생 논과 밭을 일구며 살아온 농부의 딸이 낼 수 없는 속도였기에 방매는 호선을 쳐다봤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호선이 자애롭게 웃어 보이며 방매에게 대꾸했다.
“언니, 그럼 나도!!”
“너까지 나설 필요 없단다.”
호선에게서 향긋한 풀잎 향이 진동하고 있었다. 호선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한 줄기 선기가 권비로 하여금 낼 수 없는 속도를 낼 수 있게 해 주었기에 방매도 호선을 쳐다보며 재촉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 난 왜!?”
“여기서 더 사고를 치면 감당할 수 없어. 그리고 네가 나서지 않아도.”
호선이 고개를 돌려 저잣거리의 먼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이 모든 혼란을 평정시켜 줄 수 있는 자, 만우가 뒷짐을 진 채 두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사고뭉치가 왔거든.”
호선의 시선이 치맛자락을 펄럭거리며 환관에게로 달려 나가는 권비에게로 향했다.
*****
권비는 나가야겠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몸이 먼저 움직여 달려 나간 권비는 자신의 뜀박질이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것에 두 눈을 크게 뜨며 대경했다.
“꺅!”
퍼억!
“어억!!!”
그 바람에 권비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는 어미에게 검을 휘두르려는 환관을 뒤에서 그대로 들이받았다. 그러자 당연한 수순으로 부지불식간에 들이받힌 환관이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나뒹굴었다.
“웨, 웬 노오…….”
한 바퀴 데구르르 구르다가 벌떡 일어난 환관이 검을 권비에게로 겨누며 버럭 소리를 지르다가 그 자리에 석상처럼 떡 하고 굳었다.
의복을 환복했다고는 하나 규화각에서 권비를 모신 환관이 권비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권비는 잠깐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다가 자신을 보고 굳은 환관을 보면서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권비는 그런 환관에게 뭐라고 하기 보다는 벌벌 떨고 있는 아이의 어미를 그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세요.”
“아, 아…….”
화려한 황실 의복을 계속해서 걸치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포목점에서 돈을 주고 갈아입은 권비의 의복은 고급스러웠지만 아무런 문양이 없이 깔끔했다.
그랬기에 권비의 손에 의해 일으켜진 아이 어미의 표정은 더욱더 퍼렇게 질렸다.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여인이 환관을 날려 버렸으니 지금 당장은 살았으나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느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요.”
권비는 그런 아이 어미를 달래기 위해 진땀을 뺐다. 그래도 어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권비는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괜찮니?”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아이는 우렁차게 코를 한 번 쭉 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어미를 꼬옥 끌어안으며 자신이 어미를 지키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권비를 쳐다봤다.
“누나는 누구에요?”
“나? 음…….”
권비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권비를 발견한 것인지 사방에 산개하여 권비를 찾고 있던 금의위와 환관들이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권비는 황제가 자신을 어여삐 여기면서 해 주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짐을 제외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라. 짐이 직접 너를 존귀한 여인으로 만들 것이니라.]
존귀한 자.
한미한 농사꾼의 딸로 평생을 살아오던 자신을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는 하나 그만큼 자신을 귀하게 여겨 준 이의 말이다.
그리고 황제는 실제로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조선의 농사꾼의 딸로만 남아 있던 것은 권비, 바로 자신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
권비는 자기 자신에게 말을 하듯 아이의 말에 대답하고서는 자신을 보며 석상처럼 굳은 환관에게 다가가 그 환관이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빼앗아 들었다.
“자, 자가!!!!”
“위험합니다. 어찌…….”
그간 권비는 마치 예쁜 인형처럼 규화각 안에서, 혹은 궁인들이 있으라고 한 곳에서만 있어 왔다. 허나 원래 권비는 명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천성 자체가 아예 다르다.
단지 그것을 드러낼 정도로 상황이 녹록치 않았기에 권비 스스로 참고 스스로를 다스렸을 뿐이다.
짜악!!!
권비는 검을 자신에게 빼앗긴 환관의 뺨을 올려붙였다. 그러자 그 환관은 정신이 번쩍 든 듯 뒤로 넘어졌다가 발딱 하고 일어섰다.
“황명을 참칭한 자에게는 어떤 벌을 내려야 하나요.”
권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정신이 번쩍 든 환관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환관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순간적으로 부르르 떨었다.
황명을 참칭한 자.
누가 보더라도 권비는 자신을 지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혀, 현인비를 뵙사…….”
“되었고.”
환관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권비를 보면서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그간 권비가 얌전하였기에 궁인들이 조선의 공녀인 그녀를 알게 모르게 괄시하고 무시하였다.
한데 그간 무시하였던 권비의 모습은 전혀 저렇지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환관은 볼이 아려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고는 그 자리에 무릎을 쿵 하고 꿇었다.
“정녕 황상께서 황명을 내리셨나요?”
“그, 그것은…….”
황제는 황명을 내리지 않았다.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권비가 실종되었기에, 자미원을 나갔기에 황제의 뜻을 미리 헤아려 자신이 떠들고 다닌 것뿐이다.
하지만 이걸 권비가 끈덕지게 물고 늘어진다면?
아니, 혹시 자미원으로 돌아가 황제에게 그랬냐고 사실 여부를 묻기라도 한다면?
‘으으…….’
방효유처럼 진노한 황제에 의해 십족이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황제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를 절대로 살려 두지 않는다.
“물었습니다. 공공.”
권비의 눈빛이 예리하게 변했다. 환관은 그런 권비의 눈빛이 마치 자신에게서 빼앗아 간 검을 겨누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꿀꺽.
그런 권비의 기백에 놀란 것은 비단 환관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몇 달간을 지근거리에서 보내 권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부한 금의위나 다른 환관들도 자신들이 권비를 잘못 판단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서묘금!’
그들 모두 황제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이 타개한 서황후가 아니라 서황후의 동생인 서묘금이었다는 것을 안다.
특히나 자매의 위애가 좋아 서묘금이 자주 들락날락거렸기에 서묘금을 자주 본 금의위와 환관들이다.
그들은, 권비의 모습에 그 서묘금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 했다.
“상께서 최근 지나치게 과로하시는 듯하여 내 상을 모시는 자로서 상의 건강을 챙기고자 나올 뿐일지언데.”
권비는 고개를 돌려 금의위와 환관들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그들 중 그 누구도 권비와 감히 눈을 마주치는 이가 없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황명을 참칭하여 연경을 이리 어지럽히는 겝니까?”
“현인비 자가. 그것이 아니라 소신들은…….”
“당신은.”
권비는 홍의를 입은 금의위의 말허리를 중간에 끊었다. 그리고는 눈을 파랗게 빛내며 금의위에게 물었다.
“어디의 누군가요.”
“…….”
금의위의 무사는 권비의 질문에 자신이 큰 실수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즉시 금의위는 극진히 예를 표하며 대답했다.
“송구하옵니다. 신, 교위 남명. 현인비 자가께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권비는 그냥 일개 조선의 공녀 따위가 아니다. 비록 출신은 그런 한미한 출신일지 모르나 권비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다.
허니 금의위 따위가 감히 권비 앞에서 허락 없이 입을 놀릴 수는 없다.
“아니요. 올리지 마세요.”
권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권비의 단호한 거절에 금의위 무사가 그 자리에 석상처럼 떡 하고 굳었다.
“당신들은.”
권비의 시선이 금의위와 환관들의 뒤로 향했다. 그곳에는 재밌는 한 편의 촌극을 본다는 듯한 표정의 만우가 서 있었다.
권비와 만우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꿈틀.
권비와 시선이 마주친 만우의 얼굴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문득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이란 예감이 든 것이다.
하지만 만우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보다 권비의 입이 열리는 것이 더 빨랐다.
“황명을 참칭한 반역자들이니, 나를 수행할 자격이 없습니다. 대신.”
권비가 손가락을 들어 만우를 가리켰다.
“저 자가 나를 수행할 것입니다. 폐하께서도 저 자와 직접 독대를 하셨으니 감히 폐하의 말씀을 참칭한 그대들보다는 믿을 만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