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48화 (248/327)

< 248. 유구왕국으로. >

“반드시 류큐에 가야 하는 이유라. 그거 궁금하군요.”

상인 히로타는 삼식이가 류큐에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자 궁금해했다.

“그야 당연히 이익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인들이 후추를 사기 위해 유구로 갔었는데, 이제 상인들이 후추를 사러 고토섬으로 가게 되니 유구에는 상인들이 없을 것이지 않습니까?”

“옳거니. 그렇군요. 이제 다들 류큐에 가지 않으니 후추가 쌓여 가격이 떨어졌을 테고, 그와 반대로 다른 물건들은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을 터. 빈틈을 노리겠다는 삼식공의 상재에 감탄했소이다.”

히로타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상인들도 후추 거래목적이 없어진 류큐에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들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그 틈새의 이익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츠마의 상인들도 배를 한 척 띄워야겠군요.”

“상품이 중복만 되지 않는다면 우리 춘봉 상단에서도 대환영입니다. 유구로 가는 길잡이를 해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어서 준비해서 가도록 합시다.”

사츠마 번에서 유구로 가는 상행길에 동행해 준다고 하자 원종은 안심이 되었다.

이제까지 말라카로 가는 항해든 지금의 항해든, 모두 다 육지 근해로 항해를 했지, 작은 섬(?)을 목표로 항해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중국과 말라카에 갔을 때 원양항해를 위한 초기 형태의 육분의와 이슬람의 천문관측기를 구해서 별자리를 통한 위치와 거리를 알아내는 법을 배웠었다.

그런 자료를 바탕으로 지도에 위도와 경도를 넣는 작업도 하고 있었지만, 육지에 비해 작을 수밖에 없는 섬을 향해 장거리 항해를 하는 것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서 사츠마 번까지 온 거리를 망망대해로 이동해야 유구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어찌 보면 이제까지 상선이 겪은 가장 위험한 항해가 될 터였다.

이런 위험이 있음에도 원종이 유구에 관심을 가지고 꼭 가려고 하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삼식이의 말처럼 틈새 이익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사탕수수 설탕 때문이었다.

사탕수수는 인도에서 일찍이 동남아시아로 전해졌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사탕수수로 본격적인 설탕 산업을 만들어내는 것은 유럽인들이 오고 난 이후였다.

그 이전까지는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대규모의 사탕수수 농장이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이 당시에는 강력한 신분제로 남아도는 인력이 있는 인도에서 대규모로 재배가 되었을 뿐, 천혜의 재배 조건인 동남아시아에서는 산업적 재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탕수수의 재배가 가능한 중국 남부에도 이제야 서서히 사탕수수가 알려졌고, 중국을 통해 대만 섬과 유구에도 사탕수수가 전해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전파를 원종이 좀 더 빨리 유구에 퍼트려 사탕수수 농장을 만들고 설탕을 생산하려는 이유였다.

언뜻 생각하기로는 대만 섬이 더 사탕수수 재배에 좋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연 평균 기온에서 확실히 유구가 따뜻했고, 해금령으로 인한 해적 문제로 대만보다는 유구가 더 안전했다.

그리고, 유구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게 되면 중국을 통해 동남아로 내려가는 항로 외에도 일본-유구-대만-동남아로 이어져 내려가는 항로의 구축도 가능했기에 유구로 꼭 가야 했다.

***

“만철 화물장. 이건 무슨 냄새인가?”

사츠마 번을 떠나 규슈의 최남단 가고시마로 향하는데, 원종의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있었다.

“아, 비축 식량 냄새입니다요.”

“비축 식량?”

분명 원종이 긴 항해가 될 것이니 장기간 보관해도 되는 식량을 최대한 실으라고 하긴 했었다.

헌데, 썩어 들어가는 냄새가 나자 상한 음식을 실은 건가 싶어 냄새를 추적했다.

냄새를 따라가다 보니 큰 항아리와 여러 개의 항아리들이 배에 실려 있었는데,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지 않아도 풍겨오는 발효 냄새에 이게 뭔지 알 것 같았다.

피쉬소스의 냄새였다.

“오랫동안 먹을 식량을 실으라고 했는데, 이걸 왜 실은 것인가?”

“네? 왜인들에게 오래 놔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을 물어보니 이걸 추천해 주었습니다요.”

“오래 보관이 가능하긴 한데, 이건 액젓이다. 짜서 간장처럼 간이나 맞추는 거지 그냥 먹지를 못하는 음식이다.”

“아이고 단주님 아닙니다요. 안에 분명히 곡식이 든 것을 확인했습니다요.”

곡식이 들어가 있다는 말에 원종은 항아리 뚜껑을 열어봤다.

“아, 이건 나레즈시(熱鮨, なれずし)로 구나.”

“그리고 이건 말린 건어물인데, 냄새가 심해서 여기 따로 항아리에 담아 두었습니다.”

털보 만철이 다른 항아리를 열어 보여주었는데, 그의 말마따나 건어물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풍겨오는 냄새는 나레즈시에서 나는 발효 냄새에 버금갔다.

“이건, 쿠사야(くさや)구나. 허허. 이런 걸 다 챙기다니. 이 건어물인 쿠사야는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옮기거라. 그리고 냄새가 난다고 항아리에 넣어두면 더 냄새가 심해지니 선창에 걸어 두거라.”

“네 바로 옮기겠습니다요.”

“그리고, 요리 담당에게 저 쿠사야 건어물부터 빨리 먹어야 한다고 전하거라.”

“저 쿠사야라는 건 빨리 먹어야 하는 건어물입니까요?”

“아니, 오래 놔둘 수도 있지만. 저건 놔두면 놔둘수록 냄새가 심해지니 바로 먹고 치워야 코가 편할 것이다. 이걸 조리하는 것도 그냥 숯불에 생선 굽듯이 구우면 된다고 이야길 하거라.”

만철이와 선원들이 쿠사야를 들고 옮기는데, 그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요리 담당이 좁은 조리실에서 굽다가는 난리가 날 것 같았다.

“흠. 아니다. 요리 담당에게 오늘 저녁은 갑판에서 다 같이 먹는다고 이야길 하고 숯과 땔감을 갑판으로 옮겨 두거라.”

원종이 갑자기 또 바꾼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쿠사야’란 말린 건어물은 직화로 구울 때 더 냄새가 진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양이 적다면야 조리실에서 그냥 구우면 되지만, 그 양이 많았기에 그냥 갑판에서 구워 빨리 먹어 치우는 거 말곤 답이 없었다.

이 쿠사야(くさや)는 일본말로 ‘냄새나는 방’이라는 뜻인데, 일본식 다다미가 깔린 집에서 다다미가 삭아 썩으며 나는 꼬랑내와 비슷한 냄새였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었다.

혹은 일본어로 ‘냄새가 난다’의 쿠사이(臭い)에서 어원이 왔다는 말도 있는데, 그 근원을 어디로 따지든 냄새가 심한 음식이었다.

이 쿠사야가 한국에 소개되며 이름을 알린 것도 이 냄새 때문이었다.

세계 3대 악취 음식으로 스웨덴의 삭힌 청어 수르스트뢰밍과 한국의 홍어에 이어 세 번째로 냄새가 나는 음식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물론, 수르스트뢰밍의 냄새 지수가 8천 정도이고, 한국의 홍어가 6천 정도 쿠사야는 400정도밖에 안되었지만, 숯불에 구웠을 때 1500까지 냄새가 증폭되기에 냄새로는 어디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저녁으로 갑판에서 쿠사야를 구울 때 그 악취 냄새에 다들 코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홍어는 시큼하게 삭힌 냄새인데, 이건 뭔가 썩는 냄새만 나는 것 같은데요. 정말 이걸 먹어도 되는 겁니까?”

삼식이는 구워지는 쿠사야 냄새에 코를 막았고, 다들 부채를 들고 냄새를 날리려고 난리였다.

“냄새는 좋지 않아도 이게 건강에는 더 좋다. 보통의 염장 음식을 만들 때 소금을 많이 넣어 엄청나게 짜게 하지만, 이건 소금을 적게 넣은 쿠사야 액을 발라 건조하기에 그렇게 짜지가 않아. 물론, 그 소금기가 없기 때문에 썩는 것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이고.”

냄새를 참아가며 구운 쿠사야가 올라오자 다들 젓가락을 들지 못했는데, 원종이 먼저 젓가락을 들어 맛을 보기 시작했다.

본래 생선을 말려 굽든, 절여 굽든 화기를 만나면 그 비린 냄새나 쿰쿰한 냄새가 불향에 날아가 버리는 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 쿠사야는 오히려 그 불향과 합쳐진 꼬릿한 냄새가 있어 쉽게 입으로 가져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원종은 현대 일본에서 먹어 본 적이 있었기에 입으로 가져갔다.

‘음. 현대의 쿠사야보다 냄새가 더 심하구나. 아마도 전에 먹었던 것은 현대인에게 맞게 냄새를 좀 줄였던 것이겠지.’

그리고 몇 번을 씹고 나자 생선 특유의 맛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어디선가 먹어보았던 맛이 떠올랐다.

‘응? 이거 어디서 먹어본 맛이랑 비슷한데. 아, 그 맛이네. 조기의 맛.’

보통 청어 계열인 고등어나 전갱이 날치로 이 쿠사야를 만드는데, 전갱이로 보이는 이 쿠사야에서 조기의 맛이 올라왔다.

그것도 그냥 조기가 아니라, 보리 속에 묻혀 삭힌 조기의 맛이 올라왔다.

완전히 다른 생선인 전갱이와 굴비의 맛이 뭔가 비슷하다는 게 웃겼지만, 이 미묘하게 닮아 있는 맛이 발효 숙성의 맛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갱이 쿠사야는 생선의 내장을 소금에 절여 만든 쿠사야 액젓을 발라 쿠사야로 건조가 되는데, 이 액젓에 들어있던 균이 발효를 시켜 건조를 시키는 것이었다.

보리 굴비는 바르는 것 없이 건조 후 보리쌀 사이에 들어가 보리 껍질 속 균에 의해 숙성 건조가 되는 것이었기에 균에 의한 건조 숙성이 같은 것이었다.

홍어나 스시의 원형인 나레즈시의 경우에는 젖은 채 발효가 되고, 쿠사야와 보리굴비는 건조되어 숙성 발효되기에 그 맛의 괘가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론, 쿠사야의 썩는 냄새를 보리굴비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했다.

하지만, 이 냄새를 뺀다면 밥반찬으로는 꽤 괜찮았다.

다른 이들도 냄새를 이기고 먹다 보니 그 깊은 발효 숙성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냄새는 독하지만, 먹을 만합니다요.”

만철이는 밥 한 공기를 뚝딱 먹고는 괜찮은 밥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럼, 자네는 계속 이걸 먹을 텐가?”

“아니 저에게 왜 이러십니까요.”

“다음에는 절대 비축 식량으로 이 쿠사야라는 걸 들이지 말라는 뜻이야. 그리고, 쿠사야와 같이 비축 식량으로 들여온 다른 항아리들도 가져오게나.”

“그것도, 이 쿠사야란 것처럼 오래 두고 먹으면 냄새가 너무 심한 것이옵니까?”

“그래. 그러니 어서 들고 오거라.”

선원들이 나레즈시(熱鮨, なれずし)가 들어있는 항아리를 들고 오자 원종은 밥주걱을 항아리에 넣어 항아리 안에 있는 쌀겨가 가득한 곡식을 덜어 내었다.

그 퍼낸 곡식 사이사이에는 곡식을 배 속에 넣은 생선이 들어있었는데, 이 생선이 바로 스시의 옛 모습이었다.

지금 우리가 어디서든 쉽게 먹을 수 있는 스시는 어떻게 보면 밥과 반찬을 한 번에 먹을 수 있게 일체화시킨 패스트푸드 음식이었다.

원조 격인 이 나레즈시처럼 본래의 스시는 발효를 해서 먹는 슬로우푸드였다.

그리고, 생선과 함께 들어간 곡식은 삭혀졌기에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 숙성되는 기간 동안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게 당연했고, 나레즈시를 담아둔 지 1~2주 만에 꺼내 먹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이런 살짝 발효된 것을 ‘나마나레(生なれ)’라고 불렀는데, 이때에는 생선과 함께 넣은 쌀이 완전히 발효되기 전이라 함께 넣은 곡식도 먹을 수가 있었다.

다만, 이 나마나레 때는 발효되며 올라오는 신맛이 부족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식초를 넣어 삭아진 것과 같은 신맛을 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스시의 변천이었다.

이후로 18세기 나레즈시처럼 몇 개월을 삭혀 먹는 방식은 쇠퇴하고, 식초를 뿌려 삭힌 것 같은 신맛을 내는 밥에 생선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지금 밥 위에 생선을 올리는 니기리즈시(握り寿司) 스시였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가 먹는 쌀밥 위에 생선이 올라가는 니기리즈시 스시는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먹을 수 있게 만들어진 역사가 짧은 음식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원종은 이 쌀겨에 삭혀진 나레즈시 생선의 살만 발라 먹기 좋게 쌀밥 위에 올렸다.

그리고, 식초와 간장을 살짝 뿌렸다.

“자. 이것이 배 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초밥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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