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 구주일주. (1) >
“으하하하 왜관 개시에서 들어오는 식량을 그쪽에서 조절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눈치 빠른 상인 놈들은 알아서 대마도의 식량 가격을 올리겠구만. 사다쿠니 녀석 먹을 것이 없어 피똥 싸겠는데.”
마츠우라 도주는 삼식이의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바로 술을 내어오게 했다.
본래 싸움은 말리고 흥정을 붙이라고 했지만, 그 대상이 적국이라면 싸움을 말리지 않고 붙이는 것이 우리에게는 이득이었다.
마츠우라 씨족으로 대표되는 해적들은 대마도의 소 씨들이 중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는 것을 기분 나빠했다.
섬의 지정학적인 위치 덕에 이득을 보는 것이었으니 같은 섬임에도 수입이 몇 배나 차이가 나자 시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거기다, 몇 년 전엔 1년에 세견선 50대를 조선에 보낼 수 있는 권한까지 약조 받아냈으니 마츠우라 씨들은 그 권한을 탐낼 수밖에 없었다.
계해약조(癸亥約條)는 대마도의 도주와 조선이 한 약속이었기에 그 대마도의 도주가 소 씨이든 마츠우라 씨이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저 대마도의 도주라면 세견선 50대를 조선에 보낼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것이었으니 그 자리가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일에 도움을 주겠다는 조선의 거상이 나타났으니 마츠우라 켄타로는 기분이 좋아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춘봉 상단은 상단주께서 전권대사의 신분이기에 왜와 거래를 하는 것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 대마도의 세견선처럼 일기도와 이 근방 마츠우라 씨족의 세견선이 되어 줄 수도 있습니다.”
“오오! 그러면 대마도의 소 씨를 거치지 않고 거래가 가능하겠구만. 중간에서 이익을 받아먹는 소 씨를 빼고 거래하는 것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럼 언제부터 왜관 개시에서 식량 수출을 막을 수 있는 거요?”
“바로 배를 한 척 빼서 동래로 돌려보내어 작업을 시키겠습니다. 그리고, 그 배는 이곳 일기도를 오가며 세견선처럼 마츠우라 도주님의 물건을 조선에 팔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 배는 일기도만 오가는 것이 아닌, 대마도와 후쿠오카까지를 왕복하게 될 터였다.
이렇게 춘봉 상단의 배가 왜를 자주 넘나들게 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상행이 아닌 화물 운송으로 삯을 받는다고 핑계를 댈 생각이었다.
즉, 현대로 치면 배의 주인인 선사는 한국인데, 물동량 주문으로 배를 움직이는 것은 일본이 하는 것과 같은 형태인 것이다.
해금령에는 이러한 형태의 해금이 들어가 있지 않았기에 왜관에 드나드는 왜인들에게 배를 빌려주었다는 꼼수로 배가 왜로 다니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생각이었다.
삼식이는 누전선 한 척에 있던 토기 옹기를 다 덜어 내고 일기도와 대마도의 어물을 싣고 조선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약속의 연장으로 일기도에 춘봉 상단의 상관을 열었고, 선원학교에서 훈련받은 두 명을 연락원 겸 공작원으로 앉혀두었다.
이후 마츠우라 도주의 환대를 받으며 9척의 배가 후쿠오카로 출발했는데, 일기섬에서 후쿠오카의 거리도 하루면 되었기에 다들 부담 없이 규슈에 상륙할 수 있었다.
원나라와 고려의 일본 원정에선 규슈 땅에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어려웠는데, 그때도 이렇게 미리 상인들을 밀정으로 보내어 정보를 확보하게 했다면 일이 쉽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때의 규슈 동북부는 대내가(大内氏 오우치가)의 영토였는데, 오우치 노리히로라는 야심찬 영주가 힘을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오우치 가문이라고 하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백제 임성태자의 후예라고 자처하는 곳이었다.
조선 초 태종 때와 세종 때에는 사절을 보내오고, 조선의 후예로서 조선을 따르겠다며 선물을 보내오곤 했던 가문이었다.
하지만, 세종 때 조선에서 대장경을 주기로 했다가 주지 않은 이후로는 관계가 서먹해져 이후로 사절을 보내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오우치 가문은 한반도에서 조상들이 왔기에 조선에서 온 상선이라고 일기섬에 버금가게 환영을 해주었다.
대내가 소속의 상인에게 받은 초대장을 내보이자, 조선에서 왔으면 그런 건 필요 없다며, 언제든지 와달라고 얼마나 자주 올 수 있는지를 물어볼 정도로 교역에 관심이 많았고, 환영했다.
덕분에 후쿠오카 내에도 상관을 만드는 일도 쉽게 진행되었고, 후쿠오카에 며칠 동안 묵으며 옹기와 토기, 실과 바늘, 소금을 절반 정도 처분을 해서 사람들의 인심을 사기도 했다.
물건에 대한 돈은 왜 은과 구리, 청동으로 받았는데, 유황도 주겠다고 했으나 유황은 사츠마 번이 더 저렴하기에 거기서 약속을 한 것이 있다고 둘러대었다.
상관을 만든 이후 규슈 남부로 떠나려는데, 오우치가에서 상업을 맡은 번신 나오토 데키리사가 삼식이를 따로 불러내었다.
“같은 한반도 사람으로서 충고를 해주고자 부른 것이오. 우리 대내가는 예전의 성세를 위해 북규슈 지역을 모두 발아래 두려고 하고 있소. 해서 여러 도서들을 잡고 있는 마츠우라 씨족과 싸울 수밖에 없소.”
예전의 성세를 위해 북규슈 지역에서 전쟁이 있을 거라고 경고해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키섬(일기도)도 전화에 휘말릴 수 있으니 그곳과 거래하는 것을 주의하길 바라오.”
번신 나오토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숨부터 나왔다.
기껏 대마도를 도모하기 위해 일기도의 마츠우라와 작업을 치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일기도의 마츠우라도 언제든 오우치 가문에 의해 박살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의리와 정리가 없는 왜국의 사정이라고 하지만, 정말 이건 먹고 먹히는 정글이 따로 없었다.
지배층이 이리 이전투구 중이니 왜국의 평민들이 죽어나는 것이고 식량이 부족하다 보니 다들 몸이 작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충고 감사드리옵니다. 우리의 정기 교역선이 후쿠오카와 이키섬, 대마도를 정기적으로 돌 것인데, 그때 언질을 주시면 몸을 사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상인이 그런 언질을 듣고 장사를 하면 되나, 물건들이 돌아가는 수량을 보고 그때를 알아챌 수 있어야지. 아, 이쪽 판이 너무 작으니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 수도 있겠군.”
“그 정도는 아니옵니다. 저희 상단도 같은 한반도 출신인 오우치 가문을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여차할 때는 조선에서 전쟁물자를 대어 드릴 수도 있사오니 언제든지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오호! 그런 일까지 해주겠다면 이거 판이 커질 수 있지. 헌데 상단의 규모를 상인들에게 듣기는 했으나 동원 가능한 배가 몇 척이 되는가? 이번에 온 9척의 배 중에서 두 척은 엄청나게 크던데. 그런 배가 많은가?”
삼식이는 허풍을 떨어야 할지 아니면 겸손을 보여야 할지 고민하다 허풍을 떨기로 했다.
아무리 한반도 백제의 후손이라고 하더라도, 왜구들의 버릇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라 허풍을 쳐두어야 나중에라도 뒤통수를 맞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장 큰 배인 대운선은 8척이 있으며 같이 온 누전선은 40여 척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내해를 다니는 작은 한선은 100여 척이 있으니 오우치 가문이 다른 세력을 도모할 때 도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번신 나오토 데키리사는 삼식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북규슈와 서 혼슈(本州)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는 오우치 가문이 배를 동원해도 100척을 동원하기 힘든데, 상인이 150척의 배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허풍일까 싶었지만, 한 번의 상행에 10척의 대형 선박을 들고 왔으니 완전히 허풍이라고 치부하기도 힘들었고, 그들이 쏟아내는 물산을 보면 엄청난 규모의 상단이었기에 믿음이 가기도 했다.
“좋소이다. 그럼, 도움이 필요할 때 상관을 통해 연락을 하겠소.”
“네. 같은 한반도 사람이니 서로 도와드려야지요.”
삼식이는 나오토 데키리사와 헤어진 후 원종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원종은 삼식이가 허풍 친 것을 칭찬했다.
“잘했다. 나중에 그리 규모를 키우면 되는 것이지. 그리고, 우리 덕분에 판세가 뒤바뀔 정도라면 그 싸움은 본래 해도 지는 싸움이니 자기들 팔자일 것이다. 우리는 그저 자기들끼리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이득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평민들에게 베푸는 것은 그다음에 하면 되는 것이구요?”
“그래. 쌈박질을 우리가 붙이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하는데 우리를 끌어들인 것이니 우린 그 이후로나 움직여 우리 사람들을 늘려가면 되는 것이다.”
“헌데 이제 가는 사츠마 번의 땅은 너무 멀지 않을까요? 거긴 거리의 문제가 있어 우리가 덕을 베푼다고 해도 우리에게 이득이 있기 힘들 것 같은데요.”
“그렇지. 우선은 이 대마도, 이키섬, 후쿠오카의 북규슈 지역에 우리의 이름을 알리고 조선에서 많이 베풀고 있다는 인상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츠마 번의 남 규슈는 그 이후에 생각을 하도록 하지.”
그렇게, 선단은 다시 후쿠오카를 떠났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이 있었다.
바로 오도라 불리는 고토섬(五島)이었다.
후쿠오카의 상인들과 이야길 하며 알게 된 곳인데, 중국과의 교역을 하는 섬이라고 했다.
동중국해를 횡단하는 견당사선의 마지막 정박지라고 했는데, 중국에서 들어오는 배가 여기에 닿으면 규슈의 상인들이 물건을 받아 규슈와 혼슈로 들여간다고 했다.
그래서, 중국의 배가 어떻게 들어오고 어떤 물건을 가지고 오는지 궁금하여 사츠마 번으로 가는 길에 들렀다.
“국제무역항이 여기에 있었구나.”
고토섬에는 왜인과 중국인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사람들도 있었는데, 말라카로 가며 보았던 인도네시아인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조선 태종 때 인도네시아에서 진상 받은 코끼리가 이 고토섬을 거쳐 규슈로 갔고, 이후 다시 조선으로 보내졌었다는 게 떠올랐다.
훗날, 나가사키에 네덜란드인들이 들어와 상관을 만들기 전까진 바로 이 고토섬이 일본 최대의 무역항이었던 것이었다.
“단주님. 여기에도 우리 상관을 만들까요?”
“아니, 여긴 만들 필요가 없다. 상관을 만든다고 해도 중국에서 들여오는 물건을 우리가 거래할 것도 아니고, 이 고토섬은 우리가 도모하기에는 애매하다. 상관은 두지 않고, 사츠마로 내려갈 때 들려서 풍문을 듣는 것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하긴, 중국에서 바로 들여올 수 있는 길이 우리가 더 짧기도 하군요.”
“대신 며칠간 상인들과 어울리며 사츠마 번의 상인과 안면을 트거라. 그 상인을 앞세워서 사츠마로 가자꾸나.”
그렇게 삼식이가 상인들과 어울리며 사츠마 번의 인맥을 만드는 동안 원종은 선원들과 낚시를 하며 여유를 즐겼고, 박치산과 호위대들과 축구도 하며 친밀감을 높였다.
그날도 해변에서 축구를 하며 노는데, 호위대 중 한 명이 급하게 뛰어왔다.
“삼식 대행수가 단주님을 급하게 모셔 오라고 합니다. 사람이 죽어 간다고 합니다.”
“삼식이가 다친 것은 아니고?”
“네. 삼식 대행수와 연회를 즐기던 사츠마 번의 상인이 갑자기 쓰러졌다고 합니다.”
호위대에게 더 물어보았으나 정확한 사유를 더 알아낼 수가 없었다.
우선은 짐을 챙겨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