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16화 (216/327)

< 216. 교환권 인쇄. >

“그러면 얼굴 선화는 빼고, 배경 문양과 글귀만 들어가는 것으로 결정하신 겁니까요?”

주자소의 기술자들과 싸 온 음식들을 먹으며 의견을 교환했는데, 다들 교환권에 사람 얼굴 선화를 넣지 않는다고 하니 아쉬워했다.

이제까지 목판으로는 사람의 얼굴을 찍어 보았지만, 동판으로는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환권에 누구의 얼굴을 넣어야 하는지부터 문제가 있었다.

현대인의 관점에선 지금의 왕인 성종의 얼굴이나 태조 이성계의 얼굴을 넣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이 시대에는 그림에 그려진 얼굴에도 사람의 얼(정신의 줏대)이 서려 있어 얼굴 그림을 마음대로 그리지 못했다.

그림을 구기거나 찢거나 하면 그 그림의 사람에게 화(禍)가 미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무당들이 저주 굿을 할 때 짚 인형에 그 사람의 이름과 얼굴 그림을 붙이고 못질을 하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저주의 문제로 재화(財貨)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사기를 쓴 사마천의 얼굴을 넣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리되면 또 훗날 중국 놈들이 뭐라고 할 것 같았기에 아예 교환권에 얼굴을 넣는다는 생각을 지워 버렸다.

대신에 글로벌하게 숫자를 한자와 로마자, 아라비아 숫자까지 3가지로 표기하기로 했고, 한글로 1472년을 나타내는 신묘년과 단기(檀紀)를 넣기로 했다.

“헌데, 왜 가로로 글씨를 넣게 하시는 겁니까요? 저화(楮貨)와는 달리 가로로 긴 형태라 특이하옵니다.”

“위작을 어렵게 하기 위해서네. 이제까지 위에서 아래로 쓰는 것과는 다르게 좌에서 우로 옆으로 쓰게 된다면 그 흐름이 달라져 위작을 하려는 이들이 하기 힘들 것이네.”

“그러고 보니 방향에 따라 글씨도 미묘하게 바뀌긴 합니다. 나름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그럼 하나씩 찍어 보세나.”

먼저 중국에서 구한 흰색 비단을 가져와 프레스 압착기 앞에 만든 선반에 비단 원단을 펼쳤다.

그러곤 자를 대어가며 한 줄에 5개가 찍히게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1판은 연두색의 꾸밈 배경이고, 2판은 붉은색 배경, 3판은 파란색, 4판에서 회색 배경을 찍어 손바닥 크기 정도의 사각형 지폐 모양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5판에서 검은색으로 1장권, 5장권, 10장권 글씨를 찍었다.

안료 색이 다 마르면 날카로운 칼을 붉게 달구어 비단을 잘랐는데, 열처리와 재단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인쇄와 재단이 제대로 된 것이 확인되면 뒷면에 일련번호 도장을 찍었는데, 현대에서 버튼을 돌려가며 날짜를 바꿔 찍는 도장을 참고해 날짜와 작업자를 알려주는 일련번호를 찍었다.

며칠 동안 작업자들과 교환권을 찍다 보니 불량률이 줄어들었고 본격적으로 인쇄를 시작했다.

교환권의 가치를 알게 되면 주조소의 기술자들에게도 유혹의 손길이 갈 수도 있었기에, 인쇄가 끝이 나면 동판을 내가 보관하기로 했다. 그리고 작업자들도 모르는 위폐 감별법도 숨겨두었다.

바로 비단인 촉금(蜀錦)에 감별법이 숨어 있었다.

작업자들에게는 그저 흰색의 비단에 인쇄를 한다고 했지만, 중국 사천성에서만 나는 흰색의 촉금이었다.

누에고치로 비단을 짜는 것은 조선에서도 가능했지만, 사천에서 나는 비단을 최고로 쳐주었는데, 산악지방에서 사는 누에의 종자 자체가 약간 다른 것도 있고, 그곳에서 채색과 광택을 내는 작업도 잘했기 때문이었다.

촉금은 색이 화사하고 진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이유가 있었다.

채색하지 않은 사천 촉금의 흰색 비단은 시간이 지나면 흰색의 비단 사이로 도드라진 흰색의 줄이 생기게 되는데, 사천에서는 이 흰색의 줄을 숨기기 위해 채색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원종은 이런 흰 줄이 나중에 생기는 특징을 위폐 감별법으로 쓰려는 것이었다.

이는 비단의 섬유구조에서 오는 특징과 사천에서 광택을 내는 작업이 만들어 내는 것이었는데,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비단을 짜는 실을 이루는 것은 70%의 피브로인 가닥과 30%의 세리신 성분인데, 촉금은 뜨거운 물에 담그거나 희석한 초산에 담가 세리신 성분을 녹여 비단의 광택을 내었다.

이 광택을 내는 과정에서 사천에서만 사는 특이한 누에의 실은 세리신 성분이 강해 다른 실에 비해 더 광을 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노랗게 변색 될 때 이 실은 계속 하얗게 남게 되는 것이었다.

촉금은 이런 흰색 선을 지우기 위해 채색을 더 강조하게 되었고, 색이 고운 비단으로 유명해진 것인데, 원종은 이런 촉금의 특징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

“이게 교환권이라고?”

한명회는 1장, 5장, 10장의 교환권을 살펴보았는데, 다섯 가지 색이 판화처럼 찍혀 있는 정교한 모습에 감탄했다.

“잘 찍혀 나왔군. 대략 100장의 가치가 은자 한 냥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흠. 그럼 압착기를 옮겨 본격적으로 찍어내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얼마나 찍어 낼 생각인가?”

“은자 2천 냥의 가치만큼 찍을 예정이옵니다.”

“그럼 내가 절반의 주인 권을 가지고 있으니 천 냥을 내일 중으로 보내기로 함세. 헌데 말이지. 내가 생각해보니 은자 2천 냥을 보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2100냥을 찍어내든 3천 냥을 찍어내든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더군. 안 그런가? 누가 알겠는가?”

“흐흠. 그건 그렇사오나 한 번에 교환권을 환급(還給)한다고 현물이 아닌 은자로 달라고 하면 문제가 되옵니다.”

“그럴 일이 있겠나? 내가 교환권을 경상도에 곡식을 빌려주는 대신 쓰게 되면 그게 동래의 춘봉 상단에 가서 쓰게 되는 것이고 거기서 가치를 알아본 이들도 동래와 경상 일대에서 쓰게 될 것인데, 그게 한양으로 한 번에 올라오겠나?”

한명회도 나름대로 교환권의 사용에 대해 궁리를 해본 것 같았다.

그리고 화폐를 찍어내는 은행의 어마어마한 장점을 깨달은 것 같았다.

“신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소인은 초반에 다른 대감님들을 합류시켜 많은 사람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려고 했사옵니다. 주인 권을 가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으니 그런 짓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이 하는 것이니 아무 상관없지 않나? 일단 작게 해 보세나. 2400냥 치를 찍어 200냥씩 나누세. 이 200냥 치의 교환권을 내 수익으로 생각하겠네.”

“흐음. 일단 알겠사옵니다. 다만 명심해 주십시오. 기준과 약속 없이 무작정 찍어내게 된다면 선대에 만들어 보급했던 저화(楮貨)와 같이 가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옵니다.”

“하하하. 그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게 자네가 수고해 주면 되는 거 아니겠나? 믿고 있겠네.”

사실, 감시 받지 않는 상황에서 화폐 발행 권한이 있다면 그 누구든 돈을 찍어낼 터였다.

1920년 초 독일은 1차 대전 후 전쟁배상금 문제와 경기 부양을 위해 화폐를 엄청 찍었는데, 그때 당시 2년 만에 물가가 10억 배나 올랐었다.

그런 사회적 혼란에서 히틀러가 나올 수 있었고, 그 이후로 다들 아는 짐바브웨의 독재자 무가베가 화폐를 찍어내어 인플레이션 2억%를 찍었었다.

이후, 유가 하락으로 경제가 파탄 난 베네수엘라가 인플레이션 100만%를 찍었었다.

당장은 화폐를 찍어내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될 것 같지만, 규칙 없는 무분별한 화폐 발행은 결국 경제를 파탄 나게 만들어 손해를 보게 만들 것이었다.

한명회의 성향상 한번 교환권으로 재미를 보면 이후로도 추가 발행하여 재미를 보려고 할 터였다.

문제는 이런 한명회의 요구를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제야 왜 한명회가 다른 사람들을 다 빼고 둘이서 하자고 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단순히 춘봉 전장을 욕심내는 게 아니라, 발행되는 교환권의 누전(漏錢) 가치와 추가 발행의 이득을 노리는 것이었다.

교환권을 찍어내어 상업의 발달을 가져오는 긍정적인 일에 한명회라는 혹이 붙은 것이었다.

지금은 공생의 관계이지만, 훗날 기생의 관계가 되면 그때는 한명회를 쳐낼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했다.

고민이 깊어가는 밤이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수라간을 그만둔다고?”

한명회에 대한 대응책을 고심하는데, 경회루 장터에서 닭꼬치를 센스있게 업그레이드했던 철금이 찾아왔다.

“네. 이번에 일을 겪고 보니, 저는 수라간에 맞는 체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사옵니다.”

“허허. 전하의 칭찬이 없어 자괴감까지 들었다고 하였지 않은가?”

철금은 원종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것이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둘째 날 닭꼬치가 전하께 칭찬을 받고, 이후 내관이나 군관들에게 요리를 만들어 주면서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그래 뭘 깨달았나?”

“제가 자괴감을 느꼈던 것은 전하의 칭찬이 아니라 그냥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불경하게도 전하의 칭찬과 내관과 군관들의 칭찬이 같았사옵니다. 저는 그저 칭찬이 고팠던 것이었습니다.”

“흠. 이건 다른 곳에서 말하지 말게. 경을 칠 수 있는 이야기네. 그러면 그날 이후 다른 이들에게도 음식을 해 줘 보았나?”

“네. 제조 어른께서 왕십리의 닭을 가져갈 수 있게 허락을 해주셔서 몇 마리를 잡아다가 가족들과 왕십리 농장의 일꾼들에게도 닭꼬치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가족들과 일꾼들이 해주는 칭찬을 듣고 수라간이 제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되는군. 자신이 한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에게 보람을 느끼는 만족감은 참으로 크지.”

철금의 양심고백(?)을 듣다 보니 원종도 유럽에서 르 코르동 블루에 다닐 때가 생각났다.

심사위원들이나 교수들에게 평가받기 위해 하는 음식과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맛있게 먹어주길 원하는 음식은 그 마음가짐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고, 요리를 할 때 느끼는 감정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보람을 알기에 많은 요리사들이 비싼 급료를 준다는 억만장자들의 개인 요리사 스카우트를 거부하고 작은 가게를 여는 이유였다.

“그럼 이제는 뭘 하려고 그러나?”

“그것이... 제조 어른이 운영하시는 가패나 국숫집을 저도 차리면 안 돼올지 물어보러 왔사옵니다. 알아보니 제조 어른의 가패나 국숫집을 운영하려면 허락을 맡아야 한다고 하여, 염치 불고하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철금이를 보다 보니 가패에서 조리를 맡은 참렬이가 떠올랐다.

요리 재능이 있었던 참렬이는 가패에서 참렬 버거를 만들며 제과제빵 쪽으로 강점을 가지는 녀석이었다.

다만, 참렬이는 정통적인 요리를 제대로 배운 건 아니었다.

이에 반해 철금이는 조선 숙수의 도제식 교육을 받았고, 탄두리를 알려주었는데 그걸 변형해 닭꼬치를 만들 정도의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부주방장 수쉐프(sous chef)로 두기에 알맞을 것 같았다.

“자네 그냥 내가 먹여 살릴 테니 내 밑에서 일하게나.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경회루 장터와 같은 육조 장터를 만들 예정인데, 거기 책임자로 자네를 세우고 싶군. 어떤가?”

“네? 육조 장터요? 거기에 저를 책임자로 쓰시겠다는 겁니까? 그거라면 저도 원하옵니다.”

“하하하. 다행이군. 그럼 집에 그렇게 되었다고 이야길 하고 내일 아침 일찍 이리로 오게 어디에 같이 좀 가세.”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요? 며칠 걸리는 곳입니까?”

“며칠까지는 아니고, 절에 좀 같이 가줘야겠어.”

“절요?”

< 216. 교환권 인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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