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 왜구. (1) >
원종이 흰쌀밥 위에 생선 살을 발라 올려주었지만, 다들 처음 보는 형태의 밥 모양이라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랐다.
유일하게 삼식이가 젓가락으로 밥과 생선을 같이 집어 한입에 먹었는데, 그걸 보고 다른 이들도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시작했다.
사실 이 스시를 먹는 방법으로도 요리 업계와 미식가, 요리연구가들의 논쟁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 소비자들도 서로 자기 말이 맞니 틀리니 말이 많았다.
염장 형태인 나레즈시(熱鮨, なれずし)에서 변형되어 식초를 넣어 손으로 즉석에서 만드는 니기리즈시(握り寿司)가 되었을 때 일본 사람들은 당연하게 손으로 스시를 집어 먹었다.
이때의 스시란 음식은 지금처럼 고급 이미지의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그냥 손에 들고 먹는 주먹밥에 생선과 해산물이 올려진 스시는 서민들이 정식 식사를 대신해서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주먹밥과 같은 음식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스시도 주먹밥처럼 손으로 집어 먹는 것이 당연한 음식이었고, 격식 같은 것은 없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1970~80년대 일본이 자신들의 문화를 알릴 때 기모노와 닌자 그리고 스시를 앞세웠고, 그런 문화에 격식을 만들어 넣기 시작했다.
서양에 스시가 보급이 될 때도 당연히 손으로 집어 먹게 했는데, 서양인들이 비위생적이라고 하자, 젓가락을 쓰게 해주면서 타협을 했다.
회전 스시 같은 저가의 스시는 젓가락으로 먹어도 되지만, 주방 앞 카운터 석에 앉아 바로 쥐여주는 스시는 손으로 먹어야 된다는 이상한 격식을 내세운 것이었다.
물론, 젓가락을 사용해서 스시를 먹으면 위에 올려진 생선이 분리되어 흘리는 경우도 있었기에 손으로 먹는 것이 맞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주방 앞 카운터 석에서 바로 쥐여주는 스시를 젓가락으로 먹는다고 예의 없고 격식을 모른다고 식사법을 배우라고 강조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었다.
훗날 그런 논쟁으로 시끄러울 일 없게 처음부터 젓가락을 쓰는 방식으로 스시 먹는 법을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물론, 편하게 손으로 먹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지금 시대의 위생 청결을 솔직하게 믿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비누가 있고 언제든지 손을 씻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기존의 스시를 먹는 방법처럼 손을 써서 먹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비누가 없다면 손을 물로 씻어도 병균은 그대로 남을 것이었고, 그런 손을 통해 입으로 병균이 들어가게 될 터였다.
그러니 위생을 위해서라도 젓가락으로 스시를 먹게 해야 했고, 기생충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초절임이나 염장 형태인 나레즈시로 된 생선으로만 스시를 만들어 먹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식초 베이스로 스시를 만들어 먹다 보면 훗날 자연스레 신선한 횟감으로 스시를 만들어 먹게 될 터였다.
“초밥이라는 이름처럼 식초의 상큼함이 삭힌 고기의 꾸릿한 냄새를 잡아 줍니다요.”
“홍어보다는 못해도 꾸릿꾸릿한 것이 식초의 초맛이랑 만나서 꽤 먹을 만 한데요.”
“전 이 생선 없이 식초 밥만 먹어도 좋은데요. 밥에 간장을 뿌려 먹은 적은 있었는데, 이렇게 식초를 뿌려 먹는 것도 괜찮은 거 같습니다.”
홍어의 그 싸한 암모니아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식초의 신맛 자체를 좋아하는 이도 있었고, 생선의 삭힌 맛을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초밥에 대한 수요는 규슈 최남단인 가고시마 이부스키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 더 커졌다.
다른 배에 있었기에 생선이 올라간 식초 밥을 먹어보지 못한 이들이 서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바짝 말려진 건어물이 있으면 가져오거라. 쿠사야 말고. 그건 저기로 빼둬라.”
식초를 넣은 초밥을 다들 처음 먹어봐서 그런지 인기가 있었고, 원종은 그런 선원들을 위해 절구에 건어물을 넣어 가루로 만들었고, 밥에 식초를 넣어 비빌 때 건어물 가루와 설탕도 같이 넣어 비벼줬다.
“와! 이거면 그냥 다른 반찬 없이도 먹겠는뎁쇼. 말린 생선가루가 들어가서 그냥 먹어도 맛있습니다요.”
원종이 손으로 쥐여 초밥 밥을 만들어 주면, 배의 조리 담당이 생선을 위에 올리는 분업으로 초밥을 수백 개를 만들었는데, 생선회가 없을 때는 밥만 먹으면서도 맛있다고 하는 이들이 많았다.
밥에 김 가루도 뿌리고 밥 안에 고기 볶은 것도 넣어 아예 주먹밥을 만들어 주자, 이것도 맛있다고 난리였다.
그리고, 선원들이 즐겁게 먹는 모습을 이부스키 마을 사람들은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는데, 원종은 그런 이들에게 먹을 것을 베풀었다.
이 이부스키 마을이 유구로 가기 위해 들리는 마지막 규슈의 항구 마을이었기에 어느 정도 베풀어 인심을 얻어야 했다.
물론, 다른 배에 비축 식량으로 실어둔 쿠사야 한정이었다.
배에서 해 먹기에는 그 냄새가 심했기에 인심을 베풀 겸 뿌리는 것이었다.
“어이, 쿠레. 들고 가는 그거 뭔가? 쿠사야인가?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데.”
“아, 나카이 인가? 이거, 조선에서 온 상인들이 우리 마을에 베푼 거라네.”
“뭐? 상인들이 먹을 것을 공짜로 나눠 줬다고?”
“공짜는 아니고, 온천을 쓰고, 호수에서 멱을 감고 하는 데 우리가 편의를 좀 봐줬더니 이렇게 쿠사야를 막 나눠주는구먼. 자네도 가서 어서 받아.”
나카이는 편의를 좀 봐주었다고 쿠사야 한 묶음을 줬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냄새가 좀 심하긴 하지만, 쿠사야 한 묶음이면 일주일이나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이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나도 가서 받으라고 하는 건 아무에게나 막 나눠 준다는 말인가?”
“우리 마을 사람이라고 하면 그냥 줄 거네. 아주 인심이 후한 상인들이야.”
나카이는 인심이 후한 상인들이라는 말에 급하게 뛰어갔다.
마을에 가니 쿠레의 말처럼 사람들이 쿠사야를 받아 가고 있었는데, 나카이는 그런 것을 젖혀두고 조선에서 온 상인들이 타고 온 배가 몇 척인지부터 살폈다.
“여, 열 척? 배도 이제까지 본 적 없을 만큼 큰 배가 두 척이나 있잖아.”
나카이는 배들을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고, 고래 등보다 더 큰 배의 갑판에는 쇠로 된 기둥 같은 것이 있는 것도 확인했다.
‘이거 두령에게 이야길 하면 될 거 같긴 한데, 저 쇠기둥은 뭐지. 선원들이 중요시하는 거 같은데.’
나카이는 한참을 살피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를 모았는데, 조선에서 온 상인이 사츠마 번의 상인과 같이 유구로 향한다는 것을 알아내자, 급하게 본거지로 돌아갔다.
***
“이제까지 본 적 없을 만큼 큰 배가 2척에 대형 장수 선이 8척이나 있다고?”
“네. 장수 선 1척은 사츠마 번의 상인 것이고 나머지 9척은 조선에서 온 상인들 것이라고 합니다.”
“후후후. 후추가 중국에서 들어오며 유구로 향하는 상인들이 줄어 고민했는데, 이리 큰 건이 오는구나.”
미시마무라섬의 두령 하게마루는 유구로 가는 배들이 줄어들었기에 마츠우라 씨족으로 상선을 터는 것도 끝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인근에 있는 대섬인 다네가섬이나 야쿠시마섬을 쳐서 다른 마츠우라 씨족처럼 도주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가진 세가 부족해 도모하지 못했는데, 이 조선 상인을 쳐 얻은 재물로 무사들을 모은다면 그런 대섬을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로시마와 다케시마에 있는 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라. 미시마무라와 다케시마 사이의 만으로 오게 만들어 치도록 하겠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나카이 네가 이 미시마무라섬의 두령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헌데, 특이한 것이 있었습니다요.”
“특이한 것? 뭐냐?”
“그게, 가장 큰 배 두 척의 갑판에 커다란 쇠기둥이 양쪽으로 4개가 있었는데, 그게 뭔지 궁금해서 이리저리 물어봤었습니다요.”
“그래 그게 뭐였냐?”
“불을 토해내는 무기라고 했습니다요.”
“뭐? 불을 토해내는 무기라고? 그게 말이 되느냐? 불을 토해내는 쇠기둥이라니. 크하하하.”
“하지만, 진짜입니다요. 선원들이 그 쇠기둥을 정말 애지중지하면서 닦고 했습니다요.”
“흥. 내 이제까지 수많은 수적질을 했지만, 불을 토해내는 쇠기둥은 들어본 적도 없다. 너희들 중에 불을 토해내는 쇠기둥 이야길 들어본 적 있느냐?”
두령인 하게마루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큰 바다에서 해적질을 하며 지금의 미시마무라섬의 도주가 된 하게마루가 들어보지 못한 것을 이 인근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들어봤을 리 만무했다.
“설령, 불을 뿜어대는 쇠기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쇠기둥을 피해서 배들이 붙어 오른다면 그 쇠기둥 무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카이도 두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불을 뿜어 낸다고 해도 피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너는 구치노에섬에 큰 거래가 있다고 섬 사이의 만을 지나가게만 끌어들이면 된다.”
“네. 구치노에섬에 큰 거래를 위해 같이 가자고 꼬드겨 보겠습니다.”
***
원종과 삼식이는 구치노에섬에 상인들의 배가 난파되어 후추를 비롯한 상품을 토호들이 들고 있다는 말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츠마 번의 상인 히로타도 긍정적이었다.
“태풍이 불어올 때는 가끔 이런 일이 생깁니다. 상선이 난파되어 섬까지 밀려오지만, 상인들은 물에 휩쓸려 아무도 없는 그런 상황이 생기는 거지요. 그리고, 이런 일이 있으면 다른 일을 젖혀 두고서라도 가야 합니다.”
“하긴 주인 없는 물건이니 토호들은 그냥 빨리 처분해서 이득을 보려고 하겠군요.”
“네. 확실히 이번 유구로 가는 일은 길(吉)한 일이 많군요. 하하하”
“그럼, 본래라면 야쿠시마섬을 지나가는 것을 구치노에섬에 들렀다가 가는 것으로 하지요.”
“토호의 배를 따라가면 될 것입니다.”
***
“여기 오른쪽에 있는 섬이 미시마무라섬. 왼쪽에 있는 섬이 다케시마섬입니다.”
“뭐? 다케시마? 죽도?”
“네. 아시는 것입니까?”
이부스키 항구를 새벽에 출발하여 오후가 되었을 때 전면에 두 개의 섬이 나타났는데, 오른쪽의 조금 더 큰 섬이 미시마무라였고, 왼쪽이 다케시마라고 했다.
“잘 아는 섬이지.”
현대 일본인들에게 분쟁이 있는 다케시마가 어디 있냐고 물으면 다들 떠올린다는 죽도(竹島) 다케시마가 바로 이 가고시마 남쪽에 있는 이 섬이었다.
일본인 중 대다수는 실제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가고시마 바다에 있는 죽도 다케시마를 한국이 뺏어 간다고 생각하며 분노하는 일이 있었기에 이 규슈 남쪽의 다케시마섬도 꽤 알려진 섬이었다.
그래서 원종은 왼쪽의 작은 섬인 다케시마를 망원경까지 써서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뭔가 묘한 것이 있었다.
양 섬의 만이 1km 정도의 거리였는데, 양 섬의 만 높은 곳에 사람들이 여럿 서 있는 것이었다.
그냥 큰 배가 지나가는 것이 신기해서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것인가 싶었는데,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행색이 뭔가 거친 야인의 냄새가 났다.
“삼식 대행수! 박시찬 권관! 양쪽 섬에 가려진 곳을 주의하게나! 양쪽 만에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데, 양민은 아닌 것 같아.”
박치산도 원종처럼 망원경으로 살펴보았는데, 바로 호위대원들에게 경계를 시켰다.
그리고 다른 배에도 붉은색 깃발로 주의를 주었다.
“엇! 배들입니다!!”
작가의말
일식집에 가면 주방 앞 일렬 좌석 테이블을 흔히 ‘다찌(立ち)’ 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이 다찌가 일본어라고 사람들이 알고 있고, 초밥집에 가면 이 다찌 석에 앉아서 주방장이 직접 요리하는 것을 보고 먹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혼자 혹은 두 명이서 일식집에 갈 때는 다찌에 앉자고도 합니다.
헌데, 이 다찌는 일본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닙니다.
한본어쯤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실제 한국에서 쓰이는 다찌석은 일본에서는 ‘카운터석’ 이라고 부릅니다.
정확하게는 카운타 세(새)끼(카운터 자리 カウンター席)라고 부르며 그렇게 이야기 해야 주방장 앞자리를 줍니다.
일본에선 다찌자리, 다찌석, 다찌새끼라고 해도 일본인들은 그 자리가 무슨 자리인지를 모릅니다.
이 다찌 자리에 대한 어원 썰도 많은데, 대표적인 것은 다찌노미(立飮み, 서서 마시는 간이 술집)에서 왔다는 썰입니다.
다찌노미라 불리는 간이 술집에는 앉을 자리 없이 탁자만 있는데, 그 탁자에 주인장이 갓 만든 안주와 잔술을 내놓고, 사람들은 그걸 서서 마시고 갔다고 합니다.
주인장이 만들어 내어주는 것을 바로 먹는 것이 다찌노미와 방식이 같다고 해서 ‘다찌 자리’가 되었다는 것이 어원 썰입니다.
통영의 선술집인 다찌 집이라는 곳도 일제시대를 거치며 주인장들이 그날그날 되는 대로 안주와 술을 내어주다 보니 그런 방식이 다찌 방식이라고 남아 지금도 그냥 다찌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일식집에 가실 때는 다찌에 앉자는 말 대신 카운터 석이라고 하는 것으로 언어 순화를 하는 것이 어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