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07화 (207/327)

< 207. 무역 거점. (5) >

타닥! 타다다닥!

초록빛의 대나무 통이 붉은 불길을 입어 검게 그을리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혹시라도 대나무 통이 터지진 않을까, 불이 옮겨붙어 밥이 타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종은 아랫부분이 검게 타 재가 되려고 할 때까지 대나무 통을 불에 태웠다.

“도련님은 밥이 타는 것이 염려되지 않으시는가요? 빨리 꺼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원주민 아이들처럼 언년이도 밥이 타는 건가 싶어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대나무 통 밥을 짓는 데 쓰이는 왕대는 통 안에 물기가 있으면 쉽게 불이 붙지 않았기에 원종은 여유가 있었다.

현대 한국에서 대나무 통 밥 죽통밥이라고 하면 대나무 통을 그릇처럼 사용해서 솥에서 쪄내는 형식의 밥인데, 건강식이자 웰빙식으로 인기가 있었다.

한데, 이 그릇처럼 쓸 수 있는 큰 사이즈의 대나무 왕대가 나오는 곳이 대나무의 고장 담양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한곳에서만 출하가 되니 단가가 비쌀 수밖에 없었고, 인기가 많아진 대나무 통 밥의 영향으로 새로 창업하는 사람도 늘어 대나무 통의 가격이 계속 올라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대나무 통을 재활용하는 업장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문제가 터졌다.

모 케이블 방송에서 제대로 씻지 않은 대나무 통에서 대장균이 기준치 이상 나왔다고 뉴스에 보도하자, 대나무 통 밥의 인기는 금세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수십 년간 대나무 통 밥을 팔아왔던 가게들은 난리가 났다.

자신들은 재활용을 하지 않는다고 알렸지만,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며 단골들도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온 것이 아예 재활용이 되지 않게 직접 직화로 대나무 통 밥을 구워 내놓는 것이었다.

찹쌀과 콩 등 들어가는 잡곡을 물에 불려 직화로 구우면 솥에 쪄낸 것에는 못하지만, 건강식으로 먹을만한 밥은 만들어졌다.

당시 원종도 직화 대통밥의 메뉴 개발에 참여를 했었기에 웬만큼 타서는 대나무 통이 터지거나 불이 붙지 않는 것을 확인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조리사들이 붙어 메뉴화 시킨 직화 대통밥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한 상으로 올라가는 한식 상에 직화 대통밥이 올라가니 재가 떨어지며 난리가 난 것이었다.

솥에서 쪄낸 밥에 비해 맛이 없는 것은 건강식이라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웃어른들을 모시고 먹는데 재가 떨어지고 하는 것은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더구나 직화로 구워서 하다 보니 가격은 더 비쌀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은 서서히 죽통밥을 외면했다.

그때 실패했던 메뉴를 다시 여기서 만들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가장 오래되었던 죽통밥 한식 가게 마저 가게를 접으며, 그 사장님은 결국 온라인으로 판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솥에 쪄낸 죽통밥을 냉동으로 해서 판매하고, 소비자는 전자레인지나 솥에 쪄서 먹을 수 있는 죽통밥이었다.

하지만 한번 대장균과 재활용의 딱지가 붙어 인식이 나빠진 죽통밥은 그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메뉴 개발에 실패했던 옛 생각을 하다 보니 한두 개씩 불이 붙은 죽통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종은 그제야 대나무 통을 꺼내어 진흙 뚜껑이 위로 오게 세워 한참을 뜸을 들였다.

얼마 후 원주민과 참파인들이 왔고, 대나무 통 밥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다들 직화 죽통밥을 받자 처음에는 나무 속에서 밥이 다 타버린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며 진흙 뚜껑과 한지 뚜껑을 긴가민가하며 열었다.

“오오! 냄새가 너무 좋아!”

가장 먼저 뚜껑을 연 참파인이 냄새가 좋다고 하자 다들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정말. 곡식의 풍성한 향에 대나무의 풀잎 향 같은 게 나는 거 같은데, 그 뒤로 불에 탄 향까지.”

밥에서 곡식의 향 뿐만 아니라 불향과 나무 특유의 수액 향까지 올라오니 다들 죽통밥 냄새를 맡기 바빴다.

찹쌀이 아닌 퍼석한 안남미 쌀이라서 그런지 밥이 더 잘 된 것 같았다.

이런 죽통밥을 든 이들에게 생선으로 만든 식해를 한 숟가락씩 크게 퍼주었다.

“응? 이 냄새는... 우리가 먹는 음식 냄새인데.”

“아니야 뭔가 달라. 향이 달라!”

“색도 다른데.”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고기 삭는 냄새에 원주민들은 버릇처럼 손으로 주워 먹으려 했지만, 대나무 통속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깜짝 놀랐다.

그러다 이럴 때 쓰라고 받은 숟가락이 있다는 생각에 숟가락을 찾아 밥과 식해를 펐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 위에 무채와 함께 삭아 부들부들해진 생선 식해가 올라가니 그 쿰쿰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고, 식욕을 자극했다.

“오오! 맛이 달라! 코를 찌를듯한 냄새가 없어. 그런데 씹히는 건 그대로야. 아니 더 부드러워.”

“독한 냄새가 나지 않고, 향기롭고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나다니. 어떻게 한 거지.”

평상시 먹던 삭은 음식과 비슷한데, 독한 냄새 없이 부들부들하게 씹히는 음식 맛에 원주민들은 놀랐다.

더구나, 뜨거운 쌀밥에 비벼 먹자 삭힌 생선들이 살짝 익으면서 만들어내는 식감에 놀라워 했다.

이제까지 자신들이 만들어 먹었던 음식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맛이 좋았던 것이었다.

“땀이 나는데 뭐지.”

“그러게. 등에서, 이마에서 땀이 나고 있어.”

뜨거운 밥을 후후 불어가며 먹었기에 다들 국밥을 먹는 것처럼 땀을 흘려가며 먹었고, 죽통밥을 다 먹고 나자 몸이 풀리는 건지 다들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이거 또 먹고 싶은데.”

“나도, 다시 먹고 싶어. 이 고기 삭히는 건 어떻게 한 거지? 난 이게 더 먹고 싶은데.”

“저 키 작은 높은 사람이 줬으니깐 저 사람이 알겠지.”

“이거 만드는 걸 가르쳐 줄까?”

맛있게 식사를 한 원주민들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오는지 생선 식혜를 만드는 법을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상단주님 원주민들이 이걸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하하. 당연히 알려주어야지. 그 전에 제대로 알려줘야 할 것이 있으니 제대로 통역이나 해주게. 이 식해라는 음식은 말이지...”

원종은 앞으로 무역 거점이 될 대만을 조선의 문화권으로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네들이 옛날부터 항아리에 절여 만들어 먹던 음식은 식해라고 하는 음식이네. 그리고 방금 먹은 음식도 식해이고.”

“같은 음식이라고요?”

“그래. 같은 음식이네. 아주 오래전 조선의 사람들이 이 섬에 와서 전해준 음식이지.”

만추를 통해 이야길 들은 원주민들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오래전 조상들에게서 방법을 배운 자신들만의 음식이라고 했다.

“잘 보게. 저 멀리 남쪽 사람들인 참파인들은 대충 보면 자네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이 꼬부랑 머리에 입술도 두꺼워서 얼굴이 다르다는 것을 알것이네. 하지만, 우리 조선 사람 중에는 아예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닮은 사람들이 있네.”

수군 중에서 쌍꺼풀이 찐하게 있고, 자외선에 타 갈색 피부를 가진 이를 데려와 원주민과 나란히 세웠다.

그러곤 웃통을 벗기고 머리에 깃털 장식을 꽂아주니 얼핏 보면 구분이 가지 않았다.

“지... 진짜다. 비슷하다! 머리카락도 같고, 입술도 같아.”

“우리 사람인가?”

“아주 오래전 옛날에 조선 사람들의 일부가 갈라져 섬에 왔고, 그 후손들이 바로 당신들이네. 그래서 우리 조선에서 삭혀 먹는 음식과 비슷한 음식이 있는 것이고. 방금 먹은 조선의 식해가 입에 맞는다는 것이 그 증거지.”

“그럴수가...”

“오, 어쩐지 이 식해라는 음식이 내 입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니 입맛이 같은 것인가.”

“저기 봐 진짜 참파 사람들은 이 식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원주민들의 말마따나 참파인들은 삭힌 생선 요리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원주민들과는 다르게 먹기 힘들어 하는 이들이 많았고, 먹더라도 그 특이한 질감에 좋아하는 이들이 몇 없었다.

“우리의 조상이 조선에서 왔을 줄은 몰랐군. 다른 부족도 그럴까?”

“생선을 놔두었다가 먹는 음식을 가진 곳은 다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염장이나 삭혀 먹는 음식은 전 세계에 많이 있었지만, 섬에서만 살아왔고 외부와 교류가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다른 지역에도 이런 음식이 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원종이 내놓은 식해라는 증거로 인해 같은 민족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라는 걸 쉽게 믿었다.

“내가 만든 식해와 자네들의 식해가 맛이 다른 것은 들어가는 재료가 틀리기 때문이야. 조선 사람들은 식해를 만들어 먹을 때 마늘과 생강을 넣어서 먹는데, 이것들이 섬에 없기에 식해의 맛이 달라지고 지금의 맛이 된 것일세. 그러니 다시 조선의 맛을 느낄 수 있게 선물로 이것을 주겠네.”

마늘과 생강에 중국에서 들여왔던 양파 씨도 챙겨줬다.

그러면서 처음 우리와 말을 섞었던 노인과 몇몇 사람에게는 조선식 저고리와 바지를 주었고, 옷이 마음에 들면 만들어 입을 수 있게 바늘과 실, 베도 주었다.

이들이 알아서 조선식 의복을 입는다면 후대의 아이들은 조선과 더 가까운 사이라고 여기고 믿게 될 터였다.

한데 원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시쭈꾸에게 갔다.

“참파인들 중에 농사를 지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 있다. 말라카에서 사탕수수와 후추나무를 재배했던 이도 있으니 농사는 우리가 전해줄 수 있다.”

사탕수수나 후추나무란 소리에 대만도 아열대 기후이니 여기에 심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만에서 설탕과 후추가 나온다면 그 두 개를 구하기 위해 멀리 말라카까지 교역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되었다.

말라카에 간다고 해도 설탕과 후추를 실을 자리에 다른 것을 실어 올 수 있으니 대만에서 사탕수수와 후추를 재배하는 것이 조선에는 이득이었다.

“그렇다면 대나무를 잘라낸 땅을 소 쟁기로 뒤집고, 사탕수수를 심으면 될 겁니다. 산자락에는 후추나무를 심구요. 후추나무 가지를 챙겨온 것이 이렇게 이득이 되는군요.”

후추나무 가지를 잘라 모종으로 키우던 것의 절반을 산자락에 옮겨 심었고, 대나무가 자라던 곳에는 사탕수수 씨앗을 뿌려줬다.

사탕수수는 1년 만에 자라 수확이 가능하고, 후추나무는 5년 이상 되어야 후추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니 5년 후에는 이 가오슝만 바다가 교역을 위한 배들로 가득 찰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5년 동안 시쭈꾸와 원주민들이 버텨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우선 식량이 문제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안남미를 종자로 줄 테지만, 흉년이 왔을 때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해적에게서 뺏은 배 세척을 줄 터이니 그 배로 바다 고기도 잡고 중국 본토의 산터우시에 가서 식량을 사 오면 흉년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원종은 백은도 챙겨주었으나 시쭈꾸가 받지를 않았다.

“나도 챙겨온 은이 있다. 그리고 이미 너의 호의는 많이 받았다. 그 ‘정’이라는 것이 조선 사람에게 있다고 해도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 그리고, 원주민들 말로는 배가 없어도 식량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배가 없이도 식량을 구할 수 있다구요?”

“그래 해안선을 따라 나흘을 올라가면 한족들이 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고 했다. 식량이 부족하면 거기서 교환해 먹으면 된다고 원주민들이 알려주었다.”

송나라 때 넘어온 한족들이 마을을 이루고 농사를 하며 제대로 정착을 한 것 같았다.

시쭈꾸와 원주민들이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와 더불어 해적에 대한 걱정이 되었다.

“그럼, 해적들이 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아직은 맞서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만의 입구에 봉화를 설치할 생각이다. 배가 접근하면 불을 피우고 나팔을 불게 하면 마을 사람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다. 물론, 그 규모가 작으면 반대로 우리가 공격을 하면 될 것이다.”

봉화 연기가 하나면 무조건 도망을 치고, 봉화 연기 숫자에 따라 그 규모를 알 수 있게 하는 봉화 시스템이 참파인들 에게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안심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럼 이제 이름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름? 무슨 이름을 말하는 것이지?”

“여기의 이름 말입니다. 참파라는 이름처럼 여기도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생각해 보지 못했군. 무슨 이름이 좋지?”

“그렇다면 대만(大萬)이라는 이름이 어떻겠습니까? 지금은 사람이 작지만, 크고 많은 수의 사람이 모일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이름이지요.”

“흠. 대만이라 좋군.”

“대만이라는 이름처럼 사람이 많아진다면 대만 왕국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듣기만 해도 좋군. 하지만, 내가 왕을 칭한다고 해서 그 누가 인정해주겠나?”

한 지역의 군장이었지만, 지금은 채 200명도 되지 않는 무리를 가졌으니 이제는 군장이란 계급도 힘이 든 판이었다.

“조선이 해주면 되는 것이지요. 이참에 아들인 나지쭈를 데리고 가서 전하께 대만 국의 왕자라고 소개를 하고, 교역을 허락하는 조서를 받아오겠습니다. 중국 다음으로 큰 조선이 대만을 인정해준다면 다른 나라들도 대만 국을 인정해 줄 것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해도 되는가? 나라라고 하기엔 너무 작지 않은가.”

“앞으로는 커질 것이지 않습니까?”

“훗. 좋아. 그럼 나지쭈를 데리고 가게. 약속했던 용병들도 데리고 가고.”

“그렇게 하지요. 원주민 사절도 데리고 가서 이 대만 국이 조선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고 전하겠습니다.”

시쭈꾸는 아들인 나지쭈가 조선의 배에 대해 관심이 있고, 조선인들의 활도 받아 연습하며 조선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으로 나지쭈를 데려가겠다고 하는 말을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원종은 나지쭈를 대만 국의 왕자로 소개하며 조선에 데려가겠다고 한 이유가 있었다.

총칼로 대만을 무역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조선의 문화로 문화식민지화 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참파인과 원주민의 유력한 이들이 친 조선파가 된다면 훗날 합병까지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207. 무역 거점.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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