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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무림왕 (2) (358/400)


358. 무림왕 (2)
202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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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좋은 방법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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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방법?”

권비는 초조해하는 방매를 보다 못해서는 곰곰이 생각한 바를 방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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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虎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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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

방매가 자신도 모르게 호선을 슬쩍 쳐다봤다. 호선의 원래 모습이 하얀 가죽의 백호라는 것을 방매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선은 겉으로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매를 보면서 잘 대처하라는 듯 눈을 찡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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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나?’

호선이 영성을 얻어 영물로 승천까지 하려다 만 백호라는 것은 이미 범의 한계를 탈피했다는 뜻이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버젓이 원래라면 동족이었을 호랑이 가죽을 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방매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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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호피를 좋아하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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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를 구하러 나왔다 할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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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는.”

권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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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폐하께서 날 부르셔서 하신 말씀이 있어. 나도 이제는 폐하의 여인이 되었으니 당당해져야 한다고,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라 하셨거든.”

권비는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후궁이다. 얼마나 권비를 총애하느냐면 그녀를 데리고 저 멀리 원정을 떠나는 길에까지 함께 하려고 했을 정도였다.

명나라 서쪽에 제국을 세운 철목아.

원의 시조인 테무친의 후예를 자처하는 철목아가 명나라의 서방세계를 평정한 뒤 명나라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말에 격노한 황제는 전쟁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철목아가 병사하였기에 전쟁이 흐지부지되었지만 그 당시 황제가 유일하게 대동하려 하였던 후궁이 바로 권비다.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면 수도에 눌러앉아 향락을 즐길 법도 하건만, 패도의 길을 걸어온 황제의 향락은 전쟁터에 있었다. 그런 황제가 권비를 대동하려 하였다는 것은 아주 많은 것을 시사했다.

조선의 공녀 출신에 한미한 집안 출신이기에 정실이 될 수는 없으나 만약 권비가 황제의 씨라도 품게 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거기에 황제의 씨가 아들이라면?

조선의 공녀 출신의 후궁이 자칫하면 다음 대 명나라 황제의 어미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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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를 보지 말라 하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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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규화각과 자미원 바깥으로 나온 권비는 슬슬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조신하고 주변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한 여인에서 활달한 본래의 성격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급히 근처의 포목점에서 천을 사서는 호선의 도술로 옷을 만들어 입었기 때문에 저자에 있는 사람들은 설마 황제의 후궁이 자신의 옆을 거닐고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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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고 싶어 된 공녀도 아니고, 환관이나 궁녀들은 눈이나 부라리고. 콱, 조선이었으면 내가 들이받기라도 하는 건데.”

지난 세월 권비가 받아온 보이지 않는 무시와 괄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잔뜩 기가 죽어 위축된 것을 보고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알게 모르게 괄시한 환관과 궁녀들의 실수다.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후궁이 된 권비의 진짜 성격은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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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만약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걱정 마.”

그런 권비의 본래 성격이 간만에 조선에서 온 동무를 지키기 위해 슬슬 각성하려 하고 있었다.

권비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방매를 향해 다짐하듯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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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벌어지려거든 내가 폐하의 총애를 한 번 제대로 써 먹어 볼 생각이니까. 그러니까 가죽 파는 데로 얼른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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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권비의 묘한 박력에 오히려 방매가 당황했다. 그런 방매의 손목을 붙잡은 권비가 저잣거리 구석구석을 누비며 그간 누리지 못한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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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닦아 주십쇼, 환관 나리들. 거기 구석진 곳에 부서진 곳도 잘들 봐주시고.”

석가장의 손님들도 다 떠나자 이제 황룡객잔에 남은 것은 만우와 만우에게 딸려 보낸 환관들뿐이었다.

오늘 막 소개령이 풀려 연경대로와 그 주변에 잠시 동안 집과 점포를 비워야만 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돌아오면서 점차 주변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황룡객잔은 연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객잔이자 연경대로에서도 가장 유동인구가 많고 커다란 상권이 형성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슥, 슥, 슥.

만우는 말로만 존대를 했지만 환관들은 군소리 하나 없이 만우의 말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툭,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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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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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만우의 발아래에서 쥐포처럼 납작해져서는 개구리처럼 뻗은 채 혼절해 버린 두 거구들 때문이었다.

황명에 의해 황룡객잔의 청소와 보수에 동원이 된 환관들은 만우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았다.

하지만 감히 누구의 명이라고 감히 황명을 거역하겠는가.

그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온 환관들은 점점 더 커져 가는 불만을 꾹 누른 채 황룡객잔의 청소와 보수에 동원됐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한계는 있는 법이다.

환관이라고 하면 일반 저잣거리의 백성들은 감히 말도 못 붙일 정도로 귀한 몸들이다. 남자로서 중요한 것을 잃은 대신 권력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조정의 대신들도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들을 마치 하인 부리듯 부리는 만우의 태도에 환관들의 뚜껑이 열리려는 찰나 그들의 입을 꾹 다물게 만들어 준 사건이 터졌다.

불존 진한대사와 북진무사 황보경.

끈질기게도 아직까지 납득하지 못한 그 둘이 황룡객잔의 만우를 노리고는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아, 물론 멀쩡히 걸어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불존이나 황보경이나 그 자리에서 당장 쓰러져 혼절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들을 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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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잘 거면 값이나 치루고 쳐 잘 것이지. 무림맹의 그 땡추랑 뱀 눈깔은 왜 이놈들은 수습 안 해 간 거야?”

정확히 말하면 만우가 말한 무림맹의 땡추, 무왕 천혜대사와 황보세가주인 황보천은 불존과 황보경을 수습해 갈 신경이 없었다.

무림맹주는 불존이 용접곡에서 나간 이후 불존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기 때문이고 황보천은 지금 이승에 제정신이 없었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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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마수걸이 손님들이라고 보면 되나? 으흐흐흐.”

불존과 황보경은 거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만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둘은 어제 만우를 쫓아 자미원까지 갔지만, 그곳에서 나타난 황룡과 기린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혼절해 버린 것이다.

만전의 상태라고 해도 황룡의 기세를 견뎌 내기란 쉽지 않은 법인데 만우에 의해 된통 당한 이후에 황룡을 봤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혼절한 둘도 화경은 화경이었기에 황룡의 도술이 통하지 않았고, 그렇게 연경대로에서 쓰레기처럼 구겨진 상태로 기절해 있던 불존과 황보경은 마치 혼이 나간 기계처럼 다시 만우를 찾아 황룡객잔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상태로 달려든 불존과 황보경은 일반인 중 웬만한 싸움꾼보다도 많은 허점을 드러내고는 달려들다가 사이좋게 뻗었다.

꿀꺽.

그 둘이 누구인지 환관들이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비록 그들은 동창이나 서창에 속한 환관들은 아니나 그렇다 하여 북진무사 황보경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진무사 황보경.

황보세가를 이끄는 황보천에 일만 정예군을 이끄는 대장군 황보윤에 이은 황보세가의 막내.

가진 바 무공이 인간을 초월했다 하여 금의위를 이끄는 두 대장인 북, 남 진무사 중 북진무사를 황제로부터 하사 받은 황궁 최고수가 바로 황보경이다.

그런 황보경이 만우의 일수에 개구리처럼 뻗은 것을 그곳에 있는 모든 환관들이 똑똑히 지켜봤다.

만우는 황보경을 마치 어린아이 손목 잡아채듯 딱 하고 잡아채서는 그대로 황룡객잔의 바닥에 꽂아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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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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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아, 숨 쉽니다. 숨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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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나 북진무사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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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괜히 그러신 게 아니라 내 진작에 그러지 않았소!”

환관들은 서로 서로 소곤소곤하면서 남 탓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훨씬 더 민첩해졌고, 아까처럼 불만을 투덜거리지도 않았다.

황제보다 가까이 있는 저 무지막지한 주먹이 이제는 더 무서워진 환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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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대충 이 정도면 수리가 끝날 것 같고.”

만우는 환관들이 민첩하게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재깍재깍 자신의 말을 잘 듣자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황룡객잔의 보수가 다 끝나면 그 다음에 또 할 일이 있었다.

황룡객잔을 운영해야 하니 운영할 인력을 구해야 한다.

객잔을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력 있는 숙수들부터 시작해 회계를 담당하는 믿을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고, 황룡객잔에 필요한 물품들을 대는 상단과 인부들과 사람들을 상대하는 점소이들까지.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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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매…… 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면 안 되겠구나.”

만우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이 황룡객잔을 황제에게 달라고 한 이유는 방매 때문인데, 방매에게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이 모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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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아끼겠다고 자기가 발로 뛰겠지.”

방매의 꿈은 객주를 차려 오가는 상인들과 여객들을 상대하고 명으로 넘어가 돌아오지 않은 제 부모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우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재화가 들 방매의 꿈을 확 단축시켜 주기 위해 이 황룡객잔을 황제에게 받았다.

그것도 연경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황룡객잔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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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만우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퍼뜩하고 떠오른 생각에 턱을 쓰다듬었다. 굳이 방매에게 맡길 필요도, 만우 스스로도 이 황룡객잔과 관련된 문제점을 떠맡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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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나리들을 계속 여기서 부리게 해 달라고 할까나?”

만우는 요사스러운 눈으로 근처의 환관을 슬쩍 쳐다봤다. 그러자 열심히 창문을 닦던 환관이 오한이 든 듯 어깨를 감싸 안고 부르르 떨더니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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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욕심쟁이 황제가 그걸 허할 리 없지.”

뭐 밀어붙인다면야 얻어내지 못할 것이 없지만 생각해 보니 환관들에게 맡기는 것은 조금 껄끄러웠다.

황제의 눈이 늘 이 황룡객잔 안에 있게 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인 셈이기 때문이다.

만우는 이 황룡객잔을 잘 포장해서 방매에게 선물로 내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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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그러면 방매는 과연 무슨 표정을 지을까. 그 짠돌이 방매라면 이 황룡객잔을 보고 뒤로 그대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만우는 그 상상을 하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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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

기신(氣神)에 오른 만우의 공력은 흐릿하게 형성되기 시작한 원영신까지 합치면 인간을 초월한 수준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精)의 수준에 만우의 기(氣)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니 천명을 끊어 내어 탈각을 시작한 만우가 이룩한 깨달음의 경지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그 정(精)을 조금이라도 따라가기 위해 만우가 온전한 현경의 경지에 오르면서 몸속에 품게 된 공력은 무려 16갑자.

백맥과 일천세맥이 타통되어 겉으로 보이는 비범함이 완전히 사라지고 겉으로 보이기에는 다시 평범해지는 경지에 오른 만우다.

그런 만우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주변의 개미새끼 한 마리가 움직이는 기척까지 알아챌 수 있는 지극히 촘촘한 기망(氣網)이 깔려 있는데, 지금 그 기망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 전달된 것이다.

그 기망이 요동쳤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인위적인 일이 만우의 기망이 닿는 범위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대규모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거나, 기가 크게 출렁일 정도의 무슨 사건이 벌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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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선?”

하지만 그 기망을 건드린 것 가운데 선기(仙氣), 대개는 도력(道力)이라 불리는 것이 섞여 있다는 것에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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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왜 연경 한복판에 나와 있어? 도망가는 건 또 뭐고.”

만우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만우는 이런 사건 사고를 좋아한다. 만우가 어딜 가면 으레 일어나서 이제는 안 일어나면 서운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평범한 머슴의 삶으로 돌아가겠다고 조선으로 돌아갔으니 그것 역시 역설이고 모순이었지만 만우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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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나리들. 잠깐 나갔다 올 테니 잘들 부탁드리겠수다. 이 떨거지 두 놈은 이대로 두시고. 일어나거들랑 한 번씩들 더 쳐 주십쇼.”

만우가 씩 웃으며 불존과 황보경을 내려다봤다. 그 둘은 혼절한 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만우가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지자 주변에서 바삐 돌아다니던 환관들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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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언제 자미원으로 돌아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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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가 허락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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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우우우…….”

이제는 대들지도 못 하게 된 환관들 사이에서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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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어쩌고 어째?”

황제가 자리에서 옷자락을 휘날리면서 벌떡 일어섰다. 그런 황제는 대경하는 표정이 역력했기에 고하러 온 환관의 어깨가 반치는 더 아래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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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권비…… 께서 사행단의 옹주…… 와 자미원을 몰래 빠져나가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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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거기까지는 들었고. 그래서 영빈각에 뭐가 뭘 보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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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동창에서 그 사행단을 잡아들여 권비…… 마마의 실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여 동창이 영빈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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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놈들!!!”

꽈앙!!!!

황제가 다시 한번 더 발을 굴렀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우지끈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오며 탁상이 바닥을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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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히익! 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황제의 진노에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꿈에도 몰랐던 환관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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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살았느냐? 그곳으로 간 놈들은?”

황제가 물어보는 질문의 방향이 이상했다. 하지만 진노한 황제에게 겁을 잔뜩 집어먹은 환관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는 머리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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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라! 그곳에 간 놈들이 살았냐 이 말이다!!”

영빈각에는 만우가 있다.

동창들이 우르르 몰려가 사행단을 옥으로 끌고 가 문초를 하겠다는 것에 만우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애초에 자신이 죄인이 아닌데 죄인 취급을 하여 조선에서 명나라로 끌고 오게 만들었다고 심양에 들어오면서부터 깽판이란 깽판은 모조리 치고 들어온 만우다.

그런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무공은 왜 그리도 뛰어난 것인지.

그 한 놈을 황제 자신도 막지 못해 무슨 패잔병처럼 만우가 하는 일들을 모두 다 허락해 주면서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안 그래도 한시라도 빨리 만우를 자신의 눈앞에서 치워 버리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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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감히 누가 이 자미원에서 짐의 황명 없이 동창을 움직이냔 말이다! 정화, 정화는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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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서창제독은 폐하의 명으로 남경에 내려갔사옵니다. 그래서 동창의 부태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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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황제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충성경쟁에서 벌어진 일이란 소리다. 하지만 머리를 조아린 환관이 황제에게 한 말에 황제는 이마에 올린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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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영빈각에서 조선 사행단과 동창들이 대치를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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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 대차게 깨진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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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옵니다, 폐하. 무, 물론 다친 자들은 많으나 동창 고수들이 나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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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다행이다. 다행이야. 영빈각에 검주 그 괴물이 없는 것이로구나.”

황제는 환관의 말에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환관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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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위를 부르라!!! 내 직접 영빈각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권비의 일은!”

권비가 자미원을 나갔다. 권비를 가장 총애하는 황제이기에 권비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황제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황실은 황실로서 지켜야 할 체면이 있기에 황제는 권비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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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 곁에 그 조선 옹주가 있다면.’

그리고 권비의 규화각을 지키고 있는 금의위의 눈을 피해 자미원에서 나간 것이라면 권비 곁에도 무시할 수 없는 강자가 붙어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권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니, 이 기회에 권비가 그리워하던 것을 나가서 대신 하고 온다면 그것 자체만으로 황제에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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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의 일은 신경 쓰지 말라. 짐이 영빈각으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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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명을 받드옵니다, 폐하!!!!”

놀란 표정의 환관을 뒤로 한 채 황제가 환관을 지나쳐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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