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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21화 (221/327)

< 221. 그녀들의 사정. >

한국식 탕수육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동북 삼성에 있는 꿔바뤄우(锅包肉)에서 유래 했다는 설과, 산동과 북경 지역의 음식인 탕추리지(糖醋里脊)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그중에서도 산동의 탕추리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한데, 실제, 중국이 공산화될 때 산동의 중국인들이 인천으로 넘어와 중국집을 차리면서 탕수육이란 음식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중국에는 예전부터 당(糖)과 식초(醋)를 넣어 만드는 음식이 많아 유래를 알기 힘든 것이 보통인데, 이 탕추리지의 형태는 1900년대 초에 만들어졌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었다.

1895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군이 산동 반도의 일부분을 점령했는데, 1898년 일본군이 철수하며 주인 없는 자리에 영군 해군이 들어오며 위해시를 조차하게 되었다.

산동 반도의 위해시에 영국 임시 해군 기지가 만들어지며 영국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는데, 당시의 중국요리는 젓가락으로 먹는 것이 대부분이라 영국인들의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포크로 찍어 먹을 수 있는 중국 음식을 내놓으라고 청나라의 관리나 요리사들을 닦달했는데,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탕추리지였다.

동북 삼성의 꿔바뤄우 역시 하얼빈을 조차한 러시아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으니, 돼지고기를 튀겨 달고 신 소스에 버무려 먹는 탕수 요리 자체가 외세의 식문화에 굴복한 요리의 형태였다.

이런 탕수육을 이용해야 했다.

“절에서 버섯으로 처음 만들었다고 했지만, 내가 창조한 요리는 아니야. 황제와 치우를 알아?”

“황제와 치우요? 중국의 옛 신들 아닌가요?”

종희는 갑자기 옛 전설에나 나오는 황제와 치우를 이야기하자 눈이 동그래졌다.

“맞아. 그때 묘족의 왕인 치우가 전쟁에서 이길 때 황제에게 승리의 음식을 바치라고 했는데, 그때 달고 신 양념에 튀긴 음식이 나왔다고 해. 즉, 승리자에게 바쳐진 음식이 바로 이 당수 음식이야.”

원종은 유사 역사학이라고 불리는 치우와 황제의 이야기를 꺼내어 종희에게 음식의 유래를 설명했다.

이런 유사 역사학을 써가며 탕수육에 대해 종희에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앞으로 상단 일을 해야 하는 종희에게 하나의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아직 조선 초기이기에는 중국을 상국으로 모시는 사대주의(事大主義)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유학자와 사대부들이 책봉사(冊封使)로 중국에 다녀오며 조선의 왕이 되려면 중국 명나라 황제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고려 말 고려의 왕을 원나라 황제가 정해주었듯이 조선의 왕도 그렇게 책봉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서서히 퍼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였다면, 중국의 황제가 패해서 만들어 바쳤다는 탕수육이라는 음식을 우리가 마음대로 먹으면 안 된다고 나서는 이가 있을지 몰랐다.

그런 중국을 상국으로 모셔야 한다는 의식을 없애고자 중국이 외세에 굴복해 만들어 바친 탕수육으로 중국도 별거 아니구나 하는 의식을 종희에게 심어줘야 했다.

그래야 나중에 무역이든 뭐든 중국과 상대할 때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중국이 굴복해서 만들었다는 요리를 먹는다는 것이 별거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음식을 들을 때마다 유래를 알려준다면 은연중에 중국을 이기고 중국인들이 만들어 바치는 요리를 먹어야겠다는 의식을 심어 줄 수 있었다.

이런 이미지 인식작업의 대표적인 것이 말을 탈 때 밟고 타는 ‘등자(鐙子)’였다.

단순히 말을 다루기 쉽게 쓰는 등자였지만, 이 등자의 발 밟는 부분에 적의 이름이나 상징을 만들어 넣어 늘 말을 탈 때 적의 이름을 밟고 탄다는 의식을 주입 시킬 수 있었다.

등자처럼 이 당수 음식으로 일상생활에서 중국을 상국으로 모시는 그런 관념을 막아야 했다.

“그렇군요. 중국과 싸워 이긴 후에 먹는 음식이라니. 음식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다른 음식들도 이 당수처럼 그런 이야기가 있는 건가요?”

“물론이지.”

원종은 음식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나 회회총(양파)을 형이 받아 온 이야기를 맛깔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깨주기 위해 말라카를 다녀오며 만든 세계지도를 보여 주며 회회총이 저 멀리 지중해 연안에서 중동을 지나 중국 한국으로 전해졌다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세상은 참으로 넓어. 여기가 회회총이 처음 재배된 곳이고, 여기가 내가 배를 타고 갔다 왔던 말라카 왕국이야.”

“어머나, 저는 정말 정저지와(井底之蛙)의 개구리였어요. 세상이 이리 넓을 줄이야. 중원이 세상의 중심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저 한 부분밖에 안 되었군요.”

“그렇지. 그래서 중국의 황제들은 그런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해금령을 내려 바다로 나서지 못하게 막은 거야. 세상이 넓은 것을 알면 세상의 중심이 중원(中原)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천하(天下)라는 말이나 천자(天子)라는 말을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게 되니깐.”

“아, 중원이라는 말에는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도 있으니. 저도 이 지도를 몰랐으면 계속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이리 넓은 세상이었다니.”

종희는 세계지도를 보며 중국이 생각보다는 작고, 중동이나 아프리카, 시베리아라는 땅이 훨씬 더 크다는 것에 놀랐다.

“그럼, 여기 말라카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세요. 정녕 설탕이 땅에서 막 솟구치듯이 나오는 건가요? 후추가 나무에 지천으로 달려 있구요?”

“하하하. 그 이야기는 나보다 더 재미있게 해줄 사람이 있지. 그리고 조선을 출발해서 중국을 돌아 말라카 까지 간 일기도 있어. 그걸 보는 게 더 재미있을 거야. 언년아! 항해일기를 가지고 오거라!”

신혼 방의 방문 앞에는 내 몸종인 언년이와 종희의 몸종인 정월이가 번갈아 가며 있었는데, 정월이가 15살로 가장 나이가 많았다.

언년이가 항해일지 4권을 들고 들어와 책을 두고 나가려는 것을 붙잡았다.

“어디를 가느냐.”

“네? 두 분이 만들어 내는 깨가 막 떨어지는데 제가 있어도 되겠습니까요?”

“하하하. 부인에게 네가 언문을 가르쳐 주어야지.”

“언문은 저도 익혀 압니다.”

“아, 부인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오. 언문을 안다고 하지만, 이 책에 쓰인 언문은 좀 다르오. 한번 봐보시오. 알아보겠소?”

종희는 언문을 모르는 취급을 받자 속에서 울컥했으나, 항해일기라는 책을 펼쳐보곤 진짜 글을 읽을 수가 없자 당황했다.

“아니, 이게 무슨... 분명, 생긴 모양은 언문이 맞사오나. 읽을 수가 없사옵니다. 글자의 줄이 이렇게 안 맞는데 어찌 읽습니까? 그리고 이 표기나 여백은 또 무엇입니까?”

“하하하. 내가 그래서 언년이를 들인 것이오. 내가 일일이 가르쳐 줄 수도 있지만, 같은 여자인 언년이에게 새로 만든 언문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게 편하지 않겠소?”

원종은 어중간하게 앉아있던 언년이를 끌어 종희 앞에 앉혀줬다.

“항해 일기도 언년이가 썼으니 새 언문을 언년이에게 배우고 말라카에 다녀온 이야길 들어 보시오. 나보다 더 재미있게 이야길 해줄 거요.”

원종은 방에 언년이를 남겨두고 나갔는데, 절대로 종희에게 가로 읽기나 띄어쓰기, 느낌표 같은 표기를 가르치는 게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흠흠. 사실 몇 명에게 똑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가르친다는 게 조금 귀찮긴 했다.

그리고 말라카까지 다녀온 이야기를 하다 보면 며칠이나 걸릴지 몰랐기에 언년이에게 맡긴 것이었다.

언년이는 내 몸종으로 언제나 데리고 다녀야 했기에 이참에 종희와 언년이가 친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방을 나서는데, 문 앞에서 안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정월이도 보였다.

“정월이 너도 안에 들어가서 언문을 배우고, 같이 이야기를 듣거라.”

“네? 쇤네가 그래도 됩니까요?”

“그래. 된다. 너도 언년이와 함께 나와 종희의 수발을 들며 평생을 같이 갈 것이지 않으냐. 그러니 내가 쓰는 언문을 배워야 너도 내가 남기는 글을 읽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들어가 배우거라.”

몸종 정월이는 글을 배우게 해줘서 고마운지 내게 절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

“이 가로쓰기나 띄어쓰기는 도련님이 만드신 건데, 아차! 이제는 도련님이 아니네요. 그럼,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하지. 대감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 주인마님이라고 부르면 되네요. 헤헤.”

종희는 헤헤거리며 웃는 언년이를 가만히 살폈다.

아직 어리긴 하나 눈에 총기가 있고, 늘 헤헤 웃으며 밝게 쫑알쫑알대는 것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천진난만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래서 남편이 언문을 가르치고, 머나먼 말라카까지 데리고 다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의 원행에도 데리고 다닐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아직은 아니겠지만, 자연스레 첩이 될 것만 같은 아이였다.

사대부 양반의 축첩이 불법도 아니었고,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했으니, 그렇게 질투가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삼촌들까지 다 첩을 들였기에 흠이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휴우...”

“에구. 마님. 어려우신가요? 다신 천천히 설명을 할까요?”

안절부절못하는 이런 언년이의 모습이 또 귀엽기도 했다.

형제간으로는 오빠만 있고, 몸종인 정월이도 나이가 더 많았기에 어린 여동생이 있었으면 했는데, 첩으로 들일 것 같은 언년이를 동생으로 여기면 될 것 같았다.

“아니다. 다른 일 때문에 한숨이 나온 것이란다. 이제는 읽을 수 있겠구나. 정월이는 알겠느냐?”

이미 언문을 알고 있었기에 가로쓰기가 된 언문을 종희는 쉽게 깨우쳤다.

하지만, 정월이는 아예 글을 처음 배우기에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정월이를 언년이가 다시 가르치는 모습을 보는데,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남편이 밖으로 돌게 되면 몸종을 첩으로 들여 어떻게든 집에서 붙잡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남정네들은 자연스레 데리고 온 몸종을 탐한다며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몸종을 탓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아직 닥치지 않은 먼 훗날의 일이었지만, 그런 걱정부터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여인의 마음이었다.

언젠가 닥칠 일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언년이가 헤헤거리며 항해일기를 읽어주며 기록되지 않은 남편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주자 언제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 까먹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

“언년이에게 이야길 다 들었소?”

“네. 쪼그만 것이 이야기에 재주가 있어서 아주 즐거웠답니다. 서방님이 곁에 두실 만합니다.”

“다행이군. 그래 그 항해일기를 듣고 다른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소?”

“그렇지 않아도 친정의 고종사촌 형제들에게 해주고 싶었답니다.”

“일일이 그렇게 항해일기를 보여주며 사람이 설명해주면 재미야 있겠지만, 일일이 그 이야기를 해주기가 사실 힘드오. 언년이처럼 재미있게 이야길 할 수 있는 재주도 있어야 하고. 그리고 책도 원본 밖에 없고 하니 마누라에게 부탁할 일이 있소.”

“무슨 일인가요?”

종희는 남편이 처음으로 하는 부탁이라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려고 하고 있었다.

“내 항해일기를 책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소. 그래서 이미 금속활자까지 다 만들었는데, 그 일을 맡길 사람이 없는 형편이오. 해서 마누라가 언년이와 정월이를 데리고 책을 만들어 줬으면 하오.”

< 221. 그녀들의 사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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