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25화 (25/211)
  • #25. 고전적 신분 상승 방법

    주거운 6레벨 찍고 신나서 나오는 찰나였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신 한 아주머니와 아저씨 한 분이.

    확성기와 나무 합판에 걸린 여자아이 사진을 두고.

    경찰청 앞에서 시위 중이었다.

    올 때도 흘깃 보긴 했는데 별생각 없이 지나쳤다가 이젠 확성기로 시위하시니 말씀이 들린다.

    “경찰은 미성년자 약취 유인, 범죄조직 결성하는 천용화를 당장 체포하라.”

    “제 딸 혜민이는 그 뒤 7년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버스 기다리고 있어 시위 내용이 계속 들린다.

    혜민이란 여자애를 6학년 때 가출로 약취 유인.

    부모를 무고시켜 가정과 분리시키고.

    사설 쉼터에서 격리하고 있다는 자에 대한 성토 및 체포 요구였다.

    이어 사설 쉼터의 가출청소년 및 미혼모 쉼터 관련 인허가를 취소하라는데.

    이건 경찰청에서 할 일은 아닌 거 같지만.

    경찰청 근처에 도청도 있으니. 거기 공무원들도 듣겠지.

    듣자니 안타까운 사연이나, 가출과 관련해서는 부모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고.

    처벌이나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

    쉼터 운영자가 지역의 경제와 정계를 장악하고 경찰과 공직자 수뇌부를 세뇌한~.

    여기서부터는 격앙된 부모의 음모론적 시각으로 보인다.

    자극적이라 반응하게는 되는데.

    그것까지 첨가하면 신뢰도가 좀 떨어진다.

    뭔 사이비 색채 종교 산하 쉼터 운영자 따위가 경찰 간부, 시장, 국회의원을 다 매수하는 게 가능…….

    할 수도 있는데 일반적인 일은 아니지.

    “저, 이거 읽어 보시고 혹시 시간 나시면 국민 청원 부탁드립니다.”

    “아, 예.”

    어머님이 직접 오셔서 나한테 ‘천용화’라는 자와 딸 혜민이라는 아이의 사진 등이 담긴 투서를 줬다.

    딸은 상관없겠지마는 사람 얼굴을 이렇게 막 게시해도 되나.

    눈에만 딱 검은 띠로 칠을 하긴 했는데 아는 사람은 알아볼 수준이다.

    범죄자도 신상 공개 아니면 이렇게 얼굴 막 쓰면 안 될 텐데.

    그래도 절박하신 분들 같아 버리긴 뭐해 가방에 넣었다.

    그사이 아버지한테 연락이 왔다. 어딜 싸돌아다니냐고.

    “뭔 사고 치셨나.”

    주거운 6레벨 올린 직후여서 굉장히 공교롭다고 생각했다.

    무슨 청약 저축 넣어 볼 거냐고 몇 마디씩 하시던데. 그건가.

    예약은 딱히 없고 경찰청 오는 김에 철학관 문도 닫아서 집으로 먼저 갔다.

    “불렀슈? 아부지.”

    “너 뭐 하고 돌아다니냐.”

    “한옥마을 근처에 저술, 창작하는 지역민한테 무료 제공하는 작업실 있다고 했잖아요. 거기서 글 쓴다고 두 번쯤 말씀드린 거 같은데.”

    사주 본다는 얘기 안 하고.

    지역에서 작가, 예술가들 단체팀에 작업실 빌려주는 프로그램 핑계로 넘어갔다.

    명승철학관 아니었으면 그런 곳에 입주할까 했는데, 팀이 아니라 개인은 좀 까다롭더라.

    “그러냐. 또 그놈의 야설?”

    “아, 거긴 공동으로 창작하는 데라 그런 거 못 쓰죠. 뒤에서 신음 소리 묘사 보면 어떡하려고요. 그냥 무협 써요.”

    “그려?”

    용돈을 안 숨기나 보려고 한 번 손 내밀어봤다.

    “용돈이나 주십쇼.”

    “뭐 하게.”

    “여자친구 밥 사 주게.”

    “진짜로?”

    “어, 진짜.”

    아버지가 날 위에서 아래로 쭉 훑더니 말했다.

    “너 키 컸냐?”

    “맨날 쓰는 깔창이오.”

    아부지요……. 엄니는 그래도 눈치채시더만.

    키 컸냐만 벌써 열 번째 물으시네.

    “만난다니 줘야지.”

    “엥? 에헤이이, 뭐 이렇게 많이 줘요?”

    “가시나들 앞에서 찌질하게 보이지 마라.”

    생각보다 용돈을 많이 주셔 놀랐다.

    여자친구 만난다고 하면 용돈 주는 거였구나. 그랬구나.

    없는 여자친구라 죄송합니다.

    근데 목적이 그것뿐만은 아니셨던 모양.

    “너 잠깐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딜요.”

    “너 사주 좀 배웠잖냐.”

    계 모임 끝나고 오신 아버지 친구분들 내외 앞에서 술 많이 먹는데 간은 안 아픈 분, 술 안 먹는데 간 아픈 분 맞힌 걸로 유명하긴 하지.

    오히려 당을 과하게 섭취하면 지방간은 생긴다던데.

    “그렇죠.”

    “땅 좀 볼 줄 알지?”

    아, 예 풍수 봐요. 봐.

    사주만 좀 볼 줄 알지 관상, 풍수, 손금은 못 본다고 한 5년째 말씀드리고 있다.

    시작할 때 아지트 같은 거 지어 알 박는 게임.

    그런 거 해 봐서 잘 압니다.

    어차피 풍수도 오행과 관련되었을 테니.

    수생목, 목생화, 화생토 주변 기물과 자연이 이런 식으로 이어지고 둘러 있는 땅이면 좋다고.

    둘러댈 셈이다.

    억울하면 배워서 직접 보십시오. 아버지.

    “……예? 뭔 땅이요?”

    “한 500평 정도, 주말농장이나 가꿀까 싶어 봐 뒀다.”

    아버지께 용돈을 환급했다.

    “왜?”

    “조만간 쫓겨나실 테니, 비상금 하시라고.”

    이 양반이 퇴직금 주식에 몰빵했다고 바가지 깨나 긁히더만.

    나보다 먼저 쫓겨나시게 생겼네.

    어떻게 기업 이름에 쓰리스타 붙은 것만 골라 샀는데 30%가 까이냐고.

    남편 취급은커녕 사람 취급도 못 받게 까이시더라고.

    그러면서 뭔 깡으로 내 공무원 공부 뒷바라지 몇 년간은 할 수 있다고 하시는지 몰라서 홀로 도생 중이었는데 돈은 있으셨나 보네.

    장난으로 달라 그런 거지, 요즘 장사로 돈 버니까.

    연금생활자가 되신 아버지한테 손 벌리기는 뭐하다.

    “입에 자크 달아라.”

    “입막음비치곤 싼데요.”

    “여기 뭐 네 동생이 와서 지어먹고 살겠냐. 나중에 다 네 땅이지.”

    농사는 관성운, 인성운, 비겁운. 수확 때는 재물운까지 다 오르긴 하던데.

    딱히 흥미까지는 없다. 힘들더라고.

    “이미 계약한 거 아녜요?”

    “얘기는 해 놨는데 그 옆 땅이 좀 더 좋아 보이긴 하더라.”

    “가시죠. 뭐. 운전 제가 할게요.”

    효도 + 토지조사. 재성운 오르고 인성운은 따블이지.

    차 있으면 전국으로 땅만 구경하고 다니거나 개별적으로 국토 대장정만 해도.

    인성운 포인트가 100은 오른다.

    차로 가고 있는데 여느 부자가 그렇듯 우리 부자도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너도 땅 사는 거 반대하냐.”

    “별 관심은 없는데, 사고 싶은 건 사야죠. 돈 있는데 왜 안 사요.”

    그럼 재성운, 인성운 올라요.

    할배는 돌아가셨으니, 아버지의 아버지운은 애석하게도 0으로 체크되어서 변동이 없겠고.

    근로소득도 연금으로 적용되니 드라마틱하게 변화는 없겠는데.

    부인운과 횡재운에는 작용할지 모릅니다.

    횡재운에 포인트가 추가되어서 횡재를 하실지.

    부인운에 포인트가 추가되어서 마누라가 더 기세등등해질진 모르겠지만.

    결과가 보이는 거 같습니다.

    자아운 낮은 남자가 여자/부인운 오르면 어후.

    “느그 엄마가 난리를 피우니까.”

    집구석이야 시끄럽긴 하겠다만 아버지가 줘 뜯기지 내가 뜯깁니까.

    “땅에 대한 권리가 있는 집안은 그때부터 지준디요. 고급진 신분. 땅이 있음 중세 유럽으로 따지면 기사 신분이든 영국 젠트리 신분이든 되는 겁니다. 사고 싶음 사요.”

    “지금까진 소작이었냐?”

    “그렇죠. 생산 수단을 직접 소유하지 않고 소유한 이에게서 일한 몫만 떼어 받는 신분이었잖아요. 누군가에게는 매인. 인제 생산 수단의 기초인 토지 얻어 신분 상승하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윤 없슴다.”

    “거 말 된다.”

    왠지 주거운 6레벨 찍어서 벌어진 일 같은데.

    걍 응원했다.

    우리 땅 생기는 일 = 신분 상승.

    이렇게 도식화해서 띄워 주니 아부지도 기분 좋으신 모양.

    가는 길을 보아하니 아버지 고향 근처에 땅 사서 작게 부칠 생각이신가 본데.

    산간 시골 맹지가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나.

    아버지운을 계속 레벨업하면 이 땅이 금싸라기가 되려나?

    아주 멀리 나가지는 않고 전주를 둘러싼 완주 어딘가에서 멈춰 섰다.

    “여기 이렇게 500평.”

    “마을 길 쪽 아녜요? 길이라도 막으면.”

    “풍수로는 어떠냐.”

    “거 뭐 할배 묘 이장할라고요? 풍수쟁이가 아니라 복부인이 땅은 더 잘 봐요.”

    요즘 시대야 조상 모실 묫자리가 좋은 땅이 아니니까.

    값이 오를 자리가 좋은 땅이지.

    조상 모시기 좋은 자리 죄다 산간벽지고.

    그런 산간벽지가 값이 오르긴 하나.

    “여따가 농막 하나 놔두고.”

    “농막이 뭔데요.”

    “그 창고같이 컨테이너 두고 그런 거.”

    “아아, 뭔지 알 것 같네요.”

    거 내 친구들 부모님들도 연세가 비슷하신데.

    꼭 은퇴하거나 은퇴 직전에 땅 사서 부치시더라고.

    친구 부모님 중 한 분이 고향인 시골에 땅 사서 부치고.

    땅 근처에 컨테이너를 두고 창고 겸 일하다 막걸리 드실 휴식터처럼 해 두셨더라.

    그 집 일 좀 알바 겸 도우러 가서 거기서 술 좀 마셨는데.

    낮잠 잘 매트리스도 있고, 씻을 수도 시설과 변기도 있었다.

    그걸 농막이라고 하는 모양.

    창고 겸 초소형 방 한 칸 집 느낌?

    “거기서 고기도 굽고, 고구마도 굽고, 감자도 키우고 깻잎 상추도.”

    아버지의 계획도 비슷한 듯.

    농사 도구도 비치하고 개인 아지트처럼 꾸려 놓을 생각이신 듯하다.

    아버지 연령대쯤의 명승철학관을 찾는 아주머니들도 비슷한 상담을 하던데.

    저게 저 나이대 양반들의 로망인가 보다.

    주말농장과 주말농장에 꾸리는 아지트.

    “진짜로 쫓겨나실 준비 하시는구먼. 자연인을 하실 거면 산을 사요.”

    “너부터 유배 보낼 거다 임마.”

    땅 볼 줄은 모르지만 교외에 한옥을 차리고.

    명승철학관 말고 ~도사 ~선생 같은 이름 하나 제대로 지어서.

    철학관 하나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도 같다.

    “사실 저쪽에 저 땅이 좀 더 괜찮은데.”

    “문외한인데 내가 봐도 그런데요. 평평해서 뭐 나중에 파낼 필요 없이 시외 무인텔 같은 거 지어도 될 거 같은데. 주차 공간 빵빵하게 가로로 넓은 건물 지어서.”

    “절 있는 땅은 어떠냐.”

    “스님 없어 망한 절 있어요?”

    “아니 풍수적으로 어떠냐.”

    “양기가 쎄쥬. 여자를 안 접하는 남자들만 모여 사니까. 그래서 보통 음기 많은 데 절들 짓는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슴다.”

    “절이 망하면?”

    “음기가 미친 듯이 셌나 보죠.”

    그런 건 모르고 그냥 음양오행의 일반론에 맞춰서 말했다.

    근거는 딱히 아는 바 없고.

    무협 쓰다 보면 죄다 화산, 숭산, 무당산, 곤륜산, 십만대산에.

    무술 배우는 남자 무리들이 있으니까.

    산은 땅에서 하늘을 찌르듯 솟은 고추니까 그런다고, 호도할 때 쓰는 말이다.

    아미산, 아미파 모르면 이거 반박 안 됨.

    알아도 아미산이 있는 사천은 분지니까. 음기의 형상이라고 박박 우길 여지 있다.

    “거 땅은 좋은데 이상한 사람들이 가까이 산다고 하더라.”

    “이상한 사람들이오?”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하니까. 섬찟한 느낌이다.

    살짝 언덕 하나 건너서 아버지가 보라는 땅을 봤는데.

    논산 은진미륵 베껴 온 듯한 때깔 좋은 하얀 미륵불 석상이 바로 눈에 띈다.

    스마트폰 카메라 몇 배 줌으로 당겨 보니, 미륵 얼굴이 이상하다.

    우스꽝스러운데 뭔가 무섭다.

    그리고 망한 절 같은 옛 한옥 양식의 건물들이 울타리 안에 여럿 있었고 울타리가 매우 높다.

    절이 비개방형인 건 특이하다.

    거 이형탁 선생의 저서에 의하자면 그림 심리 테스트 할 때 울타리 높이 그리는 거, 자기 보호 기제가 있다고 하던데.

    “여긴 이상하긴 한데요. 절에서 오방색은 왜 써.”

    용한 스님들이 사주 봐 주는 경우 많아서.

    스님들이 무슨 신통력 부리는 줄 알지만.

    불가의 가르침과 음양오행설이 그렇게 부합하는 게 있나?

    그냥 스님들이 상념이 깊고 산사에서 수행하다 보니 깨우치는 게 있어 틈틈이 익히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석가의 가르침 대신에 방방 뛰면 거기서부턴 스님이 아니다.

    “네가 뭐 짐작 가는 건 없냐?”

    “무당이랑 스님이 조선 시대에나 같은 취급이었지. 고려 시대였음 겸상 안 하죠. 요새도 직업에 종교인이 찍히나 자영업으로 찍히냐가 다를 텐데.”

    “그러겠네.”

    “사이비들 모여 사는 데 같은데. 탐사 르포 기자가 와야.”

    자가 차량이 없으면 주변에 어디 가기가 힘들어 보일 정도로 외진 언덕 골짜기 안 마을 쪽 절간이고.

    콘크리트 포장된 도로도 없어 보인다.

    스마트폰 줌으로 정탐 중인데 메시지가 뜬다.

    <정탐>

    당신은 지형을 살피고 지형과 이 땅에 사는 이들을 지리, 인문학적으로 추산했습니다. 지형 습득은 땅을 통제하는 데 도움을 주므로 관성운과 인성운 관련 포인트가 오릅니다.

    조만간 공인중개사 전업 혹은 전국 일주를 해야 할지도.

    * * *

    3회차 강의 날이 되었다.

    크게 긴장은 안 하지만, 긴장이 아예 안 된다면 거짓말이리라.

    ‘눈높이에 맞게.’

    ‘나 전공자 아니니까. 전공 지식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라. 보편적인 생각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더해서.’

    ‘신기한 사주의 사례를 뽑아서.’

    ‘무조건 재미가 우선. 때로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흥미를 이끌어서.’

    “후.”

    어떻게 강의를 할 것인지 정신적으로 무장을 하고 들어왔다.

    재미와 대중성이다.

    모든 청중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새하얀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설사 청중들 안에 전공자가 있다 해도 들으면 아는데 ‘웃기게 해석하네.’ 할 정도로.

    웃기게 그리고 재미있게 할 생각으로 대사까지 강의 계획서에 적어왔다.

    강의도 내가 펼치는 한 약 50분의 이야기가 아닌가.

    변사나 음유시인처럼 말로 전달하는 것뿐이다.

    그러다 스스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글을 이렇게 써라 븅딱아.”

    정작 본업에선 이렇게 안 되더라.

    살짝 상기된 채로 연단 앞으로 갔다.

    이번에는 40여 명 정도, 동원된 아줌마 집단 10여 명에 나이 지극히 드신 어르신들이 꽤 많다. 중년 남성도 몇 분 계시고.

    그리고……. 저 페이스 페인팅 같은 눈 화장에 다홍치마.

    의자 밑에 내려놓은 칼까지.

    대놓고 오는구먼. 아주.

    서에서 연락 갈 겁니다.

    살짝 뒤쪽에는 젊은 분들이 몇 보였다.

    일단 눈이 마주치자 손 흔드는 수이.

    그리고 그 옆으로 강단에서 보기엔 우측 상단의 구석진 자리에,

    “음?”

    2인조로 붙어 앉은 여자들이 있었다.

    그녀들의 두 줄 뒤에 홀로 나온 중년 남자가 있었는데.

    저 2인조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강연장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저 여자들의 얼굴을 안다.

    공덕을 주러 여기까지 오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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