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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09화 (209/327)

< 209. 상행귀환. (2) >

후추와 설탕은 먹으면 사라지는 소비재 물건이었기에 비싼 가격이었음에도 양반가에서 늘 수요가 있었고,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재고가 몇 톤이나 있다는 게 알려지게 되면 소비재 물건의 특성상 계속 비싼 값에 팔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의 비싼 가격으로 계산한 금액과 재고가 알려진 후 가격이 떨어진 금액은 다를 수밖에 없었고, 장기적 관점으로 봤을 때는 후추와 설탕 매매로 큰 이문을 남기기는 힘들었다.

정화의 원정으로 생긴 후추 재고로 인해 가격이 5분의 1로 떨어진 명나라의 후추가격이나 바스쿠 다가마 이후 유럽의 후추가격 폭락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물소 뿔은 단순한 소비재 물건이 아니었다.

궁사들에게 각궁을 만들어 지급해야 하는 전략무기의 재료였기에 물량이 많다고 가격이 떨어질 일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후추와 설탕을 조정에 헌납하고, 물소 뿔을 비싸게 팔아 치울 생각을 한 것인데, 신숙주는 이런 내 꿍꿍이를 금세 알아보곤 도와준 것이었다.

“그런데, 저 뒤의 이국인들은 누구인가?”

“저들은 전하와 우리 조선의 위명을 듣고 군신관계(君臣關係)를 맺기 위해 찾아온 대만 국의 왕자 일행입니다. 그리고, 대만 국의 원주민들은 아주 오래전 조선에서 섬으로 간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그 멀리에서 위명을 들었다고?”

성종은 이제까진 있는지 조차 몰랐던 나라인데, 위명을 들어 왔다는 원종의 입에 발린 소리에 웃어주었다.

“그리고, 오래전 조선이라면, 고조선의 후예들이란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이역만리(異域萬里) 중국 남부에 큰 섬이 있사온데, 참파 왕국의 군장 시쭈꾸가 그 섬에 나라를 세우고 대만 국이라고 정하였습니다. 헌데, 본래 대만 섬에 사는 이들의 옷차림과 음식을 보니 우리 한민족과 너무나 같았사옵니다.”

실제로는 달랐지만, 이렇게 조선말로 말을 하는 것을 다들 못알아 들으니 기정사실화 되어 버렸다.

“그리고 참파인들과 원주민의 생김새를 봐주시옵소서.”

성종과 대신들은 나지쭈 일행과 원주민들을 번갈아 보는데, 피부색이 비슷해 비슷한 생김새인 줄 알았으나 곱슬머리와 두꺼운 입술을 보자 외모가 확연히 구분되어 보였다.

“곱슬 머리카락과 두꺼운 입술은 말라카와 참파 왕국의 특징이오나, 원주민들은 그런 특징이 없사옵니다. 조선 사람을 옆에 세워두면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짐을 들게 해서 데리고 온 그때 그 선원을 다시 옆에 세워두니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렇구만. 참파인과는 확연히 다르고 조선 사람과 같구먼.”

“머리 깃털만 없으면 그냥 조선의 백성으로 봐도 되겠구만.”

“맞습니다. 그래서 소신은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것과 중국과는 다른 식문화를 가진 것을 보곤, 고조선 때의 후예들이 대만 섬까지 흘러간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흠. 그럴듯해 보이지만, 억측 같기도 하군. 말도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성종은 물론이고 생각이 깊은 자들은 그런 생김새와 식문화가 비슷하다고 고조선의 후예라는 것의 증거가 될 수 없다며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들의 말이 맞는 말이고, 아주 당연한 말이었지만, 원종은 갑갑했다.

성종은 물론이고 다른 대신들도 무역이나 식민지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이렇게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명분 삼아 대만 섬을 지배하에 두었을 때 생기는 이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같은 뿌리를 가진 원주민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명분을 어떻게든 내가 만들어서 대만을 제2의 조선으로 만들어야 했다.

강제 합병이나 무력 합병 보다는 명분을 가지고 천천히 동화시켜 나가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세조대왕 시절 유구국(琉球國) 사자로 왔던 왜승(倭僧) 도안(道安)이란 자를 기억하시옵니까? 그때 그를 통해 유구국으로 도망친 고려 시절 삼별초의 근황을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유구국? 삼별초?”

성종은 이 일을 모르는지 승지에게 확인했고, 승지들은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확인해 줬다.

“도안이란 자가 말하길 유구로 온 삼별초가 처음에는 원나라와의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기세가 드세었지만, 세월이 지나자 그 기세를 잃고, 유구 사람들과 동화가 되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하긴 근 100여 년이 넘었으니 그럴 만하지.”

“네. 그의 말로는 삼별초의 후예들은 고려 때의 말을 잃어버리고, 유구의 말을 하며 100여 년 만에 유구국 사람들과 동화가 되어버렸다고 했습니다. 헌데 더 오래전 갈라진 후예들은 어떻겠습니까? 오히려 외향과 식문화라도 지켜온 것이 소신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그런 갈라진 고조선의 후예들에게 조선이 다시 선진문물을 전해주고, 예의범절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되옵니다.”

“전하 맞습니다. 단군왕검이야 말로 우리 조선을 있게 만든 조상이옵니다. 중국에는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있어 중화의 조상으로 받들어 모시고, 그런 조상을 중심으로 한족들이 뭉칩니다. 우리 조선에도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을 조상으로 모셔 조선 민족들이 뭉쳐야 하옵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만들며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보았던 서거정이 지원사격을 해주며 나섰다.

“조선의 지배력이 미치는 영토를 바탕으로 그 역사와 전통을 지켜가며 위명을 떨쳐야 하옵니다. 그런 위명을 떨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오래전 갈라졌던 같은 민족들을 포용하고 껴안는 것이라고 생각 하옵니다. 그렇게 세를 불리면 중국과도...”

“되었네. 무슨 말인지 알겠네. 좌참찬은 중국에 다녀온 이후 부쩍 고조선과 삼한, 삼국을 강조하며, 우리 강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명에 척을 서려고 하는 구만.”

성종은 내가 없는 동안 조선에 돌아온 서거정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지 질렸다는 투로 말을 막았다.

“전하. 좌참찬의 말이 드센 것은 있사오나 틀린 말은 아니옵니다. 예전에 갈라진 후예들이기에 우리 조선이 신경을 써줘야 한다고 생각되옵니다. 군신의 예로 대만 국을 신하로 삼아 오래전 헤어진 동생을 보듬듯이 조선이 보듬어 준다면 그 위명에 감읍하는 나라들이 더 늘어날 것이옵니다.”

신숙주까지 나서 말을 하자 성종은 곰곰이 생각해 보다 이득이 있는 일이라 판단했다.

중국의 천자가 조선의 책봉사를 맞아 조선의 왕으로 인정을 해주듯이 대만 국의 왕을 조선이 인정해 주는 모양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대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되었다.

“흠. 듣고 보니 고조선에서 갈라진 한민족이 맞군. 조서를 가져오게나.”

승지들이 조서를 받아 넘기는데 한자와 언문이 같이 쓰인 문서였다.

“중국의 한자는 너무 어렵기에 언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들에게 삼강오륜과 명심보감 같은 책을 언문으로 만들어 전해줄 생각이옵니다.”

“흠. 오래전 갈라져 나간 후예들이니 어쩔 수 없을 테지. 조서를 받았으며 그들의 요청대로 군신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하여라. 예조에서는 대만 국의 왕으로 시쭈꾸를 인정해 준다는 조서를 정리하여 내리고, 호조는 대만 국에 하사품을 하사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중국이 조선과 대월, 대리 등의 나라를 거느리며 왕의 책봉을 허락하는 행위를 했듯이 조선도 이제는 신하국을 거느리며 왕의 책봉권을 쥐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향후 식민지의 총독을 지명하는 문제나 식민지 원주민 족장들의 승계 문제에도 관여할 수 있는 명분을 공식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물론, 이 일의 당사자인 나지쭈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며 다들 웃으며 대해주니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중국어와 말레이어로 자신들에게 하사품이 내려진다는 것을 전해 듣곤 좋아했다.

그래서 절을 하고 물러나라는 말에 나지쭈는 즐겁게 절을 했다.

“저들과 말이 통하지 않지만, 군신의 예를 맺었으니 잔치를 베풀 좋은 날을 잡도록 하라.”

절을 하며 좋아하는 나지쭈가 마음에 들었는지 성종은 연회를 베풀라는 명도 내렸다.

“전 제조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싶지만, 이제 조선에 도착했으니 다음에 시간을 내어 이야길 듣고 같이 식사 하도록 합세. 오늘은 그만 가서 쉬게나.”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

처조부인 신숙주에게 먼저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호조판서와 병조판서가 먼저 막아섰다.

“가져온 물소 뿔은 그럼 지금 어디에 있는가? 궁사들은 6천 개의 물소 뿔을 가져왔다고 하면 다들 난리가 날 거야. 이제까지 각궁을 지급하지 못해 난감했거든.”

“물소 뿔은 마포나루에 내려두라고 했으니 바로 가져가시면 될 것입니다.”

“설탕과 후추는 광화문 밖에 있는 소달구지에 다 실려 있는 것인가?”

“네 맞습니다. 바로 내수사로 가져가면 될 것입니다.”

“내수사에는 그런 창고가 없네. 호조에서 먼저 가져가야지. 그리고, 전하께서 헌납한 물건의 판매를 내수사가 맡기로 한 것이지 실제 헌납의 주체는 호조이네. 그럼 소달구지 그대로 좀 끌고 가겠네.”

“네. 그리고, 물소 뿔 값인 은자 2천 냥을 은으로 받지 않고, 그만큼의 재화로 수영(水營)의 인부들이나 나무들로 쓰는 것은 안 되겠습니까?”

“수영? 수영의 인부들과 나무를 은자 2천 냥 만큼 쓰겠다는 건가?”

“네. 맞습니다. 교역을 위한 배를 만들어야 하온데, 은자를 받아 가는 것보다는 그런 명령서를 받아 수영에서 그만큼의 재료를 받아 쓰는 것이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호조판서 정난종(鄭蘭宗)은 머리를 굴려보다 이것이 서로가 편한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좋네. 사실 은자 2천 냥을 어찌 주어야 하나 고민 했었네. 각 수영에서 은자 2천 냥 치의 재화를 당겨 쓸 수 있게 서류를 만들어 주겠네.”

순식간에 일 처리가 끝나자 그제야 처조부인 신숙주와 함께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따로 챙겨온 유향과 산호입니다.”

작은 상자에 산호가 배경처럼 담겨있고, 그 앞으로 유향과 진주가 놓인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선물을 신숙주에게 건네었다.

“부원군(한명회)께도 같은 것을 준비하였사오니 걱정 마십시오.”

“확실히 이번 교역이 짭짤했나 보구만. 도대체 얼마를 번 것인가?”

“그것은 영업기밀이라 아무리 처조부님께서 궁금해하셔도 말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큰 배를 몇 척 더 만들어 규모를 늘릴 정도는 벌었습니다.”

“음. 그거면 되었어. 종희 선물은 챙겼나?”

“물론입니다. 처숙부님들께 드릴 선물까지 챙겼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본가에 가서 아버지를 보기는 거리상 힘이 드니 처가에서 환영 받으며 조선에 왔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래 선물 고맙네. 헌데, 배를 타고 한번 나가면 몇 개월이나 보기 힘드니 혼례 날짜를 먼저 잡아야 하는 거 아니겠나?”

신숙주의 삼남이지만 이제는 장남이 된 신찬이 어서 날을 잡아야 한다고 하자, 다들 내년 초 입춘 때 만물이 소생하는 날을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시일이 있어 문경 본가에 연락하기도 좋으니 그날로 날을 잡아 버렸다.

말라카에서 사 온 산호와 진주, 연지를 찍는 홍분을 챙겨 미래의 마누라인 종희에게 직접 건네주고 싶었지만, 집안 어른들이 있다 보니 얼굴을 보지는 못하고 몸종을 통해 전해줄 수밖에 없었다.

***

“어제와 오늘 병조에서 물소 뿔 6천 개를 모두 다 가지고 갔습니다. 여기 수령장과 호조에서 가져온 병참 서류입니다.”

항해에서 가져온 가장 큰 규모의 거래는 정리가 되었다.

“다만, 곡식은 공랑점포의 창고가 부족해 다시 벽란도로 가져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삼식행수가 중국에서 가져온 곡식이 많다 보니 넣을 공간이 없습니다.”

“보여주기는 다 보여주었으니 다시 벽란도로 싣고 가도록 하지. 거기서 선원들에게 봉급도 주어야 하니.”

“헌데, 공랑 점포에서도 말이 나온 것이 선원들에게 너무 많이 주는 것이 아닌지요? 관직에 있는 양반들이 받는 녹봉보다 더 많은 봉급입니다. 분명 말이 나올 것입니다.”

선원들에게 봉급은 1인당 은 10냥씩으로 200여 명이라 은전으로는 2천 냥, 곡식으로는 4천 석에 달하는 곡식이었다.

공랑점포의 오추는 보통 한 달 일을 시키는 일꾼의 품삯이 잡곡 한 가마가 안 된다며, 선원들의 과한 봉급을 걱정했다.

“목숨을 걸고 배를 탔으니 이 정도는 주어야지. 그런 봉급이 부럽고 질투가 난다는 자가 있으면 목숨을 걸고 배를 타라고 전하게. 언제든지 선원으로 받아 주겠다고.”

원종은 오히려, 이렇게 10개월 항해에 백미 20가마를 선원이 번다는 소문을 더 내었고, 이런 선원들의 봉급을 지급하고 보관하기 위해 한양 육조거리 앞에 간판을 내걸었다.

춘봉전장(春峰錢莊)

가로쓰기로 만든 간판에 한자보다 언문이 먼저 쓰이다 보니 이 간판 하나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 209. 상행귀환.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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