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무역 거점. (4) >
“큰 솥에 밥을 안치고, 다른 솥엔 소고기 육포를 잘게 잘라 넣고 물을 넣어 끓이거라.”
배에서 큰 솥이 내려져 걸리고, 아직 여유가 많은 소고기 육포를 잘게 썰어 넣어 펄펄 끓이기 시작했다.
사용할 수 있는 채소가 무엇이 있는지 살폈지만, 파와 무, 토란 줄기, 고수 가 전부였다.
고수는 냄새가 강했기에 제외하고, 나머지 채소들도 잘게 썰어 솥에 쏟아 넣었다.
그러곤 이번에 구매한 마살라들로 조합한 카레 마살라 가루를 꺼내 들었다.
노란색의 강황 가루를 더 많이 넣어 먹음직스러운 노란색의 카레 가루를 조합해냈는데, 소고기 육포를 넣었으니 소고기 카레 라이스가 되는 것이었다.
카레 가루를 넣고, 한참을 끓인 후 맛을 보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카레의 맛이 나긴 났다.
하지만 아쉬웠다.
감자와 양파, 당근이 빠진 카레의 맛은 소고기와 무에서 나오는 육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비어있는 맛이었다.
그 비어있는 채수의 맛을 보충하기 위해 후추와 간장을 넣어 강한 맛을 배가시킬 수밖에 없었다.
솥에 안친 밥도 뜸이 다 들자 종발 그릇에 밥을 푸고, 국자로 소고기 카레를 한 국자씩 떠서 밥 위에 올려줬다.
혹시나 강한 향신료의 맛에 사례가 걸릴 수 있어 된장을 풀어 멀건 된장 국도 끓여줬고, 비축되어 있던 단무지도 꺼내 반찬으로 내어줬다.
진한 카레 향을 맡으며 원주민들과 참파인들이 맛있는 먹는 것을 생각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지 않았다.
참파인들은 움푹하게 파인 그릇에 음식을 담아 주자 손으로 먹기 불편하다고 했고, 원주민들은 손으로 먹으려고 하다 뜨거워 그냥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아차!”
원종은 원주민이나 참파인들이 숟가락, 젓가락을 쓰지 않는 손으로 먹는 수식을 한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카레의 본고장인 인도의 경우에도 접시에 카레를 담고 난이나 로띠 같은 전병, 빵을 찍어 먹었기에 이런 종발 그릇은 카레를 먹기에 안 맞는 그릇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손으로 먹으려면 카레가 식어야 했기에 뜨거운 밥에 카레를 올려 먹는 카레 라이스의 풍미를 느끼지 못할 터였다.
“선원들이 들고 있는 숟가락, 젓가락을 가져오거라. 이들에게 수저를 넘겨주면 조선에서 새로운 것으로 사주도록 하마.”
먼저 선원들에게 수저를 사용해서 먹게 했고, 그 사용법을 천천히 보여주었다.
쇠로 된 숟가락, 젓가락 자체가 조선의 문화였기에 이런 식사문화로 공통된 유대감을 만드는 동시에 식습관을 조선식으로 바꾸는 첫걸음이었다.
“숟가락이라는 것이 뭔가 불편한데. 꼭 이걸로 먹어야 하는 거야?”
“손으로 먹기엔 이 쌀이 뜨겁긴 해. 조선인들 말로는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다고 하거든.”
“후~하~~ 이거 입이 익어 버릴 것 같은데. 이 뜨거운 걸 어떻게 먹는다는 거야!”
참파인들은 물론이고, 원주민들도 뜨거운 밥을 먹는 게 처음이라 입에 밥을 머금고는 공기를 후후 불어 가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다들 처음에는 숟가락을 쓰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고 불만이었고, 뜨거운 걸 먹게 해서 입이 익는다고 구시렁거렸지만, 소고기 카레의 맛을 혀가 느끼기 시작하자 그런 불만은 사라졌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이 향기는 뭐지. 쌀밥에 스며든 노란 국물이 이런 맛을 낼 줄이야.”
“무 조각과 고기에도 이 노란색의 국물이 배서 그런지 맛이 있어.”
“이 무로 만든 반찬이란 것도 맛있는데.”
“저기 봐 수전증으로 국물 다 흘리잖아. 크하하하.”
금세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미식 쾌락에 원주민들과 참파인들은 불편한 숟가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갔다.
먹성이 좋은 몇몇은 밥과 카레를 몇 번이나 더 받아서 갔고, 이제까지 먹어 본 적 없는 카레 마살라의 맛에 기분이 좋아져 술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말은 아직 통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참파인들과 원주민이 섞여 든 거 같습니다. 헌데, 이들이 계속 우리들에게 우호적이겠습니까?”
염호진은 시쭈꾸가 우리에게 호의를 베푼 것을 알고 있고 용병으로 일해주기로 한 것도 알고 있었지만, 예의를 모르는 이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염려하고 있었다.
“괜히 이들이 정착할 수 있게 지원해주었는데, 다른 세력에 달라붙어 버리면 그 투자가 너무 아쉽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다른 세력으로 달라붙지 않게 방지책을 만들어야지. 그리고, 참파인과 원주민 해서 200명이 겨우 넘는 작은 무리야. 시간이 흘러야 여기가 커지고 번성할 수 있을 것이니 천천히 그 방지책을 만들어 가야지.”
“역시, 복안이 있으셨군요.”
“우선은 이들의 식문화부터 조선에 가깝게 만들어 보자고.”
***
이튿날 원종은 원주민과 참파인들의 생활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카레 라이스를 야심 차게 내놓았는데, 숟가락, 젓가락이 없어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곤 먼저 이들의 식문화를 살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제처럼 생전 처음 보는 요리보다는 그들이 평상시 먹고 있는 음식에서 새로운 것을 뽑아내야 그들이 더 좋아하고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조선에도 이런 음식이 있다고 하며 은근슬쩍 같은 음식 문화권의 사람들이라고 둘러 매칠 생각이었다.
해서 원주민들이 무슨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는지를 확인했는데, 그 음식들을 보고 있으니 ‘흠’이라는 침음성이 먼저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음식을 원주민들이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만이 이주(夷州)라고 불리었던 때 남겨진 기록이 오나라의 단양 태수였던 심영(沈瑩)에 의해 남아 있는데, 그가 쓴 임해수토지(臨海水土志)란 책에 대만 원주민들이 무엇을 먹는지가 쓰여 있었다.
책에 따르면 생선과 고기를 커다란 항아리에 넣고 소금으로 절여둔 후 꺼내 먹는다고 되어 있었고, 그렇게 놔두고 먹는 음식을 최고의 음식으로 여긴다고 했다.
한마디로 음식을 염장해 먹는다는 말이었는데, 소금이 아직 귀하다 보니 염장된 음식이 반이었고, 삭히고 있는 음식이 반이었다.
그래서 원주민들의 음식을 확인했을 때 특유의 염장 냄새와 삭으며 나는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러 침음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염장된 것은 소금에 절여졌기에 젓갈처럼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는데, 삭힌 것은 냄새가 심해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았다.
생선에서 삭다 못해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부패해서 물이 나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걸 보면 홍어와 접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원주민들의 음식을 한식과 섞으려고 생각하다 보니 걸리는 것이 많았다.
우선 삭혀 먹는 음식의 대명사인 홍어는 겨울의 낮은 온도에서 삭히는 음식이었고, 삭히는 것도 사나흘 정도만 삭히는 것이라 삭혀지는 농도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주민들이 항아리에서 삭혀 먹는 것은 거의 상해 가는 음식이나 마찬가지였다.
더운 대만에서 삭혀 먹는다는 것은 ‘상한 음식’과 ‘삭힌 음식’의 차이가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홍어를 삭혀 먹을 때는 종이로 싸서 종이가 삭혀질 때 나오는 암모니아 물기를 다 흡수하게 했다.
하지만 종이가 생선들보다 더 비싸기도 했고, 겨울이 있어도 춥지 않은 대만의 환경상 홍어처럼 생선과 고기를 삭혀 먹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건강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고, 원주민들의 음식과 유사하면서도 시쭈꾸의 참파인들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배에 좁쌀이 있느냐?”
“종자로 쓰기 위해 곡식들을 실어둔 것에 좁쌀이 있습니다.”
“그럼, 좁쌀로만 솥에 밥을 짓도록 하게. 고두밥이어야 하네.”
“네? 좁쌀로 고두밥을요?”
청남이는 대월에서 구매한 길쭉한 쌀이 많이 있음에도 좁쌀로만 밥을 하라고 하자 의아했다.
“그래. 좁쌀로만 앉히거라. 바로 먹는 밥이 아니라, 재료로 쓰일 밥이니 반드시 좁쌀로만 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만추는 원주민들이 며칠 전에 잡아 두었던 생선들을 가져오거라.”
말이 통하는 만추와 진기가 원주민들이 잡아 둔 생선들을 가져왔는데, 생선들은 우리를 보고 산으로 피한 며칠 동안 잘 말려져 있었다.
원주민들은 생선 지느러미는 제거했지만, 대가리는 떼지 않았기에 생선 대가리를 잘라 국을 끓이게 하고, 생선을 가로로 얇게 수십 조각씩 잘랐다.
마늘과 생강도 다지고, 무와 파도 채 썰 듯이 잘라내자 솥에 올린 좁쌀밥이 다 되었다.
좁쌀밥을 넓은 곳에 펴 김을 날려 식혔고, 이후 썰어둔 재료와 조각낸 생선들을 넣어 무쳤고, 술을 담기 위해 있던 엿기름도 넣었고, 설탕과 담아 두었던 피쉬 소스도 넣었다.
“식해(食醢)로군요. 메조가 아닌 좁쌀(조 粟)로 하시는 것이라 못 알아봤습니다.”
말린 생선과 버무려진 모습을 보고, 그제야 선원들이 알은체했다.
식해의 식(食)은 밥을 뜻하고 해(醢)는 젓갈을 뜻하므로 밥을 넣은 젓갈이라는 뜻이었다.
즉, 조선의 식해는 원주민들이 만들어 먹는 젓갈과 삭힌 음식과 그 궤를 같이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원시적인 방법이 아닌, 발효를 위한 엿기름과 설탕, 피쉬 소스를 넣었기에 그 맛 자체가 다를 것이었다.
더구나 비린내를 잡기 위해 마늘과 생강, 파가 들어갔으니 원주민들이 만드는 음식과는 비교 자체가 안될 맛이 될 터였다.
“이틀 정도 놔두면 맛이 올라올 것이니 그때 먹을 수 있게 보관해 두게.”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매콤한 맛은 없겠지만, 삭히고 발효시킨 생선의 들큼한 맛은 있을 터였다.
만드는 것을 원주민들도 보았기에 베트남에서 담아 두었던 피쉬 소스 한독을 내주었고, 마늘, 생강의 종자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시쭈꾸와 원주민들에게 낚싯바늘과 낚싯줄, 나무로 만든 롤링을 선물로 주었다.
지금은 작은 배로 나가 나무줄기로 만든 그물로 생선을 잡았지만, 낚시로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틀간 원주민과 참파의 아이들과 낚시를 하는 동안 사로잡은 해적들이 하나둘 대나무 집들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을 만들며 떨어지는 대나무 가지들을 보니 그냥 땔감으로 태우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둥으로 쓰이고 남은 대나무 통을 모아오거라.”
대만의 대나무는 물병으로 쓰면 1리터 가까이 넣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왕대였는데, 집을 지으며 잘라 버린 대나무 통들만 모아도 수십 개를 모을 수 있었다.
“너는 배로 가서 한지를 대나무 통 수만큼 들고 오거라.”
한지를 들고 오는 동안 안남미와 콩 등을 씻어 대나무 통에 집어넣었는데, 그 위로 가져온 한지를 덮었고, 그 위로 고운 진흙을 발라 뚜껑을 만들었다.
“이걸 그대로 불 위에 올려 골고루 익을 수 있게 구우면 된다.”
“대나무가 타면서 다 불타지 않는가요?”
“대나무 통 안에 곡식을 넣으며 물도 같이 넣었기에 겉만 타지 속까지 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잡은 생선도 내장만 빼고 대나무 통에 넣고 진흙으로 입구를 막아 같이 불에 올리거라.”
“그러면 솥이나 그런 건 아예 필요 없는가요?”
“그래. 그런 도구가 없을 때 해 먹기도 하지만, 방금 자른 싱싱한 대나무 통이기에 대나무의 수액도 밥에 스며들어 아주 맛있는 밥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돌을 모아 화덕을 만들고 대나무 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워 대나무 통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너는 이틀 전에 만들어 두었던 식해도 가지고 오거라. 오늘은 여기 바닷가에서 다들 모여서 먹고 마시자고 해라!”
< 206. 무역 거점.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