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35화 (35/211)
  • #35. 죽을 날을 왜 찾아

    사주명리학 구민 강좌 강의 첫날이다.

    “너 뭐 글 쓰러 나간다면서 양복을 입고 나가냐. 면접 가?”

    교생 때 입었던 양복을 간만에 다시 꺼내 입었다.

    그러자 엄마가 희한하게 본다.

    “기간제 교사 자리 하나 생겨서요.”

    “진짜로?”

    이것도 교사는 교사니까.

    울 엄마는 관이랑 다리 하나 놓았다는 힌트만 주면 반색을 한다.

    오늘 저녁은 고기 먹을 듯.

    “그럼 뭐 양복 입고 길거리 배회하다 들어오겠수. 그러느니 그냥 집구석에서 배 까고 뒹굴거리다가 혼나고 말지.”

    뭐 정리해고 당한 가장들이 출근하는 척하면서 그런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지만.

    그리하고 싶지는 않다.

    “사립이면 열심히 해라.”

    “아 전환되는 자리 아녜요.”

    “그래도 혹시 아냐?”

    사립에 기여금 내 줄 정도 자산이 안 되는데.

    엄니는 또 헛꿈부터 꾸시네.

    정교사 취업 단가 한 1억씩은 들더만.

    그리고 지금은 사주강화술로 뭘 올릴 수 있기 때문에 해 볼까. 싶은 거지.

    교직은 별로 생각 없다.

    “너 양복이 좀 짧다?”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어디서 정장 사 오고 그러지 마요. 일주일에 두 번 수업만 나가는 거니까. 눈치 봐서 캐주얼 마이에 신사 바지 같은 거 사서 입고 갈 거니께.”

    “키 좀 큰 거 같은디 정장 하나 있어야지 않겄어?”

    “그걸로 아부지 고기반찬이나 해 먹이십쇼. 혹시 압니까. 땅이 단가가 팍팍 오를지.”

    “어이고 미쳐 가지고 땅을 어휴. 제정신인지. 원. 뭔 돈이 있다고.”

    아버지는 땅이랑 농막 샀다가 진짜로 쫓겨나서.

    시집 안 간 막내 고모와 이혼한 막내 삼촌 있는 할아버지 시골집에서 농성 중이다.

    뭐 조만간 들어오실 거 같다.

    엄니가 차 쓸 일 많은데 차 몰고 나가셔가.

    물론 엄니는 절대 운전면허 딸 생각이 없고.

    너무 기계치라 도로의 평화를 위해선 맞는 판단을 하고 계시다 생각하지만.

    좌우지간 그 덕에라도 아버지가 복귀는 하실 듯.

    “어느 학굔디.”

    “구청 옆이오.”

    “차나 한 대 사 줄까. 걸어 다니긴 멀지 않냐.”

    “거 주식 팔아야 한담서요. 냅둬요. 내가 알아서 살라니까. 자동차세 낼 돈도 없는데 무슨.”

    어디서 들은 300만 원 짜리 중고차만 생각하시나 본데.

    기왕 차 사고 뭐 할 거면, 좀 좋은 차 사야지요.

    재성운의 근로소득 5레벨쯤 찍고 주거운 7레벨 찍으면 살라니깐.

    좀 참고 기다려 보십쇼.

    “넥타이 똑바로 매고. 다녀와라.”

    “예에.”

    “근데 이 시간에 출근해도 된다니?”

    “탄력근무제고. 일주일에 이틀, 두 시간만 딱 수업합니다.”

    집 나오는데 이렇게 배웅받긴 또 오랜만이네.

    구청으로 출근하다니.

    공무원 덕후. 엄마가 보면 좋아할 텐데. 사진 한 방 찍어 남길까.

    구청 3층에서 사주명리학 구민 강좌가 시작되어. 3층으로 가려는데.

    3층….

    80대 할아버지 한 분에 60대 이상이 열다섯 분인 강좌를 3층에?

    거 공무원 양반들 장사 못하네.

    마침 구청 공개홀 근처에서 할아버지 세 분이 계단에서 대화 중이다.

    할아버지 세 명이면 출석부에서 본 영감님들 아니려나.

    “이 형님은 3층은 좀 그런디.”

    “형님들 어디 가십니까.”

    형님들이라니까. 할배 셋이 일제히 날 본다.

    “거 총각이 한 말씀이오?”

    “예, 3층 가세요?”

    “그렇긴 한디.”

    “저도 가는데 도와드릴까요.”

    “아 우린 됐고, 이 성님. 좀. 어떻게 도와줘 보소.”

    “예, 부축해 드릴게요.”

    “아이고 고마워요.”

    할아버지 한 분을 부축해서 올라가고 있는데.

    송희영 씨가 달려오더니 막는다.

    “선생님. 저희 강좌 1층에 마련해 놨거든요.”

    “교실이 바뀌었어요? 3층 아니었어요?”

    “그게 엘리베이터가 교체 공사에 들어가서 쓸 수가 없어서요. 할아버지 할머니분들이 많아서. 3층까지는 힘드실까 봐요.”

    “아 그래야죠. 하긴 80대 분도 계신데.”

    “아이 공무원 양반. 진즉 좀 말씀을 허시지.”

    “이분이 선생님이신가 보네.”

    “예, 안녕하세요. 그렇다네요. 저 1층으로 가시면 될 거 같아요.”

    구청에 에스컬레이터를 달…면 지자체의 빚이 늘고.

    세금으로 전가될 테니, 그게 낫겠다 싶지만.

    뭔 짓으로도 세금은 뜯을 테지.

    그래도 당장 할아버지들 많은데, 3층은 좀 빡세 보이는 게 사실.

    “저희가 빨리 1층 정비를 할게요.”

    “1층은 왜 정비를 하세요?”

    “1층은 원래 성가대 합창단 팀들이 쓰고 있거든요. 여기를 3층으로 옮겨야 해서.”

    “그래요? 악기 같은 거 있나 보네. 도와드릴까요.”

    “네? 아 네 그럼 감사하죠.”

    구청에서 이런 뒤치다꺼리 일 해 본 적 있어, 익숙하네.

    문화예술과 쪽 사업에 보면 작가들 모집하는 것도 있어 보이는데.

    이런 걸로 점수 따 놓으면 나중에 이득 볼 수 있다.

    그렇게 1층 강의실.

    다는 못 치운 드럼 옆에서 강연을 대기했다.

    첫날부터 자리는 다 안 찬다.

    수이도 안 왔다. 오늘은 강의 있댔다.

    “아직 다 안 오셨나 보다. 조금만 더 기다릴게요.”

    강연 듣는 분들이 좀 더 오기를 기다리는데.

    젊은 여자 두 명이 들어왔다.

    그 이분들은 어디까지 쫓아오는 거지?

    로켓단이냐.

    서울 지하철 공덕역에서 만난 것 같은 공덕녀들이 등장했다.

    “아, 혹시 이하영 님?”

    “네.”

    “황혜민 님?”

    “네에. 안녕하세요.”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된다.

    수족냉증이신 분이 이하영이고, 마음의 눈인 분이 황혜민 씨였다.

    사주로 볼 때 나이는 기억하고 있었다.

    ‘가만….’

    경찰청이나 여기나 들고 다니는 가방이 있다.

    그 가방 깊숙한 곳에 구겨져 있는 전단지가 있었다.

    아이 찾는 부모의 외침이 애절해서 놔뒀던 전단인데.

    거기에 나오는 13살 소녀의 얼굴이, 어…. 아닌가?

    이름은 똑같다.

    근데 얼굴은 비슷한 거 같은데 애매모호하네.

    눈트임은 무료 강좌나 찾아다닐 정도로 돈이 이렇게 없는데.

    어디서 수술을 받은 거여.

    관상보는 양반들 참 먹고 살기 힘든 시국이다.

    전단 보며 딴짓하고 있던 찰나, 할아버지 한 분이 손을 든다.

    “선생님, 제가 다른 건 모르겠고. 여쭐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 어르신 어떤 것을 말씀을 드릴까요.”

    “제가 언제 죽겠습니까?”

    80대 할아버지 김홍로 씨의 질문은 범상치 않았다.

    * * *

    강의 나가는 날에는 영업 시간을 세 시간 더 늘려.

    아홉 시쯤 문을 닫기로 했다.

    “어우 양복 불편하네.”

    눈치 봐서 적당히 편하게 입고 나가야겠다, 싶다.

    양복은 우선 철학관에 걸어 두고.

    문부터 열었다.

    오전에 쉰다고 써 붙여서 그런지, 손님 안 와서.

    사주팔아 번 게이밍 노트북으로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3D 게임을 좀 돌리고 있었다.

    “아 나 차 좀 빌리겠다는데 왜 경찰이 쫓아오고 지랄.”

    혹시나 유해 게임을 하며 인성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메시지 뜨지 않을까. 걱정을 좀 했는데.

    <잡기>

    당신은 틀과 규칙이 정해진 놀이를 즐깁니다. 놀이를 통하여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이 놀이를 아는 자들과의 관계도가 향상되므로 친구운과 자아운에 포함된 비겁운이 오릅니다.

    게임은 지지자운도 포함된 비겁운이 오른다.

    사주강화술은 1세대 IT 게임 개발자.

    명승헌 씨, 명승 선생의 발명품이라 그런지.

    사주강화술 역시도 게임에 무척이나 관대하다.

    아마 사주강화술이 게임과 사주의 연관성을 규명한.

    사주명리학 최초의 저서가 아닐까. 싶기도.

    그래서 좀 안심하고 돌린다.

    “안녕하십니까.”

    “앗, 네 어서 오십시오.”

    게임에서 한참 흑인이 길거리에서 차 좀 빌렸다고 죽일 듯이 쫓아오는 경찰과 인종차별을 반대한 총격 투쟁을 벌이던 중이었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게임 끌 시간은 없어, 그냥 노트북만 덮고 준비했다.

    손님은 나이 든 초로의 신사로.

    이마가 꽤 평평하고 주름이 없는 편인데.

    노트북 덮는 모습에 살짝 눈썹이 흔들린다.

    아마 게임 소리가 들리긴 했을 것이다.

    ‘게임 당연히 싫어하는 우리네 할아버지의 성향이 있다.’

    이런 철없는 아새끼한테 복채를 주고 사주를 봐야 하나, 를 티는 안 내지만.

    그렇게 본 듯하다.

    게임하는 모습을 노출시키는 건 의외로 아주머니 연령층에서는 효과가 좋았다.

    그러니까, 한심한 백수 아들내미 같은 느낌을 주는데.

    사주와 인생을 족집게처럼 맞추니.

    첫인상에서 반전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사주야 맞추면 다들 좋아하지만.

    그런 반전 요소를 주면 더 열성팬들이 되어서 두 번 올 거, 세 번 오고 그렇더라.

    반전 있는 캐릭터성이 내게 부여된다고나 할까?

    물론 의도한 건 아니고, 그냥 게임하고 싶어서. 한 거지만.

    “앉으세요. 어르신.”

    키는 좀 작은 편이지만.

    풍채가 좋고, 머리숱이 많은 노인 분이다.

    그리고 노년으로 보임에도 허리가 매우 다부지고 등조차 굽지 않은 어르신이었다.

    ‘허리가 다부져?’

    허리가 다부진 신사 같은 노인이 찾아오고 있다는 증언을 들었고.

    내심 그 양반을 기다리던 찰나였다.

    근데 행색이 돈 많은 어르신 모양새가 아니다.

    한옥마을 옆 구시장에. 구제 옷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사는 의류 가게들이 있는데.

    거기서 본 듯한 의상으로 뒤엎고 오셨다.

    수이가 묘사하던 ‘영국 신사’스럽지 않고.

    노처녀 딸 시집 보내는 시골 할아버지의 예식장 복장 같다.

    그리고 기묘하게 옷깃을 좀 세워 목을 두텁게 가렸다.

    목 부분이 약간의 위화감이 있었다.

    왠지 시험하러 온 듯한 느낌이.

    “사주를 한번 보고자 합니다.”

    신사의 느낌을 가진 시계도 일단 없다.

    “어, 어떤 이유로 사주를 보시나요?”

    “제가 언제 죽겠습니까?”

    이거 김홍로 할아버지한테도 들은 말인데.

    그 양반이 날 예습을 시켜 줬나.

    “질문이 되게 부적절하시네요.”

    “그렇습니까?”

    “우선 죽어야겠다. 생각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사주가 그런가요?”

    그런 사람이 사주 보러 안 와요.

    앞날을 잘 살고 싶어서 사주 보지.

    죽을 날 받으려고 사주 보러 오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죽을 건데.

    죽는다 묻는 건 ‘오래 살고 싶다.’ 라는 욕망을.

    젊은 술사인 내 앞에선 차마 못 털어놓고.

    반어법으로 돌려 말하는 어른의 기법인 걸.

    김홍로 할배가 알려 줬다.

    “사주 아직 안 주셨는데요.”

    “그랬군요. 하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별로 안 당황하시네.

    여기서 머쓱해야 몰아 가기 편한데.

    그러자면 다부진 허리로 몰아 보자.

    “평생에 허리 굽힐 일이 없던 사람은 세상이 즐겁고 시간이 아쉬울진대. 왜 굳이 죽을 날을 받습니까.”

    “허리 굽힐 일이 없었다, 라. 그건 어찌 아십니까?”

    여기서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다.

    사실 이쯤에서는 반응을 조금 흘려야 맞는데.

    포커페이스에 음성도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 영감님 강적이네.

    한 턴 굽혀 볼까.

    “제가 외견상으론 어르신을 50대 중후반 정도로 보긴 합니다.”

    “그렇습니까?”

    이건 좀 먹혔나 보다.

    기분 살짝 좋으셨구만. 입꼬리 봤어요.

    “그런데 패션은 그렇지가 않네요. 68혁명 있을 때쯤의 젊은이처럼 입으셨어요. 쿠바 가서 사진 찍으면 어울릴 거 같은 모습이세요.”

    “68혁명이라. 그걸 아십니까?”

    그때쯤 젊음을 맞았던 작가가 꼭 소설에 보면 비틀즈 음악에 비유하고 그러더라고.

    거기다 이상하게 쿠바에 동경 있고.

    할배들은 이런 문자 써서 대응해 주면

    의외의 역사 상식들을 바로 있었던 일처럼 토해 내고.

    신이 나서 한 시간 정도는 말씀해대며.

    사주 틀려도 매우 좋아하고 나가신다.

    그래서 할배 손님을 만날 때는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 한두 개씩.

    슬쩍 언급한다.

    그 양반들은 사주가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오는 양.

    말씀들을 하시더라고.

    “예, 뭐 문학들을 좀 읽으면 뜬금없이 비틀즈 음악에 비유된 뭔가가 나와서. 이게 왜 나오냐. 싶어. 찾아본 적 있습니다.”

    “허헛.”

    68혁명 드립이 좀 먹혔나 보다. 근엄한 표정에 미소가 어린다.

    게임으로 까인 점수는 만회가 됐으려나.

    근데 패션은 가져다 붙인 개드립이다.

    내가 68혁명 때 뭔 옷들을 입었는지 어찌 알아.

    그냥 해방 전후 세대 할배들 최고조로 멋 낸 것처럼 입어서 그리 말했다.

    오늘 강연 오신 할배 3인방이.

    새 수업에 여동생들(?)이 많다고 꾸미고 오신 것도 비슷하고.

    그럼 얼추 그 양반들이 그 세대일걸.

    다만 그럼에도 이 어르신은 빈틈이 없었다.

    68혁명 드립에 이놈이 뭐 알긴 아는 놈이네 싶긴 했지만.

    경계심을 풀진 않은 듯하다.

    “그런 의복을 향유하는 세대면 연배는 70대 이상이라 여기고.”

    “흐음.”

    “무엇보다 50대나 환갑은 벌써 죽음을 논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는 어르신을 해방 전후 세대로 68쯤에 20대였을 가능성을 높이 봅니다.”

    “그렇습니까? 한데 부유하다는 건 어떻게 읽으신 건지?”

    “등이 굽지 않은 노인은 허리를 숙일 이유가 없는 인생임을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일도 길고 돈도 많이 드는 허리 교정을 받을 여유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겠지요.”

    “어느 쪽이나, 어르신의 단단한 척추는 가산이 많음을 상징하는 것을 확률로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 확률로 보니 그렇다?”

    “예.”

    “하하하하하. 확률이라. 그렇겠지요. 말이 됩니다.”

    어 이제야 인정하고 웃네, 조금 풀리나.

    “그런데 그게 죽을 날을 기다리지 않을 이유가 되겠습니까? 부유하면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삶이 재미있다. 꼭 그럴까요?”

    싶었는데 아니었다. 곧바로 정색하고 들어온다.

    와, 이 영감님.

    돈 많아도 만만찮고 할배도 만만찮은데.

    두 개가 겹치니 빡시네.

    여기서 그냥 사주로 넘어가서 사주강화술로 데이터를 읽어.

    말씀드리면 될 것 같지만. 지는 느낌이 든다.

    안 되겠다. 이거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관찰에서 본 게 하나 있어서 찍어 보고.

    안 되면 사주로 넘어가야겠다.

    “근데 죽고 싶어하시진 않으습니다. 거짓말을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판단하시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사주로 나온 것도 아니고. 관상으로 보이는 겁니까?”

    “뇌혈관과 폐렴 등을 특히 신경 쓰시는 것 같습니다.”

    “병환을 보십니까? 관상으로?”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자주 쓰는 절단신공으로 살짝 뜸을 들이고 말했다.

    “목토시 하셨네요. 근데 애 같고 어울리지도 않아서 감추신 것 같으신데요.”

    “아.”

    이 노인은 드디어 당황해한다.

    오늘 날씨가 해는 높은데 가을바람이 갑자기 차다.

    바람이 불면 나도 머리가 서늘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 몇 분이, 목을 보호하는 등산용 목토시를 하시더라.

    뒷목과 뇌혈관도 조심하고 인후염.

    이어 감기로 인한 폐렴도 두려워.

    목의 체온이 내려가지 않게끔 하고 다니신다고 하더라고.

    “아직 낮에 차고 다니기엔 덥지만 찬바람을 급작스럽게 맞으면 풍이 올 수 있고 목의 체온 저하가 감기와 인후두염을, 감기가 잘못하면 폐렴을 부르니까. 건강에 유달리 신경을 쓰신다는 신호입니다. 둘 다 노인 사망률 순위권의 질환이죠.”

    “멋으로….”

    라고 한마디 하시다가 본인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고 흐린다.

    빨간 마후라 세대이시긴 할 건데.

    그걸 멋으로 왜 하며, 할 거면 왜 감춰요.

    “그런데 왜 죽을 날을 찾으세요. 더 건강히 살 방법을 물으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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