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34화 (34/211)
  • #34. 본의 아니게 삼고초려

    궁금해서 화장실 업무를 마치고 나가 물어봤다.

    “누구시디? 굳이 날 찾으면 일전에 오신 분인가?”

    “어 그, 그냥 할아버지가 아니라. 한껏 멋을 내신 거 같은 나이든 노년 신사? 같은 분이셨어요. 그리고 위스키 냄새 알아보시고.”

    묘사로만 들으면 돈 많은 할아버지 같은데.

    모셨어야 했나.

    돈 많은 손님들은 팁이 후해서 반기는 편이다.

    뭐, 딱 정가만 치르고 한 푼도 안 남기는 자린고비를 더 보긴 했지만.

    아예 못 내겠다. 버티는 분은 없었다.

    이런 동네에서 진짜 부자는 좀 보기 드물어 자린고비형만 겪은 편이고.

    아마 진짜 부자면 서울 가서 살 것 같고,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근데 서울서 여기까지 왔을까?

    서울에 날리는 술사가 얼마나 많은데.

    굳이?

    “아 멋을 느꼈어?”

    “네, 그 키는 좀 작으신데 흰머리 올백으로 하셨고 머리숱도 많으시고 수염도 깔끔히 정리하고. 옷도 뭐 그 영국 사람들 입는 것처럼 입었어요.”

    할아버지들 할머니들은 아무리 꾸며도 기력이 쇠해서.

    젊은이들 눈에는 ‘멋’을 느끼기 어렵다.

    허리부터가 굽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굽은 허리를 가진 사람에게서 멋이라는 걸 느꼈으면.

    꼽추는 장애가 아니었겠지.

    근데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럼 허리를 굽히는 인생이 아니었던 사람이네.”

    “우와.”

    “왜 놀라냐.”

    “그렇게도 보는 거예요? 사람을.”

    수이한테 별로 가르쳐 준 게 없었는데.

    지금은 가르쳐 줘야겠다.

    이건 사주가 아니라 추리와 관상의 영역이지만.

    그걸 알려 줘야 한꺼풀을 벗겠지.

    손님들한테 줘 터지는 게 꿀잼이긴 했는데.

    명승철학관 명성을 파는 일이니, 급은 올려 놔야지 않겠나.

    “당연하지, 힘 쓰는 일. 허드렛일은 허리를 굽힐 일이 많으니까. 보기 드물지만 허리 안 굽은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들 보면. 귀부인. 잘사는 집이냐고 말하면 거의 맞아.”

    “거기다가 굽신거릴 일도 없고?”

    “뭐 그렇게 몰아 가도 괜찮겠다. 일반적으로 굽신을 받는 입장이긴 하겠지.”

    “맞춘 거죠?”

    타인에게 굽신거릴 일이 있기야 하겠지만. 얼마나 많겠나.

    허드렛일을 안 하고 사무직을 해도 허리는 굽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몰두하는 자세가 원래 사람을 그리 만듦.

    그러므로 허드렛일도 사무일도 안 하는 진짜 현대의 귀족이나.

    허리가 안 굽는다.

    그게 아니면 그냥 척추가 매우 단단한 선천적 아웃라이어나.

    허리가 너무 아파서 척추부터 다시 세운 시술 받은 사람들일 경우가 예외로 존재하겠다.

    “사주철학관을 찾아오는 노인분들은 거의 다가 허리 굽어서 오셔서 자식이랑 손자 인생 물어보시는 사람들이다. 어차피 팍팍하신 분들이 오니까는. 근데 허리가 안 굽었다. 싶음. 돈 있는 분이다.”

    개인적으론 노인이 허리가 안 굽었으면 순리를 역행했다고 보고.

    그냥 그 역행할 힘이란 건 유전자 아니면 돈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돈이 없는 분이어도 그 나이에 왕성한 활동이 나름 가능하다는 뜻으로 봐도 되어서.

    나이에도 불구하고 재물을 획득할 수 있는 분이라고 본다.

    이미 돈 많이 번 분, 그 나이에도 돈 벌 수 있는 분.

    통틀어서 돈 좀 있으신 분이라고 에둘러 말하면 적중한다.

    “그렇겠어요. 네.”

    “그럴 땐 돈 좀 있다고 아양을 떨지 말고.”

    “아양을 떨지 마요? 그래야 손님들이 좋아한다면서요. 아까 아줌마한테…. 뭐 예쁘시긴 했지만. 아예 고백하는 것처럼 들리던데.”

    “넌 떨지 마라.”

    “어 왜요?”

    “그냥 사주에서 특이점 꼬집어 내고 전문용어 써서 손님을 압도하는 쪽으로 스타일 잡아. 이런 건 소녀보살한테 배우면 나을 거다.”

    아줌마 집단이 찾아와 사주 보면.

    그들이 서로에게 서로를 오늘 참 예쁘다 그러는데.

    따로 보면 죄다 거짓말이고.

    서로의 칭찬에 진심으로 만족하지도 않는다.

    근데 칭찬 없으면 기분 나빠 하는 걸로 봐서, 그냥 그게 디폴트다.

    여성집단 사회는 기본이 칭찬으로 그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소용이 없다.

    “니가 어리고 미모가 제법 되어서 동성들에겐 그 칭찬이 진심으로 들리지 않으니까. 하지 마라. 역효과만 볼 가능성 높다. 아까도 그랬잖냐.”

    수이는 내가 하던 거 보고 비슷하게 칭찬 빌드 업 쌓던데.

    안 먹히더라고.

    그분은 동성에게 칭찬 듣고 싶지도, 비슷한 연배에게 칭찬 듣고 싶지도 않은 분이었다.

    “그, 그래요··?”

    “남자들에게 먹히긴 하겠는데. 으레 하는 칭찬이 아니라. 날 좋아하나? 싶은 착각을 심어 줄 수 있으니까. 그러진 마라. 나 같은 아저씨들이 혹시 싶어 들이대고 그러면 귀찮고 기분 나쁘잖아.”

    “아하, 선생님. 어, 멋있어요!”

    “고맙습니다.”

    “어….”

    반응이 안 찰져서 재미없나 보군.

    사람이 혹할 만하게 칭찬을 해야지 너무 뭉뚱그렸다.

    “나이 차가 20살 넘게. 세대가 부모 세대쯤 차이가 나면 거기서부턴 사람들의 생각에 있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 이 사람의 칭찬은 날 어떻게 해보려는 게 아니다. 정도.”

    “일곱 살 차면 합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칭찬 잘 안 하잖아.”

    “아까 칭찬했어요. 니가 어리고 미모가 제법 된다고.”

    “그랬던가.”

    의도한 거임. 칭찬의 힘 느껴 보라고.

    무의식적으로 한 것마냥 모르쇠 하면 더 좋다.

    “그러니까. 아줌마들한테는 아들 나이대의 술사가 칭찬을 하면 효과가 좋아. 칭찬 듣기 매우 힘든, 직설적일 나이라서 말야. 짱구만 봐도 나올걸. 엄마한테 뭐라 하는지.”

    “삼겹사아알. 푸핫, 그건 그래요.”

    “아줌마들이 주는 만큼 애정이 안 돌아오는 상대가 대표적으로 아들이니까. 아들이 걱정하는 양. 해 주면 잘 먹힌다. 그러니까. 따라 하지 마.”

    “딸처럼은 안 돼요?”

    안 된다.

    아줌마들의 히로인은 아들이라서 그렇다.

    준 만큼의 애정이 절대 안 돌아오는 존재.

    남편이야 쭈뼛쭈뼛대면서 한두 마디라도 하고.

    딸이야 아어이다가 되기라도 하지.

    아들은 뭐, 그냥.

    나 하는 꼴만 봐도 뻔한데 뭐 두말할 이유 있나.

    그러면서 아줌마들은 묘하게 현실주의자들이라.

    도끼병엔 안 빠짐.

    예외가 간혹 있긴 한데.

    그럴 땐 내 낮은 여자운이 발동되어서 퇴치하므로 괜찮다.

    “암튼 돈 많은 사람들 중 나이가 찼으면 대접은 받을 만큼 받은 사람들이니까. 굳이 아양 떨지 말고. 오히려 돈이 많은 사주이다를 맞춘 다음.”

    “네 맞춘 다음에요?”

    뭔 메모를 굳이.

    “그걸 토대로 흔들면 돼. 그걸 쥔 순간부터 네가 갑이야. 무서워 할 거 없어. 그렇게 하면 돼.”

    거기서 상대한테 돈 많이 내라. 등의 돈을 의식하는 발언만 안 하면.

    보통은 ‘투자’가 주목적인 부자 상대로 성공적인 감평을 하더라.

    “아 근데요.”

    “뭐?”

    수이는 살짝 쭈뼛대다가 말했다.

    “선생님 정도면 기분 안 나빠요. 칭찬해 주셔도 돼요.”

    “내가 싫은데.”

    “……씨.”

    좀 삐졌나 본데.

    나도 여자가 여지만 주면 ‘날 좋아하나?’, ‘호감 샀나?’ 싶은 찍기병이 없는 건 아니고.

    진지하게 보자면 수이가 이성적 호기심 없이는 이런 소리를 잘 안 할 놈이긴 한데.

    수이에게선 외견에서 ‘잘 보여야겠다.’ 마음이 안 읽힌다.

    꾸밈에 게으른 성향이 있다곤 하지만.

    맨날 동네 편의점 가듯 하고 나오는디.

    아무리 게을러도 진심은 행색에서 묻어나는 법이다.

    굳이 예외가 있다면.

    ……어?

    생각해 보니.

    ‘바깥이 아닌 단둘이 있는 장소에서만 보고 싶다.’

    인 경우와 유사 사주가 있긴 했고 실제로도 봤다.

    ‘어차피 다 보이고 씻을 건데. 왜?’인 생각 가진 분.

    그리고 그게 싫진 않고 오히려 좋았던 거 같기도….

    에이, 아니겠지. 얜.

    사주로 보면 거북이 껍질에 들어 있다가 이제야 바깥에 나온 방안퉁수라서.

    좀 그런 대놓고의 뭐는 없지 싶은 게 일반적이다. 아마도.

    그렇겠지?

    * * *

    수이는 결국 당일 날은 단가를 다 못 채웠다.

    이튿날 오후에 다시 출근시켜 철학관을 맡기고.

    구청 사주명리학 반이 구성됐다고 해서 가 봤다.

    30명 반이 다 차서 다음 주부터 강연을 시작한다고.

    정식 고용 계약서를 작성도 할 겸 구청 문화예술과에 왔다.

    “출석부인데, 굳이 출석은 안 부르셔도 되고요. 그냥 체크만 해 달라고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추가로 또 지원하시는 분 계시면 갱신해서 드릴게요.”

    “김홍로 씨, 정창석 씨, 이영만 씨, 박형자 씨….”

    출석부가 나와 있었고 강연 듣겠다는 사람들 이름이 줄줄이 있다.

    “출석 번호는 일단은 나이 순으로. 정해 봤어요.”

    예상은 했지만 7~8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반 30명 중 절반이다.

    특히 80살, 78살, 78살.

    할아버지 세 분이, 친구인 양 등록을 하셨다.

    최연장자인 세 분이다.

    와 80대가 사주를? 싶고 열의가 멋있으시다.

    아니면 이미 사주 알 만큼 아시는 분들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되네.

    노년의 술사는 옹고집이고 현실과 다른 감평을 하지만.

    사람을 보는 눈과 통찰력 하나는 관록이 있다.

    “사주 보시던 할아버지들 아닐까요?”

    “어, 그냥 노년 스마트폰 사용법 교육 다음 회차에 할 거 없다고 들어 보시겠대요. 재밌으실 거 같다고.”

    왠지 스마트폰 사용법 교육의 2차전을 내가 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어르신이 많네요.”

    “원래 이런 시니어, 교육으로 구상을 해서. 젊은 분들은 아무래도 잘 안 오죠? 그래도 여기 젊은 분들 좀 있어요.”

    출석부의 후번으로 갈수록 연령대가 낮아진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외엔 4~50대 아주머니들인데. 중년 아저씨 같은 이름도 둘 있다.

    30대는 딱 한 명 있고, 20대가 네 명 있다.

    “오 있네.”

    “아는 분이라도? 있으세요.”

    “네 있네요.”

    윤수이 21세. 있었다.

    아마 가장 어린 학생이지 않나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황혜민 20세.

    이분이 제일 어리다. 출석 번호 마지막.

    출석부가 프라이버시를 잘 따졌는지 이름과 나이만 적혀 있다.

    “으음?”

    어디서 본 이름 같은데.

    여자아이들 이름 패턴은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모르겠다.

    구청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름은 모르고.

    GTA 하면 훔쳐다 차고에 넣었을 거 같은 고급진 세단이 지나치는 걸 봤다.

    “아따야 좋은 차 타고 다니네.”

    사주로 번 돈으로 게이밍 노트북을 한 대 새로 사서.

    그동안 못 해 본 게임들을 좀 하다 보니.

    생전 관심 없었던 차량들이 좀 보인다.

    명승철학관에 도착하자. 수이가 맞아 준다.

    “선생님, 선생니임. 그때 그 할아버지 말예요. 또 왔다 가셨어요. 방금 전에 나가셨는데.”

    “또 왔다 가셨다고?”

    “대전에서 오셨다고 말씀 전해 달래요. 다시 오겠다고.”

    와 대전에서 여기까지 와?

    내 명성은 아직 전국구는 아닌데. 말이 돼?

    대전에서 왔다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수이에게 사진을 하나 보여 줬다.

    “대전서 여기까지? 이형탁 교수님인가. 혹시 이 아저씨니?”

    “어, 아뇨. 할아버지라니깐.”

    축하합니다. 이 교수님. 저는 할아버지로도 보는데.

    훨씬 어린 이 친구는 아저씨로 보네요.

    대전은 다니던 대학교가 있어 연고가 없진 않다.

    근데 할아버지는…. 모르겠는데.

    대전 대학로 궁동거리에 보면 도포에 두루마기 쓴 할아버지 한 분이.

    길바닥 한 가운데에 목욕탕 의자를 두고 사주 5천 원 하면서 불편하게 장사하실 때 사주 보고 이야기하면서.

    모객해 도와드렸던 거 말곤 없다.

    그 외엔 할아버지들과 교류할 일이 애초에 없지?

    “혹시 이런 차였어?”

    “아 네 맞아요.”

    나도 차 이름은 모르고, GTA에서 본 거 같은 차량이라.

    그걸 그대로 띄워 줬다.

    “흐음. 그 아저씨 참.”

    왠지 느낌이 김병용 장군 쪽 인맥인 것 같다.

    이거 누군가가 크게 소문낸 게 아니면 날 굳이 두 번이나 찾아오고.

    이어 또 온다고 할 이유가 없다.

    더 유명한 사주쟁이 많을 테니. 거기로 가겠지.

    3회 방문으로 유명한 그 유비도 시간이 썩어 나서 살찌던 신야 시절에 이런 짓 하지.

    한창때엔 안 하더라.

    그리고 대전, 계룡이면 육군본부 계룡대 쪽이고.

    김병용은 거기도 근무했었던 터라.

    내 서투른 짐작도 아귀가 맞는다.

    그 아재한테 연락 좀 해 보려다가 통화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아니다. 전화하지 말자.”

    아버지 자청하는 김병용 씨한테 전화를 걸려다가. 말았다.

    이런 건 굳이 물어서 미리 정체를 파악하면.

    상대의 정체를 사주나 행색으로 파악해서 선취할 기회를 잃는다.

    그나저나 어떤 양반인진 모르겠는데 본의 아니게 삼고초려를 시켰….

    <삼고초려>

    당신은 유력자의 방문을 두 번이나 회피하였습니다. 유력자와 세상은 당신이 마치 올 것인지를 알고 피한 것처럼 여길 것이며, 유력자를 바람 맞힌 당신에 대한 의구심과 호기심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1회 방문 남았습니다.

    3번째에는 겸양을 접고 나아가 맞는 것이 예의로.

    3번 찾아온 이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 보이십시오.

    완료시 명예운 레벨 하나를 그냥 지급합니다.

    이게 진짜 업적이 있었어?

    이벤트가 뜬 것부터가 범상찮은 인물임을 시사하고 있었다.

    거기다 이건 정말로 한 번 더 온다는 예고 같잖은가.

    미리 시찰 예고하고 오는 사단장 같은 느낌.

    * * *

    “제가 언제 죽겠습니까?”

    의사도 모를 걸 묻고 계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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