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57화 (57/211)
  • #57. 범의 새끼를 가림

    여간내기가 아닌 영감탱이다.

    좀 이상하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죽는 아버지가 딸들 망하라고 그런 걸 적는 게 말이 되나.

    딸들을 미워할 수는 있는데, 더 미워서 감옥에 집어넣고 쳐다도 안 보는 차남의 예를 볼 때.

    차남만큼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하는 짓 보면 설민혁을 더 못 미더웁게 보는 게 정상이다.

    …라고 생각하긴 했다.

    가짜라고까지는 못 느꼈고.

    증거 들이미니까, 증거가 테이프에나 있지 않나? 싶었지만 증거 있다니까 납득은 했거든.

    근데 짐작했으면 진작 얘기했어야지.

    듣고 나서 ‘아 난 알았었는데요. 짐작했는데요.’ 이건 추하다.

    이런 경우 그냥 회장을 띄워 주는 게 낫겠다.

    “와 저도 미처 짐작을 못했네요.”

    [민혁이한테 들었습니다. 유언장을 다시 쓰실 수 있으니 처신 잘하라 하셨다고, 뭐 선생이 틀리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이 할배는 이제 내가 짐작 못 한 것도 짐작했으리라고 보네.

    유언장을 다시 쓸 수도 있다는 건 생각한 거니까, 예상 범주려나.

    “아닙니다. 그래도 놀랄 이야기네요.”

    [별로 놀란 것 같지 않은데요?]

    “아 제가 좀 감정을 잘 다스리는 편이라서요.”

    욕 나올 뻔하긴 했지.

    칭찬도 좀 어색한 티가 났을 테고.

    [선생, 저는 이 가업의 1세대입니다]

    “예.”

    [천년왕국도 없듯 천년기업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 세상에서 본 내 혈육들 손자 손녀들까지는 내가 이룩한 걸로 누리길 바랍니다.]

    “물론이죠. 당연한 겁니다.”

    [찍어 두고 밀어주던 건 정환이로 족합니다. 될 만한 녀석이었어요. 지금은 아닙니다.]

    물론 가짜 유언장 전략은 난 되게 잘 썼다고 칭찬하고 싶다.

    사람이 누가 믿어 준다는 자신감을 얻어서 활동하잖아.

    처음에 왔을 때보다 설민혁은 훨씬 긍정적이다.

    “그래도 민혁 씨한테 자신감을 북돋아 주시고 겁을 일거에 해소하신 비책이었습니다.”

    [비책이라 하시니 쑥스럽군요, 하지만 선생도 민혁이뿐 아니라 저까지 흡족할 만한 비책을 주셨으니까요.]

    “누나랑 친하게 지내라 이거요?”

    [예, 정말 뿌듯합니다. 아비로서 아이들이 정말 서로 물어뜯길 바라겠습니까. 그건 감옥에 있는 그 몹쓸 놈 하나로 족합니다.]

    그거 그만 칭찬해 주셔도 되는데.

    “근데 지금은 회장님이 구심점으로 계시고 마음을 정해 두지 않으셨으니 서로 견제는 하되, 친한 모습도 보이려는 것이겠지만. 앙금이 깊은 민혁 씨를 링에 올리면 나중엔 더욱 난리가 나지 않을까요?”

    [진솔하게 답하자면 죽은 뒤에 그 꼴은 걱정은 들지만 볼 수는 없겠지요.]

    영감은 사후 세계에 관련해 냉정해 보인다.

    있으면 좋겠지만 없겠지. 나 같은 경우 이리 생각하는데 비슷하려나.

    “아이고 그런 말씀은 좀….”

    [지금 그저 저 녀석들이 면전에서라도 거짓으로라도 화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걸 선생이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딸년들이 이제 민혁이를 섣불리 다루진 못하겠지요.]

    그치만, 내가 듣기로 이 영감은 막내를 그렇게 생각해서 한 전략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제가 듣기엔 첩의 자식인 막내를 세 딸들이 서로 티격대지 않고 뭉치게 만들 방법으로 활용하신 것 같습니다만? 옛날처럼 뭉쳐서 괴롭히라고.”

    약간의 침묵이 있었지만 설양훈은 이내 웃으며 대답한다.

    [하하하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요? 하지만 그걸 깬 게 선생이십니다. 자식 넷이 첩이고 처의 자식이고 다 사이 좋게 지내면 좋겠다. 생각하는 것도 아비로서의 마음이고요.]

    부모 마음이라니까 또 몰아가진 못하겠네.

    “포기하신단 선언은 아니신 듯합니다?”

    [저도 딸들 훔쳐간 도둑놈들이 손자 손녀들이 뛰어놀 제 동산에 군침까지 흘리는 걸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놈이 너무.]

    “하긴….”

    [일단 그놈은, 일전에도 말했듯이 그놈이 선생을 보좌로 얻어야 본처 소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말입니까?”

    [지 어미를 만난 것, 누나 한 명과 화해하여 세를 가른 것. 그놈 생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으음.”

    [보좌할 만하시다 싶으면 보좌하시고 아니면…. 으음.]

    설 회장은 말을 끊었다.

    [아 참, 이건 할아비로서의 팔불출 같은 것인데.]

    “어떤?”

    [제 손녀가 계룡선사의 이야기를 듣고 동생들과 제 어미의 주식까지 모아서 회사를 조준하고 있더군요.]

    설은겸이 설정환의 자녀와 부인들에게 나름 골고루 배분된 자산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회장이 알고 있었다.

    이건 모르쇠로 대답했다.

    장손인 설은겸 남동생의 지분이 가장 많았다.

    나중의 나중까지 안배한 지분 승계로 보이는데, 그걸 설은겸이 가져간 격이 되었고.

    내가 부추겼으니까.

    “오 손녀분은 어리시지 않나요. 대단한데요?”

    [기특하지요. 아이들이라 고양이로만 보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범의 새끼라고는 안 하는 신중하고 겸손한 화술은 여전하다.

    [그런데 말이지요.]

    “예.”

    [계룡선사는 전주에 살지 않는데 말이죠?]

    그냥 너지 임마? 라고 해도 됩니다.

    * * *

    그러니까 이 인간을 그저 룸에 처박느냐, 사람 만들어 쓰느냐를 나한테 일임한다는 건데.

    사실 거기서, ‘예 그놈 포기하겠습니다.’ 하면?

    내 돈주인 설 회장한테 훈수빨의 가치가 떨어진다.

    노인네 회장한테 인생 어떻게 사세요. 잔소리가 필요할 리 있겠나.

    근데 이 물건 이거 사람 만들 수 있나.

    “그러니까, 다른 법을 많이 어겼으니까. 이 정도 도덕적 금기는 괜찮다?”

    “뭐 그런 셈?”

    “그거 자랑 아닌데요. 어디가선 말하지 마십쇼.”

    “믿으니까 말한 거죠. 우리 친하잖아요?”

    “안 친해도 고객의 약점을…. 아니 넌 잡아도 되겠다.”

    고객 약점을 활용 안 한다고 신뢰를 줄까 했는데.

    이 인간은 잡고 흔들 거리를 잔뜩 만들어 놔야겠다.

    근데 이 건은 자세한 내용을 모르니 약점으로 써먹긴 힘들다.

    ‘아 그 범법? 노상방뇨. 신호 위반.’

    이러면 할 말이 되레 없으니까.

    놀려 볼 겸 한 말이지 막상 써먹기는 어렵겠다.

    “하아 근데 정말 생각이 나긴 나네요.”

    “8년 차?”

    “오, 오오오 예, 예. 맞습니다. 그 4년 텀이 잘 맞는다면서요. 띠동갑이 최고고.”

    이 시키는 하는 행적을 볼 땐 슬슬 띠동갑을 노리겠는데?

    “띠동갑은 그냥 띠동갑 만나는 사람들이 죄책감 줄이려고 궁합 잘 맞는다는 낭설을 믿고 싶은 거.”

    “결국 안 이어졌으니 그랬겠죠? 결혼하고 싶다. 싶은 여자는 그 친구밖에 없긴 했지만.”

    “결혼하고 싶었다?”

    근데 이런 쳐 돈 놈이 이 정도면 예삿 여자는 아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여자는 약점이 된다.

    내가 이놈 망나니이다만 알지, 뭔 개짓을 했는지는 모르니까.

    파헤쳐 두는 것도 괜찮겠다.

    “그러면 연분이 있을 수도요. 빨리 생일 내놔 봐요.”

    “엥 왜 이리 다급해지셨어?”

    “재밌네, 장가 보내야 하는데 그나마 적합한 후보 같아서 말이죠.”

    “음 뭐 짚는 건 잘하시니…. 생일이 어디 보자.”

    좌우지간 지금은 어른일 테니.

    “어머니나 누나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애초에 여자를 믿지 못하고 즐기는 대상으로만 봐 온 사람이 그 정도로 생각한 적 있다면 연분이 깊을 가능성 높죠.”

    “그래요?”

    “예, 그런 현상이 이미 존재한 거니까. 그 근거가 되는 궁합도 잘 맞을 확률이 높은 겁니다. 그런 현상을 안 만드는 편협한 사람인데 그랬으니 더더욱.”

    “시간은 모르고, 여기 생년월일. 사진 있는데 관상도 보실래요?”

    “오 꽤 이쁘네.”

    밝히니까 엄청난 미인이겠거니 했는데 그렇진 않은 제7의 여자 스타일로 수수하고 수더분하다.

    셀카에 기교를 안 부렸네.

    00년생으로 민번 4로 시작한다.

    궁합도 제법 찐득하네.

    “어, 결혼해도 될 듯. 못 이기는 체 연락해 보시죠.”

    “예?”

    “시간을 몰라서 내가 확언까지는 못합니다. 확률은 70퍼. 근데, 시간을 빼더라도 사람 자체가 잘 맞네요.”

    “어째서 그렇습니까?”

    “인생을 스스로 비극으로 만드는 여자라서, 어차피 비극일 거 확실한 비극과 선사할 님이 잘 맞아요.”

    설민혁이 실망해한다.

    “되게 안 좋다는 얘기 같은데. 결혼을 하라면서.”

    “결혼을 하라 했지, 행복한 결혼이 된다고는 안 했습니다.”

    “왜……?”

    “말도 했고, 알잖아요. 알면서 뭘. 헤어진 것도 내가 구체적인 것은 모르지만 그 이유겠지.”

    본디 타고 난 욕망도 강한 놈이, 맘이 채워지질 않아서 더 욕망에 탐닉한다.

    행복해도 행복한 줄 모르고 대안이 있을 줄 안다.

    이런 사람들은 원래 결혼하면 상대도 같이 비극으로 몰아가서 불행하게 만드는데….

    기괴하게도 사람 중에는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 몰입하는 자들이 있다.

    이러면 최소 불행을 전염시키지는 않으니 짝이 맞는다.

    “불쌍한 사람을 비극으로 몰아넣는 일이라면 안 하겠습니다. 차라리 괘씸한 사람하고 계약 결혼, 위장 결혼을 하죠.”

    설민혁이 오히려 고개를 딱 저으며 선을 긋는다.

    “그러시죠. 그게 어쩌면 나을 수도 있겠네요. 대상의 사주 가져오면 맞춰서 말씀드리죠.”

    “이 친구하곤 정말 비극입니까?”

    “2년 전에 헤어졌는데 집착하는 걸 보면….”

    “연락은 아직도 종종 하는 편인데.”

    “그러면 이분밖에 없네, 여자 쪽도 여지가 있는 거니까. 데려오세요. 관상이랑 시간까지 보고 총체적으로 판단을 해 볼 테니.”

    “정말 데려오면 됩니까?”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진지한 건 처음 본다.

    “정 아니면, 선언을 하세요. 결혼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라고. 그건 기특하게 받아들이실 겁니다. 아버지 쪽에서 알아보시는 규수면 배경이 괜찮은 여자일 가능성이 있고, 도움이 되겠죠.”

    처가를 든든하게 들이는 것도 방법이겠다.

    누나들은 설회장한테 딸 도둑인 놈들 덕에 안정감이 있어, 아예 배제할 수가 없다는 게 설양훈의 속내였다.

    이놈한테도 혼인 동맹은 마찬가지 전략이 된다.

    “결혼 말고는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

    “결혼이 당면 과젭니다. 내 생각에는 선수 치는 게 나으니까. 아버지한테 말씀해 보세요.”

    “그러면 되는 겁니까?”

    “틀리면 멱살 잡아. 돈은 안 토해 낼 거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에게는 오복이 필요하고.

    오복은 사람이 들어와야 채워지는 것이니까.

    그게 채워진다면 사람의 안정감이 있다고는 본다.

    아버지는 나름 인정을 해 주면서 아버지가 되었고, 어머니와는 화해했고, 형제와도 개선의 노력이 있으니.

    남은 건 스스로 만드는 일가를 이루고.

    그 뒤에 가족을 넘어서 타인의 인정을 받으면 된다.

    * * *

    돈 쓸 일이 있어, 매출 중간 정산을 해 보니 벌써 800이 넘었다.

    “이렇게 많이 벌었나?”

    부유층의 팁, 신문사 고료 등이 주로 작용하고 성수기 빨을 받긴 했으나 이게 아직 달이 10여 일 남은 상황의 정산이라는 것이다.

    연말연시부터 신년까지의 매출이 초호황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월 천 각, 나온다. 나와.”

    기쁨의 스텝이 절로 밟힌다.

    거기다 철학관은 주로 현금 박치기 장사라서 이게 죄다 지폐로 모여 있다.

    그래, 어째 간짜장 대신 삼선 간짜장을 먹는데 돈이 안 줄더라.

    월 천으로 돈 모으면 이거 허공으로 한번 던져 보기 해 볼란다.

    정산에 신나서 사업 더 잘될 방법 모색하다가.

    성수기 대비로 만들어 놓은 예약 관련 웹페이지를 단장을 시도했다.

    “철학관 분위기 스킨…. 은 뭐 없나.”

    절대 쳐다도 안 봤을 유료 스킨이 눈에 띄네.

    지금까지 예약 웹페이지에는 일전 북극권 배낭여행을 갔을 때 찍은 오로라 사진을 멋있어서 붙였다.

    하늘에 별도 좀 찍혀 있는데 별과 오로라 사진은 뭔가 철학관과 어우러지는 몽환적인 느낌도 있어서 좋다.

    다만 스킨들과 글귀가 뭔가 부족하고 사무적인 느낌?

    이것도 함 그 웹디자이너 사서 맡겨 볼까.

    “어.”

    예약 전화로 연락이 오는데, 예약 전화 중에 유일하게 저장되어 있는 사람의 이름이 뜬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선사님. 저 설은겸이에요.]

    “예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저 혹시 23일에 시간이 되세요? 되시면 대전에 한번 긴히 모셔서 이야길 할 게 있는데]

    23일이면 12월 23일이구만. 이날 구청 강좌 있다.

    “구민 강좌가 있어서요. 저녁에나 가능하지 싶은데.”

    [어 그러면 21일은요?]

    “그날도 강좌 있는데요.”

    딱 일주일에 이틀 있는 구민 강좌 날짜만 짚을 건 뭔가.

    그건 명승철학관 웹페이지, 블로그에 상세 소개되어 있는데 아직 홍보가 모자란 모양이다.

    그래도 댓글도 하나 있긴 하던데.

    [곤란하네, 그러면 혹시 저….]

    설은겸은 전화로 얘기하면서 한참 뜸을 들인다.

    22일은 딱히 뭐 없는데 그날은 안 되는가 보지?

    저 집구석이 주는 출장비 달달한데.

    [크리스마스 전날에는? 괜찮으실까요?]

    “이브 날 말이죠? 네 아무래도 어려울 거 같네요.”

    [그, 크리스마스 당일은?]

    “그날도 오전은 좀.”

    [아…….]

    크리스마스엔 내가 할 게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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