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장터 연회. (3) >
“숙수로서 부끄럽다고?”
“네.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음식을 해 본 적도 없는 내관들도 하루를 배운 음식으로 전하의 칭찬을 들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7년이 넘게 숙수들께 일을 배웠는데, 전하의 칭찬은커녕 언급도 없으셨습니다.”
원종은 자신을 막아선 철금에게 이야길 듣자 어느 정도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이 일이 저에게 맞는 일인지조차 모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원종도 요리를 배울 때 경력이 자기보다 못한 신입 요리사의 요리가 더 맛있다고 평가를 하자 질투를 느꼈었고, 분했었다.
그리고 그런 분함이 원동력이 되어 더 요리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었다.
지금의 철금도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성종이 철금의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다른 음식에 비해 이질적인 것 때문이었지 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난(naan)을 카레를 찍어 먹는 음식 자체가 조선에는 없는 방식이다 보니 그런 것이었다.
물론 핫도그 같은 경우에도 조선에 없는 방식이었지만, 거기에는 설탕이라는 치트키와 치즈, 고기라는 보조 치트키가 있었다.
지금 그런 것을 철금에게 설명해줘도 그 설명에 납득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선배 요리사로서 방황하는 이에게 가르침을 주고 싶어졌다.
“그럼 자네 나를 따라가세. 새로운 걸 알려주겠네.”
원종은 철금을 데리고 왕십리의 닭 농장으로 갔는데, 함덕 일가가 관리하는 닭과 양파 농장은 점점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닭으로 하는 요리입니까요?”
“그래 맞아. 우선은 살찐 닭을 두 마리 잡아 오게.”
7년 넘게 숙수들에게 배운 경력이 있다 보니 닭을 잡아 깨끗하게 손질하여 가져왔다.
“한 마리는 뼈에서 살만을 발라내고, 한 마리는 반을 자른 후 닭 날개 붙은 곳과 다리, 가슴을 분리하여 한 마리를 6조각으로 만들게나.”
확실히 전문 숙수로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닭을 손질하는 것도 조선에서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정확한 축에 들었다.
“닭의 겉면에 칼집을 잘게 넣어 주는데, 천축의 장인 카레가 닭에 배여야 하네. 우선 전하의 마음에 들어야 하니 천축 장에 후춧가루를 더 넣고, 알싸하게 마늘과 회회총(양파)도 더 넣도록 하게.”
닭을 양념에 재우듯이 천축 장이라고 부르는 카레 양념을 칼집에 꼼꼼하게 발라 재워두었다.
“이렇게 해서 직화로 굽는 것이옵니까?”
“직화이긴 직화이지만, 좀 특별해야지 전하께서 관심을 가지시지 않겠나? 따라오게나.”
철금이를 데리고 간 곳은 장을 담아두는 큰 장독이 줄지어 있었다.
“표찰을 보니 간장과 된장을 일 년에 2번씩 담아두고 있는 것이군요. 천축 장에 이 간장과 된장을 쓰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아니야. 자네가 볼 건 저기네. 가서 수레를 가져오게나.”
원종이 가리킨 곳에는 깨진 장독들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철금은 깨진 장독을 보여 주는 원종의 의도를 몰랐다.
수레를 가져오자, 원종은 아래가 깨진 장독을 수레에 실었고 그대로 재워둔 닭과 장독을 들고 궁으로 향했다.
철금은 물론이고, 궁의 수문장들도 깨진 장독을 들여가는 원종의 짓을 해괴하다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직접 장독을 들어 경회루 장터에 세워 주었다.
“이제, 주자소로 가서 내가 시켰다고 고령토를 가져오게나.”
“고령토를요?”
“그래. 내가 뭘 만든다고 가져다 둔 게 있으니 내달라고 하면 줄 것이야.”
이젠 도자기를 굽는데 쓰는 고령토를 가져오라고 하니 점점 더 뭘 할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철금은 시킨 대로 고령토를 가져왔고, 주자소의 사람들과 함께 깨진 장독의 안과 바깥에 고령토를 발라 붙였다.
“이제 되었어. 깨진 장독 아래로 나무 장작을 넣어 불을 지피게나.”
장독의 바닥에서 불길이 타오르자 항아리 모양 특유의 모양으로 인해 열기가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장독 안에서 와류를 만들어 열기를 더해갔다.
진흙처럼 발라졌던 고령토가 열에 굳기 시작했고, 장작이 재가 되어갈 때 어딘가로 잠시 다녀온 원종은 유기(鍮器)로 된 쇠꼬챙이를 들고 와 재어둔 닭고기를 꽂기 시작했다.
유기 쇠꼬챙이의 끝은 걸 수 있는 고리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꽂힌 닭고기꼬치를 장독의 입구에 걸어두었다.
조선판 탄두리 치킨의 시작이었다.
치이이익! 타닥타닥!
양념으로 발린 카레 양념이 바닥에 떨어져 기화하자 카레 향이 양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장독구이 닭꼬치의 냄새가 어떤가? 이거면 내일 전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는가?”
장독 안의 열기가 닭의 기름기를 몽글몽글 뿜어내게 했는데, 그런 모습을 멍하게 보고 있던 철금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불향과 합쳐진 카레의 오묘한 향기에 정신이 팔린 것이었다.
이제까지 맡아 본 적 없는 구린 듯하면서도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불향을 만나서 식욕을 자극하니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게 만들었다.
“다 익은 것 같으니 고령토를 가져와서 도와준 자네들도 하나씩 먹고 가게나.”
순살을 꽂아 만든 닭꼬치를 주자소 일꾼들에게 하나씩 주었고, 6등분으로 만들어 꽂아 넣은 통 치킨 탄두리는 야만스럽게 닭 다리를 잡아서 뜯어 먹었다.
카레 특유의 향신료 맛에 후추 맛, 불향이 합쳐졌고, 사료를 먹여 키운 닭 다리 특유의 육질 감이 합쳐지니 이건 손으로 잡고 뜯을 수밖에 없는 고기였다.
“이게 다 좋은데, 전하께서 오시기 전에 미리 준비하여, 바로 드실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 핵심이네. 옆의 철판을 이용해서 다시 구워주거나 하는 것을 한번 고민해 보게. 이건 내가 자네에게 숙제로 주겠네.”
“감사합니다. 제조어른. 소인 저의 숙수 인생을 걸고 한번 해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통째 뜯어 먹는 닭의 경우에는 왕십리 내 농장이 아니라면 이리 살찐 닭을 구할 수 없을 것이네. 그러니 다른 닭을 쓰지 말고 미리 왕십리로 가서 챙기게.”
***
“그래 장터 연회는 준비가 다 되었는가? 비(妃)들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게나.”
“저하 이미 마마들께오선 준비가 되었사옵니다. 오전부터 경회루에서 퍼져 나오는 냄새가 대단하여 다들 이른 준비를 하였다고 하옵니다.”
“하하하. 그 정도인가?”
“그렇사옵니다. 밤새 궐을 지킨 숙직군들도 아주 난리입니다. 밤새 풍겨오는 냄새가 너무 맛있는 냄새였기에 다들 내관들에게 어떤 음식이냐고 물어볼 정도였사옵니다. 연회가 끝이 난 이후로는 궐을 지키는 병졸들에게도 음식을 하사해 주신다면 좋을 것 같사옵니다.”
“하하하. 내관들에게 물어볼 정도라니 대단하군.”
성종은 말을 하면서도 어제 먹었던 장터 음식들을 생각하며 침을 삼켰다.
“그럼 가보세나.”
성종을 위시하여 왕비와 비빈들이 뒤를 따라오니 그런 모습에 내관들과 숙수들은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냄새는 어제 맡아보지 못한 냄새 같은데, 이것은 무슨 냄새인가? 고기가 익는 냄새 같은데.”
“네 전하 어제 드신 천축 장을 활용한 음식이옵니다. 어제 맛보신 난(naan)은 평가가 좋지 않은 듯하여 다른 것으로 교체를 하였나이다.”
“오호. 이 냄새만으로도 기대를 하게 만드는군. 자 그럼 다들 장터 음식을 즐겨 보십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처음 나오는 어묵과 흰떡의 국물로 입가심을 시작했는데, 성종은 이 흰떡을 물에 불려 먹는 것이 중국으로 가던 사신단들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자랑스레 이야길 했다.
그리고 그런 성종의 말에 비빈들은 서로 더 밝게 웃기 위해 노력했다.
역시나 남자가 여자 앞에서 허세를 부리며 주접을 떨어주고 웃어주는 리액션 해주는 것은 왕이나 평민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어제와 같이 철금의 차례가 되자 이 냄새가 바로 천축 장이 만들어 내는 냄새라며 아는 척했다.
“어제 전 제조에게 전수 받은 원조 장독구이 닭꼬치 이옵니다.”
노르스름한 양념이 발려진 채로 장독에서 구워진 닭꼬치를 성종과 비빈들에게 한 개씩 줘 여주였는데, 한 꼬치에 고기가 네다섯 조각씩 꽂혀있는 작은 크기였다.
“음. 이런 닭의 맛이라니. 천축의 장은 아주 특이하군요. 냄새도 특이하고 맛도 먹어본 적이 없는 맛입니다.”
“닭이 이런 맛이었나요? 육질 감이 확연히 다른 것 같은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제까지 먹었던 닭고기와는 다른 거 같아요.”
카레를 처음 맛보는 비빈들은 카레의 맛에도 놀랐지만, 질기지 않고 쫄깃쫄깃한 닭고기의 맛과 육향에도 놀랐다.
“그리고 이것은 소인이 전 제조께 배운 것을 약간 변경해 본 것입니다.”
철금은 뒤에서 새로운 닭꼬치를 내었는데, 새로 나온 닭꼬치의 모습을 보고 원종도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전 제조께서 알려주신 것은 닭고기를 그대로 항아리에 넣어 열기로 굽는 것이 온대, 소인은 여기에 반죽을 입혀 보았사옵니다. 물론, 반죽 물에는 천축 장과 밀가루를 사용하였사옵니다.”
철금이 내놓은 것은 탄두리 같은 꼬치구이가 아니라, 현대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밀가루 반죽을 입혀 구운 닭꼬치였다.
더구나 장독 안으로 꼬치를 집어넣어 익히는 게 아닌, 장독의 입구에 석쇠를 두고 오랫동안 구운 것 같았기에 석쇠의 탄 자국이 살짝살짝 남아있었는데, 그러한 탄 자국이 시각적으로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성종과 비빈들이 맛을 볼 때 나도 뒤로 돌아가 한번 먹어보았는데, 철금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반죽을 입혀 튀겨내고 그것을 다시 구운 것이오?”
“헛! 한번 맛을 보고 바로 아시는 것입니까요? 핫떡을 만드는 기름통에서 한번 튀긴 것을 다시 장독에서 구운 것입니다요.”
“하하하. 알려주지 않은 것을 이리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보니 전하의 칭찬을 받을거요. 그리고 내가 내어준 숙제를 이리 잘 풀었으니 왕십리 내 농장의 닭을 상으로 주겠소.”
내가 알려주지 않은 진짜 길거리 닭꼬치를 만들어 온 철금의 창의력과 활용성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밀가루 반죽에 스며든 천축 장의 맛이 참으로 기가 막히구나. 더구나 뼈 없이 살만 있기에 먹기에도 좋고, 아주 좋구나. 야밤 숙직 군들이 맛있는 냄새가 나서 힘들었다고 하더니 다 이해가 되는구만. 상선 이 닭꼬치는 수라에도 올리도록 하게. 밥반찬으로도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군.”
밥반찬으로 치밥을 하고 싶다는 성종의 말에 닭꼬치가 제대로 성종의 취향을 저격한 듯싶었다.
이후 이어지는 호떡과 핫떡, 설탕을 녹인 그림 놀이까지 성종과 비빈들은 알차게 즐겼다.
“전 제조 이 장터를 한양 도성에도 만들 생각인가? 그래서 내가 특별한 것을 먹고 싶다고 했을 때 이런 장터를 만든 것이겠지?”
“네 전하. 하오나 궐 밖에서 만들 때는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옵니다. 백성들이 제왕의 삶을 똑같이 느끼는 것이 가당찮은 일이옵니다.”
“하하하. 그렇지 그렇지. 똑같으면 아니 되지. 적절하게 바꾸어 백성들이 즐겨보게 도성에도 만들어 보게나. 그러면 내 변복하여 한번 나가보지. 하하하 오늘 잘 놀다 가네.”
성종과 비빈들이 물러가자 장터를 운영했던 이들도 철금의 탄두리 치킨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묵에도 밀가루가 들어갔고, 다른 음식들도 밀가루와 설탕을 베이스로 한 음식들이었기에 단백질 부분은 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닭고기에 몰린 것인지도 몰랐다.
‘이러면 길거리 음식 최강자는 닭고기꼬치인가.’
왕십리 농장도 이제는 영업을 본격적으로 해도 될 정도가 되었으니 길에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닭꼬치는 물론이고 치킨의 시대를 열어도 될 것 같았다.
물론, 그 전에 원활한 상거래를 위해 교환권부터 찍어내야 했다.
“어제 일을 도와준 주자소로 가게 닭꼬치를 좀 챙겨주게나.”
원종은 장터의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주자소로 움직였다.
< 215. 장터 연회.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