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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69화 (169/327)

169. 한민족. (1)

발해가 서기 926년에 망했으니, 500년이나 지난 옛 나라의 이름이었다.

그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발해인으로서 한민족의 복식이나 말을 지켜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왕 교역을 할 거라면 발해인을 자처하는 고주태와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도련님. 곡식 천 석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아닌 것 같은데요.”

삼식이의 말처럼 고주태를 따라 들어간 집은 천 석의 곡식을 감당할 만큼 큰 부잣집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름대로 큰 대문이 있었으나 대문에 달리는 현판도 없었고, 관리가 안 되어 색이 바랜 것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집 지붕도 기와를 올리기는 했으나, 오랫동안 관리되지 못해 군데군데 깨져 있었고, 담벼락에는 금이 가 있어 보수할 여유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눈에 보이는 일꾼도 한둘밖에 없어 제대로 된 거래가 힘들 것 같았지만, 한민족이라는 생각에 그가 이끄는 대로 앉아 내어주는 차를 마셨다.

“태풍을 피해 왔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태풍은 얼마마다 한 번씩 만날 것 같소?”

고주태는 다른 이야기도 하지 않고, 바로 또 언제 내방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의주로 근해 교역을 하는데, 태풍이 자주 불어오기에 못해도 두 달에 한 번은 태풍을 피해야 하겠지요.”

“두 달이라...”

고주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는데, 교역할 수 있는 일정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

“그럼, 태풍을 피해 올 때마다 얼마 정도 머물다 가는 것이오?”

“뭐, 배에 실려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출항할 수 있는 물품을 맞추면 떠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보니 이곳 현위(縣尉)의 성정이 까다로워 오래 머물지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흠. 현위의 문제는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소이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두 대의 배가 올 것이오?”

“교역을 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야 두 대뿐이겠습니까? 이문이 남는다면 더 많은 배가 태풍을 피해 대련으로 올 수 있을 겁니다. 조선에 가져가 팔아 이문이 남는 곡식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이곳 요동은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밀이나 콩류가 많이 재배되오. 두 세척의 배라면 나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을 거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많은 배가 와서 이곳 대련에 오랫동안 머물러 달라는 거요.”

교역을 통한 이문을 남기는 게 아니라, 그저 대련에 도착하여 오랫동안 머물러 달라는 말에 그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여기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면 뭔가가 일어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체류비라는 게 있어서 오래 머물게 하여 무역의 이득을 체류비로 뽑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하하하 그런 의미가 아니네. 체류비 같은 것은 없네. 그저 우리와 어울려 줬으면 싶어서 이야기를 한 것이네.”

“어울려 달라고요? 흠. 더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 같습니다. 다른 사연이 있다면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그래야 그 사연을 듣고 도와줄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내가 말해주지.”

등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항구에서 우리에게 까칠하게 응대했던 바로 그 현위였다.

“긴장하지 말게나. 내 친동생으로 고주원이라고 하네. 보다시피 명나라의 녹을 먹고 있지.”

고주태가 현위를 처리해 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관리 보수되지 못한 집을 보며 의심했던 신용도 관리를 끼고 있다는 생각에 급상승했다.

“우리와 어울려 달라는 말은 조선, 아니 한반도의 사람들과 어울려 우리의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서네. 지금 있는 이 건물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아나?”

“들어오면서 보니 현판도 없던데 뭐라고 불렀습니까?”

“발해방(渤海坊)이라고 불렀네.”

현위 고주원이 발해방이라고 했기에 신라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신라방(新羅坊)이 떠올랐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당나라 시절 동쪽 해안가인 산동 지방과 항주 인근 항구에 만들어진 신라방은 이런 건물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중국은 새로 도시를 만들 때 방장제(坊牆制)란 제도로 도시의 구획을 정해 만들었는데, 가로세로 직선을 그어 바둑판처럼 계획적으로 도시를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長安)이었다. 장안성의 108방 구역도 이런 방장제의 제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런 방장제로 도시들이 지어졌기에 신라방이라는 것은 신라인들이 모여 사는 한 개의 방(坊), 구역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구역의 이름을 집에 붙여 쓰고 있다는 게 괜히 이상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 것 같군. 이 대련에도 발해인들이 몰려 살았기에 신라방의 이름을 따 발해방이라 정한 거라네. 대련은 큰 도시도 아니고, 계획도시도 아닌, 그저 요동의 곡식을 모아 옮기는 항구일 뿐이라 방장제를 따르지 않네. 그래서 발해방이란 이름을 건물에 붙여 쓸 수 있는 것이지.”

“그렇군요.”

“헌데, 자네가 보기에도 이 집이 쇠락해 보이지 않는가? 한때는 발해방에 모여드는 발해인이 수백 명은 되었지만, 이젠 우리 집안과 저기 대영일의 집안 밖에 남지 않았어. 세월은 이길 수 없다고, 다들 흩어져버렸지.”

“그래. 이 집이나 내 동생을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영락제 주체가 황제가 되며 화북과 요동에 명나라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명나라의 조정에 들어가는 자들도 많아졌고, 한족과 혼인으로 섞이다 보니 발해인으로서의 자긍심이나 민족성이 희미해지고 있네.”

“형의 말도 맞지만, 원나라 때만 해도 발해인이라 억압받았고, 주원장일 때는 이곳을 신경 쓰지 않아 살기 어려워 발해방을 중심으로 뭉쳤었지. 하지만, 주체 영락제 이후로는 나름의 치세가 이어져 먹고살 만해졌다는 게 더 문제야.”

“영락이 제위에 오르고, 이후 그의 후손들이 황제가 되어 60년이 되면서 우리 세대도 벌써 두 세대가 지나가 버렸어. 아마도 지금처럼 한세대만 더 지나간다면 발해인들도 명나라의 한인들과 섞여 버리고 말겠지.”

두 형제의 이야길 듣고 보니 뭣 때문에 어울려 달라고 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한인들과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한반도의 사람들이 태풍을 핑계로 대련으로 자주 와 같이 어울리길 원하시는군요.”

“맞네.”

고주태 형제와 이야길 할 때 건물 안으로 어린아이들도 왔다 갔다 했는데, 옆에 서 있는 대영일이란 자의 아들들 같았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한민족의 말을 쓰지 않고 중국어를 쓰고 있었는데, 고주태의 이야길 듣고 보자 마치 미국 이민을 간 한인 2세 3세가 한국말을 하지 못하고 영어만 쓸 줄 아는 미국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았다.

자국 고향의 말을 지키려면 그 언어를 쓰는 사회커뮤니티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라가 망한 후 500년이나 지나다 보니 이제 그 단절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원나라 때나 요동이 혼란스러웠을 때는 서로가 도우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뭉쳤겠지만, 나름의 치세가 50년 넘게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커뮤니티의 해체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 사회 붕괴와 해체를 막아보고자 우연히(?) 태풍을 피해 온 조선인들과의 교류를 원하는 것이었다.

발해인으로서 민족성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런 일이라면 당연히 협조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야기하자면 태풍을 핑계 대긴 했지만, 그 태풍을 핑계로 압록강 비단섬 인근의 동항에 들러 교역을 하고 정기적으로 대련으로 올 생각이었습니다.”

“조정의 눈을 피해 태풍을 핑계로 오려고 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타국과의 무역이 금지라고 하더라도 태풍을 피해 기착하는 것은 죄를 물을 수 없으니깐요.”

“그렇다면 우리도 1년에 한두 번은 그렇게 조선 땅을 밟아볼 수 있겠군.”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압록강과 황해가 만나는 동항으로 와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의주 목사로 있는 제 형이 동항에 터를 잡을 예정이며, 조선인들이 그것에 상주할 예정입니다.”

“동항이면, 요동 땅이긴 하지만, 압록강만 건너면 조선이니 조선인들의 왕래가 잦긴 하겠군. 여기 대련과 천리길이나 되지만, 조선인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라면 동항으로 갈 수밖에 없겠구만.”

고주태 형제에겐 앞으로 배를 이용해서 동항을 기착지로 삼아 대련과 위해를 잇는 곡식 무역 루트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고씨 형제들을 대련에서 교역용 식량을 조달할 수 있는 사업 상대라고 생각하였기에 무역 루트를 공개 한 것이었다.

“괜찮은 생각이군. 여기 대련과 위해는 운하로 운송이 되지 않는 곡식들이 항구로 몰려드는 게 맞아. 상등품이 아닌 곡식이라면 충분히 물량도 구할 수 있을 것이고, 그걸 조선에 가지고 간다면 수익이 남을 것이네.”

고주태는 대련의 곡식 시세를 알려주었는데, 확실히 콩이나 녹두가 저렴했고, 조선에서는 대량으로 재배되지 않는 호박도 곡식처럼 나온다는 이야기에 꽤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위해에는 신라방 사람들이 남아 있지. 거긴 그래도 유민이 여기보다 많았기에 우리보다는 인적 사정이 좋을 것이야.”

“오오! 위해에도 신라의 후예들이 남아 있다니 다행입니다. 이렇게 한반도의 한민족들이 힘을 모아야지요. 널리 흩어진 우리 민족들을 이롭게 하라는 단군 할아버지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뜻이 이런 뜻 아니겠습니까? 서로 도와야지요. 하하하”

“그렇지. 그럼 선원들을 환영하는 자리를 만들지.”

발해방 사람들의 초대로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도 모두 참여한 잔치가 벌어졌는데, 이런 환영에 감사하다는 의미로 조선에서만 나오는 물건들을 선물로 줘야 했다.

그리고 중국 명나라의 영향인지 신량역천 같은 직업에 따른 계층 구분이 크지 않았는데, 장가를 가지 못하는 선원들을 데려와 국제결혼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고주태는 그렇게 결혼하게 되면 조선이 아닌 대련에서 살게 하려고 하겠지만, 뭐 그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미국 LA에 있는 코리아타운이 미주 한인들의 고향 같은 존재로 한국계 미국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것을 보면, 이렇게 조선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것은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했다.

“그런데, 동항에 무역 근거지를 만들 것이라고 했는데, 거기 사는 여진인들은 괜찮던가?”

“여진인들의 약탈을 걱정하시는 것이라면 이제 압록강 변에 있는 여진인들은 대부분이 조선이나 명에 동화되어 정주 생활을 고민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약탈하고 도망치는 야만적인 유목 생활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하긴, 조선의 태조라는 이성계가 자기 목숨 살리려고 호전적인 여진족들을 다 죽였겠지.”

이성계도 여진인이었다는 말도 있었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여진인들을 죽여 북방을 안정시키고자 조선 초에 국경 인근의 여진족들을 자주 토벌했었다.

물론, 그렇게 여진족이 토벌된 땅을 조선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시도한 북방 개척은 대부분 실패했지만.

“그래서 그런데, 동항 근처에서 농사를 지을 사람들은 없겠습니까?”

원종은 여진인들을 정주시킬 수 있게 치즈라는 것을 만들었으나, 짐승을 먹일 건초가 부족해 힘들다고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동항 근처나 압록강 변에서 농사를 지을 사람들이 없는지 물었다.

“이곳 요동 반도에도 땅이 남아도는데, 굳이 거기까지 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은 없을 걸세.”

“역시 그렇군요. 낙농업을 위해서는 그런 짐승에게 먹일 풀이 중요한데, 조선인을 데리고 오는 것 말고는 답이 없군요.”

“그렇겠지.”

이후로 고주태 일행과 원종 일행은 본자기를 건네주고, 콩과 녹두, 호박을 바꾸어 가는 흥정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상호 간에 이득을 챙긴 거래를 끝내고 내일부터 배에 곡식을 싣기로 했다.

***

“고 사형(師兄). 저자와 이야길 해보니 친형이 명나라의 태수와 비슷한 고관으로 의주에 있고, 동항에 상관을 차린다고 하던데, 조선에서 그런 고관이라면 상업을 하지 않는 게 아니었습니까?”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고주태와 고주원의 뒤에서 실권 없는 젊은이로 보였던 대영일의 질문에 고주태는 공경을 담아 대답했다.

“헌데, 상업에 적극적이고 압록강변부터 요동 땅을 개척하려고 하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조선인들은 조선 반도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니깐요. 그래서 혹시나 이성계에게 몰살당한 여진인들의 후예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조선에 들어가 있는 이들에게 저자와 저자가 운영 중이라는 춘봉상단에 대해서 알아봐 주십시오. 저리 요동 땅을 개척하려 하고, 군량미로 쓸 수 있는 곡식을 대량으로 들고 가는 것이라면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자일지도 모릅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꿍꿍이속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러면 같이 일을 도모하던지, 그게 아니면 서로 이용을 하든지 해야겠지요. 조선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다 뭔가 다른 길을 찾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네. 그럼 저자와 관련된 정보부터 모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동항에도 사람을 보내 진짜 무역 기착지로 쓸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알아보겠습니다.”

“고맙소이다. 네 고사형만 믿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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