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72화 (172/211)
  • #172. 금수저의 의욕.

    생각해 보면, 내가 전횡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설 회장이 당부한 유명에 있고.

    돈이 말라 가고 있는 설재영이 뒤집기를 시도할 방법도 설 회장의 생사에 있다.

    설양훈이 깨어나서 돈을 주거나 중재해 준다면야 상책이겠지만.

    더 총애하는 죽은 아들과 그 아들 추종자인 역술인 등등을 생각하면.

    어쩌면 빨리 아버지가 법적으로 죽어 유류분 청구 소송을 가하는 게 가장 좋은 수일 수도 있다.

    그 외의 수, 남편과 화합 등이 더 이롭겠지만.

    악은 패륜에서부터 시작한다.

    악을 가할 수 있는 첫 상대는 기본적으로 어린 형제고.

    더 나아가면 부모다.

    “그런 또라이 짓까지 하려나?”

    형제에게 악을 가했으면 궁극적으로 그 악은 부모에게 끼치는 것인데.

    * * *

    설윤영은 내가 퇴원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몇 차례 전화로 안부를 물은 다음.

    둘째 데려와도 되겠냐고 물어보더라.

    그놈의 ‘선입견 양육.’ 한 마디가 아들만 있는 엄마의 속내에 영 걸리는 대사가 된 모양.

    안 그래도 연말에 봐주기로 했다가 내가 병원 가서 미뤄진 거라, 기꺼이 오게끔 했다.

    혹시나 유류분 분쟁 같은 게 생기면 내가 전면으로 뛸 수 없고.

    맞설 만한 명분이 되는 건 차녀인 설윤영 말고는 없으니.

    미리미리 부역해 놔야.

    “저희 둘째, 이름은 아시죠?”

    “예, 예, 물론이죠.”

    남자애 소개받는 거 간만이네.

    고등학생 부모의 진로 상담은 어딜 가나 하던 일이라 어렵지도 않고.

    부모님 지갑을 선뜻 열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선호한다.

    뭣보다 설재영의 대체재로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사모님인바, 내 입장에선 설양훈 모시듯 모셔야 한다.

    자식운 개판임이 인생으로 드러나는 설양훈에게 그나마 멀쩡한 자식이고.

    세간의 인식도 그렇다.

    “그러면 저는 빠질게요. 말씀 잘 듣고 있어.”

    설윤영은 사전에 말했던 대로 허율환만 떨구고 자리를 피해 줬다.

    “어, 율환 군, 반가워요.”

    “아, 네.”

    안경은 역시 썼구먼. 안 쓰는 학생을 요즘 보기가 드물다.

    본디 사주책에는 불의 기운이 딸리면 눈과 시력이 좋지 않다. 라고 쓰여 있는데.

    불의 기운이 있건 없건 요샌 눈들이 다 나쁜 편이라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어째서 대전까지 왔나. 되게 귀찮죠?”

    어색함이 감도는 자리다.

    천성이 얌전한 남자애들이 있다.

    이러면 내가 오버해야 한다.

    “어, 아녜요.”

    “에이, 본인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거 말고, 부모님이나 남들에 휘말려서 어디 나오는 거 되게 싫어하잖아요.”

    “그렇죠, 뭐.”

    이건 좀 뻔한 말인지 그다지 반응하지 않는다.

    “어, 흠. 뭐, 게임 좀 좋아합니까?”

    요즘 애들이 하는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은 잘 모른다.

    인생이 각박해지는 대학 졸업 시점에서 새 게임을 찾아 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노트북을 주로 쓰다 보니 안 돌아가는 게 많기도 했고.

    그래서 게이밍 노트북 산 이후, 몇 년 전 눈여겨본 고티 점수 높은 것만 골라 했지.

    그래도 게임이 크게 바뀌었겠나.

    젊은 남자애들에겐 게임 속 상성과 오행을 빗대어 설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확실히 공감대가 높고, 잘 알아듣는다.

    풀이 불에 약하고, 불이 물에 약하고 물이 풀에 약하고, 땅이 풀에 약하다. 등의 상성 정도는 느낌이 올 테니까.

    상성이 있어야 전략성이 있을 테니, 요즘 게임이라고 상성이 빠지진 않았겠지?

    닥치고 레벨로 밀어붙이는 게 오히려 단순하고 호쾌해서 요즘은 먹히려나…….

    “어, 네, 그렇죠. 뭐.”

    “율환 군 사주는 제가 이미 봤는데요, 그러면 아마 콘솔 게임을 좋아하지 않을까.”

    “아, 아, 네.”

    어색하면서도 이거 어떻게 알지 싶은 표정이 보인다.

    이건 엄마를 보고 안 것이다.

    돈 많은 집, 그리고 잔소리는 있지만 하겠다는 거 반대는 안 하는 엄마.

    이러면 집구석에 콘솔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

    그럴 사주니까.

    컴퓨터, 스마트폰과 달리 콘솔은 순수한 게임기로서의 역할이 많아서 가정의 경제권을 쥔 엄마들이 여간해선 절대 사 주지 않는다.

    어릴 적에나 놀아 주기 귀찮을 때, 어린이 유튜브 채널 보여 주는 식으로 써먹을 뿐이지.

    거기다 차남이다.

    아들 둘 있는 집은 장남이 든든하면, 둘째 아들은 좀 분방하게 키우는 편이다.

    여기에 엄마가 돈으로 표현하는 애정에 익숙하신 분이라.

    “이어 사주에 금수쌍청이라고 해서, 온고한 면이 있습니다. 이러면 사람이 복고적이고 과거지향적인데요. 그 어릴 때 하던 게임을 오래 하고 있다거나.”

    “……아, 와.”

    ‘어린’, ‘놈’ 일수록 사주가 쉽다.

    타고난 인생에 변화의 개입이 나이상 있을 수가 없고, 주된 고민이 재물이 아니며 건강도 아니며, 자식도 아니기 때문.

    남자애인 경우는 더 쉽다.

    일단 사주 그거 뭐 다 개뻥 아니야? 이러고 있는데.

    내가 교육업에 담가봤고 그래도 젊은 편이라, 패턴이 쉽고 표현도 쉽다.

    애들은 ‘똥!, 뿡!’ 하면 좋아하는데, 이놈들은 섹드립에 환장하지.

    “그러므로 어릴 적을 그리워하는 등의 모습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고등학생이면 학업 스트레스가 덜했을 시기를 그리워하는 건 필연적이지.

    지나온 과거는 반드시 미화되니까.

    “아, 그런 거예요?”

    “N사 콘솔기 게임을 주로 할 가능성이 저는 높다고 봅니다.”

    이 친구가 아이 양육에서 부모가 지쳐서 전자기기 들려주고 알아서 놀게 할 때쯤이 N사 휴대용이 한창일 때다.

    그때는 스마트폰 손에 들려주기 좀 애매한 시기다.

    “와…….”

    “어머니는 프로게이머라도 한다고 하면 지원해 주겠다, 그러실 텐데, 아마 본인이 그럴 의지가 없고 자신도 없고.”

    종목도 없지, 메이저한 E-스포츠에 비하면.

    남자애들 자기가 게임 좀 한다 치면 꿈이 프로게이머인 경우는 내 학창 시절에도 봐왔다.

    되는 경우? 못 봤다.

    그냥 ‘나 게임 마음껏 하고 싶다’는 치기를 꿈으로 명분 삼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게요. 그 좀.”

    “협동게임을 안 해 보진 않았을 겁니다. 근데 좀 제멋대로 하는 편이죠. 다들 팀 승리 혹은 개인의 딜딸이나 킬딸을 목적으로 하는데 뻘짓거리 트롤짓을 하는 거, 못하는 애들끼리 하면 웃음보 플레이어지만 그 이상이 잘 안 되죠.”

    방구석에서 잘 안 나가는 애들은 생각이 많고.

    생각이 많은 애들은 실시간 게임에서도 우유부단해서, 성과가 좋진 않다.

    성과가 안 좋으면 이런 게임을 즐길 때는 즐겜맨으로 변신하고.

    친구들끼리 하는데 즐겜맨짓을 하면 웃기는 트롤러로 전락한다.

    뭔가 반드시 이겨야 하면, 좀 끼워주기 싫어지는 스타일.

    “와, 사주 보시는 분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이름자에서 볼 때, 젊은 남자애치고는 운세 관련해서 트인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주 보는 아저씨가 게임 이야기로 푸니까 신기해서 하는 이야기겠다.

    거, 한복 입고 퉁소 안 분다고.

    “결국 그럼 게임 못하는 친구들하고만 관계 형성이 되는 편인데,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여타의 취미가 없으면 율환 군은 인맥이 좁고 친구들은 있지만 많이 어울리는 편은 아닙니다.”

    “예, 와 진짜 엄마 말 들은 건가?”

    “엄마한테 한 얘깁니까?”

    “아뇨, 안 했거든요.”

    그러니까 남들 이해하기 힘든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인물로 협동 게임을 잘 안 한다.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른 것.

    결국 협동을 통한 경쟁에서 나오는 남성 사회의 무언가를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부에 흥미가 있느냐? 그것도 아닌 게 문제.

    내면으로 치고 들어가자면 뭐, 은겸, 유겸 자매가 겪는 잘난 손위 형제와 편애와 관련된 심리를 끄집어내겠지만.

    머스마들 그런 거 인정 잘 안 해서, 그럴 필요 없다.

    남자애 처 울리고 싶지도 않고, 청승맞아.

    “이런 경우 남성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머무는 문제가 있고, 이걸 형에 빗대서 엄마가 무척 걱정할 겁니다만.”

    “네, 네, 엄마가 맨날 그래요.”

    “그래도 친구가 없지 않습니다. 남성 사회 아웃사이더 친구들과의 결속은 좋아요. 반이 달라도 찾아와서 노는 친구 있잖습니까?”

    “어, 있어요. 있어.”

    “그런 식으로 나름 큰 문제 없이 학창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보는데 엄마는 자꾸 뭐가 문제인 양 안달을 내죠.”

    “와, 와, 진짜 그래! 왜 그렇죠? 제가 뭐 따를 당하거나 그러지도 않는데.”

    엄마가 보기엔 어떤 완벽한 자식이어도 갈굴 거리가 있다.

    “인싸 아들이 아닌 게 걱정인 겁니다.”

    “그쵸?”

    “아들을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이상향의 완벽남으로 만들고 싶은 심리가 엄마들한테 있걸랑요. 잔소리로.”

    “진짜 딱 뭐 형처럼 되거라 그게 있어요. 형도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왜 그래요?”

    이 친구를 개인적으로 불러낸 건 당연하지만 엄마 까려고 그런 것이다.

    “사실 해결책이 있기는 있는데, 어려울 겁니다.”

    “뭔데요?”

    “성욕이 대단해서 여자 친구가 만나자고 나오라고 하면 나갈 인물이거든요. 세상만사 귀찮고 친구들한테도 쿨하고, 부모한텐 더 쿨한데 여자한테 안 그럴 인물입니다.”

    “어, 와, 그게 안양 사는 여자애 만나러 간 적이 있기는 하거든요…….”

    이 자슥 보게.

    이건 엄마한테 말 안 하는 이야기 나온다.

    온라인으로 알게 된 안양 사는 한 살 많은 누나 만나러 가서, 뭐 그러고 그랬대.

    “율환 군은 빙하처럼 태어난 남잡니다. 이런 남자에게 여복은 불의 기운에 어리거든요.”

    “예.”

    “얼음장인 남자가 불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녹지 않아요?”

    속삭이듯 말했다. 여긴 그래도 공공장소인 카페니까.

    “다른 말로, 물이 철철 흐릅니다.”

    “아, 아아. 그거요?”

    눈빛 빛나는 거 봐.

    “아니, 얼음은 안 움직이잖아요. 그런데, 물은 흘러가죠. 즉 여자가 있으면 녹아 흐른다는 겁니다.”

    * * *

    “어떠셨어요?”

    허율환 군과 면담을 마치자 설윤영이 한달음에 달려온다.

    장지갑 들고 있는 거 보면 아들은 용돈 줘서 어디든 보낸 모양.

    “의욕이 너무 없네요. 사주뿐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듯 보입니다.”

    돈과 가족의 관심이 충족되어 그런지 이성적 욕망 말고는 크게 욕심이 없는 친구였다.

    초연하지만 꿈도 야망도 없고, 놀고 싶고 하고 싶다는 본능적인 면만 남아 있는.

    뭐, 금수저니까. 태어나면서 다 이룬.

    “어휴,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어, 우선 이름은 그냥 요즘 아이들처럼 그리고 형처럼 마지막 율 돌림으로 바꿔주시는 게 나을 거 같네요. 효과가 전혀 없어 보여요.”

    “민율이, 성율이, 현율이 뽑아는 왔는데, 정말 이름 그렇게 안 해도 될까요?”

    “예, 그 이름으로 어머님이 보시기에 잘 된 게 아니잖아요? 본인도 좋아하지 않으니 그리하시죠.”

    “네, 그래서 사주로 의욕을 지필 방법이 있을까요?”

    급하셔라.

    어디 보자…….

    방구석에서 뭘 하겠다, 하고 싶다 의욕이 없고 게임만 하고 싶은 자식이 있다?

    여기에 뭐 딱히 가족 관련 문제도 없다. 그냥 아버지가 평범하게 무심한 것 정도?

    이 경우 돈 없는 집안이면 솔직히 막막하다.

    문제가 애매하니까, 풀이 방법도 애매하고 교육에 투자할 자원이 모자란 서민 가정이니까.

    마땅한 방법을 설계해 줄 수 없다.

    그런데 돈 있는 집안이니까.

    둘 수가 많다.

    “두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어떤 게 있을까요?”

    “아들이 몰두하고 좋아하는 키덜트적인 취미가 있습니다. 여행을 보내세요.”

    “어딜?”

    “덕후의 나라요. 아, 반드시 혼자.”

    “혼자요?”

    “배를 태워 보내면 더욱 좋습니다.”

    “왜 그렇죠?”

    “율환 군은 거대한 존재에 보호받는 삶을 굉장히 선호합니다. 크루즈나, 빌딩, 대형 비행기는 창공이나 바다와 같은 가혹한 환경에서 사람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죠. 고로 여행을 흥미 있어 보이는 쪽으로 멀리 보내보세요.”

    “혼자 갈 수 있으려나. 그, 그 나이 남자애가 막 터키 보내 달랬다가 그 중동 반군에 합류해서…….”

    에휴, 아들 바보 아줌마 같으니.

    중동 보내라는 것도 아닌데.

    딸내미 혼자 여행 절대 못 보낸다는 아줌마는 봤어도 아들내미는 걱정해도 간다면 뜯어말리는 경우까진 못 봤다만.

    뜯어말릴 거 같군.

    “……다른 방법 말씀드릴게요.”

    “예, 뭐가 있나요?”

    아마 여행 보내는 방식을 택할 제안일 것이다.

    “예, 과외 선생님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과외 선생님이라.”

    “내 방으로 침투하는 엄마 외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가족이 아닌 명백한 외부인이어야 하죠.”

    “성적이 아주 나쁘진 않지만 미진하죠. 생각해 보던 일이었어요.”

    “근데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여자 선생님이어야 합니다. 나이 차는 네 살 정도 외모는 특출나게 예쁠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단순히 공부를 잘할 거 같은 수수한 스타일이 잘 먹힐 겁니다.”

    “아니, 그거 무슨 색싯감인가요?”

    “색싯감까진 아니어도 혹시 모를 여자 친구감은 되게끔 안배해서 면접을 보세요.”

    “……왜 이렇게 진지하세요?”

    여자면 되는 놈이니까, 라고 말하기엔 아들에 대한 환상이 지대하셔서 그러진 않겠다.

    안양 가서 이미 어른 된 걸 모를걸?

    까면 안 될 성역이라는 게 있지.

    “여자 친구를 사귀었으면 좋겠는데 욕망은 있으나, 방에서 세상과 다른 정보들만 주입받다 보니 사람을 두려워하는 면이 있어요. 전화도 잘 안 하고 귀찮아하고.”

    “……어머.”

    “장남한테 있는 상냥한 면모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외모는 못나지 않았고 잘 사는 집 아들 귀티가 날 건데, 연애를 못 하잖아요.”

    “여자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럴 거 같은데.”

    ……환상이 심하시네. 내 아들은 여자에 초연해.

    그런 아들 어딨냐? 부모 앞에선 잘 감추는 거지.

    부모가 그걸 알 정도까진 관심들이 없거나.

    “모르셨겠지만 안양에 온라인으로 만난 여자 친구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예에?”

    뭐,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것은 말해도 괜찮다고 했다.

    스킨십 수위 및 고민도 듣긴 했지만, 그런 건 당연히 발설 안 해야지.

    “이렇게 관심이 많으실 분이 모를 정도였다면 받고 싶은 관심이 아니라, 주고픈 관심만 줘서 자식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아…….”

    “선입견 양육이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외도하는 남편이 물론 고깝겠죠. 그런데, 속성이 그런 겁니다. 장남은 인기도 많고 여자도 많은데 그게 오히려 자랑스러우시잖아요?”

    자랑이 가득한 장남의 단점이 여자 친구가 좀 자주 바뀌는 거 같다던데.

    그냥 자주 바뀌는 것일까?

    “……말씀이 다 옳지만 이걸.”

    “율환 군은 태어날 때 사주하시는 분들이 걱정할 정도로 강한 얼음이자 빙하거든요. 이름에 불 집어넣을 정도로 따스한 체온이 있는 것에 사르르 녹을 수밖에 없는 구조의 사주입니다.”

    “그래도 아직 앤데…….”

    “사주를 그대로 해석하면 여복이 없는 사주인데 그게 나은가요?”

    “그렇진 않네요.”

    “내 방에 찾아오는 자길 공부시키는 목적인 반할 만한 누나가 있고 그녀가 원하는 성취가 있다면 그 성취에 맞게 공부할 겁니다. 이건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예쁜 과외 선생님이면……. 너무 저희 애를.”

    ‘내 말은 맞는 거 같은데 그리하기는 싫다.’가 드러난다.

    이럴 줄 알았다.

    “그럼 여행이오. 보내줘 보세요.”

    “…….”

    덕질 VS 청소년 연애.

    후자가 뭐 불건전한 것도 아닌데, 전자를 택하는 엄마 심리.

    나는 추측이나 하지 모르겠다.

    막말로 사고 쳐도 이 집은 감당이 되는 집 아닌가.

    나중가면 연애 안 되는 아들이 더 갑갑할 건데.

    엄마 말곤 인정해 주는 여자가 없는 인생.

    “여행이 좀 더 낫죠?”

    “예, 그게 낫겠네요.”

    여자 친구 혹은 이성적 호감을 뿌리는 여성이 제시하는 목표 달성이 사주 상, 유전자의 설계상 더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남성 호르몬과 남성의 사회적 성취도는 연구 결과로도 있는 과학적 근거니까.

    물론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이리 말했다.

    이해할 수 없으나 덮어두고 감싸는 게 본디 어미에게 아들이다.

    * * *

    “…….”

    병상에 오래 누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는 않았으나, 눈은 뜰 수 있었고.

    손발도 꼼지락거릴 수 있었다.

    <설양훈, 소한(小寒) 전후, 의식불명 상태에서 회복된다.>

    12월 30일에 예언자의 이름이 적힌 붉은 글씨의 한지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달력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손아귀가 닿는 곳에 TV 리모콘이 있었고, 기본 채널인 뉴스만 나오는 방송이 그날의 날짜를 말해 주고 있었다.

    ‘1월 5일, 소한 전국적으로 한파가 지속되는 가운데…….’

    깨나자마자 받아들인 정보는 그 젊은 역술인의 놀라운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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