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눈물이 마르지 않는 뺨을 거칠게 닦아 냈다. 괴물의 동공 속에 꼴사납게 우는 제 모습이 일그러진 파도처럼 비쳤다.
“내가 원망스럽지, 사혜야.”
“…….”
“나를 죽이고 싶지.”
살의로 뭉친 눈은 사혜의 움직임을 절박하게 쫓고 있었다.
“하면 죽여. 어서.”
나를 죽여 줘.
고통에 발을 걸친 음성.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기 무섭게 날카로운 비늘이 사혜의 옆구리를 찢고 지나갔다.
“왜, 못하겠어?”
스치고 지나간 자리가 피로 흥건했다. 상처 부근을 움켜쥐느라 곡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핑그르, 회전하며 날아간 곡도는 닿지도 못할 풀밭 저편에 꽂혔고, 정신 나간 괴물은 히죽이죽 웃었다.
콰직!
그 직후 곡괭이처럼 찍힌 손 갈퀴를 피해 몸을 굴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꿰뚫리는 것은 땅이 아닌 머리통이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어 목덜미를 낚아챈 손까지 피할 기력은 남아 있질 않았다.
뱀 대가리가 구불구불 손을 뻗으며 접근했다.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나무에 처박은 것도 모자라, 길게 갈라진 혀를 빼어 그녀의 여린 목을 걸터듬으며 옷깃을 벌리려고 야단이었다.
“으, 기, 으……읍!”
사혜의 손톱이 괴물의 손등을 긁었다. 흠집도 나지 않은 단단한 피부는 사혜의 목을 옭아맬 뿐이었다. 눈가에 고인 생리적인 눈물이 괴물의 비늘 돋친 손등에 방울져 흘러내렸다.
잘만 ‘사혜야’ 부르면서 조롱했으면서. 추억을 난도질하고 가슴을 꺼트렸으면서.
지금 그녀를 샅샅이 훑는 눈동자는 이성과 지혜를 갖추지 않았다. 알아듣지 못한다. 알아보지 못한다. 쓰다듬어 주면 뺨을 붉히던 운혁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하, 내가 홍운영의 후손이란 걸. 알고 있었지? 그러면서도, 알면서도 내 곁에 머물렀던 것이지?”
그 물음에 답해 줄 사내의 이성 또한 남아 있지 않음을 알았다.
쉬익, 쉬익.
뱀의 혓바닥은 무언가를 찾듯이 사혜의 목덜미를 더듬었다. 목을 조르는 손아귀 때문에 숨이 막혀 온다. 쪼그라든 허파가 간신히 숨을 뱉고, 눈앞이 서서히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툭― 투둑―
사혜의 옷 속에서 목적한 것을 찾아낸 뱀이 망설임 없이 홍보옥을 끄집어낸 순간이었다.
일순간 목을 쥔 악력이 힘을 잃었다. 괴물은 위협스런 숨을 내뿜으며 떨고 있었다. 그러다 새하얀 동공이 홍보옥과 연결되어 있던 검은 부채에 못 박힐 적에, 거짓말처럼 완전히 힘이 풀려 버렸다.
마지막 기회였다. 남은 힘을 끌어모아 괴물의 복부를 쳐 냈다.
괴물이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틈을 타, 오뚝 꽂혀 있는 곡도를 뽑아 들고 사혜는 미끄러지듯 뱀의 몸통을 따라 활강했다. 그런 와중에도 뱀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미동 없이 부채의 금판만 응시하고 있었으니. 지금이 두 번 손에 넣을 수 없는 최후의 기회임은 자명했다.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원력을 끌어 곡도에 덧바른 뒤, 요귀의 덜미에 차갑게 반짝이는 푸른 비늘 두 개를 세차게 내리 갈랐다.
푸르고 붉은 기운이 섞여 든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요기와 신력이 맞붙어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식은땀은 둘째치고 괴로워하는 기운혁을 보기 힘들었다. 그 참담함이 외려 신력에 가열한 불을 붙이고 말았다. 한편이 삐끗하자마자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크게 몸을 뒤틀었다.
쩌적, 쩌저적!
뒤틀린 몸통에 걸친 사혜의 발이 삐끗했다. 추락하는 주인을 나비 영물들이 허겁지겁 달려들어 받쳐 주었다. 풀밭에 깃털처럼 안착한 사혜는 뱀의 몸통이 아흔아홉 조각으로 갈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죽었나? 아니, 고작 이따위 눈에 보이는 허점을 내줌으로써 소멸하리라 생각지도 않았다.
향긋한 봄바람이 멎고, 하늘이 흐려지며, 옅은 안개가 눈물처럼 차올랐다. 그 안개 속을 헤치며 나아간 사혜는 뱀의 허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죽은 듯 누워 있는 기운혁을 보았다.
영롱한 벽안은 환시에서 보았던 것처럼 오롯이 그녀를 직시하고 있었다. 그의 목덜미에서 검붉은 피가 범람하는 강처럼 흘러내렸다.
숙주가 한순간 요귀의 의지를 꺾어 낸 결과였다. 하여 잠시간 기운혁은 모습을 되찾았으나 꿈틀거리는 손발톱은 언제든 원래의 형체로 되돌아 날 가능성을 남겨 두고 있었다.
“운혁.”
사혜는 비늘과 한데 엉켜 썩어 가는 그의 팔뚝을 붙잡았다.
“바깥에 동기들이 있습니다. 무녀들과 퇴마사들, 오십여 명이 있으니 그들의 원력을 모두 모으면 반드시 도령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너는 여전하구나.”
말에 녹은 다정함에 눈시울이 젖었다. 싸늘하게 벼려진 목소리도, 원수진 듯 꿰뚫는 잔혹한 눈도 아닌 그녀를 아껴 주던 사내의 눈빛이었다.
“언제든 나를 구하려는 네가 신기해서…….”
운혁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짧게 숨을 들이켰다. 하나 힘에 부친 듯 곧바로 뱉어져 나오는 말이 없었다. 그는 물기로 눅눅한 사혜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해서 네 곁을 떠나지 못한 모양이야. 100년 전에도, 지금도.”
진실로 전하고픈 말은 그 역시 100년 전이나 지금에나 홍사혜를, 홍운영을 연모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깨달음이 늦어 제 손으로 잃어야 했고, 두 번째에는 너무 일찍 깨달아 사혜를 괴롭게 했다.
속고 속이고, 종래에 저를 원망할 것을 알면서도 떠나지 않았다. 눈물을 주고 아픔을 얹었다. 홍사혜의 손에 죽길 바랐다면 천적으로 만나 괴롭힐 수도 있었는데 그러질 못하였으니 어리석고 이기적인 연모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 봤으니 알지 않아. 나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어.”
그러나 요귀가 깨어난 지금은 고백할 수 없는 연정으로 남게 되었다. 내뱉는 말까지 틈 없이 감시하고 있을 테니.
사람을 가지고 놀기 좋아하는 뱀 괴물이 엿듣게 된다면 그의 정신을 반쯤 살려 둔 채로 가장 잔인하게 사혜를 가지고 놀다 절단 내어 죽일 것이다.
땅에 엎어져 어깨를 들썩이는 사혜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그를 붙잡고 말을 잇지 못하는 사혜에게 고요한 목소리가 다다랐다.
“사혜야, 무얼 해.”
함께 보지 못할 미래에 대한 미련을 떨쳐 내려 애썼다. 미련으로 죽은 홍운영은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원귀로 남았고, 천도를 돕는 이가 없다면 외롭게 구천을 떠돌다가 한 맺힌 가슴을 안고 영영 소멸할 것이었다.
만일 그때와 같은 일이 생긴다면, 이번에 원귀가 되어야 할 것은 그여야만 했다. 미련의 칼에 난도질당할 사람은 홍사혜가 아니라 자신이 되어야 했다.
“어서 나를 죽여. 그것만이 나를 구원하는 길이니.”
누구든 자신을 죽여 주기를 바라왔다. 감정을 익혀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이고 싶다는 욕심을, 괴물에게 현혹되어 그릇된 선택을 내린 과거를 후회했다. 홍운영을 죽여 후회했고, 함께 사라지기를 바랐는데 또다시 깨어난 지난날을 후회했다.
그러다가 홍운영의 후생인 사혜를 만났다. 연모의 시작은 100년 전이었으나 메말랐던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무릿매골에서 사혜를 안고 산길을 내려가던 그날이 결정적이었다. 꽃피운 연정의 싹은 용수보에서 재회했을 때 한껏 부풀어 봉오리를 맺었으며 날이 갈수록 향이 짙어졌다.
결국 끝은 파국이라는 걸 알면서도 제멋대로 꽃이 만개하도록 두었으니 그 벌을 지금에 이르러 받는 것일 터다.
“봉하지 말고 가루 한 점 남기지 말고 완전히 멸해, 사혜야.”
사혜는 괴물과 기운혁, 두 몫의 영혼을 모두 보았다. 본질과 껍데기를, 영혼을 움직이는 실체를, 거짓과 참을 알게 되었다.
사혜는 요귀를 멸할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손에 쥔 곡도를 치켜들어 그대로 그의 심장부를 찌르면 끝날 일이었다. 하여 그녀는 역도의 죄를 벗고 자유를 얻어 살아가겠지.
“홍사혜.”
그러나 사혜는 손가락 끝으로 곡도를 쥐다가 그것도 떨구고 주저앉아 훌쩍이고 있었다. 망설이는 손은 세월이 가도록 결단을 내리지 못할 모양새라 운혁은 그녀를 돕고자 입을 뗐다.
“전생의 과오를 반복하길 바라? 이대로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그것이 내 몸을 차지하고 네 목을 조를지도 모르는데.”
“내가, 당신을 구할 방도는 정녕…….”
사혜는 말 대신 울음을 먹었다. 운혁은 축축한 사혜의 뺨을 쓸었다. 그의 몸엔 아까의 일격에 의해 목덜미뿐만 아니라 복부에도 피를 뱉는 상흔이 쩍 벌어져 있었다. 그래도 죽지 않는다. 괴물이 목숨을 붙여 놓는 한 안식을 찾지 못할 육신인 것이다.
흐르는 피로 녹색의 잔디가 붉게 젖어 갔다. 지고의 귀인도 뿌리가 썩어 없어진 영혼을 성불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운혁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서글픈 침묵이 그 증거였다.
사혜는 소매로 눈물을 쓸어 닦았다. 운혁의 입술을 물고 신기를 불어넣어 영혼이라도 구제해 보려 했으나 곧 한계를 깨닫고 떨어졌다. 그러니 남은 것은 애달픈 마음을 담은 접문이었다.
맞물린 입술의 사잇길로 장단이 제각각인 숨이 얽혔다. 실개천 같은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입술에 고여 달지 못한 맛이 났다. 그의 몸을 끊임없이 갉아 먹는 핏물처럼 쓰디쓴 맛이 혀끝에 배였다.
그 새에 비늘이 하나 더 돋아났다. 운혁이 사혜를 밀쳐 내려 하였다. 요지부동인 탓에 소용이 없게 되어 버렸지만.
“계속 이러고 있으려고?”
“그래요, 그럼.”
“그만 나를 잊어.”
“암만 그런 소릴 해 보았자 소용없습니다. 내 어미처럼 베개나 끌어안고 살아야지요. 이게 내 잘난 서방이오, 성은 기씨고 함자는 운혁인데 질투가 많아서 내가 항상 끼고 살아야 한다고. 이런 말 듣고 싶으셨던 거지요?”
미친 소리에도 운혁은 웃었다. 작은 들썩거림에도 한줄기 선혈이 턱을 타고 주륵 흘러넘치는 연약한 몸이었다. 그녀가 낸 상처였다. 결국 이리될 걸 알았으면서도 가슴에 피멍이 맺혔다.
“네가 나를 원망하는 눈으로 봐 주기를 바랐어.”
먹구름이 들어찬 하늘에선 어느덧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상청했던 하늘과 초록의 나뭇잎들이 회색의 눈비에 씻겨나간다.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들은 갈빛으로 물들어 처량하게 바닥을 뒹굴었다.
“이렇게 울면서 놓지 못할 것이 아니라 살심만 품고 달려들기를 바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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