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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를 꼬시는 법-233화 (233/312)

〈 233화 〉 황좌­2

* * *

사모아 공작이 죽고 이르엘 사모아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본인은 스스로를 황제라고 부르는 모양이었지만 그녀의 휘하 세력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그녀를 황제라고 부르지 않았다.

황녀들은 사모아 공작의 세력을 딸이 이어 받으면서 삐걱거림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르엘은 빠른 속도로 자신의 세력을 수습했다.

그녀가 잘 했다기 보다는 사모아 공작이 스스로가 언제 죽을지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배를 잘 해놔서 벌어진 결과였다.

이르엘이 잘한 건 잘난 어머니를 만난 것 밖에 없었지만 어머니가 워낙 안배를 잘 해 주신 덕분에 황궁 안에 틀어박혀 황녀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사실 사모아 공작 세력은 황녀들에게 자신의 세력이 꺾이는 상황은 전혀 상정해 두지 않았다.

황녀들은 분열되어 있었고 힘도 제대로 쓸 수 없는 년들이었다.

이미 죽은 사모아 공작도 자신의 딸을 꺾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황녀들이 아니라 지방 세력이라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덩치가 더 큰 사모아 세력이 황녀들을 누르고 제도를 정비하는 동안 지방파 세력들을 분열시켜 스스로 싸우게 만듦으로서 제국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사모아 공작의 계획이었다.

사모아는 이미 죽었지만 그녀의 계획은 충실하게 이행되고 있었다. 그녀의 하나뿐인 딸 사모아는 무난하게 황녀들을 몰아붙였고 지방파 세력들은 서로를 견제하느라 제도에 공격을 오지 못했다.

황녀를 빠르게 처리하고 제도에서의 영향력을 공고히 한다면 사모아 공작가가 황가로 변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였다.

이미 황궁에 있던 모든 이들을 죽인 상태였기에 황녀들만 죽인다면 황실을 이을 적통이 없어 새로운 황제를 새우고 싶어도 새우지 못했으니까.

'어머니가 조심해야 할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하셨지.'

지방파 귀족들은 서로 견제하기 때문에 방해가 안되고 황녀들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모아 세력을 위협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전 황제의 오라비였다.

자식들만 열명에 가까운 전 황제와는 달리 전전대의 황제는 전 황제와 그의 오라비 총 두 명 밖에 아이를 낳지 않았다.

오라비쪽이 더 먼저 태어났고 능력도 출중 했지만 제국에 귀족들의 힘이 강해지고 있는 것을 안 그는 일찍히 그의 여동생에게 황제의 자리를 양보하고 제도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에 스스로를 유폐했다.

워낙 폐쇄적인 도시인데다가 제국에 대단한 일이 있는것이 아닌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그가 어떻게 지내는 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자신의 여동생의 장례에까지 나오지 않고 제도에서 이 정도 규모의 내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 것을 보고 몇몇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그가 죽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할 정도였다.

워낙 폐쇄적인 도시다 보니 그의 주변인물들이 그의 죽음을 숨기고 도시를 운영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사모아 공작도 그가 죽었음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지만 만약의 상황을 가정했다.

그가 귀족들이 지배하는 제국에 환멸을 느끼고 작은 도시에서 상황을 관조하면서 조용히 세력을 키웠다면 어떨까?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도시에서 병력을 기르고 몰래 사람을 내보내 외부의 상황을 관조하고 돈을 벌어들여 언젠가 제국에서 벌어질 내전을 대비해왔다면?

그 가능성이 결코 높다고 볼 수는 없었겠지만 움직이지도 못하는 지방 놈들 보다 그를 경계하는 것이 훨씬 이치에 맞는 일이었다.

'그럴리가 없지.'

하지만 이르엘은 자신의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안배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사모아가 세운 계획대로 움직이면 다른 이들을 상대로 할 때 너무 손해가 컸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의 말을 거슬렀다.

그녀도 그녀의 생각이 있었다.

전 황제의 오라비를 견제하지 않는다면 훨씬 더 빠르게 제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생각은 틀린 건 아니었지만, 그녀의 판단이 결국 그녀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은 그녀는 상상도 못했다.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대비는 했어야 했다.

그만 대비한다면 제도가 그녀의 손에 돌아올 텐데 조금 정도 손해보는 것을 아까워 하지 말아야 했다.

그녀의 어머니었다면 틀림 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사모아 공작이 죽기 전에 그녀에게 자신이 말했던 대로 행하라고 끊임 없이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저승에 간 그녀의 어머니가 통곡할 일이었다.

*****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지?"

빛도 잘 들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방에서 한 남자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여린 편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단단하고 강하기 까지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반적인 남성이 낼 수 없는 위용이 들어가 있었다.

"사모아 공작가 황궁을 먹었답니다."

"미친년들,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가 마시던 차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슬슬 준비해라. 내 여동생과 그 핏줄을 죽인 놈들에게 복수를 해야할때가 왔다."

황제는 귀족에게 암살당한 것이 아니었다.

황제치고는 이른 나이에 죽어 암살당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녀는 절대 귀족에 의해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여동생이 귀족에 의해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리 생각하는 척 했다.

귀족들이 여동생을 자기들 마음대로 다뤘기 때문에 그녀가 일찍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분노하는 척 하며 명분을 확보하려 했다.

그가 진심으로 여동생을 사랑했다면 그녀가 죽은 장례식 때 참여했어야 함이 옳았고 그러지 못했더라면 그녀의 자식들에게 병력을 지원해 줘야 함이 옳았다.

하지만 그는 사모아를 포함해 자신의 조카들의 세력까지 한 번에 약해질 때를 노려 몸을 움직였다.

그는 부정하지만 그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는 뱀과도 같은 자였다.

"충성!"

그가 밖으로 나서자 이날만을 위해 모아둔 병사들과 기사단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병사들을 모으는 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의 눈앞에 모인 병사는 자그마치 10만에 달하는 규모였다.

그가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 도시의 인구가 8만이 살짝 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10만이라는 병력을 모은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아주 어릴 때 부터 도시에 들어온 그는 그 어린나이에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 세력을 키워나갔다.

자신보다도 더 어린 아이여도 재능이 있어 보이면 주워서 길렀다.

온 제국에 암행을 하며 수많은 인재들을 자신의 품안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기사단과 마법사 병력을 채웠고 팍팍한 현실에 도적이 된 백성들을 데리고 와 병사들을 육성했다.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자신의 가신들을 쭉 살펴보던 그의 눈에 근래에 보기 힘들었던,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도움이 됐던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오셨습니까?"

"네가 여긴 왠 일이야. 학장일 하느라 바쁘다면서."

"아카데미도 망했습니다. 저기에서 얼 타고 있는 애들이 마지막 애들일 겁니다."

학장은 지금까지 그에게 아주 많은 인재를 데리고 와준 훌륭한 인재였다.

비록 다른 세력들이 다 채고 남은 어딘가 조금 모자라는 인재들 밖에 없었지만 제국 아카데미는 전 제국에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인재들에 비해 조금 정도 모자라다고 해도 그 편차가 그렇게 까지 대단하지는 않았다.

"플레아 아이데스라는 아이는 없는가? 제국을 끔찍하게 아낀다고 하던데."

"그 아이는 지금 1황녀의 밑에 있습니다. 다만 얼마 전에 1황녀에게 팽 당하는 처지에 처했으니 당신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신다면 아마 당신께 복종하고 제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다행이군."

영웅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를 밑으로 영입한다면 제국을 안정화 시키는 데 그 만큼 큰 도움이 되리라.

"이제 슬슬 출진할 준비를 하자꾸나."

자신의 말을 듣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남자라는 이유로 황제가 되지 못할 것을 직감한 그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다.

작은 도시에 먼저 와서 수십년간 세력을 키웠다.

귀여운 꼬마 아이가 소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고 이제는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 때까지.

그 긴 시간 동안 황제가 되겠다는 일념하나로 이만한 세력을 모은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제 행동할 차례였다.

도시에 흩어져 있던 그의 병사들이 한 군데 뭉쳐 제도로 향했다.

난세에 새로운 바람이 부는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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