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면식의 시대. (2) >
“식초에 절인 무라. 중국 땅에도 식초에 절인 채소가 있는데, 그건 소금이나 식초에 절여져 색이나 모양이 볼품없는데. 이건 하늘에 뜬 반달과 같이 모양이 예쁘고 색이 먹음직스럽군요.”
고주원은 단무지의 샛노란 색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색이 예쁘니 절임 채소 특유의 냄새도 안 날 것 같습니다.”
고주원과 대영일의 이야길 듣고 보니, 아마도 그들이 말하는 절인 채소는 짜차이 같았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채소 절임인데, 짜차이를 언뜻 보면 무를 썰고 수분을 빼 고추기름으로 양념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짜차이는 무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
짜차이는 겨자 종류의 줄기를 소금에 절여 만드는 음식이었는데, 겨자 중에서도 줄기가 두껍게 자라는 종자로만 만들 수 있었다.
짜차이의 이름은 짜낼 자(榨)와 채소를 뜻하는 나물 채(菜)를 쓰는데, 자채를 중국어로 발음한 것이 짜차이였다.
“자채(榨菜)는 무가 아닌 겨자 줄기이기에 냄새가 나고 소금에 오래 절여지기에 볼품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무지와는 다르지요. 국수를 먹으며 단무지를 먹어보시면 그 차이를 바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원종은 두 사람을 데리고 주방으로 들어갔는데, 국수 작업소에는 온돌을 넣을 필요가 없었기에 아궁이 대신 음식 조리 전용 화덕이 만들어져 있었다.
“국수를 물에 삶기 전에 어포로 국수의 육수를 내어야 합니다. 보통 그물에 걸린 잔잔한 고기들을 그대로 말려서 쓰는데, 여기에 동해에서 나는 다시마도 같이 넣어 끓입니다.”
국수에는 멸치 육수가 최고였지만, 현대처럼 멸치를 잡아 배에서 삶아낼 수 없었기에 마포 나루터에서 말린 어포를 사서 국물을 내었다.
“국수 조리법은 맨 물이 끓을 때 국수를 넣고 기다리면 끝입니다.”
현대의 소면에 비하면 두께가 거의 두 배에 달했지만, 그래도 손으로 만드는 칼국수보다는 얇은 면이었기에 서로 엉키지 않고 잘 삶아졌다.
삶아진 국수를 대나무로 촘촘하게 엮어 만든 광주리에 부어 물을 빼고, 차가운 물로 국수를 씻어 주었다.
뜨거운 물에 익어 퍼지기 전에 차가운 물에 씻겨지자 국수 면발에 탄력이 생겼다.
씻은 국수를 그릇에 담고, 뜨거운 어포 다시마 육수를 부어주자 꽤 먹음직스레 보였다.
그 위로 미리 만들어 둔 초록색의 겨울 초 고명과 당근을 채 썰어 만든 붉은 고명을 올리자 한국 시장에서 파는 듯한 잔치국수가 만들어졌다.
“자 한번 드셔보십시오. 싱거우면 간장을 더 넣으시면 됩니다.”
고주원과 대영일의 앞에 국수 그릇이 놓이자 국수의 자태를 한참이나 감상했다.
“이 흰색의 국수 면이 이렇게 둥글게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면 복(福)을 품고 있는 것과 같구만. 장수와 함께 복을 주는 음식으로 볼 수 있겠어.”
“흰색의 면 위로 초록색, 붉은색의 고명이 올라가 있으니 천하(면)를 두고 초나라(楚)와 한나라(漢)가 다투는 것 같습니다. 당근은 중원에서 왔으니 명나라이고, 겨울 초는 추운 요동지역에서 자라니...”
“하하하. 색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군요. 하지만, 국수를 먹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원종은 자신이 먹을 그릇에 검은색의 간장을 넣고,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휘저어 국수를 뒤집었다.
그러곤, 힘차게 국수를 흡입했다.
“쩝쩝. 천하니 뭐니,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그저 맛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젓가락으로 국수를 크게 집어 한입에 후루룩거리며 먹는 원종의 모습에 대영일도 국수에 간장을 뿌리고 젓가락으로 휘저어 힘차게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팔았던 밀이 가루가 되고, 반죽이 되어 국수가 되는 것을 직접 보았기에 국수 맛이 새로웠다.
그래서 그런지 싱거운 듯한 어포 육수의 국물 맛도 느낄 수가 있었고, 겨울 초 나물의 아삭함과 당근 고명의 고소함도 혀에 전해졌다.
‘우리 일족이 수확한 곡식이 어떻게 팔리고 사람을 먹여 살리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조선에서 그것을 느끼게 되는구나.’
대영일은 이제까지 배워서 알고는 있었지만, 느끼지 못했던 백성들을 먹이고 입혀야 한다는 것을 조선에 와서 느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국수는 이렇게 한입 가득히 넣고 씹어 먹어야 맛있습니다.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면 이렇게 단무지를 먹으면 되고요.”
대영일도 원종을 따라 단무지를 먹었는데, 단무지의 이름처럼 단맛이 나면서 식초의 새콤함이 같이 느껴져 국수로 가득했던 입안에 깔끔함을 주었다.
“어포 육수의 감칠맛으로 국수를 먹는지 알았는데, 단무지의 깔끔한 맛이 더해지는군요. 능히 진미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헌데, 이것도 ‘-지’라고 하는 것을 보면 소금에 절여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겁니까?”
대영일의 말에 고주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먹어왔던 ‘-지’가 붙는 절인 채소들과는 맛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만드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지’라고 하면 쌀겨와 소금을 섞어둔 곳에 채소를 넣어 절이는 음식입니다. 소금 때문에 삼투압 현상이 일어나 채소에서 물이 빠져나오고, 그 물은 쌀겨와 만나 발효가 되어 채소가 썩지 않고 절여진 ‘-지’가 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쉽게 설명했지만, 원래 두 사람이 요릴 하던 사람도 아니었고, 삼투압 같은 것은 현대 용어였기에 알아듣지를 못했다.
“쉽게 설명하면, 그 발효될 때 생기는 발효의 냄새가 채소에 배 ‘-지’ 특유의 냄새를 풍기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먹은 짜차이 자채(榨菜)에서 나는 냄새가 바로 발효의 냄새인 것이지요.”
“헌데, 이 단무지는 그 냄새가 안 나지 않나. 난다면 식초의 냄새뿐인데.”
“네. 이 단무지는 그 발효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금에 절여 물을 빼지도 않았기에 이렇게 아삭거릴 수 있는 것이고요.”
“발효 없이 ‘지’를 만든다라. 이 노란색도 그렇고, 단무지를 만드는 것도 보여 줄 수 있는가? 중국에서는 겨울에 자채를 많이 먹기에 조선에서 단무지를 배워가면 좋을 것 같은데...”
고주원은 단무지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말을 하면서 눈치를 봤다.
조선에 온 이후로 단무지라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이 음식도 전원종이 만든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처음 먹었을 때는, 궁궐에서 벼슬을 하고 있으니 왕족이나 대관들만 먹는 음식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국수 제작소의 일꾼들도 먹고 있었기에 그런 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만드는 곳이 여기가 아닌지라, 다시 한양으로 가야 합니다.”
“고맙네.”
“그리고, 먼저 일꾼들에게 털털이 국수를 알려주기로 해서 저것부터 해주고 한양으로 돌아가지요.”
“털털이 국수?”
고주원은 단무지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말에 이제 겨울에 냄새가 심한 짜차이를 먹지 않아도 된다고 기뻤다.
한데, 또 처음 들어보는 국수를 한다고 하니, 이건 또 무슨 음식인지 궁금했다.
“이름이 털털이이지만, 실제 털이 나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헌데, 왜 털털이인 거요?”
“그건, 재료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려진 국수를 포장 크기에 맞게 자르고 나면 자투리로 남는 부스러기 국수 조각이 나오게 됩니다. 그 부스러기를 탈탈 털어 만들기에 텉털이 국수입니다. 탈탈 털기에 탈탈이 국수라고 하면 왠지 국수를 먹고 탈이 날 것 같기에. 털어 만든다고 털털이 국수라 부릅니다.”
이 털털이 국수는 한국에서 시판되는 국수의 대명사인 구포국수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이름이었다.
한국은 6.25 전쟁이 터지고, 미국에서 원조 물자로 밀가루가 들어오면서부터 말린 국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때 하루 종일 국수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만들어 먹으며 털털이 국수의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에는 밀가루 한 줌도 소중히 여길 때였기에 국수를 만들며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 국수도 소중히 털어 모아 국수를 끓였다.
그래서 털털이 국수는 일반 잔치국수처럼 면을 삶아 건져 찬물에 씻지 않고, 그냥 국수를 끓인 냄비 채로 국수를 푹 퍼지게 하여 먹는 국수였다.
물자가 부족한 때 뭐든 먹어서 배를 부르게 하려고 푹 퍼지게 해서 먹었는데, 면의 쫄깃함은 없어지지만, 뭐든 넣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마치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잡다한 것을 넣어 먹었다는 부대찌개처럼, 털털이 국수도 넣어 끓여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집어넣어 끓여 먹었다.
지금 원종이 끓여내는 털털이 국수도 마찬가지였다.
육수를 내는 데 쓰인 어포 건더기도 넣었고, 다시마도 건져 잘게 잘라 넣었다.
먹고 남은 식은 밥과 김치는 물론이고 여러 가지 말린 채소도 다 넣어 끓였다.
결과적으로는 시래깃국에 국수를 넣은 것처럼 볼품없게 만들어졌지만, 이런 음식도 먹지 못하고 굶어 죽는 사람이 있는 조선이었기에 진수성찬이었다.
소금물 간수를 얻기 위해 땅을 파던 이도, 물레방아를 돌려 밀가루를 만들던 이도, 밀대로 밀가루를 밀던 이도 원종이 퍼주는 국수 한 그릇을 받아 들곤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먹었던 고명이 예쁘게 올라간 국수도 맛있지만, 한 솥에서 끓여내고, 동료들과 같이 먹는 저 푹 퍼진 털털이 국수도 맛있을 겁니다. 어쩌면 한솥에서 나온 음식을 먹었기에 가족들처럼 여겨져 더 맛있는지도 모릅니다.”
대영일은 원종의 말이 맞을 것 같았다.
자신들은 붉은색과 초록색의 고명이 올라가 초나라와 한나라가 싸우는 것 같은 장기판 같은 국수였다면, 일꾼들이 웃어가며 먹는 털털이 국수는 초나라와 한나라는 물론이고 전국 시대 모든 나라가 다 섞여 만들어진 통일된 왕조의 나라 같았기 때문이었다.
***
단무지를 만드는 곳으로 가기 위해 다시 배에 오를 때까지도 대영일은 이 털털이 국수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고사형. 전 제조가 국수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준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시험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야기나 시험이라니요?”
대영일은 자신이 초나라와 한나라의 예를 들며 국수 이야기를 하자, 그런 천하는 필요 없다는 듯이 젓가락으로 뒤섞고 검은 간장을 뿌려 한 번에 국수를 먹었던 것을 상기시켰다.
“요동을 기반으로 군량을 모으고, 힘을 길러낸다면 초나라와 한나라처럼 명과 우리 발해가 자웅을 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우리를 알려, 전 제조를 끌어들이고 싶었기에 그리 이야기를 했습니다.”
“음. 확실히 그는 배포가 크고 상도를 아는 자라 중히 쓸 수 있는 자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필요 없다는 듯이 먹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요.”
“네. 그리고, 털털이 국수를 끓인 후에는 한솥밥을 먹은 이들은 가족 같다며 강조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국수 작업소를 보여준 것이 그런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한솥밥을 먹는 가족이 되라는...”
“흠. 발해방의 솥에서 나오는 음식을 그와 나눠 먹고 싶었는데, 그는 털털이 국수로 우리에게 자신들의 솥으로 오라고 이야길 하는 것 같군요.”
고주원도 곰곰이 생각했다.
“송상의 예처럼 각기 다른 솥 밥을 먹으며 가다 보면 결국 갈라서지만, 한솥밥을 먹는 이들은 솥이 깨지지 않는 한 같이 움직이지요. 고민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네. 시간이 있으니 은근히 우리의 모습을 알려주고 자기 솥을 들고 우리에게 오게 만들 것입니다.”
대영일이 원종을 탐내 자기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말에 고주원도 동감했다.
밀로 누구든지 쉽게 들고 다닐 수 있고, 바로 끓여 먹을 수 있는 국수를 만들어내는 재주는 쉽게 볼 수 있는 재주가 아니었다.
그리고, 왕십리 인근의 단무지를 만드는 작업소에 다다르자, 전쟁이 벌어져 공성전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떠올랐고, 전원종이란 자를 발해방 사람으로 끌어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공격하는 측에서 장기간의 공성전이 예상되면, 성 인근 밭에 무씨를 뿌리는 것이 공성전의 시작을 알리는 행동이었는데, 그런 무를 맛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자는 새로운 발해에 필요한 재주였다.
< 177. 면식의 시대.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