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56화 (56/211)
  • #56. 잡았다 요놈

    며칠 전부터 이상한 손님이 있다.

    부득이하게 손님이지만 반말했다.

    “어이 단골.”

    “어 왜요. 사장님.”

    “너 여기 사니?”

    “아뇨 대전 살지.”

    “출퇴근하니?”

    “아니 한 달 살기 하지. 여기 호텔 잡고.”

    “요즘 여기 기자 드나든다. 괜히 사진 찍히지 말고 그거 마시고 가라.”

    “커피 맛있어서요. 아 큰 카페 해 보시라니까.”

    어디까지 하나 보자.

    “그 커피 100만 원.”

    귀찮아서 커피값을 올려서 불렀다.

    그러자 설민혁은 지갑에서 정말로 현금을 센다.

    “낸다 거, 룸 한번 안 가면 되지.”

    “이게 되네.”

    “아 근데 100만 원 아메리카노 파는 집이라고 팩트로 인터넷에 올려도 되죠?”

    “안 팔지 뭐, 여기 카페 아님.”

    사장님의 커피 머신은 아깝지만 100이면 중고값 건지고도 남는다.

    “아놔 어떻게 한마디를 안 집니까?”

    “지고 싶게 말을 하세요. 손님아.”

    “카페는 그럼 알바생 써서 커피 내리게 하고 사무실에서 일 같이 하시죠.”

    무상 커피를 돈 내고 며칠째 팔아 주면서 커피가 맛있다로 몰아가는 방법은 그래도 발전했다.

    “무슨 일을, 저도 자영업이나 한 반 년 해 봤지.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 없습니다.”

    “직원으로 부리려는 게 아니라, 저 가르쳐 주십시오.”

    “뭐, 커피 타는 법이오?”

    “강좌도 하고 풍수도 한다며요. 울 집, 땅 파고 집 짓고 그 집 세줘서 돈 버는 집구석입니다.”

    그 강의가 무슨 부동산 1타 강좌인 줄 아냐.

    그리고 풍수 본다고 한 적 없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풍수는 그 아버지 기업 전략팀이 더 잘 볼 거고, 강좌는…. 뭐 사주 배울랍니까? 그럼 오소. 이 정도 수강료면 모셔야지.”

    “근데, 커피는 진짜 맛있습니다. 크게 하나 내 드려도 될 거 같은데.”

    “이거 그냥 커피 머신 쓰는 방법 배운 것뿐인데.”

    “그럼 커피를 배우시면 더 대단해지는 거 아닐까요?”

    “바리스타 아닌데요.”

    철벽을 쳤더니 분통을 터뜨리며 상남자인 척 말한다.

    “아 까다롭네, 야 함 놀자. 가시나들 주무름서, 내가 그 접대 한번 제대로 할게, 대전에 서울 쪽 애들이 얼굴 팔린다고 내려와서 아주 그냥 유망주가 넘쳐.”

    “룸 드립 고만 좀 치쇼. 거 뭐 자랑이라고.”

    “수질 진짜 좋아, 함 같이 가서 놀게.”

    하는 말이라는 게 양아치들하고 다를 바가 없냐.

    “아버지 유언장에 아예 명기가 되어 있으시잖습니까. 설민혁 씨.”

    “어 그렇지.”

    “이제 아버지께 낙점 받았으면 몸가짐 바로 하십쇼. 저 서출이 재산 노리고 갑자기 망나니 아닌 척한다며 경계를 받아도 몸가짐 바르게 해요. 이제 도전자의 위치가 아닙니다.”

    헬렐레 팔렐레 하던 눈빛이 이제야 바로 선다.

    “아, 도전자가 아니다?”

    “도전받는, 그러니까. 공성전으로 치면 수비측 입장이니까. 기본만 하면 됩니다.”

    “기본만 하면 된다…….”

    “그 기본을 못 해서 그렇지.”

    설민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기본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무슨 충과 효를 다하고 바른생활 책처럼 살면 됩니까?”

    “사서삼경 좀 읽고 올래? 주역은 여기 있는데.”

    “머리 터짐.”

    “머리 빠짐이겠지.”

    “씨바라.”

    이건 욕 인정. 들어도 싸다.

    상대에게 1000의 타격을 주고 10 정도 캐시백 받는 건데 감수해야지.

    “일단 그 과한 성욕을 일시적으로나마 끊어야겠네요.”

    “아 그냥 자기 위로나 하면서 살면 되는?”

    넌 그게 안 될 거 같은데.

    “……됨?”

    “응, 안 됨.”

    “…….”

    흘겨보니 뻘줌한 줄은 안다.

    “그래도 사장님 말씀대로 해 보죠. 와 그년들이 진짜로 아쉬운 소리 한마디씩 하는데 너무 통쾌하더라고. 그래서 믿을라고 진짜, 그 무슨 선생 같아. 무슨 선생인지는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데. 암튼 믿을게.”

    “둘째 누나?”

    “어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원래 둘째가 제일 애매한 입장에 있어 가치 중립적일 확률이 있으니까.”

    이건 근거야 있지만 사실 들어서 아는 이야기다.

    “허 참, 대단해 그런 계산은 내가 잘 안 되더라고, 확실히 사장님 말대로 좀 덜 가야겠다. 싶어. 머리 나는 약도 좀 먹어 볼라고.”

    탈모 치료제를 무슨 정력 감퇴제처럼 여기고 있네.

    “뭐 금욕까진 필요 없죠. 좋은 수가 있으니까.”

    “오?”

    “방구석에서 혼자 음습하게 컴퓨터나 보고 자기 위안이나 하는 게 어르신들한테 좋게 보일 턱도 없고.”

    “어, 그런 수. 그 수를 알려 줘야죠. 뭔데요.”

    대단히 진지해졌는지 도로 존대한다. 아주 중요한가 봄.

    “결혼이오.”

    설민혁은 뭔가 한 방 맞은 표정이었다.

    “어, 음, 어…왜요?”

    “기본인데요. 3세가 짱짱한 자식 또한 승계의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대가 이어지잖아요.”

    “그, 그렇죠?”

    “그리고 과한 욕망에 헛짓거리 하는 것도 제동이 걸릴 브레이큽니다. 한 여성과 사회적 계약을 했다는 것은 본인 속내는 어떻건 사회적인 인물이 되겠다는 선언과 같단 말이죠.”

    “흠.”

    “아님 수절하던가.”

    “수절이, 그 뭐 섹스를 안 한다? 그거죠?”

    “예. 그 뜻임.”

    “차라리 그게 쉬울 거 같은데.”

    “한 대 쥐어박아도 됨?”

    “예 때려 주십쇼.”

    설민혁이 마빡을 까는데.

    이걸 때려 말어.

    “수절은 내가 말은 했지만 결혼 안 할 거면 차라리 고자가 되어라. 식으로 격하게 말한 거고. 결혼이 낫습니다.”

    “사장님, 제가 그 압박을 안 받아 본 게 아닙니다. 제 인생 읽어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독신주의잡니다.”

    “동양철학에서는 짝을 찾지 못해 음양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자들의 운명을 밝게 점치진 않습니다?”

    음양이 근간인 동양철학 세계관에서 음과 양이 떨어진단 소리는.

    세계관의 상식을 벗어난 것으로.

    이 세계관 전공자에게 좋은 평은 못 듣는다.

    “저는 그럴 만한 스토리가 충분히 있지 않아요?”

    “그럼 나중에 이혼하던가 쇼윈도로 살면 되지 뭘.”

    “그 짓을 제가 또 해야 돼요? 울 회장님으로 충분하지? 여자 좋아한담서요. 나도 나 좀 압니다. 밝혀요. 그러니 애초에 결혼을 안 해야지. 누구 속을 푹푹 썩이려고.”

    나름 연애관은 정립이 되어 있군.

    “그건 그러네.”

    “그렇죠?”

    “근데 내가 그 뒷일까지 케어해 줘야 됩니까. 우리 철학관 단골 설민혁 고객님 인생 쫙 피는 것까지 보는 게 중요하지. 고객님하고 결혼할 여자나 사생아 자식이 속 썩는 건 내 알 바 아님.”

    “허…얼.”

    “이렇게 해 달란 거 아니었나? 당신이 비싼 돈 주고 날 부리면 설민혁 고객님 편 들어야지.”

    “이야 그…. 확고하시네.”

    “어차피 고객님이 잘되시면 반대 급부로 소위 X될 사람들 있죠. 그 사람들 신세 생각하면 사주 못 봅니다. 누군가 잘되는 길에 누군가는 밑거름이 되니까.”

    설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이번 말은 좀 잘했다 싶다.

    “편들어 준다는 말 감동이네.”

    “알아봐 줬다고 평생 편드는 사람들도 있는 판국에 돈까지 주는데요 뭘.”

    “근데 아무리 봐도 결혼은 좀 난관이 큰데.”

    설민혁은 말은 그리 해도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닌 듯했다.

    난관이란 단어 쓰는 거 보면 습득력이 있구만.

    “호색함 말고 또 난관이 있습니까?”

    “결혼을 한다 쳐도 좀 되는 집안의 배운 여자들은 저한테 시집을 안 오죠.”

    “평판이 개망나니 수준이라?”

    “혼담이 안 들어온 것도 아니고, 결혼 생각을 아예 안 한 것도 아녜요.”

    요즘 세상에 서른이면 장가들기 좀 이르지 싶지만.

    아버지가 나이가 너무 많다.

    뭔가 ‘저 막내놈이 낳은 손주 보고는 죽어야겠다.’ 싶을 어르신 나이이고.

    그 아버지가 힘이 너무 세니 별 도리가 없겠다.

    “그런데 소위 사모님이 될 만한 분과는 잘 안 되고 그냥 양갓집 딸들은 가엾나 보군요.”

    금수저 망나니는 애매한 신분이다.

    같은 금수저를 만나기엔 망나니라 안 되고.

    평범한 집안 정도만 만나기엔 금수저라 안 된다.

    “그런 셈이죠. 그게 완전 드라마 같진 않아도 그 공기층이 다르다고 할까. 내가 그냥 이러고 살 거면 모를까. 잘된다 치면, 미안하죠. 주눅 가득 들어서 기 한번 못 펴고. 에휴. 울 엄마도 거참.”

    설민혁은 침울해졌다.

    나름 엄마 생각을 한 모양이다.

    사주로는 짚이는 바가 있어서 말했다.

    “그런 분 진심 좋아해 봤던, 마음은 순수했던 시절이 한 2~3년 전에 있었을 듯.”

    설민혁은 답을 한참 못했다.

    그는 얼굴을 부비며 손을 모아 매만졌다.

    얼굴도 눈도 갑자기 빨갛게 변했다.

    “……아니 진심 무섭네. 사장님. 사주 보기 전에 내 스토커 했어요?”

    저거 한 재재작년, 재작년에 여자운 찐하게 들어왔더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날 추운데, 술은 안 팔아요?”

    “그렇게는 허가 안 내주더라고.”

    “사장님 술 확 땡기게 하네. 바 하면 장사 잘하겠다.”

    “칵테일 배워서 사주 바로 전업하는 걸 생각 안 해 본 건 아닙니다.”

    바텐더 양반 응대 기술에 나름 감탄했다.

    “내가 위스키 좋은 놈으로 두 병 선물해 줄 테니까. 한 병은 사장님 알아서 드시고 한 병은 온더락 해서 내가 달랄 때마다 좀 줘요.”

    “고맙습니다. 일단 목 타시면 커피나.”

    “100만 원 아니죠?”

    “예, 아닙니다.”

    “그럼 주십쇼.”

    만들어 둔 커피를 내밀었다.

    목 타겠거니 싶어서 미리 타 뒀다.

    “특별 현금 할인가, 99만 9천 원.”

    벌컥벌컥 잘 마시던 설민혁의 입에서 갈색 물이 흘러내렸다.

    “아니 뭔 호랑이 똥에서 원두 채취해요?”

    “아뇨 호랑이를 사냥해서 낮은 확률로 떨어지는 거.”

    설민혁은 커피를 마신 뒤 센치해진 듯.

    카운터에 팔꿈치 올리고 턱을 괸 채 뭔가를 아련히 생각 중이었다.

    오늘은 커피 테이크아웃 손님이 아니라 사주 손님처럼 받아 줘도 될 거 같긴 하네.

    사흘 간 커피 아홉 잔 사 먹으러 온 건 가상하다.

    전주에 본부까지 두고.

    “그 사장님.”

    “예.”

    “어떤 여자였는지 사장님이 맞출 수 있습니까? 궁금하네.”

    “어떻게 맞춰 달란 얘깁니까. 궁합?”

    “어 궁합이라기보단 그 사주?”

    “그분 사주 알면 궁합도 바로 사이즈 나오죠. 궁합은 안 궁금하시고?”

    “예 그러면 궁합도 궁금하네요.”

    “헤어진 옛 연인 궁합이 어땠냐 묻는 사람들 보통 진상인데.”

    “아니 거참….”

    제대로 낚음.

    “사진이야 셀카는 믿는 게 아니라 관상은 직접 봐야 알겠고 최소 생일 정도는 알아야 하고 태어난 시간까지 알면 좋고.”

    “생일은 알죠. 번호가 그거였으니 근데 시간은 모릅니다.”

    “그러면 시간 알려 달라고 하고 이때다 싶어 연락해 보시죠. 유부녀 아닐 거 같습니다.”

    “그건 또 어떻게, 사주 봐야 안다며?”

    그건 아마 네가 어린 여자 밝힐 거 같아서.

    그럼 보통은 결혼 적령기가 아니겠지.

    나이 있는 여자들한텐 트라우마 있을 거 같고.

    “우리 고객님 어린 여자 좋아해서 4년 전 연인이어도 나이가 지금도 결혼 적령기는 아니신 분이겠거니 싶어 해 본 말입니다.”

    “누가 들음 오해합니다.”

    “생년월일이라도 그럼 일단 주십쇼.”

    “생년월일이 그러니까…. 우선 생일은 7월.”

    가만, 이놈 봐라?

    생년월일에서 왜 생일부터 말하냐.

    나이를 먼저 말해야 정상 아냐?

    나이를 이거 섣불리 말을 못 한다는 말인데?

    “어어? 생년월일 안다면서 생년부터 말을 못하네.”

    “엥? 어, 아. 그.”

    “설마. 3~4년 전에 생년을 말을 못할 여자면 어어어? 이것 봐라.”

    잡았다 요놈.

    “어, 4, 4년 전 아닐걸? 3년 전이었던 듯.”

    “한 살이라도 줄여야 되나 보군요. 네, 잘 알았습니다.”

    대충 그 연인 나이도 짐작 갔다.

    3, 4년 전에 18~20세라는 뜻이다.

    고객이 있을 땐 금기처럼 안 하는 휴대폰을 매만졌다.

    “뭐 하세요. 사장님.”

    “112?”

    “건 죄도 아님.”

    당당한데?

    “아닙니까?”

    “그게 죄면 찬란하신 도깨비부터 잡아넣어야죠. 만났던 게 열아홉일 뿐. 잡아가면 난 드라마 핑계 댈 거.”

    도깨비가 그때쯤 방영했었나 보군.

    30대 남성(당시 20대), 드라마 도깨비 보고 감명 받아 여고생이 내 몸의 뭔가를 뽑아 주는 관계가 되고 싶었다. 라고 항변해.

    이렇게 헤드라인 뽑아서 호도하면 아주 골로 보내 버리겠는데?

    “그런 건 명민하구먼.”

    예시를 가져다 붙여 정당성을 부여하는 화법은 실록 보면 주구장창 나오는 토론의 근간이다.

    뭐 시경에 이르기를~ 통감에 이르기를~ 하잖은가.

    드라마도 뭐 세태를 담아내는 시대의 기록이니까, 갖다 붙여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무리가 없지.

    이 정도만 해도 과거만 잘 묻고 논점 이탈 없으면 사람 괜찮은데….

    설민혁이 속삭인다.

    “법률 위반으로 치면 다른 게 더 많거든.”

    아나, 이 빡대가리 시키.

    * * *

    설민혁이 나타나 전주에서 커피 테이크아웃 하기 며칠 전.

    [사실 이런 이야기는 전화로 드릴 말씀은 아닙니다만]

    설양훈은 스피커폰을 틀어 놨는지 내가 말한 목소리가 울려서 그대로 통화에서 들렸다.

    그런데 그 소리가 없어졌다. 스피커를 껐단 얘기겠다.

    지금까지 한밭일보 기사 이야기와 동생 설인훈의 이야기를 하던 차였다.

    “부르시지 그러셨어요.”

    [연말이 바쁜 것을 뻔히 아는데,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돈 보고 가니까요.”

    [이번에도 민혁이 놈한테 정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을 하셨더군요. 결과적으로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주시고 이를 따라서 나아지는 것이 보이니 가장으로서 참으로 기쁩니다.]

    “별말씀을요.”

    [한데 말이죠….]

    그 유언장 가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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