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26화 (26/211)
  • #26. 공권력의 맛

    마음의눈녀, 수족냉증녀. 길거리에서 공덕 준다고 했던 분들이다.

    날 어떻게 찾아냈냐가 좀 궁금한데.

    검색 조금만 하면 젊은 남자 역술인 이야기 찾을 수 있긴 했을 것이다.

    맘카페에도 리뷰가 있었다.

    수족냉증인 분의 경우에는 맘카페 이용이 가능하기도 할 테고.

    준비해 온 자료를 한 번 내리 본 뒤 다시 그녀들을 보았다.

    한 명이면 탈출을 했다거나 우연이라고 생각하겠는데.

    둘이니 여전히 집단성을 띤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다 관리 감독하러 온 듯한? 정체불명의 남자까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는데, 솔직히 섬찟하다.

    “어, 안녕하세요. 아는 분들도 좀 오셨네요. 거기 두 분 반갑습니다.”

    “앗, 네.”

    그래도 지금은 내 강의 들으러 온 구민들.

    웃으면서 인사하니까 어수룩하게 받아 준다.

    저들의 더 윗선에서 이 사람들을 농락했다고 보복하라고 보낸 건지, 사주 등의 실력이 모자라서 영업이 안 되니까 배우러 온 건지.

    그건 모르겠다. 둘 다일 수도 있고.

    한 가지 확실한 건 죄다 어디엔가는 바치고 남은 건 빈털터리 껍데기일 것이라.

    무료강의 아니면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저는 사주보다는 사주 보러 갔을 때, 눈탱이를 안 맞는 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3회차 강의의 주제는 ‘사주 보러 가서 물어봐야 할 것들’이다.

    강의 계획서는 ‘사주 보러 갔을 때 눈탱이를 안 맞는 법.’이라고 해서 냈다.

    눈탱이라는 말이 부적절했는지 공무원들이 제목을 바꿔 달라고 하더라.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어야 강의가 흥한다고 생각했는데, 공무원들 사정 봐주고 수정했다.

    [관청의 시정 권고를 받아들여 뜻을 굽혔습니다. 관청과의 좋은 관계 유지로 관과 관련된 관성운이 직관적으로 오릅니다.]

    라고 하더라.

    물론 공무원들 말을 듣지 않고 내 뜻을 관철해도 운이 오르긴 하는데 재 보니까.

    이쪽이 좀 더 포인트가 많았다.

    “물이 많으면 뭐가 많겠습니까. 몸에서 나올 물이 많은 겁니다.”

    침착하게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에는 자극이 있어야 하니까.

    듣다 보면 뭔가 상상할 법한, 살짝 야한 이야기도 넣었다.

    내가 유독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아침에 아침마당이나 10시쯤 하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등을 켜 놓고 작업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데.

    섹드립이 나오면 게임 같은 걸 하는데도 시선이 가더라고.

    고리타분한 교과목 시간보다 성교육 시간 교육 참여도를 생각해 보면 느낌이 오겠지.

    마음의 눈이 손을 번쩍 들고 갑자기 질문을 한다.

    “그런데 다른 건 이해가 되지만 금생수는 왜 금생수에요? 쇠에 물을 올려놓으면 녹이 슬잖아요.”

    그건 나도 책 읽을 때 이해 안 갔다.

    그게 진짜로 목화토금수가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다섯 가지 기의 흐름을 품은 기물에 빗댄 건데.

    그런 건 설명하기 귀찮고.

    물 주면 나무가 자라고, 나무는 불의 장작이 되고.

    쥐불놀이 보듯 잿더미가 지력을 도와주고.

    땅에 오래 잠든 광물에서 쇠가 나온다, 까지는 이해가 되겠지.

    근데 쇠가 물을 살려준다는 띠용스럽다.

    ‘녹슬지 않냐?’

    ‘그러게 말입니다. 그 암튼 그렇답니다.’

    암튼 그렇답니다, 라고 대답할 때 돌팔이라고 욕먹었다.

    그러다 보니 연구한 금생수를 설명할 방법이 있다.

    “혹시 본인이 유럽 여행 다녀오셨다. 손.”

    코로나 전에는 방송국이 여행 빼면 뭘로 방송 만드나 싶을 정도로 여행 관련 사업이 성행하더니만.

    꽤 많은 분이 손을 든다. 특히 아줌마들 집단.

    무슨 유행 타듯 다녀오셨다.

    “거기 물값이 어떻던가요. 레스토랑 가면 물보다 콜라나 맥주가 더 싸고 그러지 않던가요. 가격이 비슷하든가. 그리고 막 가스 든 물 먹고 그러죠?”

    “네에.”

    “어후 거기서 맥주만 마셔 가지고 화장실을 찾는데, 화장실이 없어 또. 미쳐 죽는 줄 알았다니까.”

    아줌마들은 참여도는 좋으신데, 한번 말씀하시면 얘기가 길어지시네.

    “유럽 쪽은 석회암 지대로 예전부터 물을 걸러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맥주도 발전하고 와인도 발전하고 그랬죠. 석회질. 그러니까 미세한 입자가 떠 다니는 물은 좋지 않습니다. 그 물이 물의 역할을 다 못하는 것이죠.”

    “어 맞아, 한인 민박에서 밥 먹는데 접시에 흰 가루가 묻어 나오길래 뭐냐고 따졌거든. 그게 석회질이래.”

    아이고 목소리 크셔라.

    근데 저 어머님 덕에 티키타카가 되어서 상관은 없다.

    좀 딴 데로 끌고 가긴 하는데 저런 열정적인 학생이 있어야 좋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국토 대부분이 화강암 지대로, 물이 맑기로는 국제적으로도 소문난 곳입니다. 암반수라고 하죠. 이 단단한 암반 위를 흐르는 물에는 불순물이 잘 끼지 않습니다.”

    “네, 생수 맛이 달라요.”

    잘한다. 잘한다. 어머님이 오늘의 귀인이십니다.

    “그래서 금생수입니다. 단단하고 견고한 바위 위로 지나는 물은 깨끗하고, 물을 물답게 만들어 주니까요.”

    “아하.”

    마음의 눈, 저분은 그래도 공격하려고 꺼낸 말은 아니지 싶다.

    미신 절대 안 믿는 20대 남성이 가득한 호국의 요람에서.

    납득시키려고 온갖 잡학을 가져다 들이대던 마당에.

    이 정도 질문은 우습다.

    질문 시간도 아닌데 질문 하나 받아서 이야기해 주니.

    갑자기 질문이 하나 더 나온다.

    “관살혼잡과 종살격을 어떻게 판별하십니까?”

    눈 화장이 예리한 분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매우 낭랑하다.

    닉네임의 근원을 알 것 같은 목소리다.

    말투는 어른 말씨인데, 어린이가 따라 하는 것 같다.

    그나저나 너무 전문가 티 내는 거 아뇨?

    누가 봐도 알면서 물어보는 거잖아. 저 정도 단어면.

    “전문 용어는 끝나고 따로 질문해 주세요. 그때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모르는 게 아니고?”

    무시했다. 이런 학생 드랍하는 건 기본이어야지.

    야매로 사주 보긴 하지만 용어와 개념을 모르진 않는다.

    그게 실제 인생이랑 잘 호응하지 않으니까, 용어를 안 쓸 뿐이다.

    전문 용어 쓰면 권위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듣는 사람이 알아먹기가 힘들잖아.

    다행히 한 명도 안 졸게 강의를 듣게 했다.

    중간중간 핸드폰 보시는 분들이야 있었지만, 소소하다.

    세 번 다 나오신 아줌마들의 참여가 돋보였다.

    마지막 질문 시간이 되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말씀하신다.

    “사주는 바뀔 수 있습니까?”

    “저는 안 바뀐다고 봅니다. 그냥 그 사주의 힘을 더하는 정도만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 중입니다.”

    할아버지 청중분과 대화하고 있는데.

    “강화하면 되니까.”

    턱을 괴고 날 평가하듯 쳐다보던 목소리 낭랑한 눈 화장 여인네가 한마디 툭 던진다.

    지금까지 저 여자, 한 마디 한 마디 꺼내는 것마다 죄다 수업 테러였다.

    강연이 끝나고 수이가 다가오려다가 눈치를 보며 빠진다.

    다른 한 사람도 강단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사람 눈치를 보는 모양.

    아무래도 이 사람 소녀보살 맞나 보다.

    소녀보살은 수이 대신 내게 다가와 다짜고짜 말한다.

    “너구나?”

    “누군데 반말이세요.”

    “나 알지 않니?”

    “모르겠는데요.”

    “너 뭐 하는 앤데, 명승 선생님 철학관에서 네가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어?”

    “수제잡니다.”

    “말도 안 돼. 너 따위가?”

    “왜 안 되죠.”

    “엉망이던데?”

    소녀보살은 날 크게 비웃고 지나갔다.

    * * *

    그리고 그 건방.

    다다음날. 경찰청 대질에서 끝나 있었다.

    “그러니까. 아가씨, 아가씨가 이거 보낸 거 맞잖아요. 증인이랑 다 있는데?”

    “죄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 그러면 피해자분한테 사과부터 하셔야지.”

    “…….”

    머리를 푹 숙여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소녀보살은 끝까지 사과할 생각 없나 보다.

    멍-청.

    인터넷 댓글만으로도 경찰서 정모하는 각인데.

    당최 무슨 깡으로 협박장을 썼어.

    피의자 민소여, 직업 무속인.

    나이 만으로 22세. 세는 나이로는 24세.

    학력은 초졸.

    눈 화장에 페이스 페인팅을 지우니까.

    동안에 키가 작고 목소리가 앳되고 어리다.

    듣자니 정말 초등학생 때부터 무속인 생활을 했다는데.

    그 정도면 산전수전 다 겪지 않았나.

    생각까지 어릴 줄은 몰랐다.

    대질 신문 굳이 안 해도 저놈의 증거가 명확하고 증인도 있어서 출석할 필요 없었지만.

    저 꼬라지 볼 겸 나왔다.

    “그, 선생님.”

    “아, 저요?”

    “우리 선생님도 그 어린 아가씨니까. 적당히 선처를 하시고.”

    “선처해 줄 생각을 들게 피의자가 합의를 해야죠. 제가 뭐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영상 편지로 무릎 꿇고 죄송합니다. 이거 보내면 소 취하한다는데, 안 하잖아요. 그럼 법대로 해야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사실 더 살벌한 악플도 당한 입장에서 이 정도는 우습긴 하나.

    전문가물 구상할 때.

    어떻게 하면 이능력이나 기연이 없는 평범한 현대인의 인생에서 사이다를 줄 수 있을지 연구해 보다가.

    인생에서 사이다 먹을 짓이 생겼는데.

    그 행동을 하고도 뒤탈이 없으면 시도해 보곤 한다.

    “그래도 초범에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는 데다가, 아마 이걸로는 어려울 겁니다. 이분이 선생님께 실질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어서, 협박죄보다는 그 비방, 이런 걸로…….”

    근데 형사 양반 호응이 영.

    무슨 심리인지는 알겠다.

    아무리 협박죄여도 어차피 콩밥까지 먹이긴 힘드니까.

    괜히 형사 귀찮게 하지 말고 좋게 좋게 해결하라는 뜻이겠지.

    나도 뭐 실제로 소녀보살한테 빨간 줄이라도 그으려고 이러는 건 아니고.

    무릎 꿇려 빌게 만드는 게 목적인데.

    범죄자 두둔처럼 들리네?

    “저는 실질적 위협을 느껴서 안 되겠습니다.”

    “이런 쪼그만 아가씨가 그렇게 위협이 되겠어요? 그래도 선생님이 남자인데.”

    “저분 약 1미터가량의 도검을 평소 소지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실질적 위협이 됩니다.”

    “칼을요?”

    “네, 저분이 벼린 도검을 길가에서 차고 다닙니다. 제가 봤습니다. 9월 4일. 한옥마을 전주중앙초 앞 CCTV에 찍혀 있을 겁니다. 아마 그 칼 이름은 경의검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거 무속인이라서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닌가요?”

    “무속인이면 길거리에서 칼 차고 다녀도 됩니까? 그것도 진검을? 미친 거 아녜요? 전 그 칼로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정말 두려웠습니다.”

    형사 양반도 황당한지 젖힌 의자를 끌어당기고 키보드에 다시 손을 얹는다.

    “진짜 칼이에요. 피의자분? 말씀하세요?”

    “진짜 칼인지는 제가 그날 9월 4일 제가 직접 신당에 찾아가서 봤습니다. 도검 소지 허가증이 있는지 조사해 주시고, 설사 허가증이 있다 한들 길거리에서 칼을 찬 것도 처벌해 주십시오. 이것도 바로 소장 써야겠네요. 참고인 조서에도 다 써 주세요.”

    소녀보살 신당을 간 게 도움이 된다.

    사랑채에도 칼이 놓여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 가능하면 좋게 합의하세요.”

    뭘 자꾸 합의야.

    지금 들으면 피의자가 약하고 못 배웠으니 합의 보라는 형사가 더 진상이다.

    칼을 가진 것에서부터는 전투력이 다른데 뭔 개소리야.

    소녀보살이 근육보살이고 키 180 넘고 몸무게 100 정도 되어 보이는 우락부락한 박수무당이었어도 이따위로 굴었을라나.

    “뭘 가능하면이에요. 직접 위해를 안 가하더라도 누군가에게 폭력을 사주하거나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그리고 그건 법정에서 판단할 일이지 수사관님들이 이 여자가 가냘프니까 지레짐작하고 용서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내가 CCTV랑 싹 떼서 드려요? 영장 받아서 그 칼 싹 압수부터 하세요.”

    “허허 것 참.”

    “요즘 시대에 도검으로 위해 당했다는 기사 뜨면 참 수습하기 좋겠네요? 무속인이 진검으로 난자. 이건 지방지 기자만 물 떡밥이 아닐 거 같은데.”

    신문 사회면에서나 볼 법한 무당 소재.

    거기에 진검으로 협박.

    날아오르지 이 정도면.

    형사 양반은 그 얘길 듣고서야 다시 뭐 쓰기 시작한다.

    “거기다 무기 휴대하고 협박하면 특수협박이라잖아요. 특수협박으로 피해자 조서 다시 써 주시고, 고소장도 변경하겠습니다.”

    칼을 들고 직접 협박한 적은 없지만.

    알 게 뭐야.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데.

    “피의자분.”

    “예, 예.”

    “빨리 사과하세요. 이거 특수협박이에요, 특수협박. 협박이면 3년인데 이건 7년까지 살아요. 피해자분도 사과 영상 찍어 보내면 고소 취하해 주시겠다고 하잖아요.”

    소장 변경한다니까 형사 양반은 그제야 피의자를 다그친다.

    일거리 늘어나나 보지?

    공무원은 일거리 던져 주는 걸 제일 싫어하더라.

    “잘못했습니다.”

    “거 저 말고 피해자분한테 사과하시라니까.”

    그냥 힙해서 차고 다니는 거 알긴 알지만.

    교묘하게 얽힌다.

    특수협박죄라는 게 있다는 거 방금 전 검색하면서 첨 알았는데.

    7년 이하면 꽤 센데?

    소녀보살은 아랫입술을 앙다물고 눈물 자국 있는 채로 날 매섭게 노려본다.

    “보세요. 노려보는 거. 전혀 사죄할 생각이 없잖아요. 당장 구속해 주세요. 돌아가면 칼 들고 해코지하러 올지도 모르니까. 압수 수색 영장도 빨리 해 달라고 하고요. 진짜 무섭네요. 이거 단순 조사 및 귀가 조치하거나 불구속 수사하면 저 위에다 찌르고 언론 제보하고 인터넷 올립니다?”

    “진짜 유치장 한번 가 봐야겠어요? 빨리 사과 하세요. 피의자분이 합의 생각 없으면 정말 압수수색 갑니다?”

    형사 양반의 존댓말 쓰면서도 으름장 놓는 기술은 내가 피해자이자 참고인으로 들어도 위축되네.

    무속인이나 역술인이면 한 으름장 놓는 직업들인데. 제법이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제야 소녀보살이 나한텐 꼿꼿한 목을 숙였다.

    그 조아림을 보며 사주 강화술 앱의 알람을 기다렸다.

    사주 강화술로 4과와 사과의 구분이 가능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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