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선봉장이 되어주시오. (2)
춘복이와 왈패들은 어디서 주워들은 왜놈들의 말투를 쓰며 뛰쳐나갔다.
보통은 이렇게 왜구들이 들이닥치면 상단이나 유민들은 지레 겁에 질려 주저앉거나 짐을 버리고 뒤돌아 도망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제까진 모두 그렇게 손쉽게 재물을 털어먹었었다.
그래서 춘복이는 이번에도 예전과 같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이들과 반응이 달랐다.
“왜구 놈들이다! 무기를 들어라!”
두 대의 수레 앞뒤로 짐을 메고 있던 이들이 침착하게 짐을 내려놓고 수레의 나무 벽을 뜯어 왼손에 들었다.
그러곤, 수레 나무 벽의 기둥을 뽑아 들었는데, 앞쪽이 날카롭게 깎여있어 흡사 창과 같았다.
방패와 창을 든 이들은 수레를 지키듯이 수레에 붙어 섰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고슴도치가 몸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세운 것과 같았다.
[피잉~]
“크흑.”
방패로 만든 인의 장벽 뒤로 수레에 오른 두 명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시발! 아니 칙쇼! 바가야로! 이게 뭐야!”
우두머리인 춘복이도 이런 실전을 겪어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니 다른 이들도 이럴 땐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춘복이만 쳐다보며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왜놈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왜구로 가장한 잡놈들이로구나!”
방패를 들어 말을 지키고 있던 삼식이는 왜구가 아닌 것을 알아채자 마음이 놓였다.
의주와 한양을 오가며 교역할 때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이런 산적 놈들을 숱하게 겪었었다.
처음 상단을 꾸릴 땐 원종 도련님이 상행에 도움을 줄 수 있게 힘 좀 쓰는 애들을 상단 식구로 받아들이라는 소리를 대충 건성으로 받아넘겼었다.
하지만, 북방 3도의 험악함을 겪고 나니 여진 야인 출신이나 북방군 출신의 전쟁 경험이 있는 이들을 위주로 상단의 식구를 뽑았다.
그런 이들 중에 명나라에서 군역을 살다 온 함청영이란 자가 있었는데, 그의 의견을 받아 평상시에는 수레의 벽이 되고, 유사시에는 방패와 창으로 쓸 수 있는 수레도 만들었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다 보니 왜구들이 기습을 해와도 침착할 수 있었고, 개별로 달려드는 이들을 창으로 견제하며 피해 없이 대치할 수 있었다.
“아니, 시발! 왜 도망치지 않는 거냐고!”
머리를 풀어헤친 춘복이 무섭게 보이기 위해 앞으로 달려들며 칼을 휘둘러보았지만, 기다란 나무창에 막혀 직접적으로 공격을 하지도 못했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상단 인원들은 수레 두 대를 중심으로 창을 세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구가 아닌 어중이떠중이니. 4인 1조씩 몰아라!”
왜구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으니 방어만 할 필요가 없었다.
화살을 쏘던 이들을 두고 4명씩 붙은 방패 창병이 도적들을 몰기 시작하자 도적들은 제대로 반항도 못 해보고 뒤로 밀려버렸다.
[피잉!]
“끄악!”
그러다 다시 두 명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자 뒤에서 눈치 보던 놈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놈들의 가장 앞에는 내상 박영철의 지시를 전해주던 상봉이란 놈이 가장 먼저 도망치고 있었다.
“깊게 쫓지 마라!”
창과 방패를 들었기에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는 놈들을 쫓아갈 수가 없었는데, 화살에 다친 두 명을 사로잡은 게 전부였다.
“화살에 죽은 네놈은 그냥 놔두고 사로잡은 놈들만 끌고 간다.”
도적 넷을 죽이고, 두 명을 사로잡았으니 이들을 데리고 인근의 웅천현에 데려가면 현감의 치하를 받을 터였지만, 다시 웅천현까지 되돌아가기도 귀찮았고, 시체를 싣고 가는 것도 달갑지 않아 버리고 움직였다.
***
“오 삼식아, 잘 왔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
“제가 아니라 이 물건들을 기다리신 거 아니십니까요?”
“하하하. 무슨 말을 그리하느냐. 헌데, 오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저 다친 이들은 누구냐?”
“도적들이 덤벼들었지만, 의주로 다니며 훈련한 대로 손쉽게 물리치고 포로까지 잡아왔습니다요.”
“습격이 있었다고?”
“네. 왜구로 변장하여 기습을 했는데, 방패 창병으로 쉽게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삼식이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수레에 달린 방패와 창을 뽑아 써 보니 원행에 필요한 수레에 안성맞춤인 무장이었다.
“이 창날에 쇠붙이만 박아넣으면 더 좋겠구만. 이걸 누가 생각해낸 거지?”
“의주 사람 함청영이란 자인데, 저자입니다. 이걸 명나라에서 군역을 살 때 배운 것이라고 합니다.”
“명에서 군역을 치렀다고?”
함청영이란 자는 키가 175가 넘는 휠 칠한 자였는데, 턱에 염소수염이 길게 나 있었다.
“의주 사람이긴 하나 압록강 건너에서 살며 한몫 잡아보려고 돌아다니다 끌려갔었습니다. 그러다 산해관에서 5년을 있었습니다.”
“산해관에서 5년? 용케 살아왔구만. 중국어는 좀 하나?”
“5년 동안 한족과 여진족, 이족까지 다 섞여 생활하다 보니 북방에서 쓰이는 말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좋구만. 인재로구만! 나중에 북경으로 사무역을 할 수 있게 되면 북방무역에 중히 쓸 것이니 전국을 다니며 물산을 배우도록 하게.”
함청영 외에도 활을 잘 쓰는 여진 야인 출신들을 비롯해서 삼식이가 모은 건장한 상단 식구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일주일 동안 쉬면서 상선에 탈 이들에게 활을 가리키고, 방패 창을 쓰는 것을 알려주게나. 아니면 상선에 타고 싶다면 여기에 남아도 되네. 한번 생각들 해보게나.”
상단 식구들끼리 어울리게 술판을 만들어 주고는 삼식이와 마주 앉았다.
“병(丙)급 본자기 20조와 의주에서 가져온 비단실이 한 수레 분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큰형님께서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삼식이를 통해 받은 서찰에는 원길 형이 명나라의 실권자인 만귀비와 연이 닿았고, 북경에서 팔게 된 본자기의 인기가 많아 큰 이득을 보게 되었다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홍삼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홍삼? 갑자기 왜 홍삼이냐?”
“네. 그게, 친분을 만든 명나라 상인들이 홍삼을 구해주길 원한다고 합니다. 인삼을 이끼에 싸서 북경까지 들고 가는 것은 괜찮지만, 그걸 다시 저 멀리 남쪽이나 동쪽 끝까지 가져가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결국, 북경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쓸 수 있게 홍삼을 구해달라는 거군.”
“네. 인삼을 이끼에 싸서 시간이 오래되면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피거나 썩어버린다고 홍삼은 멀리까지 들고 가도 괜찮으니 값을 갑절로 쳐줄 테니 홍삼을 구해 달라고 했답니다. 큰 도련님은 홍삼을 만드는 법을 알아봐 달라고 하셨는데, 혹시 아시는 겁니까?”
삼식이는 큰 도련님의 기대처럼 왠지 막내 도련님이 홍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이 원종은 큰일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삼을 만드는 것이야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홍삼을 만들 만큼 인삼을 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여윽시~! 개경의 몇몇 장인들만 홍삼을 비법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던데, 도련님은 그 방법을 아시는군요.”
삼식이의 기대에 부응하며 설명해주려는데, 처음부터 막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명칭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 중국에서 비싸게 팔리고 있고, 상인들이 원하는 인삼(人蔘)은 지금의 개념으로는 산삼(山蔘)이었다.
후한(後漢) 말 장사 태수였던 장중경이 쓴 상한론(傷寒論)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 명약 인삼은 재배된 것이 아닌 산에서 캐낸 산삼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후한 때부터 그 공급이 부족했기에 인삼의 이름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산에서 정말 한 뿌리 두 뿌리 캐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삼 1근(600g)의 가격이 백미 수십 가마의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인삼 1근 600g에는 인삼 3~4뿌리가 되어야 했으니 인삼 1근을 만드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러다 고려말 산에서 캔 인삼의 씨앗을 밭에 뿌려 재배를 시작했는데, 이 이후부터 재배된 삼을 인삼 혹은 수삼(水蔘)이라 불렀고, 산에서 캐온 자연산 삼만을 산삼이라 불렀다.
물론, 이렇게 부르는 것은 한반도 한정이었으며, 중국이나 외국에서는 산삼이나 인삼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다 인삼이라 불렀다.
현대에도 여러 가지 재배 방법에 따라 장뇌삼이나 산양삼으로 이름을 달리 붙여 부르지만, 외국에서는 그냥 다 인삼이었다.
그리고, 그 함유 성분도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았기에 그 효용에 대한 것도 별 차이가 없었다.
인삼의 근령 또한 그저 한국에서만 산삼 50년근이니 100년근이니 하며 따질 뿐이었다.
이런 부분도 정리해서 표준을 만들어야 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홍삼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삼으로는 수급이 안 되어 불가능하고, 재배된 인삼부터 확보하는 것이 먼저였다.
“형님이 요청한 대로 홍삼은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재료가 되는 인삼부터 재배해야 한다. 내가 편지를 써줄 터이니 한양으로 올라가며 문경에 들러 김재원 대행수에게 이 편지를 전하거라.”
“인삼의 씨앗을 밭에 뿌려서 인삼을 길러내는 게 가능한 것입니까요?”
삼식이가 편지 내용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까지 인삼을 밭에서 키운다는 것은 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다만, 그 조건이 까다롭고, 최소 4년 이상 길러내야 하기에 처음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본자기를 판 자금이 있으니 미래를 보고 인삼밭을 만들어 봐야지. 내가 살펴보니 경북 영주가 인삼을 키우기 알맞으니 김재원 대행수에게 차양을 친 인삼밭을 만들게 시켜볼 것이다.”
인삼 하면 금산이 떠올랐지만, 그에 못지않게 풍기(영주)와 부여도 인삼을 많이 재배했고, 그 3곳이 한국의 3대 인삼 재배지였다.
그런 경북 영주가 문경의 지척이었기에 김재원에게 일을 맡기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럼 큰 도련님께는 홍삼은 한 4~5년은 걸린다고 해야겠군요.”
“그래. 그동안에 너도 오다가다 어디서 인삼을 캤다고 하면 그 씨앗이 있는지 물어보고 씨앗을 구매해 김재원 대행수에게 가져다주거라.”
“네. 알겠습니다요. 헌데, 배는 언제 받을 수 있는 겁니까요?”
“수영이 거제도에 있는데, 정기적으로 두 달에 한 번 동래로 오는 배가 있다고 하더구나. 그 배를 기다렸다 그걸 타고 거제로 갈 것이다.”
“기대가 됩니다요. 말이 아무리 힘이 있다 하더라도 수레를 밀고 끌며 다니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요.”
“그래. 배만 나오면 교역 일이 편해질 것이다. 헌데 사로잡은 놈들은 입을 열었느냐?”
“저 둘은 그냥 춘복이라는 놈이 일을 받아오면 그놈을 따라 습격하고 물건을 빼앗았을 뿐으로 그 배후가 누구인지조차 몰랐습니다.”
“흠. 그럼, 춘복이라는 놈을 잡으면 되겠는데... 그 뒤에 나오는 놈을 처리할 힘이 아직은 없구나.”
“사적으로 밤에 몰래 담을 넘는 것은...”
“아서라. 그게 도적과 뭐가 다르느냐. 우선은 그 춘복이라는 놈을 감시하면서 어디서 사주했는지부터 알아보자. 그 이후 힘이 생기면 그때 힘으로 눌러 털어먹어야지.”
“그럼, 저 두 놈은 어찌할까요?”
“그야, 배에 태워서 써먹어야지. 선원이 되겠다는 이가 잘 없어서 큰일이다. 우선 내일 왜인들이 보는 앞에서 송상에게 본자기를 넘기는 보여주기 행사를 한번 하자구나.”
“그리고, 저는 일주일 후에 다시 본자기를 가지러 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까요?”
“그렇지. 하하하. 다시 본자기를 가지러 가는 모습이라고 보여주면 선금부터 걸려고 할 것이다.”
***
왜관개시가 끝이 나고 조선의 상인들이 왜관에서 나올 때에 맞춰 본자기를 실은 수레를 보여주며 송상의 건물로 향했는데, 희재가 동네방네 소문을 내어서 그런지 색리들이 말렸음에도 왜인들도 꼭 봐야겠다며 왜관을 나섰다.
동래 부사 김상국도 왜인들의 요청이 많았기에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왜인들이 본자기를 보며 감탄하는 모습을 보곤 이게 진짜 돈이 되겠구나 싶었다.
“스바라시! 도자기가 저리 하얗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소이다.”
“손가락으로 쳤을 때 청아한 소리가 일품이오.”
“어엇! 떨어트리면 어찌하오!”
희재가 송상 최한에게 본자기를 넘기기 전에 무작위로 한 개를 꺼내 땅에 떨어트렸는데, 깨지지 않는 것에 다들 놀라 자빠질뻔했다.
송상 최한 또한 아주 만족하며 천은이 든 상자를 건네었는데, 희재는 상자를 받고 바로 물러 나왔다.
왜인들은 송상에게 본자기를 사기 위해 몰려들었고, 눈치 빠른 몇몇은 희재에게 몰렸지만, 색리들이 가로막았다.
“며칠 내에 연락을 드리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