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네가 조사의냐(1)2020.04.25.
조사의는 뒤를 따르는 몇 안 되는 군졸들을 보면서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아직도 목덜미에는 식은 땀이 흥건했다.
‘무시무시한 그놈!’
자신을 죽일 것처럼 쫓아오던 그 놈이 왜 갑자기 추격을 멈췄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자신이 낭인이라 무시했던 그 자의 무시무시한 무위였다.
“어찌. 이 조사의가 어찌하여!!”
조사의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그는 지금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칠천의 대군을 거느린 장군이었던 자신이 괴물을 만나 완전 패장처럼 도망을 가고 있었다. 아직 뒤에는 몇 천이나 되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도저히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괴물이 쫓아와 자신의 목을 따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조사의는 그렇게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급히 조사의를 호위하기 위해 달려온 이들 중 말을 탄 이들 몇 명만이 간신히 따라붙었다. 그렇게 도망을 친 조사의는 살수가 덕주를 한참 지나쳐 살수가 보이는 어느 산기슭에 도착해서야 말에서 내렸다. 거의 쓰러질 때까지 달렸기에 조사의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죽은 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물을 다오.”
“예, 장군!”
조사의는 자신을 장군이라 부르며 가죽 주머니를 가져온 군졸을 내보내고 쓴웃음을 지었다. 주변 지세를 살피니 덕주를 한참이나 지나쳐 안주 인근까지 도망쳐 온 것이다.
“내가 며칠이나 잠들어 있었던 것이냐?”
“하루를 꼬박 잠들어 계셨습니다.”
꼴사납게 하루를 꼬박 도망쳐 하루를 그대로 뻗어있었던 자신을 반추하니 쓴 웃음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칠천의 군사를 믿고 그 누가 두렵다고 큰소리를 치며 상왕과 세자를 압박하던 그다. 하지만 칼밥을 먹고 칼만 휘둘러온 무림인이란 놈들의 무서움에, 목숨까지 빼앗길 뻔 하다보니 도저히 큰 소리를 낼 자신이 서질 않았다.
“장군! 방금 도망쳐 온 군졸들에게 들으니 주상이 이끄는 토벌군 4만이 황주와 봉군 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옵니다!”
“도망쳐 왔다?”
“예. 장군을 쫓아 온 병사들이온데…….”
조사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자신을 쫓아왔다는 것에 약간이나마 힘을 되찾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하는 부관으 얼굴이 어두웠다. 필시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리라.
“수가 얼마나 되는가?”
“오백, 오백 남짓이옵니다. 장군께서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신 직후 이천우, 이빈, 김영렬, 최운해 등이 군사를 이끌고 맹주에 도착하여 아군을 습격하였다 하옵니다.”
“그러면 내가 그놈 덕분에 붙잡히지 않고 미리 몸을 뺄 수 있던 셈인가?”
조사의는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주상이 직접 친정을 나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다. 거기에 4만이라니. 4만이란 숫자를 들으니 조사의는 안 그래도 땅바닥까지 꺾인 자신감이 땅 속을 파고드는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이천우가 이끄는 군대가 맹주 부근에 도착해 추격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몸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오백이라…… 오백.”
칠천의 군대가 삽시간에 오백으로 줄어들었다. 애초에 반군이 모인 것이기 때문에 육천 오백 중 일부는 적에게 잡혔을 것이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그나마 모인 오백은 조사의가 군대를 일으킨 안변의 군사들일 것이다. 어디 갈 곳이 없는 병사들이 모여든 것이다. 펄럭 조사의는 허름한 막사의 천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소박한 숫자로 줄어든 오백의 병사들이 칼바람이 불기 시작한 계절에 맞서 싸우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적에게 들킬까 소심하게 피운 모닥불 주변에 모여 덜덜 떠는 모습에 조사의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것이 꿈이었단 말인가.”
반군의 맹주로 장군 소리를 들었던 조사의에게는 자신이 단 한 명에 의해 이렇게 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더불어 일개 인간이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조사의는 공포감을 느꼈다.
“장군. 아직 끝나지 않았나이다. 아직 주상의 정치에 의구심을 품은 유학자들과 지방 호족들을…….”
“잠깐.”
조사의는 한쪽 손을 뻗어 부관의 입을 막았다. 조사의의 관자놀이를 따라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조사의는 숲 속을 가리켰다.
“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더냐?”
“예?”
조사의의 목덜미에 좁쌀만한 소름이 돋아있었다. 조사의는 숲에서 느껴지는 이 강렬한 기세에 이를 악물었다. 아까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던 놈에게서 느껴졌던 것과 똑같은 기세였다.
“살기다. 살기야. 날 죽이기 위해 괴물이 왔다. 괴물이 왔단 말이다. 히이익!!!”
아직 지우지 못한 공포가 다시금 덮치자 조사의는 헛숨을 들이키면서 뒤로 넘어갔다. 엉덩방아를 찧은 조사의는 그 자리에서 엉덩이를 끌면서 뒤로 물러섰다. 부관은 그런 조사의를 향해 황급히 다가갔다.
“장군!!!”
“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다!!!”
조사의가 엉덩이를 끌면서 뒤로 기어가는 그 자리에 물방울이 번지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조사의가 지린 것이다. 조사의가 비명을 내지르듯이 발작을 일으키자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감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밤이 어두워졌다지만 숲은 항상 생명으로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밤에라도 밤에 깨어나 움직이는 벌레나 새소리가 들려야 한다. 하지만 지금 숲 속은 그런 잡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적막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조사의!!!”
그렇게 적막으로 가득한 숲이, 바람마저 멈추면서 나뭇잎과 가지들이 부딪치는 소리까지 멈춘 순간 숲 안에서 살광을 피워내며 절그럭거리는 갑주를 걸친 이가 대기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뛰쳐나왔다. 푸화앗!!!! 나뭇잎들이 비산함과 동시에 뛰쳐나온 검은 인형은 조사의가 있는 곳을 향해 일자로 달려들었다. 그 검은 인형을 발견한 조사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온다, 온다, 나를 죽이러 온단 말이다!!!”
“적이다!!! 습격에 대비하라!!!”
“적이다!!!”
오백의 군졸들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를 움켜쥐었다. 검은 인형은 그런 군졸들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들었다.
“계방 좌익찬 설운! 주상전하의 명을 들어 반역자를 처단하러 왔노라!!!!!”
며칠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숲 속에서 지내 꾀죄죄한 몰골이었지만, 설운에게서 느껴지는 기백은 그의 허름한 몰골을 뒤덮을 정도였다. 두 눈에서 피워내는 살광과 바람처럼 표홀하게 달려드는 설운을 본 병사들이 겁에 질렸다. 갑자기 진영에 나타나 수백의 병사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런 부류임을 눈치 챈 것이다. 스가악!!!! 설운의 손에 들린 검이 새하얀 검광을 만들어냈다. 설운은 조사의의 멱을 따기 위해 지난 며칠을 인내했다. 조선의 미래인 세자를 호위하는 계방의 좌익찬인 설운은 주상과 왕실에 대한 충성심으로 무장한 사내였다. 그런 설운에게 감히 반기를 든 조사의는 때려죽여도 시원찮은 놈이었다. 게다가 그가 소집한 휘하의 오합지졸들이 근방의 민가에 끼친 피해를 생각하면 더더욱 살려둘 가치가 없는 놈이었다. 그런데, 인고의 시간을 거친 바로 지금 조사의의 목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설운은 광호검 기무가 날뛰는 것을 보면서도 참았다. 조사의가 따로 빠져나와 도망갈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런 조사의가 간 흔적을 쫓아 내공을 아끼지 않고 경공을 사용한 덕분에, 설운은 조사의의 저 면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앞을 가로막는 자! 죽을 것이다!”
병사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설운의 손에서 뿜어진 새하얀 검광에 자신들의 죽음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쾅!!!!! 하지만 그 새하얀 검광이 병사들의 몸을 난자하기 바로 직전에, 거대한 굉음이 터져나오면서 흙먼지가 사방으로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콜록, 콜록!!! 갑작스런 굉음에 놀란 병사들 중 몇이 흙먼지를 왈칵 들이마시고는 밭은 기침을 토해냈다. 카가가각!!!! 하지만 정작 공격을 받은 설운은 자신의 검을 막아내고 땅에 꽂힌 검에 당황하지 않고 땅에 꽂힌 백색 검신을 자신의 검으로 훑으면서 옆으로 돌아 달려나갔다. 크와아아아앙!!!!! 콰앙!!! 하지만 그런 설운의 앞에 집채만한 크기의 백호가 튀어나와 앞발을 설운을 향해 휘둘렀다. 갑작스런 백호의 출현에 설운이 검을 들어올렸고, 그 검 위로 호랑이의 앞발이 작렬했다. 촤아아악!!
“왜, 대체 왜 내 앞을 막는 것이냐!!!!”
뒤로 물러난 설운이 백호를 향해 울분을 토하듯 고함을 지르며 검을 고쳐쥐었다. 동시에 설운의 전신에서 노도와도 같은 공력이 일어났다.
“막는 놈은…… 가른다!!!!”
번쩍!!!! 계방의 무인들은 세자와 왕자, 공주와 옹주들을 지키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과를 통해 들어온 자들이나 무예로 이름을 날린 이들을 뽑아서 데려오는데, 데려온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무예가 있었다. 신라검(新羅劍), 혹은 신검(新劍). 신라시대 화랑들이 익히던 검법으로 크게 네 가지, 보는 법인 안법(眼法) 6수와 칼로 치는 격법(挌法) 5수, 칼로 베는 세법(洗法) 4수와 칼로 찌르는 자법(刺法) 7수로 이뤄져 있었다. 설운의 검 끝에 공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중국의 무공처럼 초식으로 나눠져 있지 않았기에 조선의 무예는 검을 휘두르는 이가 검법의 묘리를 얼마나 이해하여 자신의 동작에 새겨넣느냐에 따라 그 화후가 달라진다. 고오오오-!!! 초절정 고수인 설운의 공력이 검 끝에 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설운의 신형이 유성이 된 것처럼 잔영을 남기며 백호를 향해 쇄도해 들었다. 크와아아앙-!!!! 집채만한 백호는 그런 설운을 보고 기세 좋게 포효를 내질렀다. 그에 위축될만도 하지만 설운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백호를 향해 쇄도했다.
“쯧. 야. 네가 조사의냐??”
그런데 그렇게 달리던 설운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 나타난 것인지, 땅에 박혔던 백색 검신을 자랑하는 이룡검을 손에 쥔 만우가 혀를 쯧쯧 차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설운이 잔영을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만우가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만우는 못마땅한 눈으로 바지에 지린 채 벌벌 떨고 있는 조사의를 쳐다보고 있었다.
“씁…… 우리라고 쟤 좋아서 살리는 거 아니야.”
만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설운에게 말했다.
“아. 넌 말 못하지? 무리하지 마.”
그리고 설운을 경악하게 한 것은 만우가 설운 자신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태연하게 말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입을 여는 순간 공력이 흩어지기 때문에 입을 꾹 다문 설운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자. 너무 흥분했으니까.”
만우는 살기로 인해 핏줄이 선 설운의 눈을 보고는 혀를 쯧하고 찼다. 설운의 경지로는 자신의 공격을 멈추거나 거둬들일 수 없다. 핏! 만우의 신형이 설운을 앞질러 설운의 앞, 백호와 설운의 사이에 나타났다.
“저 빌어먹을 호랭이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게 없어 진짜!”
그래도 축지법으로 호선을 먼저 보내 조사의를 죽일 뻔한 설운을 막아냈지만 만우는 투덜거렸다. 500년 묵은 호랑이 치고는 눈에 찰 정도로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선주인지 뭔지 하는거. 찾아야겠다. 그래야 쓸 만해지겠어.”
만우는 쇄도하는 설운을 보면서도 마치 나들이를 나온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동시에 만우가 이룡검을 들어올려 검극으로 설운을 겨누었다. 아무런 기세도, 공력도 실리지 않은채로.
“!!!”
기겁한 설운이 만우를 쳐다봤지만 만우는 히죽 웃고 있었다. 설운의 검극이 만우의 검극을 치려는 찰나 설운의 눈이 커졌다.
‘저, 저건!!!!’
꽈릉!!!!! 그리고 눈을 멀게 만들 정도의 강렬한 빛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벼락이 내려친 것처럼 순간적으로 강렬한 백색 섬광이 시야를 물들인 것이다. 펄럭펄럭 만우의 옷자락이 뒤로 나부꼈다. 벼락이 내려쳤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만우와 설운의 충돌이 강렬한 빛을 발산한 것이다. 만우는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뒤로 나부끼자 손을 들어 옷자락을 눌렀다. 그리고는 이룡검을 회수해 검집에 꽂은 후,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호랭아.”
“호랭이가 아니라 호선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