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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19화 (219/327)

< 219. 당수(糖水). >

“며칠 있으면서 절밥을 보니 배울 것이 그리 없어 보였습니다. 뭐 특별한 것이 있어야 배우는데, 다 풀 조각을 삶거나 쪄서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전부더군요.”

철금의 배울 것이 없다는 말에 원종도 동의했다.

사실, 산사의 음식은 단순했다.

그런 단순한 음식을 잘 포장해 주는 단어가 정갈함이었고, 그런 정갈함 이란 단어는 지금 시대가 아니라, 훗날 각광을 받았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현대에는 이 정갈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산사의 음식이 건강과 지구를 위하는 음식이라고 각광을 받게 되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는 아니었다.

원종은 절간의 부엌인 공양간에 들어가 뭔가 재료가 있는지 살폈는데, 곡식으로는 보리와 콩, 조가 있었고, 반찬이라고 할만한 건 된장과 간장, 무를 소금물에 절인 동치미 정도가 끝이었다.

“두부는 없소이까?”

“시주님. 두부는 만들어 드릴 수는 있으나 소금과 콩이 귀하다 보니...”

공양간에서 일을 하는 청도 스님은 귀한 콩을 다 털어 갈까 미리 겁을 내고 있었다.

“그럼 되었소이다. 혹시 버섯이나 죽순은 있소이까?”

“버섯은 몇 개 있으나 죽순은 없습니다. 이곳은 대나무가 자라지를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경기도 북부였기에 대나무도 남부 수종이라 여기에서는 자라지 못했다.

대나무의 수목한계선은 충청도가 한계였다.

뭐, 미래에 지구 온난화로 온도가 올라가 강원 지역에서도 대나무가 자라게 되지만, 조선 시대에는 충청북도가 대나무의 자생 한계였다.

“그렇다면 버섯을 가져오고, 연잎은 구할 수 있소?”

“근처 못에 연꽃이 있긴 있사오나 시기가 일러 잎이 아직 나오지 않았사옵니다. 연근 뿌리는 작년에 수확한 것이 남아 있고, 언제든 뿌리째 뽑아 올 수는 있사옵니다.”

“그럼, 버섯과 연근을 가져와 주시오.”

연잎밥을 해서 절에 맞는 밥을 해주려고 해도 무슨 재료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밥은 잡곡에 콩과 은행을 넣은 약밥 스타일로 할 수밖에 없었고, 반찬으로는 버섯과 연근을 가지고 요리하기로 했다.

어딜 가든 기름과 밀가루를 구할 수 있는 현대가 아니었기에 들기름과 밀가루, 소금, 설탕 채소들을 김고도개가 지고 다녔는데, 공양간에 솥을 걸고 들기름을 부어 튀길 준비를 했다.

“튀김 요리이옵니까?”

“튀김은 튀김인데, 처음 보는 요리일걸세. 먼저 연근을 얇게 가로로 자르고, 파와 회회총(양파), 당근을 잘게 썰게나.”

철금이와 공양간의 청도 스님에게 일을 맡기고는 청도 스님이 가져온 버섯을 보는데, 느타리버섯이 대부분이었고, 표고버섯과 목이버섯이 약간이나마 섞여 있었다.

“이 버섯들은 따로 재배를 하오? 아니면 산에서 채취를 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오?”

“네? 버섯도 곡식처럼 키우는 것입니까요? 그러고 보니 산에서 늘 버섯이 나는 곳이 있기에 가서 가져왔으니 곡식처럼 키우는 것도 가능하긴 할 것 같군요.”

“재배하는 게 아니로군. 그럼, 내가 다음에 올 때는 버섯을 재배하는 방법을 알려주겠으니. 참나무나 밤나무의 그루터기를 모아두게.”

그러고 보니 버섯, 특히 표고버섯은 재배도 쉽고, 거의 완전식품에 가까운 식자재였다.

표고버섯은 종균이 자랄 수 있는 나무만 있다면 어디서든 재배가 가능했고, 느타리버섯은 표고버섯에 비해 영양분이 좀 부족하지만, 톱밥과 황토 옹기만 있으면 집에서도 키울 수 있는 버섯이었다.

보릿고개를 넘기는데도 도움이 되고 밥상을 풍성하게도 해줄 수 있는 것이 버섯이었으니 양식을 추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버섯의 재배에 사람들이 욕심을 낼 수 있게 버섯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알려야 했다.

바싹 말려진 느타리와 표고버섯을 물에 담가 불리고, 밀가루와 전분에 들기름을 넣어 반죽을 만들었다.

달걀도 넣으면 좋지만, 스님들이 먹는 것이다 보니 달걀은 제외했다.

버섯과 연근에 반죽을 입혀 기름에 튀겨내었는데, 철금은 손질한 파와 양파, 당근도 반죽에 넣으려고 했다.

“그건 튀기지 않네. 그냥 무작정 다 튀겨 버리면 흔한 튀김이 되는 것이지.”

“그럼, 이 채소들은 어디에 쓰는 겁니까요?”

“그건 당수(糖水)에 쓸 것이네.”

원종은 솥에 물과 식초, 설탕을 1:1:2 비율로 넣어 끓였고, 거기에 대파와 양파, 당근, 목이버섯을 넣었다.

토마토나 케첩이 있었다면 좀 더 감칠맛이 나는 탕수육 소스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간장 베이스의 소스로도 충분했다.

식초의 시큼한 냄새와 설탕의 달콤한 향이 같이 나니 이 냄새만으로도 철금과 청도 스님의 코가 벌렁거렸다.

“이 당수를 바로 튀김에 올리면 되네.”

버섯과 연근 튀김 위로 뜨거운 당수를 붓자 튀김 옷에서 습기를 받아들이며 나는 파사사삭 하는 소리와 연기가 식욕을 자극했다.

“밥과 같이 먹어도 되지만, 그냥 먹어도 충분히 한 끼가 될 수 있네.”

철금은 당수의 새콤달콤한 냄새에 이끌리듯이 버섯 당수를 집어 먹었다.

철금은 분명 입에 넣었을 때는 당수의 새콤달콤함과 버섯 튀김옷의 눅눅함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버섯을 씹어보자 당수가 스며들지 못한 튀김옷에서 바삭거림이 치고 나왔다.

그리고, 버섯이 표고버섯이었는지 표고의 진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식초와 설탕의 새콤달콤한 맛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흙 향과 비슷한 표고버섯의 향이 입안 가득 대자연의 맛을 불러왔다.

“표고버섯을 국물을 낼 때 사용하기는 했으나, 이렇게 향이 강한 줄은 몰랐습니다. 기름에 튀겨지며 그 향이 반죽에 가두어져서 그런 겁니까?”

“맞네. 뜨거운 열이 표고버섯에 가해지면 그 향이 더 강해지는데, 반죽에 둘러싸여 있으니 그 향이 안으로 응집되어 있다가 입안에서 터져 나온 것이지. 연근 당수도 한번 먹어보게.”

“오! 이 식감은 뭔가 토란과 닮았으면서도 느낌이 다르군요. 얇게 썰어 튀겨서 그런지 연근의 딱딱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새콤함과 의외로 잘 맞고요. 왜 저는 이제까지 이런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요.”

철금은 다시 맛을 느끼기 위해 연근과 버섯 당수를 천천히 씹어 맛보기 시작했다.

철금은 물론이고 청도 스님도 연근 당수를 집어 먹었는데, 청도 스님은 눈치를 보며 당수가 묻지 않은 것을 입에 넣었다.

“오신채(五辛菜)에 들어가는 파가 당수에 있기에 피해 먹는 것이오?”

“네네. 중이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맛과 향이 강해 수행에 방해가 된다며 마늘과 파·부추·달래·흥거를 불가에서는 금했는데, 백합과의 흥거란 식물은 동아시아에서 구할 수 없기에 훗날 전해지는 회회총 양파를 넣어 다섯 가지 음식으로 묶어 금했다.

청도는 입에 연근 튀김을 넣었는데, 그의 입에서는 당수의 새콤달콤한 단맛이 없다 보니 바삭거리면서 기름기 가득한 맛이 느껴졌다.

헌데, 이 기름진 맛이 이제까지 삶거나 찐 채소만 먹던 청도의 입에 충격을 주었다.

절밥이라 불리는 공양밥은 부처의 가르침 중 하나인 자비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었다.

생물을 최대한 죽이지 않으면서 먹을 것을 만들어 먹는다는 그 자체가 자비에서 시작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육식을 금하고 산에서 채취할 수 있는 채소와 최소한의 곡식으로 공양을 했다. 거기에 검소함이란 가치가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절의 공양밥에는 기름을 거의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입안 가득 느끼한 듯하면서도 번들거리는 기름의 맛이 느껴지니 충격처럼 기름 맛이 다가왔다.

당수라는 것에 적셔 먹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맛있다면 귀한 설탕과 식초가 들어간 당수에 적셔 먹는 것은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청도의 마음속에서 당수를 찍어 먹어볼까 하는 마귀가 자라났다.

그런 청도의 마음을 아는지 금세 원종이 파를 빼고 당수를 새로 만들어 주었다.

“이 당수가 핵심인데, 이게 없으면 무슨 맛이겠소.”

그제야 청도는 염불을 한번 외우고, 연근 튀김과 버섯 튀김을 당수에 찍어 먹기 시작했다.

“아아! 철금 시주가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소이다. 식초와 설탕의 새콤달콤함이 아주 크지만, 이 표고버섯의 향이 그것을 다 아래로 깔아 버립니다. 표고버섯의 향이 이렇게 좋았을 줄이야. 아미타불.”

“그럼, 오늘 종이를 만들었던 스님들에게 공양할 수 있게 대량으로 만들어 봅시다. 만드는 법을 확실히 알려주겠소이다.”

“헌데, 이 당수에 설탕이 들어가는데, 이 귀한 설탕을 더 쓸 수가 있습니까?”

“설탕 걱정은 하지 마시오. 종이가 팔리면 설탕으로 매일 차를 마셔도 될 정도로 내가 챙겨 주겠소.”

“아미타불. 그렇게만 된다면 절간이 정녕 극락에 비견 될 것입니다.”

청도의 극락이라는 말처럼 당수에 버섯 튀김을 찍어 먹어본 스님들은 기름기가 흐르는 버섯 당수에 대만족을 했다.

기름기를 평소에 먹지 않던 이들이었기에 버섯과 연근 튀김의 기름기 자체가 입맛을 배가시켜 준 것이었다.

“설탕을 한 포대 주고 갈 것이니 기름을 짜서 버섯과 연근으로 자주 해 먹게나. 버섯은 참나무 그루터기에 도끼로 흠을 내고 그 흠에 흙을 쌓은 후 채취한 버섯을 그 흙에 가져다 비비면 그 자리에서도 버섯이 날 것이네.”

“아, 버섯의 재배를 그렇게 하는 것이군요.”

“더 좋은 방법은 내가 다음에 오면 알려주겠네.”

이후로 청도 스님에게 토란과 가지를 튀겨 당수와 먹어도 좋다며, 다른 채소를 튀겨 먹는 것도 알려주었다.

철금에게는 밀가루와 전분을 섞고, 계란을 넣어 만드는 반죽을 알려주었고, 버섯 대신 돼지고기나 소고기로도 만들어 먹는 것이 원조라고 알려주었다.

“고기도 좋지만, 당수는 모든 튀김에 다 될 것 같습니다. 새콤달콤함이 튀김의 느끼함을 잡아주니 기름에 질려 먹지 못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헌데...”

“헌데?”

“이 당수는 제조님이 생각하는 포장은 힘이 들 것 같습니다. 장터에서 바로 먹는 것이라면 괜찮겠지만, 두껍지 종이를 통한 포장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당수를 부어서 가져가다 보면 흘러내릴 수도 있을 것 같고, 튀김의 반죽옷이 눅눅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찍먹파와 부먹파가 나뉘게 되는 포장 배달의 문제까지 알아본 철금이는 확실히 음식에 대한 센스와 눈치가 좋았다.

“하하하 그걸 바로 알아채다니 놀랍군. 그럴 때는 포장해 가는 이의 집에서 그릇을 들고 오게 하거나 한번 쓰고 버릴 수 있는 옹기에 당수만 따로 주면 되네. 그러면 집에서 중탕으로 다시 데워 먹을 수 있을 것이야.”

사실 배달원이 배달해주고, 그릇을 찾아오는 것까지 알려주고 싶었지만, 배달원을 통한 배달은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아하. 그렇군요. 그럼 어서 빨리 절을 벗어납시다요. 얼른 버섯 대신 고기로 만들어 먹어보고 싶습니다.”

종이 만드는 일이 끝이 났기에 한양으로 돌아가는데, 돌아가는 길에 한양 공랑 점포에서 보낸 사람과 만났다.

“문경에서 대감마님이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요. 장가가야 할 사람이 절에서 내려오지 않으니 출가한 것인지 알고 얼른 알아보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시간이 그리되었구나. 너는 다시 돌아가서 우리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거라. 그리고 아버지는 어디에 모셨느냐?”

“삼식 행수가 강남에 얻은 집으로 모셨습니다요.”

“알았다 바로 그리로 갈 것이니 너도 얼른 돌아가 출가하지 않았고 돌아간다고 전해주거라.”

종이를 만들기 위해 절에 있었다고, 출가했을까 염려했다는 소리에 웃음이 나왔지만, 남자가 절에 가는 일 자체가 별로 없었기에 그렇게 오해할 만도 했다.

***

“네가 하도 오지 않아 내 먼저 신숙주 대감을 만났다. 혼인이 열흘 후인데, 신랑이 절에서 돌아오지 않으니 출가를 한 것인가 싶었다.”

“아닙니다. 중들에게 이 종이를 만들어 납품하라는 계약을 하고 왔사옵니다.”

원종은 백상지 1권을 아버지께 건네었고, 흔하지 종이의 단가가 보통 한지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며 마음 놓고 종이를 쓸 수 있다고 이야길 했다.

“그럼 이 기와집에서 앞으로 살 것이냐? 좁지 않느냐?”

내가 없는 동안 삼식이가 강남 압구정 쪽에 기와집을 지었는데, 사랑과 안채만 있는 작은 기와집이었다.

삼식이는 한명회의 압구정 인근이라 한명회의 후광을 위해 이쪽으로 집을 지은 것 같았다.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집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더 크게 가호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한양 도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땅값도 저렴할 터이니 논밭을 늘려가도록 하여라. 그래야 후손들이 땅에 기대어 편히 살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아버지의 말을 듣고 보니, 인근 역삼동과 서초동에 땅 투기를 미리 할까 하는 욕심도 들었다.

< 219. 당수(糖水). > 끝

작가의말

표고버섯의 재배역사는 원나라 때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무의 겉면에 도끼로 자국을 내고 그 자리에 흙을 채우고, 버섯의 포자를 묻혀서 도끼로 나무를 두드리면 된다고 농서에 처음 등장했는데, 이런 단순한 방식으로도 표 버섯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1766년대 증보산림경제에 표고버섯의 재배법이 소개되어 있고, 본격적으로 나무에 천공 구멍을 뚫어 종균으로 재배하는 방식은 1980년대부터라고 합니다.

그전까지는 표고버섯도 송이버섯에 못지않게 비싼 몸값을 자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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