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일기도(壱岐島)에 오다. >
“하하하. 후추를 구하러 가는 길이었구려. 그렇다면 다행이요. 내가 후추 1200근(약720kg)을 가지고 있는데, 힘들게 류큐까지 갈 필요 없이 내게 싸게 사 가시오.”
삼식이는 물론이고 원종도 소 사다쿠니의 말에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둘 다 동시에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먼저, 소 사다쿠니는 ‘후추 재고가 쌓여 고민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대마도에 그렇게 후추 재고가 쌓이게 만든 것이 우리 때문이라는 것을 소 사타쿠니는 모르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왜의 상인들은 중국 남부나 동남아, 유구에서 후추를 구해서 본토에 팔거나 조선에도 후추를 팔아왔었다.
그러다 보니 왜의 상인들은 대마도를 거쳐서 조선으로 향하게 되는데, 대마도 도주인 소 사다쿠니가 이익을 더 얻기 위해 후추를 상인들에게 구매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후추가 조선에서 팔리지 않으니 1200근이나 되는 후추 재고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문제는, 이미 조선의 후추가격이 왜의 후추가격보다 더 낮아져 버렸다는 데 있었다.
원종이 직접 다녀온 말라카 원정으로 인해 후추가 대량으로 수입되어 가격이 저렴해졌고, 염호진 참군이 2차로 다녀오는 원정이 성공하게 되면 후추 가격은 더 떨어질 터였다.
헌데, 소 사다쿠니는 그걸 모르고 후추에서 이익을 얻고자 재고를 잔뜩 쌓아두고 있었으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였다.
그러다 우리가 유구로 간다고 하니 후추를 구하러 가는 것이구나 지레짐작하고 말을 꺼낸 것이었다.
뭐, 그게 아니면 조선에서 후추를 처분하는 게 힘들어진 왜의 상인들에게 눈퉁이를 맞아서 어떻게든 빨리 후추를 처분하고 싶어 하는지도 몰랐다.
“저 멀리 류큐까지 가는 것보다는 비싸겠지만, 품질 좋은 후추를 내게서 사가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네. 어떤가?”
“아, 안타깝게도 춘봉 상단이 다른 상인들에게 초대를 받을 때 이미 사쓰마 번(薩摩藩)의 상인에게 후추를 구매하기로 약조를 하였습니다.”
삼식이가 소 사다쿠니의 요청을 이미 사쓰마 번과 약조했다며 정중하게 거절하자 소 사다쿠니는 지었던 미소를 지워버렸다.
“들도록 하지.”
자신의 생각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자 소 사다쿠니는 바로 젓가락을 들었는데, 그제야 원종도 젓가락을 들었다.
밥은 쌀이 20% 정도였고, 나머지는 다 잡곡이었는데, 쌀겨가 제대로 벗겨지지 않은 게 많았다.
도정 기술이 딸리는지 아니면, 양을 늘리기 위해 일부러 쌀겨를 벗기지 않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국도 시금치와 토란이 들어간 된장이었고, 절임 채소도 시금치였다.
그래도 바다 섬이라고 구워 올라온 볼락은 꽤 맛있었다.
밥을 볼락 소금구이로 다 먹자 상을 내어가고, 새로운 상이 들어왔다.
젓갈과 무조림, 권패류(소라, 고동류) 삶은 것이 나왔는데, 본래 술이 나와야 하는데, 술이 나오지 않았다고 이상하다며 채솔이가 귀띔해줬다.
아마도, 자신의 후추를 팔지 못하니 술을 빼버린 것 같았다.
두 번째 상을 비우자 소 사다쿠니는 자리를 떴고 자리가 파했다.
그렇게 왜에서 먹는 첫 한 끼가 어중간하게 끝이 났다.
연회를 가장한 식사가 끝이 났지만, 삼식이는 소씨 가문의 가로들과 교섭에 나섰다.
성하(城下) 마을에 우리 춘봉 상단의 상관을 만들기 위한 교섭이었다.
처음에는 상관을 만드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으나 우리가 대마도에서 팔 것이 옹기와 토기 같은 생활 물품이라고 하자 허락을 해주었고, 대마도의 해산물을 사서 조선에 판다고 하자 상관의 자리까지 알아봐 주었다.
“너희들은 대마도에서 거주하면서 그릇을 싸게 사람들에게 팔며 인심을 쌓거라. 실과 바늘도 인심을 얻을 수 있게 싸게 팔면서 어려운 이들이 잡아 오는 해산물을 사서 비축하거라.”
선원학교에서 역관 과정을 거쳐 왜어를 하는 세 명을 대마도에 남겼는데, 상관의 운영보다는 훗날을 위해 알을 박아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산물이 쌓이면 왜관 개시로 가는 왜인들의 배를 얻어타고 동래 지점으로 가서 처분하도록 하면서 대마도 사람이 되거라. 이득이 남지 않아도 되니 대마도의 근황과 인심을 얻는 데 힘쓰거라.”
“네엡.”
그렇게 세 명을 남기고 일기도(이키섬)로 향했는데, 대마도와 일기도(이키섬) 거리는 대략 50km로 부산에서 대마도와의 거리와 비슷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대마도를 출발하니 일기도에 정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기도에도 상륙을 하기 위해 누전선 한 척만 다가갔고, 지나가는 길에 들른 것이라고 하자, 일기도의 도주가 상륙을 허락해 주었다.
이때의 일기도는 마츠우라 씨(松浦氏)의 계파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 마츠우라라는 씨족은 오래전 헤이안 시대부터 히젠국(지금의 나가사키 현으로 규슈의 북서쪽을 일컫는다)에 퍼져 살았는데, 말이 씨족이지 사실상 왜구의 세력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 마츠우라 씨 일족은 48개의 계파가 있었는데, 이를 마츠우라 48당이라 부르며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해적질을 했는데, 당시로는 규수 북서부를 아우르는 강자였다.
물론, 1472년 오니코다케성(사가현의 산성)의 하타 야스에게 패해 일기도를 빼앗기게 되고, 다시 전국시대로 접어들어 아리마 씨에게 일기도의 도주 자리가 넘어가게 되는데, 대마도와 다르게 부침이 큰 곳이었다.
50km 떨어져 있는 대마도는 하극상의 시대라는 전국시대에도 소 씨가 계속 지배를 했고, 700년이 지난 메이지 시대까지 소 씨들의 섬이었으니 지척 거리임에도 확연히 다른 역사를 가진 섬이었다.
이러한 일기도의 사정을 알기도 했고, 상관을 둘 만큼 큰 섬도 아니었지만, 훗날을 대비해서 여기에도 상관을 두기로 했다.
도주인 마츠우라 켄타로는 조선의 상인들이 들렀다고 하자 성으로 불러들여 영접했다.
이곳도 갑작스레 온 것이라 예법에 맞는 식삼헌은 제외가 되었고, 생선구이와 채소절임, 채소 된장국이 그대로 상에 올라왔다.
이걸 보고, 대마도에서 나온 식사가 우리를 소홀히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저 대마도든 일기도든 이렇게 먹는 것이 당연하단 것을 깨달았다.
다만, 두 번째 상이 들어올 때 참돔을 구운 것이 따로 또 들어왔다는 것이 차이였는데, 도주인 마츠우라 켄타로는 삼식이와 나를 포함해 상단의 수뇌부들에게 일일이 도미구이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거 아시오? ‘다이노 다이’라고?”
왜어에서 돔을 ‘다이’라고 불렀는데, 다이의 다이라면 돔 안의 돔이라는 뜻이었다.
마츠우라 켄타로의 말에 원종은 도미 가슴지느러미 안쪽에 있는 그 뼈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추정이 되었지만, 모른다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 마츠우라 씨족에는 속설이 있는데, 도미 안의 도미를 찾아내어 뼈를 발라낸다면 복이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있소이다. 다들 도미를 한 마리씩 받았을 테니 한번 다이노 다이를 찾아서 꺼내 보시오.”
마츠우라 켄타로의 말에 상단 사람들은 젓가락을 놀려 가며 이 도미 안의 도미 뼈를 찾아낸다고 신경을 썼다.
하지만, 원종은 그것보다 마주 앉아 있는 마츠우라 씨의 가신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가신들은 뼈를 찾아내는 우리를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재미와는 뭔가 다른 그런 것을 찾는 눈치였다.
“삼식 형. 이 도미 안의 도미 뼈는 대가리 옆 가슴지느러미가 붙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살 안에 있어. 아가미 살 옆에. 어 거기 맞아.”
원종은 젓가락으로 손쉽게 살집째 끄집어내고는 부서지지 않게 손으로 들어 살점을 입으로 살살 발라내며 먹었다.
그러자, 살이 없어지며 서서히 투명한 흰색의 뼈가 드러났는데, 이때가 중요했다.
유명한 일식집에 가면 횟감으로 쓴 이후 탕을 끓이기 전에 도미 머릿살을 구워서 주는데 이때 주방장들이 손님들에게 이 도미 안의 도미 뼈를 꺼내어 이 뼈 주위에 붙은 살까지 발라먹어야 도미 한 마리를 다 먹은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한쪽을 발라보게 하는데, 이 뼈가 약해서 대부분의 손님들은 뼈를 부수기 일쑤였다.
하지만, 원종처럼 젓가락이나 손으로 뼈를 발라내지 않고, 입안의 혀로 살살 발라내면 이 다이노 다이 뼈를 쉽게 발라낼 수 있었다.
원종이 입으로 쉽게 다이노 다이를 발라내자, 가신들은 물론이고 도주인 마츠우라 켄타로도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런 소탈한 모습을 보면 대마도의 소 씨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물론, 법도를 모르는 해적들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몰랐다.
삼식이도 내가 하는 양을 보며 입으로 뼈를 발라내었고, 절반 넘는 사람들이 다이노 다이를 발라내어 내보였다.
“큰 갓이 아닌 작은 갓을 쓴 이도 이렇게 여유롭게 다이노 다이를 찾아내는구만.”
“큰 고기를 먹으면 작은 고기도 따라 먹을 수 있다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까? 급하게 젓가락이나 손가락을 쓰지 않고, 내밀하게 혀로 살을 발라내면 모든 것을 먹는다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까?”
삼식이는 뼈를 발라 먹을 때 맞은편 가신들의 시선이 묘했다고, 혹시 이런 것을 떠보는 게 아닌지 이야기해보라는 원종의 말을 그대로 도주에게 왜어로 이야기를 했다.
“하하하. 총명하구만. 갓을 쓴 이유가 있는 것이었어. 그대의 말이 맞다. 나 마츠우라 켄타로는 큰일을 해보고 싶다. 이 이키섬은 너무도 작지.”
“어떤 큰일이기에 이런 시험을 하신 겁니까?”
“하하하. 그걸 어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가? 하지만 이건 이야기할 수 있지. 큰 도미를 먹으면 작은 도미는 언제든지 마음먹은 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지. 둘이 이야길 하고 싶군.”
도주의 명에 삼식이가 따로 불려갔고, 한참이나 지난 이후 삼식이가 돌아왔는데, 삼식이의 얼굴 표정을 보니 나쁜 일은 아닌 듯했다.
“술을 가져와라. 조선의 상인들은 참으로 좋구나. 하하하.”
그렇게 술을 대접하는 마츠우라 켄타로의 즐거움에 가신들도 술을 연거푸 마셨고, 춘봉 상단의 사람들도 술을 마시고 흥겹게 자리를 물러날 수 있었다.
***
“확실히 상단주 님의 말이 맞았습니다.”
“뭐가?”
“그전에 하신 이야기 있잖습니까? 왜인들은 권모술수와 거짓에 능하여 신뢰하기 힘들다는 거 말입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헌데, 도대체 마츠우라 도주는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자신이 큰 도미를 먹겠다고 했습니다.”
“아, 은유 말고 바로 이야기 해봐.”
“대마도라는 큰 도미를 자신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작은 도미인 이 일기도를 우리에게 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뭐? 하하하.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 해줬나? 그렇게 하자고 했나?”
“저는 장수가 아니라 상인이기에 상인의 방법으로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대마도 도주인 소 사다쿠니가 후추를 1200근이나 가지고 있어서 힘들어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조선의 후추값이 이제는 왜의 후추값보다 싸다고 해주니. 마츠우라 도주가 아주 좋아했습니다.”
“흠. 마츠우라 도주가 머리가 좋다면 후추값으로 손해를 보고 있는 대마도의 경제를 파탄 낼 수 있겠지.”
“어떻게 할까요? 조선의 왜관 개시에도 손을 쓰면 대마도로 들어가는 물건을 조절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일기도에서도 같이 손을 쓴다면 대마도의 경제가 힘들어질 겁니다.”
대마도 도주의 실정으로 대마도의 상황이 나빠진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더구나 일기도의 도주가 직접 나서 준다고 하니 나쁘지 않았다.
물론, 마츠우라 도주가 대마도의 도주가 되었을 때 더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겠지만, 지배자들 간의 싸움에는 늘 민중의 희생이 따르는 법이었고, 민중의 불만이 많을수록, 조선이 덕을 베풀며 안아줄 때 쉽게 민심을 얻을 수 있는 법이었다.
“재미있네. 이거 진행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