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55화 (255/327)

< 255. 얄리얄리 얄라셩. >

“오키나와를 벗어나 여러 나라를 다닌 케하루의 반응을 보면 이 사탕수수의 재배조건이 아주 좋은 조건인 것 같은데, 왜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겐가?”

배일욱은 오키나와의 여러 섬 중에서도 자신들이 사는 라부섬은 작은 축에 들었고, 그 라부섬에서도 작은 일부분일 뿐인 자신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야 당연히 한민족이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이 이역만리 타향에서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게 되었으니 기꺼울 수 밖에요.”

“한민족이라...”

“과거에는 원나라 때문에 관계가 틀어졌지만, 그 원나라는 이제 없고, 고려도 이제 없습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는 한민족이기에 당연히 이런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원종은 한민족이라는 이 단어를 200년이나 떨어져 산 삼별초의 후예들이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사탕수수를 이 오키나와에서 재배하고 설탕을 사 가는 것에서 이득을 보려 했다면, 오키나와의 왕인 상(尙)왕과 거래를 하는 게 더 이득일 겁니다. 하지만, 이곳에 같은 민족이 있는데, 그렇게 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배일욱이나 김수는 물론이고, 초의 후예들은 참으로 알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조상이 고려에서 왔다곤 하지만, 자신들은 라부섬에서 나고 자랐기에 고려에서 넘어온 조상과 달리 스스로 오키나와 사람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헌데, 조선에서 왔다는 이들은 마치 오래전 헤어졌던 친척을 보는 듯이 자신들을 대우하고 있으니 이게 쉽게 이해가 되기는 힘들었다.

더구나, 큰 이득이 되는 일을 그냥 하게 해준다고 하니, 이런 호의를 받아도 되나 싶었다.

“그럼, 우리는 그 한민족이라는 이유로 뭘 해주면 되는 건가? 분명 이렇게 해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그저 사탕수수를 키우고, 설탕을 만들어 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한민족이라고 뭘 해줘야 하고, 받아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마음속에 한겨레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민족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일 겁니다.”

“마음속으로 한겨레라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니. 허허. 그저 날로 먹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배가야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야. 나중에 마음속에서 뭔가를 해줘야겠다는 것이 생각나면 해줘야 한다는 그거잖아. 자발적인 그런 마음 있잖아.”

“맞습니다. 제가 사탕수수와 설탕 사업을 한민족이라는 이유로 베풀 듯이 훗날 우리 겨레를 위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해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흠. 그렇군. 알겠네. 한민족이라는 말이나 겨레나 다 마음속 정(情)이라는 거구만. 마음속에서 서로를 위하는 것이 있으면 된다는 말 이해했네.”

배일욱은 아무런 손해 없이 이득을 본다는 점이 왠지 불안했지만, 훗날 진짜 자신의 마음이 내킬 때 한민족을 위해 베풀 수 있으면 된다는 내용으로 이해했다.

“좋네. 우리 두 마을이 남는 땅과 비어 있는 섬에 사탕수수를 심도록 하겠네.”

“자자 술을 더 가져와라! 오늘 다들 취해 보자꾸나!”

김수의 말에 주민들이 마을에 있는 술이란 술은 다 가지고 왔고, 한민족답게 술을 권하며 여러 잔을 마셨다.

권하는 술을 계속 받아 마신 원종은 술에 취해 일찌감치 배로 돌아갔다.

***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울어라 울어라 새여, 자고 일어나 울어라 새여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우는구나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술에 취한 마을 사람들이 고려가요인 청산별곡의 노래를 불렀다.

화난(禍難)을 피해 청산에 숨어 살겠다는 가사가 여몽 연합군을 피해 오키나와로 도망친 이들의 삶을 나타내는 것 같아 참으로 어울리는 노래였다.

얼핏 낙천적인 노래로 들리기도 하지만, 시름 많은 화자가 웃지 못하고 자고 일어나 운다는 구절에서, 청산에도 위안은 없다는 비애가 가슴을 희미하게 적셔왔다.

“삼식 행수! 조선에서 유행하는 노래를 하나 해주시오.”

삼식이는 저잣거리에서 유행하는 남녀상열지사 노래를 질펀하게 부르려고 했는데, 마을의 아낙들이 아직 술자리에 남아 있어 그런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여인네들이 있어도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뭐가 있는지 생각하다 아주 예전 원종 도련님이 알려주었던 노래가 생각났다.

“....우리 함께한 날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지.

어느 날 얄리는 슬픈 눈으로 날갯짓하더니 그렇게 하늘로 날아갔네.

안녕~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안녕~ 얄리~...”

삼식이는 원종이 장터에서 돌아오며 박복이에게 알려주었던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에도 ‘얄리’라는 말이 있었기에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얄리얄리 얄랑셩이란 시구와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흐음. 조선에선 이런 슬픈 노래가 유행을 하는구랴. 얄리는 여인이오?”

“그게, 이 얄리는 사람을 지칭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유행하는 노래가 아니라 몇 해 전 원종 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노래입니다. 아마, 이 노래를 아는 이들은 우리들밖에 없을 겁니다.”

“얄리가 사람이 아니라고? 그리고 술에 취해 돌아간 상단주가 알려준 노래라고?”

배일욱은 노래의 시구를 곰곰이 씹듯이 생각해보았다.

“그렇구나. 이 얄리란 것은 장부의 뜻이나 대의를 뜻하는 것이었구만.”

“오! 배가의 판단이 맞겠어. 슬프게도 하늘로 날아갔다고 했으니, 쉬이 이룰 수 없는 대의가 하늘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아픔 없이 장부의 대의를 이루기는 힘든 법이지.”

삼식이는 원종이 알려준 노래가 그런 뜻의 노래라는 것을 몰랐었다.

박복이가 도련님과 장터에서 다녀오며 병아리를 보고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그냥 병아리에 대한 노래라고 쉽게 생각했었다.

헌데, 두 존장이 하는 이야길 듣고 보니 이 노래가 단순한 병아리를 위한 노래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그 어느 양반 가문의 자제가 병아리를 위해 시구를 만든다는 말인가. 아차차! 그래. 그거였구나.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삼식이는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무릎을 치는 걸 보니, 이 얄리라는 말의 대의나 뜻을 알아낸 거요?”

“그렇소이다. 헌데, 그것이...흠. 두 분께만 이야길 해드리겠소이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다 보니. 두 분은 가까이 오십시오.”

배일욱과 김수는 공개적으로 얄리란 뜻을 말하지 못하고 둘에게만 알려준다고 하니 더 궁금해져서 삼식이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이... 두 분은 꼭 비밀을 지켜주셔야 하외다.”

“허허허. 한 마을을 책임지는 존장의 입은 그리 가볍지 않네.”

약간 더 촐랑새 같은 김수가 자신을 믿으라며 가슴을 쳤다.

“실은...저희 상단주님의 성씨가 전씨가 아니라 왕씨요.”

“와...왕씨?”

“두 분은 여기 사람이라 잘 모르겠지만, 고려가 조선이 되며 왕씨 왕족들은 씨 몰살을 당했소이다. 그래서 성씨를 바꿔 사는 양반네들이 좀 있수다.”

삼식이는 발해방 사람들과 원종이 이야길 하며 본래 성씨가 왕씨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이 얄리가 바로 폐망한 고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두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삼식이는 이 두 사람이 조선에서 이역만리 떨어져 사는 사람이었고, 설령 이 사실이 알려진다고 해도 조선까지 말이 퍼질 리는 없다고 여겼기에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물론, 뱀술에 여러 술을 섞어 마셨기에 술김에 속으로만 알고 있던 말을 하고 싶어졌기도 했다.

“허허. 그렇다면, 이 얄리란 것은 사람이 아니라 나라가 맞겠구만.”

“배가야 그럼. 얄리가 망한 고려라는 것이냐?”

“쉿. 목소리를 낮춰. 그리고 이렇게 보니.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되는구만. 상단주가 왕씨라고 하니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되었어.”

배일욱의 말에 김수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상단주가 우리에게 어떻게든 잘해주려고 한 것을 이제야 이해했네. 한민족이라는 것을 이야기했을 때, 마음이 가는 대로 도와주고 하는 것을 이야기했는데, 상단주는 과거 조상의 미안함을 우리에게 사탕수수와 설탕으로 베푼 것이었어.”

배일욱의 말에 삼식이도 알 것 같았다.

선대 왕이었던 왕씨 조상들이 삼별초를 쫓아내었던 일을 설탕의 단맛으로 다독여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자네 주인에게 이야길 하게나. 과거의 일은 잊고, 한민족으로서 서로를 돕고자 하는 마음만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믿어 달라고 전해주게.”

“네. 저도 믿겠습니다. 어찌 보면 200년이 넘는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다가올 200년을 잘 부탁드립니다요.”

“하하하. 그렇게까지 오래 살기는 힘들 터인데 힘써야겠구만.”

***

“단주님 제가 어제 두 존장분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의를 다졌습니다. 두 분께서는 우리 일에 발 벗고 나서주기로 했습니다.”

“오! 그래? 역시 일의 진행은 술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길 해야 빨라지는 것이지. 삼식이 네가 수고했구나.”

“하하하. 소신은 그저 열심히 할 뿐입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웃기고 있네. 그럼, 사로잡은 왜구들 이야기도 두 분께 했느냐?”

“네. 남자는 20명도 안 되지만, 노인과 여자, 아이들이 150명이나 있다고 하자 이 라부섬에서 그 인력을 쓰기 아깝다고 오키나와 북부에 사탕수수농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키나와 북부? 그럼, 같이 오키나와로 가자꾸나. 오키나와의 상(尙)왕에게 섬의 북쪽을 쓸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야겠지.”

사로잡은 왜구들을 넘기는 일과, 마을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오키나와섬으로 옮기기로 했기에 라부섬에 하루를 더 머물렀고, 이튿날 오키나와로 출발했다.

***

멀리서 왕궁인 슈리성(首里城)의 붉은 지붕이 보였는데, 현대에 있었을 때 보았던 재건된 성이 아니라 오리지널을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일본 방식이 아닌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의 영향을 받은 지붕 양식에 이질감도 느껴지긴 했으나, 지금 왕의 성씨인 상씨 자체도 중국 명나라에서 받아 온 것이었기에 성의 양식이 중국풍이라는 게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중앙의 대로는 우리가 이용하지 못합니다. 옆길로 가셔야 합니다.”

오키나와 상인인 케하루와 사츠마 번의 히로카가 안내를 했는데, 정문을 지나 정전까지 이어지는 중앙대로는 왕과 중국 사신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아니, 우리 조선은? 이라며 버럭 할 뻔했지만, 정식으로 온 사신도 아니었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전에 다다르자 당나라의 복식을 입은 이들이 나타났는데, 케하루는 우릴 세워서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이야길 했다.

“무슨 선택인가?”

“그것이. 어디에 줄을 댈 것인지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상(尙)왕 이외에 또 다른 왕이 있는 겐가?”

지금의 왕인 상원(尙圓)이라는 왕 말고 다른 왕이 있는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유구의 왕조가 한 번 바뀌는 시기가 지금쯤이었다.

제1 상(尙)씨 왕조의 대가 끊어져 대신 중 한 명을 국왕으로 추대하여 상(尙)씨 성을 이어가게 했는데, 그 제2 상씨 왕조의 1대 왕이 지금의 왕인 상원(尙圓)이었다.

“전하는 한 분이시지만, 후계 구도는 두 분이 계십니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 줄을 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전하의 동생이신 상선위(尙宣威)님과 전하의 아들이신 상진(尙眞)님 중에서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동생과 아들? 그냥 줄을 대지 않고, 상왕과 만나서 담판을 짓는 것은 안 되는가?”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원종은 어느 줄에 서야 할지 판단을 위해 두 사람의 나이를 물었다.

“선위님은 지천명(50살)을 넘으셨고, 상진님은 이제 9살이십니다.”

“아홉 살? 그렇다면 그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겠군. 실세는 누군가?”

“외할아버지인 아지(按司 토호, 족장등의 명칭) 기토마루 님이십니다.”

후계자로 왕의 동생과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은 어려 외척이 세력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케하루가 보기에는 아니 상인으로 보기에는 어떤 줄에 서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사탕수수를 경작하기에 좋은 땅은 섬의 북쪽입니다. 남쪽은 이미 사람들이 들어선 곳이 많아 자리가 부족할 겁니다. 해서 북쪽의 아지이신 기토마루 님의 줄에 서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그쪽으로 줄을 서지.”

그렇게 아들인 상진 측 사람들과 인사를 했고, 정전으로 들어가 예물을 올리고 인사를 하는데, 상왕은 뭔가 불만이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선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산남(山南)의 후예들을 보내 달라고 사신을 보냈었는데, 왜 답이 없는 건가? 오늘 온 것은 그 확답을 해주기 위한 것인가?”

상왕의 말에 원종은 이건 또 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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