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46화 (246/327)

< 246. 구주일주. (2) >

“단주 아니, 동생 어서 오게나. 같이 연회를 즐기다 갑자기 몸을 벌벌 떨더니 그대로 쓰러져서는 위, 아래로 아주 그냥 줄줄 흘리고 있네.”

고토섬 특유의 평상과 집이 붙어있는 연회장에는 20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환자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이 친구도 저 사람이 쓰러지고 얼마 안 있어 주저앉듯이 쓰러졌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같은 증상인 것 같자 누워있는 환자들을 살펴보기 전에 차려진 상 위의 음식들을 살펴보았다.

식초에 절여 살이 하얗게 된 회와 간장에 졸인 해산물, 그리고 채소류가 있었다.

일단 복어의 독은 아니었고, 식중독 쪽인 것 같았다.

아마도, 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라 상한 음식을 먹고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되었다.

“다른 이들은 괜찮습니까? 그리고, 저 둘은 같은 상단 소속입니까?”

“맞네. 사츠마 번 소속의 상인이야.”

“크으으윽. 흐윽, 흐윽...”

누워있던 환자가 몸을 꿈틀거리더니 방귀를 뿡뿡거리며 변을 보았는데, 묽은 물 같은 변이었다.

급히 천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쓰고 환자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니 열기가 느껴졌다.

옆의 환자도 마찬가지로 열이 났고, 구토와 설사를 같이 하기 시작했다.

“흠...”

환자가 구토와 설사에 열이 오르며 기절할 정도로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은 전형적인 세균성 전염병의 증상이었다.

이질? 티푸스? 아니면 콜레라?

머릿속으로 세균성 전염병이 여러 개 스치고 지나갔다.

초기 증상은 모두 다 비슷했지만, 개중에서 이질과 티푸스는 치료가 가능했지만, 콜레라는 지금으로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

그러다, 콜레라는 일단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콜레라는 호열랄(虎烈剌)이라고 중국에서 이름이 전해졌는데, 이 호열랄이 일본어로는 ‘코레라’로 발음이 되었고, 그게 조선으로 전해지며 콜레라라는 이름이 되었다.

이 콜레라라는 이름 자체가 훗날 1800년대 순조 시대에 일본을 통해 들어 왔으니 지금 시대에는 없는 병이었다.

물론, 이 시대에도 인도 갠지스강 인근의 풍토병으로 존재하긴 했지만,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을 통해 동남아와 북동 아시아에 전해지는 병이었기에 벌써 콜레라가 이곳에 왔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질이나 티푸스인데, 이 두 개는 그래도 치사율이 낮은 전염병이고, 지금도 치료가 가능했다.

물론, 그 치사율도 링거와 항생제가 있다는 전제였고, 이 당시에는 이질만으로도 사람이 쉽게 죽을 수 있었다.

우선 격리를 해야 했는데, 오늘 연회에 참석했던 이들이 문제였다.

이질이든 티푸스든 음식을 먹고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 아니었다.

하루 이틀 동안 먹은 음식물의 세균이 장에서 독소를 퍼트리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면 전염병을 퍼트리게 되는 것이었다.

“사츠마 번의 상인들이 갑자기 아픈 것은 상한 음식을 잘못 먹어서 된 것일 수도 있고, 역리(疫痢)일 수도 있으니, 다들 오늘은 외부와 격리되어야 합니다.”

“역리라면 역병(疫病)?”

한자를 아는 중국 상인은 역병이라는 말에 바로 연회장을 박차고 도망을 쳐버렸고, 다른 이들도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 도망을 가버렸다.

도망치는 이들을 삼식이와 선원들이 막으려고 했지만, 그들을 보내주게 했다.

괜히 격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막다가 서로 언성을 높일 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증상이 나타나면 알아서 다시 올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보내주라고 한 것도 있었다.

“사츠마 번의 상인들이 묵고 있는 곳에 가면 이들 외에도 몇몇이 같은 증상일 테니 이리로 데리고 오게나. 다들 천으로 만든 입, 코 가리개를 철저히 쓰고, 이후로 먹는 것은 물이든 음식이든 뜨겁게 해서 먹어야 하네.”

“그럼 이 둘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요?”

“방으로 옮기고, 김고도개는 가서 방설환을 가져오고, 삼식 행수는 이곳에도 도토리나 쑥이 있는지를 알아 오게나. 그리고 말린 미역이 있다면 미역과 설탕도 가져오게나.”

***

원종의 예상처럼 사츠마 번의 상인들이 묵고 있던 곳에서는 10여 명이 물똥을 싸며 난리였고, 역병이 났다는 말이 돌자 고토섬은 초토화되어 버렸다.

상인들은 상관에 내려 두었던 물건을 배에 채 싣지도 않고 떠나버렸고, 같은 상단의 사람이라도 열이 나고 설사를 하면 버려두고 출항을 해버렸다.

그렇게 열이 오르고 묽은 변을 보는 사람들이 100여 명으로 늘어나자 원종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그들이 싼 변과 옷을 관리하게 했고, 머리 ‘이’로도 전염된다는 말도 있었기에 남녀 구분 없이 모두 다 머리털을 밀게 했다.

그렇게 한곳에 모아 관리하자 더는 전염병이 퍼지지 않았고, 사망자가 1명 나왔지만, 더는 죽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도주인 마츠우라 키타자키가 ‘나키다로’라는 사람을 보내왔다.

고토섬도 해적들인 마츠우라씨(松浦氏)의 일족들이 점령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주가 보낸 나키다로란 자는 턱 중앙에 염소처럼 긴 수염을 기른 자였는데, 수염처럼 염소상의 얼굴이었다.

“전염병이 돌아 많은 이들이 병에 걸렸는데, 죽은 이는 1명밖에 없다고 도주께서 치하하셨소.”

치하를 한다는데 빈손으로 왔기에 그 마음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주군께선 그대 조선 상인들이 어떤 치료법을 쓰는지를 알아 오라 하셨소이다.”

“이 방설환을 펄펄 끓는 뜨거운 물에 개어 먹이고, 도토리 가루와 쑥 가루를 곡물가루와 섞어 찐 환(丸)을 먹이는 치료법이오.”

“방설환과 도토리와 쑥이라...”

사실, 세균성 이질이나 티푸스는 장내 세균 문제였기에 항생제가 없는 지금으로서는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전통의 방법대로 설사를 다스리고 장내 세균을 죽이는 효과가 있는 도토리와 쑥을 먹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여기에 살균효과가 좋은 크레오소트(Creosote) 성분이 들어있는 방설환을 먹여 장내 세균을 죽이는 게 치료법의 전부였다.

물론, 전해질 부족과 탈수로 인한 실신을 방지하기 위해 소금 대신 설탕을 넣어 끓인 미역국을 먹인 것이 치사율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저 방설환에는 무엇이 들어가는 것이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것들이 아주 날로 먹으려고 하는 것 같아 골탕을 먹이기로 했다.

“영약인 고려인삼과 후추, 정향, 감초, 육두구, 건강(말린 생강), 숙지황, 마늘, 산초, 석염이 들어가오. 그 비율은 알려드릴 수 없소이다.”

일부러 인삼을 빼고는 강한 향이 나는 향신료들을 불러주었다.

“비방 중에 비방이지만, 도주께서 비방 대로 약을 만들어 평민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평민들이 쉽게 죽지 않을 것이오.”

타키다로는 비방 중에 비방이라는 소리에 받아 적었지만, 이내 인상을 쓰며 고민을 했다.

“고려인삼은 물론이고 비싼 약재가 많이 들어가는 거 같은데, 이런 것을 매일 평민들에게 먹인 것이오? 평민들은 그 약값을 내지 못할 터인데...”

내가 답을 하려는데, 삼식이가 나섰다.

“우리 춘봉 상단은 초대 상단주님께 배운 것이 있소이다. 상인은 돈을 남기지 말고,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가르침이었소이다.”

“오! 그런 가르침이.”

“해서 우리 춘봉 상단은 이 비싼 방설환으로 이익을 남기기 보다는 사람을 살려 사람을 남기겠소이다. 그것이 우리 춘봉 상단의 운영방침이오.”

짐짓 신중한 표정을 지어가며 사람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삼식이를 보고 있으니 내가 봐도 멋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감동을 먹은 평민들은 눈물까지 흘려대었다.

“흠흠. 이 나키다로도 감탄했소이다. 비싼 약재를 아끼지 않고 사람을 남긴다라. 도주님께 그대들의 활약을 이야기하겠소이다.”

“바로 성으로 돌아가면 아니 되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사흘 동안 뜨거운 죽만 먹으며 있어야 하오. 사흘 동안 묽은 변을 보지 않으면 그때는 다른 이들에게 가도 되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염병이 번질 수 있소이다.”

“오호. 이런 비법 비방이 있었구려.”

그렇게 나키다로가 돌아간 이후 나흘 후에 잡곡이 10섬 내려졌는데, 도주가 내린 것이라고 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자 노인 1명이 더 죽은 것을 빼고는 대부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 치료소를 나갈 때도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큰 가마솥에서 뜨거운 물에 씻겨서 내보내었다.

“우리 사츠마 번에서 귀공을 모시고 싶소이다. 귀공의 의술과 춘봉 상단의 큰 포부 덕분에 번의 사람은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었소이다.”

가장 먼저 쓰러졌던 사츠마 번의 상인은 건강해진 모습으로 우리를 번으로 모시겠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유황을 사러 갈 거라고 하자 은혜를 입은 만큼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아마도 이질이었던 전염병이 끝이 난 것 같자 다시 나키다로가 찾아왔는데, 우리 배에 여유 공간이 있는지를 물었다.

“후쿠오카에서 거래하며 절반 정도를 비웠기에 공간은 많은데 무슨 일이십니까?”

“이 소복 항구 일대뿐만 아니라, 중국의 상인들은 우리 고토섬에 역병이 돈다고 하여 짐까지도 모두 놔두고 떠나버렸소. 해서 그대들에게 그들이 남기고 간 상품을 인수할 수 있게 해주려고 하는 거요.”

“흥미로운 제안이지만, 뒤탈은 없겠습니까?”

“버리고 간 그놈들의 잘못이지. 싣고 갈 수 있는 만큼 싣고 방설환을 그 금액만큼 주고 가면 되오.”

한마디로 방설환을 살 돈이 없으니 상인들이 놔두고 간 물건을 가져가고 내놓으라는 말이었다.

삼식이가 망설이는데, 항구에서 일을 하는 왜인들이 어서 수락하라고 눈치를 주었다.

삼식이는 이거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나키다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중국 상인이 두고 간 비단과 비단실입니다.”

“이쪽은 정향입니다.”

“여기에는 후쿠오카의 상인이 두고 간 갑주와 포목이 있습니다.”

항구에서 일을 하며 전염병에 걸렸던 이들은 사람을 남긴다는 삼식이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 상인들이 항구에 남기고 간 상품 중에서 비싸고 좋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그런 물건들을 방설환으로 매입했는데, 나키다로는 품목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모두 다 가져가라고 했다.

삼식이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인적 자원이 아까워 본래 만들지 않기로 했던 상관을 만들었고, 왜어가 가능한 두 사람을 남겼다.

“단주님. 그 사람을 남긴다는 거 그거 진짜인 거 같은데요.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사람을 남겨 두기만 해도 이익이 오는군요.”

“그래서 내가 이번 상행에는 이익 볼 생각하지 말고 사람을 남기라고 하지 않았느냐. 우리도 방설환을 그냥 팔기만 했어 보아라 이런 이득이 생겼겠느냐.”

“그런데, 방설환 비방을 그렇게 알려줬는데, 아무 문제 없겠습니까요?”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고토섬의 도주는 우리에게 방설환을 얻고 싶은데, 지불할 돈이 아까워 남기고 간 상인들의 화물을 가져가게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절대 비싼 고려인삼이나 향신료로 방설환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하긴 그렇긴 하군요.”

선단은 사츠마 번의 상인을 따라 규수 남부의 가고시마로 향했는데, 이 사츠마 번의 상인도 가지고 있는 부가 꽤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이 사츠마 번이 있는 가고시마도 밀무역으로 크게 성장을 했는데, 훗날 고구마와 담배도 이 사츠마 번에서 몰래 들여와 재배를 시작했을 정도로 동남아시아와의 밀무역이 성행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츠마 번에서 유황과 구리를 최대한 얻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작가의말

현대에는 이질에 걸렸을 때 사망률이 1% 미만이지만, 항생제와 링거가 없던 시대에는 이질의 치사율이 15~20%였으며 티푸스의 경우에는 좀 더 높은 25~50%의 치사율을 가졌다고 합니다.

콜레라의 경우에는 러시아에서만 100만 명 이상이 죽었고, 전 세계적으로 발병자의 50% 이상이 사망을 했다고 하니 세균성 전염병을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와 치료 약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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