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84화 (284/327)

284. 독살.

“여진 사람들은 보통 양을 잡아먹고 뼈의 골수를 먹을 때도 불에 구워 먹거나 물에 넣어 국을 끓여 먹을 것입니다."

"헛! 그러고 보니 이건 저 불피우는 상자에서 나온 것이군."

“맞습니다. 저 오븐 난로라는 곳에서 뼈를 구워 먹으면 이렇게 골수의 맛이 응축되어 그 풍미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저 오븐 난로만 있다면 이런 골수 맛을 낼 수 있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이 오븐 난로만 있다면 허리뼈와 넓적다리뼈를 구워 지금처럼 먹으실 수 있을 겁니다. 가장 맛있는 건 소의 골수입니다."

원길은 여진족장들에게 조선에서 만들어진 오븐 난로를 홍보했고, 연통을 만들어 천막 중앙에 두면 모닥불을 피워 올리는 것보다 더 따뜻하고 불을 이용하기 쉽다고 알려주었다.

“이것도 사고 싶군. 헌데 이것은 통짜 쇠로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가 살 수 있나?"

"물론입니다. 쇠로 만들어져 있으나, 무기를 만드는 강철이 아니라, 무른 연철로 만든 물건이기에 북방으로 판매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다행이군. 사겠네.”

“하하하. 이런 물건을 팔아 제가 수익을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수익으로 농사꾼들에게 식량을 주는 것이니, 모두가 이로운 일입니다. 참, 카레 가루와 안남쌀도 사실 겁니까?"

"물론이지. 파에야인가 하는 이걸 나도 해 먹어야겠어."

부족장들은 안남미가 마음에 들었다.

묘하게 퍼석이는 듯하면서도 고기를 넣어 먹기에 편한 쌀이었기 때문이었다.

원길은 방목지 중재와 더불어 이런 물건들을 팔았고, 판매 대금으로는 가죽과 말, 치즈로 받았다.

이 물건들은 다시 조선이나 중국으로 옮겨져 수익을 만들어 주었다.

원길의 요리 천막에서 먹어본 천축의 카레 맛과 풍미가 가득한 골수 요리에 대한 소문이 여진족들 사이에서 점차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예 카레 빠에야를 먹어 보기 위해 일부러 원길에게 방문하는 부족장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런 인맥들은 원길을 자연스레 여진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더구나 명나라와 조선 양쪽에서 벼슬을 받은 귀인이라는 신분이 더해지자 여진인들이 먼저 나서서 장로와 같은 대우를 해주며 원길을 따르기 시작했다.

원길은 원길대로 부족장들에게 요리를 해주며 중재해주는 일을 재미있어 했는데, 이와 더불어 조선의 유민들을 데려다 중재지에 정착시키는 것에도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주해 온 조선인의 숫자가 천 명이 넘어가자 상선을 통해 들어오는 곡식이 있다 해도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북방 개척 유민을 위해 공짜로 나오는 지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의주 상평창(常平倉)으로 움직였다.

“북방 개척을 위해 유민 지원책으로 나오는 조와 수수가 있다던데? 어느 정도 있나?"

"네? 목사 나리 그것이..."

"흰소리 말고 장부나 가져와 보게."

상평창의 아전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의주 목사 전원길의 말에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다.

이미 유민들을 위한 곡식을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이 상평창이라는 기관은 풍년에 곡물이 흔하면 값을 올려 사들이고, 흉년에 곡물이 귀하면 값을 내려 팔아 물가를 조절하는 기관이었는데, 그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호조의 구황청(救荒廳)의 역할도 같이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뭐 훗날 구황청의 일이 더 많아진 이후 진율청(廳)이 세워지게 되지만 그때까지는

상평창에서 구황청의 일까지도 하는 것이었다.

“장부에는 조와 수수가 130섬이 있다고 나와 있는데, 어디에 있나?"

“저...그것이 요근래 곡식값이 올라 처분을 하였습니다.”

“허허. 상평창의 일이 진대의 염산(적렴조산의 줄인 말로 풍년이 들어 쌀값이 내리면 관에서 비싼 값으로 사들였다가 흉년이 들어 쌀값이 비쌀 때 관에서 싸게 파던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북방 개척 유민을 위해 쓰일 곡식까지 그렇게 운용해 버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송구하옵니다. 근래 여진인들이 곡식을 많이 즐겨 먹으며 사가는 이들이 많아 어떻게든 이익을 보고자 처분을 하였습니다.”

“그 수익이 장부에 제대로 기록되어 있으니 뭐라고는 하지 않겠네. 하지만, 압록강을 넘어가 개척을 하는 이들을 도울 곡물이 없는데, 이건 어찌할 것인가?"

“저 그것이 조정에서는 북방의 험지를 개척하여 농토를 늘릴 목적으로 유민들을 모으고 있사오나, 사실은 그 목적보다는 북방에 가서 인간 방패가 되라는 목적입니다.”

"인간방패?"

“네. 험지라도 땅을 주면 농민들은 땅을 지키기 위해 야인들과 싸울 것이니 그렇게 북방에 조선 병사를 두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더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이 오히려 지원을 적게 해 주면 더 열심히 일을 할 것이니 북방 유민들에게 그리 큰 지원을 하지 말라는 내부 지침이 있었습니다.”

원길은 아전들의 이야기에 어이가 없었다.

수확할 동안 먹고살 게 없는 형편인데, 일만 죽어라 한다고 되겠는가.

못해도 2년은 지원을 해줘야지 농지가 안정되어 먹고살 소작이 나오는 것인데, 그걸 지원해주지 않는다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목숨을 내놓고, 압록강을 건너 여진인들이 사는 곳으로 나서는 일인데, 든든한 지원은 못 해줄망정 지원을 해주는 척만 한다니.

왜 조선 초부터 이때까지 북방을 개척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한양 도성 입구에서 보았던 거지들이 생각났다.

북방에 개척을 갔다가 실패해서 온 가족이 거지꼴로 돌아와 구걸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은 원길도 직접 보아서 알고 있었다.

춘봉 상단에서 닭과 돼지를 키우고 있는 함덕 일가기 바로 그 일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조정의 일 처리가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아무런 수확 없이 상평창을 나서서 돌아가는데, 북방 거주민을 위한 것이 제대로 된 게 없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함경도의 호족(豪族)이었던 이시애가 난을 일으키고 했던 게 갑자기 이해가 될 정도였다.

타지인인 자신이 이럴 진데, 북방 출신들은 오죽하랴.

이런 문제의 개선을 위해 장계를 올릴까 생각이 들었지만, 장계를 올린다고 이 문제가 해결이 될까 싶었다.

오히려 불평불만이 많다고 벼슬이나 잘리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기껏 여진인들과 조선인들이 섞여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았음에도 여력이 없어서 더 이상 추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속이 쓰렸다.

그래서 중국 명나라에서라도 지원을 받아볼 요량이었는데, 그때 원종이 보낸 편지가 온 것이었다.

중국의 정계가 하 수상하니 중국 쪽으로 가게 되면 화를 당할 수 있다는 편지였다.

"조선이고 중국이고 나를 도울 곳이 정녕 없구나."

원길은 언행이 교양스럽지 못하고, 야만적으로 노는 여진인들이 이럴 때는 더 좋은 것 같았다.

물론, 여진인들도 싸움을 할 때는 적을 속이고, 뒤통수를 치고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마음이 상한 원길은 아예 여진인들이 사는 북방으로 더 들어가 버렸다.

그러다 보니 중국 정계의 변화 때문에 중국에 가지 말라는 원종의 충고가 얼떨결에 지켜지게 된 것이었다.

***

만귀비는 자신의 배로 낳은 아들 주목심이 무사히 돌을 넘기고 건강하자 욕심이 커지고 있었다.

성화제와의 사이에서 낳았던 첫아들이 새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고, 이후 차남인 주우극이 다른 귀비에게 태어나자 그의 모친과 주우극을 독살했었다.

그 이후로도 다른 후궁들이 임신을 하지 못하도록 성화제의 성은을 입은 궁녀들에게 애 떨어지는 약을 먹이곤 했었다.

허나, 만귀비도 나이가 들고,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 같자, 환관이 숨어서 키운 주우탱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 아이를 죽이지 않았다.

죽일 마음만 있었다면 태후의 아래에서 자라는 주우탱이라고 해도 쉽게 죽였을 터였다.

그래서, 태자로 주우탱이 책봉될 때도 소 닭 보듯이 그냥 지켜봤었다.

하지만, 50을 넘은 자신에게 태기가 있고, 주목심이 태어나게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태후의 밑에서 크고 있는 주우탱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태자로 책봉이 된 이후로는 외척이 없던 주우탱 주위로 권세가들이 들러붙어 세력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태자의 책봉을 말렸어야 했는데, 이리될 줄 어찌 알았을까."

자신이 낳은 주목심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든 주우탱을 처리해야 했다.

“조선에서 온 숙수들의 실력은 어떻더냐?"

“귀비께서 벼슬을 내리신 전씨 형제들에 비할 바는 못되옵니다. 하지만, 전씨 형제들이 조선에서 만들어 알린 다른 요리들을 다 할 줄 아는 자들이옵니다."

“오, 그렇다면 중국에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요리도 있는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좋다. 그렇다면, 연회를 잡도록 하라. 그리고, 그것을 쓰도록 하라. 방법은 네게 맡기겠다."

"넵. 충심을 다하겠나이다."

그렇게, 만귀비가 주최한 연회가 열렸는데, 주우탱과 그 세력들도 참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왕자인 주목심의 돌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리에 주우탱과 그 세력이 참여하지 않으면, 만귀비의 체면을 구긴 것이 되므로, 독살의 위험을 알면서도 참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조선에서 유행하는 꿀호떡이라고 하옵니다."

기름이 흥건한 철판에서 노랗게 익어가며 단내를 풍겨대는 호떡은 이제 7살이 된 주우탱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만귀비가 비슷한 또래의 내관들을 줄을 세워가며 호떡을 먹게 했기에 주우탱도 먹고 싶어 했다.

"나도 저 호떡을 먹고 싶어요."

“태자전하. 호떡에 쓰인 호(胡)자는 오랑캐를 말하옵니다. 즉, 오랑캐들이나 먹던 떡입니다. 태자 전하가 먹기에는 그 품위가 떨어지옵니다."

“맞습니다. 보십시오. 설탕과 꿀을 저리 흘려가면서 손으로 먹는 것은 천한 이들의 행동입니다."

주우탱에게는 어린 내관들이 설탕을 흘려가며 먹는 모습이 천하게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먹음직스레 보였다.

"하. 하지만, 먹고 싶다고! 나만 뭐든 다 못 먹게 해. 흐어엉~"

평소 독 때문에 음식을 가려 먹게 했는데, 그런 것들이 쌓인 상태에서 호떡마저 못 먹게 하자 주우탱의 울음보가 터져 버린 것이었다.

시장 바닥에서 그냥 어린아이 하나가 울어도 시선이 집중되는데, 태자가 울며 보채고 있으니 연회의 모든 이들이 주우탱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화제 또한 그런 주우탱의 모습을 보고는 호떡이라는 것을 먹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성화제 주견심(朱見深)도 바보는 아니었던지라 일부러 다섯 개의 호떡을 가져오게 하여 주우탱에게 고르게 했다.

그리고 남은 네 개는 성화제 자신과 다른 황족들에게 나눠 먹게 했다.

“견과류를 뿌려 드리오리까?"

호떡을 가져온 내시의 말에 주우탱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내시는 견과류를 듬뿍 뿌려 주었다.

“나도 뿌려 주게나."

내시는 다른 황족에게도 견과류를 뿌려 주곤 물러났는데, 이제 호떡을 찾는 이들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다들 달콤한 설탕과 꿀의 맛을 즐기며 호떡을 먹었는데, 견과류를 듬뿍 뿌려 먹었던 황족이 피를 토하며 나뒹굴기 시작했다.

"폐하께선 괜찮으신지요?"

“나는 괜찮다. 분명 같이 호떡을 먹었거늘."

"겨, 견과류입니다! 견과류를 뿌려 먹은 게 다르옵니다!"

비장군 조충현이 그 차이점을 알고 니자 자신의 세력이 지지하고 있는 주우탱이 걱정되었다.

분명 주우탱도 견과류를 듬뿍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자의 자리에서 호떡을 먹고 있던 주우탱은 멀쩡했다.

“저걸 뿌려 달라고 했는데, 씹어보니깐 안 씹혀서 뱉었어.”

그렇게 이야기하며 활짝 웃는 주우탱은 앞니가 없었다.

유치가 빠지며 영구치가 날 시기였기에 앞니가 없어서 독이 들어있는 견과류를 씹지 못해 살아남은 것이었다.

“폐하. 독을 쓴 자를 찾아 일벌백계(一罰百戒)하여야 하옵니다."

태자인 주우탱의 세력은 서로 나서서 독을 쓴 자가 누구인지를 찾아내어 죄를 물어야 한다고 난리였다.

다들 누가 독을 쓴 것인지는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왕자를 낳기도 했고, 남편인 성화제를 쥐락펴락하는 만귀비의 이름을 대놓고 입에 올릴 이는 없었다.

그저 성화제의 입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성화제의 입이 열렸다.

"죽은 사촌에게는 안타깝지만, 그의 운명이겠지. 내시를 찾아내어 목을 치고 끝을 내라.”

만귀비의 눈치를 보던 성화제의 말에 대신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

“오늘은 운 좋게 태자 전하께서 살아남으셨지만, 다음은 어찌 될지 모르오."

"하지만, 방법이 없지 않소이까. 어느 누가 만귀비를 처리할 수 있겠소?"

다들 이대로 있으면 만귀비에게 죽을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만귀비에게 대항해야 할지 방법이 없었다.

사실상 성화제와 싸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북경에 있으면 언젠가는 우리 밥에도 독이 들어가 있을지 모르오. 우선은 북경을 벗어납시다."

“우리만 벗어난다고 되겠소? 태자전하를 북경에서 내보낼 방법이 있어야 할 거 아니오?"

"옳지! 남경으로 태자 전하를 모셔갈 방법이 있소이다!"

*

[작가의 말]

주목심은 창작 인물입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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