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 상행귀환. (1) >
바로 대만섬을 출발하려 했지만, 바람이 심상치 않아 하루를 더 머물렀다.
하지만 바람은 더 드세게 불기 시작했고, 검은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태풍이 온 것이었다.
배 위에서 태풍을 맞이하지 않고, 섬에 머물 때 태풍을 만난 것은 다행이었지만, 대나무로 지어진 집이다 보니 태풍이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태풍을 바다 위에서 만났으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실제 유럽의 대항해시대 초기에는 아시아로 떠난 원양 함선의 절반이 태풍 같은 자연재해로 난파되어 돌아오지 못했었다.
우리가 흔히 희망봉(喜望峯)으로 알고 있는 곶(串)의 처음 이름이 폭풍의 곶(Cabo Tormentoso)이라고 불릴 만큼 날씨가 변화무쌍해 남아프리카 최남단을 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아프리카를 지나 인도에 접어들게 되면 방글라데시를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머물게 만드는 사이클론(Cyclone)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시아에 진입하면 필리핀해에서 만들어지는 태풍이 있었으니, 대항해시대 초기 아시아로 떠났던 상선의 절반이 유럽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제대로 된 해도와 항로가 만들어지고, 각 지역의 태풍 발생에 대한 기록이 서로 공유되면서 그제야 원양 함선의 귀환율도 올라가게 되었었다.
그렇게 필리핀해에서 만들어지는 태풍의 절반 이상이 대만을 지나가게 되니 7월부터 10월까지 대만 해협을 지나갈 때는 연근해로만 다니고, 날씨가 이상하면 무조건 정박해서 안전을 도모하라는 기록을 남겼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태풍은 이틀 후 북쪽으로 사라져 갔고, 서둘러 배를 점검하곤 출항시켰다.
태풍이 대만을 지나 중국 본토인 복건성으로 상륙했든 아니면 바다를 따라 올라가 조선과 왜국 방향으로 갔든, 태풍은 지도상으로 시계 방향으로 움직였을 것이니 지금 출발하면 바람을 타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급히 태풍을 뒤쫓듯이 방향을 잡고 배를 출항시킨 것이었다.
그 덕분에 해적들을 만나지 않고, 영파(닝보)까지 단숨에 닿을 수 있었다.
본래라면 영파에 들렀다가 바로 바람을 타고 전라도로 움직이려고 했으나, 9월 하순에 올라오는 태풍을 겪고 나니 안전제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산동 반도까지 올라가 배에 남은 빈 공간에 밀과 곡식을 채우고 최단 거리로 안전하게 서해를 건너기로 했다.
***
“대청도와 백령도가 보입니다!”
“드디어 돌아왔구만. 다우선 두 척을 먼저 보내어 벽란도에 접안 준비를 시키게나.”
근 10개월이나 걸렸던 항해가 드디어 끝이 보이는 것이었다.
한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벽란도에 도착하니, 벽란도도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중국으로 향할 때 보았던 쇠락한 건물이 아닌 제대로 기와가 올라간 상관들이 들어선 것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상관 대부분은 우리 춘봉 상단과 송상의 상관들이었다.
10대의 배가 벽란도로 다가오고, 정크선이나 다우선 같이 특이하게 생긴 배가 있자 벽란도에 사는 모든 이들이 나와 신기한 듯 구경을 했다.
“인사드리옵니다. 벽란도 지점의 이한위라고 합니다. 창고로 짐을 다 내릴깝쇼?”
삼식이가 발탁했다는 벽란도의 책임자 이한위는 염소수염을 기르고, 아전들이나 쓰는 챙이 짧은 흑립 갓을 쓰고 있었는데, 장부를 들고나온 것을 보면 글줄은 읽을 줄 아는 자 같았다.
“아니네. 한양으로 파발마를 보내어 우리 배들이 한강을 거슬러 마포나루로 가도 되는지를 허락 받아야 하네. 짐은 거기서 풀 것이야. 첫 원양 항해였으니 그 성과를 한양에 직접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그럼 가장 빠른 말로 조정에 알리고 고령부원군(신숙주) 댁에도 파발마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눈치가 있구만. 공랑점포의 오추에게도 파발마를 보내 소달구지를 준비 시키라고 하게. 그리고 삼식 행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요. 삼식 행수는 열흘 전에 중국에서 돌아와 동래로 출발했기에 지금쯤은 동래 지점에 있을 겁니다요.”
“길이 엇갈렸구먼. 우선 선원들이 먹을 밥이나 좀 챙겨주고 파발마가 올 동안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쉴 수 있는 장소도 준비해 주게.”
선원들과 중국인 처자들 배 만드는 조선 기술자, 대만 국의 참파인들과 원주민까지 300명에 달하는 인원이다 보니 천막까지 세워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한위 자네는 항구와 좀 떨어진 곳에 큰 집을 짓고 선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나. 앞으로 중국과 외국에 다녀온 선원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될 게야. 목욕탕도 꼭 만들게나.”
앞으로 ‘선원회관’이라 불리게 될 건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선원회관이라는 것이 단순한 선원들의 숙박 시설이기도 했지만, 외국에 다녀온 이들의 격리 시설도 되는 것이었다.
교역을 하다 보면 훗날 콜레라나 외국의 풍토병 같은 것들이 전해질 것인데, 그런 병을 초기에 발견하고 격리해 소멸시킬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네. 최대한 이른 시일 내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회회(回回) 상인들이 상단주님이 주신 초대장을 들고 왔었습니다.”
“오! 이슬람 상인들이 벌써 왔는가? 몇 명 정도 왔던가?”
“배는 총 8척이 왔사온데, 우두머리는 세 명으로 각기 다르게 거래를 하고 갔습니다.”
“다행이군. 주로 어떤 상품을 팔고 뭘 사서 갔는가?”
이한위는 장부를 꺼내와 보여주었는데, 조선에 팔고 간 것은 유리구슬, 금장식 같은 악세사리류와 유향(乳香)과 같은 약재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구매해 간 것은 사옹원에서 만들어져 나온 본자기였다.
이 본자기도 중국으로 보내는 상품이 아니라 한양 공랑 점포에서 취급하는 하품으로 구매를 해간 것이었다.
“송상의 인삼은 안 사던가?”
“네. 송상이 인삼을 팔려고 했으나, 그들도 인삼과 같은 만병통치약인 유향이 있다며 오히려 우리에게 유향을 더 팔려고 했습니다.”
유향은 중동 지역에서 자라는 유향수 나무에서 얻어지는데, 나무껍질에 상처를 내어 몽글몽글하게 맺히는 수액을 굳힌 것이 바로 유향이었다.
유향(乳香)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수액이 맺히는 모습이 마치 흰 모유가 가슴에 맺힌 것과 같다고 하여 그리 부르는 것이었다.
혈액순환 장애는 물론, 중독과 경직 등의 병에 효과가 있어 이 시기의 중동에서는 유향이 만병통치약으로 통했고, 신라 시대 경주에 방문했던 아랍 상인들도 유향을 팔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역사가 긴 교역품이었다.
장부를 꼼꼼히 살펴보니 문제가 보였다.
수출 품목이 도자기에 너무 몰려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본자기 하나에 몰려있으니 수출 품목의 다변화가 필요했다.
가장 유명한 인삼이 있다지만, 인삼의 대량 생산은 아직 되지 않았고, 설령 인삼을 대량으로 길러낸다고 해도 중국 외의 다른 곳으로 판매가 잘될지 알 수 없었다.
조선에 자생하고 있는 차(茶)나무를 개량해서 차를 만들어 파는 것도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이것도 1~2년 만에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수출 품목을 따지고 보면 볼수록 ‘도자기’라는 상품이 정말 치트키 급의 물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 경덕진 도자기와의 차별성을 위해 청화백자에 색을 넣고,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는 모양의 도자기 생산으로 최대한 많은 이득을 도자기에서 뽑아야 했다.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사흘 만에 파발마가 돌아왔다.
“한강 하구에 지도선을 보내줄 테니 그 배를 따라 움직이라고 하는군. 준비한 깃발을 내걸고 움직여 보자꾸나.”
배를 화려하게 보이기 위해 형형색색의 깃발을 내걸었고, 한자와 한글로 춘봉상단 태극선단이라는 글귀를 크게 써 내걸었다.
대만에서 데려온 나지쭈도 꾸며주었는데, 아랍인들이 입는 폭이 넓은 바지에 비단으로 허리띠와 가슴띠를 고급스레 엮어주었다.
그리고 아랍인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터빈을 머리에 두르고, 그 위로 공작새의 꼬리 깃털을 꽂아 세워주니 아랍에서 온 왕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화려한 복장의 외국인이 조공과 조서를 들고 정식으로 방문해 고개를 숙인다면, 즉위 초 성과가 필요한 성종의 위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동시에 해외 교역으로 조선의 이름이 널리 퍼진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기에 꼭 필요한 쇼였다.
이런 일에 쓰기 위해 데리고 온 나지쭈에게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나지쭈는 오히려 자신과 대만인들에게 귀한 비단을 둘러 주니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그리고 대만의 원주민들에게는 한복을 입히고, 머리에는 깃털을 그대로 꽂아두게 했다.
***
지도선을 따라 한강을 거슬러 마포 나루터에 다다르자 정크선과 다우선의 특이한 모습에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장 큰 정크선에서 조선의 관복을 입은 내가 배에서 내리고 나지꾸와 참파인들, 대만 원주민들이 차례로 내리자 특이한 옷을 입은 외국인의 모습에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선원들이 상자를 들고 줄줄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공랑 점포에서 미리 준비해둔 소달구지에 상자를 쌓기 시작했다.
소달구지에 상자가 가득 쌓이면 다시 다른 소달구지가 왔고, 이렇게 소달구지가 100여 대가 넘어가자 마포 나루터가 가득 차며 많은 재물에 다들 놀라기 시작했다.
“무슨 배에서 짐이 끝도 없이 나오는구만. 도대체 얼마나 더 있는 거야?”
“그런데 저게 다 먹을 건가?”
“저기 봐! 저 배에서 곡식이 나오는구만. 저기도 끝도 없이 나오고 있어.”
나루터에 짐이 계속 내려지는 동안 원종과 나지꾸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소달구지 100여 대가 뒤를 따라 움직여 마포나루에서 광화문 앞 육조거리까지 그 대열이 이어졌다.
“이게 다 무엇인가?”
소달구지가 줄지어 온다는 것이 알려졌는지 대소신료들이 업무를 보다 말고 나왔는데, 육조거리를 가득 채울 정도로 소달구지가 몰려들자 다들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멀리 말라카 왕국에서 가져온 설탕과 후추 향신료들이옵니다. 멀리 대만 국의 왕자가 국교를 나누길 원하여 이렇게 직접 입조(入朝)할 준비를 하여 왔습니다.”
그제야 관리들의 눈에 터빈을 두른 외국인들과 한복을 입고 깃털 머리장식을 한 이들이 보여 급히 궁으로 들어가 아뢰었고, 진상할 물건은 오군영 소속의 병사들이 짊어지고 궁으로 옮겼다.
***
“그럼 이게 다 후추와 설탕이라는 말인가?”
성종은 대나무로 만든 가벼운 상자의 뚜껑을 직접 열었는데, 막 수확한 것 같은 후추의 알싸한 향이 상자에서 올라오자 기분이 좋아졌다.
“이 한 상자만 해도 궐에서 쓰이는 1년 치 후추가 되겠군. 이런 상자가 몇 개인가?”
“내 전하. 후추는 50근 상자로 500개이며, 설탕은 50근 상자로 900개이옵니다.”
후추만 15톤, 설탕은 27톤이었으니, 이제까지 중국에서 100근 200근으로 가져온 물량과는 게임이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물량이었다.
“허허허. 이 비싼 후추와 설탕을 이리 많이 들고 오다니 배가 10척이 되었다고 하던데 정말 믿을 수 없구만. 수고했네. 수고했어.”
“이 모든 것이 전하의 홍복이십니다. 소신이 바다를 건너 후추를 가져다드릴 수 있는 것 또한 전하의 선정이 있으셨기에 가능한 것이옵니다. 그러니 이번에 가져온 후추와 설탕을 내수사(內需司)에 모두 헌납하도록 하겠나이다.”
“그 많은 걸 다 헌납한다고?”
“정말? 그게 다 얼마지?”
“후추와 설탕을 네가 팔면 천 석의 가치를 넘어갈 터인데, 다 헌납한다고? 엄청난데.”
대소신료들은 그 가치가 쉽게 계산되지 않는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하하. 자네는 도대체 그 말라카 왕국이라는 곳에 가서 얼마나 많은 이득을 얻었기에 후추와 설탕을 다 헌납하겠다는 것인가?”
성종은 어마어마한 물량을 내놓겠다는 원종의 말에 놀라면서도 도대체 얼마나 이득을 보았기에 이런 물량을 헌납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망극하오나, 후추와 설탕을 헌납하는 대신, 물소의 뿔에서 소신이 이득을 얻겠나이다.”
“물소의 뿔에서? 그래 몇 개를 가져왔는가?”
“다행히, 말라카 왕국의 재상에게 간청하여 물소 뿔 6천 개도 가져왔사옵니다. 소신은 이 물소 뿔에서 이득을 보면 충분하나이다.”
“물소 뿔 6천 개?”
“정녕 6천 개인가?”
“그 얻기 어려운 것을 6천 개나?”
설탕과 후추의 물량과 그걸 헌납하겠다는 말보다 물소 뿔 6천 개를 가져왔다는 소리에 대신들은 더 놀랐다.
각궁 2500개를 만들 수 있는 수량으로 매년 중국에서 100개 200개를 사정해서 수입해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다들 그 수량에 놀란 것이었다.
“물소 뿔 6천 개이면, 궁병 2500명을 무장시킬 수 있는 양이옵니다. 그 가치는 은 2천 냥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옵니다. 이 2천 냥도 헌납한 후추와 설탕을 내수사에서 내다 팔게 되면 마련할 수 있으니, 손녀사위가 후추와 설탕은 물론 물소 뿔까지 모두 다 헌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옵니다.”
다들 놀라는 가운데 신숙주가 나섰는데, 그의 말을 가볍게 듣고 보면 마치 공짜처럼 물소 뿔도 사는 것처럼 들렸다.
‘역시 눈치 빠른 양반이 내 편이니 좋구나.’
신숙주의 지원 사격에 성종도 흔쾌히 물소 뿔을 은 2천 냥으로 사주라고 호조에 명을 내렸다.
이렇게 어명이 내려지자 신숙주는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7개 국어를 하는 머리 좋은 양반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총기가 있으니 참으로 대단했다.
내가 후추와 설탕을 헌납하고 물소 뿔의 가격만 받겠다는 말에 담긴 의도를 바로 알아챈 것이었다.
< 208. 상행귀환.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