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54화 (154/327)

154. 속전속결(速戰速決)의 음식.

펄펄 끓기 시작하는 솥에 토막 난 아귀를 넣는 순서가 있었는데, 가장 부드러운 아귀의 간을 먼저 넣고 위와 알을 넣어야 했다.

아귀는 비린내가 상대적으로 적음에도 잘게 간 마늘과 생강을 넣어 냄새를 잡고, 청주까지 넣어 끓여줬다.

그러곤 식초를 넣었는데, 탕에 식초를 넣는 모습을 보곤 희재가 깜짝 놀랐다.

“도련님 그건 식초 아닙니까요? 식초를 탕에 넣으면 맛을 해치는 것 아닙니까요?”

“아니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있지만, 식초는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준다네.”

생선의 비린내는 생선 살의 삼투압 물질인 ‘산화 트라이메틸아민’이란 물질 때문에 나는 것이다.

이 물질이 평상시에는 괜찮지만, 생선이 물 밖으로 나와 죽은 이후에는 생선의 몸속에 있던 효소와 세균이 ‘산화 트라이메틸아민’을 분해하게 되어 비린내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선이 죽은 지 오래되면 비린내가 더 심해지는 것이었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생선은 ‘산화 트라이메틸아민’이 분해되지 않았기에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산화 트라이메틸아민’과 같은 ~아민계 화합물은 산(酸)과 만나게 되면 중화되어 염기성 물질이 되는데 그러면 더 이상 비린내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생선구이를 먹을 때 레몬이나 라임 같은 신 과일의 즙을 뿌려 식욕도 돋우고 비린내도 없애는 방법을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신맛을 내는 레몬이나 라임은 동아시아에 거의 없었기에 식초의 산(酸)성 분을 넣어 비린내를 잡는 것이었다.

더불어 산(酸)에 의해 생선의 살도 더 탄력적으로 변했기에 생선을 구워 먹거나 탕으로 먹을 때는 식초를 넣어주는 게 맛을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금세 익어 버린 간과 알이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레 꺼내고, 토막 낸 아귀의 절반을 넣어 끓였다.

반 각 동안 살코기를 익힌 뒤 솥에서 아귀들을 모두 꺼내었는데, 솥에서 끓여 내는 경상도식 아귀 수육이었다.

남은 아귀살과 크게 썬 대파와 깍둑썰기를 한 무, 한 뼘 길이로 자라난 콩나물을 넣었고, 웃자란 미나리도 썰어 넣었다.

“이제 소금이나 젓갈로 간을 맞춰주면 끝이네. 어려운 손질에 비해 탕은 그냥 넣어서 끓이면 되는 것이라 만들기 쉽네.”

탕이 끓는 동안 수육으로 건져낸 간과 알, 위를 잘게 썰어 간부터 작은형의 입에 넣어주었다.

원상은 왜 자기가 처음이냐며 인상을 썼지만, 동생이 직접 입에 넣어주니 먹을 수밖에 없었다.

간이기에 퍽퍽하게 부서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기름기가 솟아나는 것 같은 식감에 원상은 놀랐다.

뒤이어 잘게 썰린 위와 알을 참기름 장에 찍어 입에 넣어주었는데, 아귀의 위는 쫄깃했고, 알은 퍼석거렸기에 한배에서 나온 부속물이었음에도 다다른 식감에 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참기름의 고소한 맛과 아귀의 간, 위, 알이 입안에서 부서지며 뒤엉키자 마치 육고기 부산물을 먹는 듯하였다.

“허허. 이런 별미를 놓칠 뻔했구나. 간을 초간장에 찍어서 다오.”

가장 먼저 먹은 원상이 맛있다며 아귀 간을 더 달라고 하자, 아랫것들도 진짜 저게 맛있는 건가 하며 호기심을 내었다.

“아귀 간이 있는 지금 먹어 보게나. 나중에는 먹고 싶어도 없어서 못 먹을 것이야.”

호기심 많은 희재부터 수육을 한두 점씩 먹어 보더니 다들 아귀 수육이 못 먹는 음식이 아니라, 육고기에 버금가는 풍미가 있는 음식이라는 것에 놀랐다.

10여 명이 한두 점씩 주워 먹다 보니 금세 수육은 바닥이 나버렸다.

그리고, 솥에서 뽀얀 국물과 기름기가 오르기 시작하고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자 대접 그릇을 미리 들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헤헤헤. 도련님. 수육이 저리 맛있다면 탕도 엄청나게 맛있지 않겠습니까요. 헤헤헤.”

“지금이 저녁이 아니라 아침이고, 어제 술은 먹은 자가 있다면 이 아귀탕이 최고의 속풀이 국이었을 거네. 우선 한 그릇씩 받아 가게.”

아귀에는 피로 회복에 좋은 아미노산과 타우린 성분이 풍부했고 같이 탕에 들어가는 콩나물과 미나리에는 간 피로 회복에 도움을 주는 성분이 들어있었다.

특히, 한의학에선 미나리의 성질이 시원해 몸의 열을 없애고 각종 염증을 가라앉힌다고 보고 있는데, 이로 인해 급성간염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간 회복 성분이 있다는 게 잘못 알려져 복어의 독인 ‘테트로도톡신’의 해독에도 효과가 있다고 복국에는 미나리를 꼭 넣어야 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었다.

그리고 본능인지 아니면 내가 술 속풀이 국으로 좋다고 이야길 해서 그런지, 아귀탕을 맛본 자들은 입맛을 다시며 술을 찾는 얼굴이 되었다.

“도련님. 수육 고기도 쫄깃하게 맛있는데, 탕도 시원한 것이 장난이 아닙니다요. 도련님이 이렇게 해주지 않았다면 아귀처럼 생긴 저것을 먹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요.”

“저도 영덕에서 아귀를 잡았을 때 그 생김새가 끔찍하여 그냥 물에 버리거나 땅에 던져 죽게 했는데, 이리 맛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 어부들이 거의 공짜로 아귀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겠느냐. 당분간은 원가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이 아귀를 왜인들에게 팔 것이니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주의하거라.”

아귀의 원가 문제도 있었지만, 아귀를 닮은 기괴한 생선을 먹는다고 이야기가 퍼지면, 직접 먹어 보지 않은 이들의 입방정도 피곤할 것이었기 때문에 아랫것들의 입단속을 시켰다.

아귀찜도 바로 해주고 싶었으나 찜은 말려서 해야 하기에 다음으로 넘겼다.

“도련님. 그러면 왜인들에게는 이 수육을 파는 것이옵니까? 아니면 탕을 파는 것이옵니까?”

“수육도 아니고, 탕도 아닌 속전속결(速戰速決)의 음식을 팔 것이다.”

“속전속결의 음식은 뭡니까요?”

원종은 직접 보라는 듯이 어멈들이 손질한 작은 아귀를 삶아내었고, 그걸 다시 간장에 졸여내었다.

그러면서 대접에 조밥을 담고, 그 위로 아귀 간장 조림과 간장에 볶은 파, 식초 물을 들인 무를 올렸다.

“이게 바로 속전속결의 음식인 덮밥이다.”

“덮밥요?”

원종은 내일 직접 포장 수레에서 일할 희재와 고도개에게 조리법을 알려주었는데, 집에서 아귀를 삶아가고 포장 수레에 작게 만든 화덕 냄비에서 간장에 졸여 밥에 올려 파는 것을 연습시켰다.

“다른 음식에 비해 대접 하나에 밥과 반찬을 같이 올려주는 것이라 그릇을 더 쓸 필요도 없고, 왜인들에게는 나무젓가락만 주면 되는 것이니 대접을 들고 입 가까이 들어 밥을 빨리 먹을 것이다. 그래서 속전속결의 음식이지.”

한국에도 제육 덮밥, 오징어덮밥 같은 메뉴가 있었지만, 일본식 덮밥과는 그 쾌가 달랐다.

일본의 돈부리(丼, どんぶり)는 우리나라의 덮밥과는 달리 패스트 푸드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밥 위에 여러 가지 음식을 올려 먹는 덮밥 형태는 중국 당나라 때부터 문헌에 나와 있다.

조선도 풍년을 위해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후에는 사반(社飯)이라는 형태의 덮밥을 먹었었다.

일본도 덮밥이 무로마치 시대(1336~1573) 때 밥 위에 다섯 종류의 음식을 올려 먹던 호우한(芳飯, ほうはん)이라는 요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 덮밥을 대표하는 장어덮밥이나 쇠고기덮밥 같은 것은 메이지 시대에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일본이 메이지 시대 근대화되고, 산업화가 진행되며 제대로 밥을 차려 먹기 힘들게 되자, 간이 식당에서 호우한을 본떠 밥 위에 반찬을 얹어 파는 지금의 덮밥을 내놓으면서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즉, 지금 우리가 포장 수레에서 만들어 파는 덮밥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근대식 덮밥과 같은 패스트 푸드이지만, 상위계층이 먹던 호우한(芳飯, ほうはん)이라는 요리라고 포장을 할 수가 있었다.

더구나, 아귀가 조선에선 생김새로 천시받지만, 일본에선 우대받는 어종이었다.

‘서쪽은 복어. 동쪽은 아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귀는 귀한 대접을 받았고, 동짓날 아귀는 그림을 그려서라도 맛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겨울에 잡히는 아귀를 최고로 여겼다.

물론 17세기 에도시대 때 아귀의 맛이 알려지게 되며 만들어진 맛이었기에 지금 왜인들은 아귀의 맛을 모를 때이긴 했다.

그래서 아귀를 사무라이들이나 먹던 호우한 요리라고 파는 포장이 중요했다.

“이른 아침에 간장이 졸여지는 냄새가 좋기도 하겠지만, 본자기를 본 왜인들은 어떻게든 우리와 친해지기 위해 이 덮밥을 사 먹으려고 할 것이네. 그러니 가격은 좀 비싸게 4전(약 8천원) 정도로 팔거라.”

“4전이면 너무 비싸지 않겠습니까요?”

“장터에서 파는 국밥보다 비싼 가격이지만, 그래도 사 먹을 것이다.”

그리고, 원종의 말처럼 다음 날 아침에도 왜관의 문이 열리자 왜인들이 쏟아져 나왔고, 왜관개시에서 춘봉상단을 알았기에 포장 수레로 왜인들이 몰려들었다.

4전이라는 가격에 망설임도 잠시 포장 수레에 붙어 있는 호우한(芳飯, ほうはん) 요리라는 글귀에 금세 8그릇을 주문했다.

“저기 포장 수레에 걸려있는 잔이 본자기 맞지?”

“우걱우걱 그래 맞아. 일부러 걸어둔 것이겠지. 와! 이거 엄청 수고이인데. 호우한이 이런 맛인 줄 처음 알았어. 사무라이들만 먹는 음식으로 알았는데, 조선에서 먹어 볼 수 있다니.”

“스바라시! 간장에 졸인 생선 맛이 혼또니 우마이네.”

왜인들은 본자기를 위해 춘봉상단과 거래를 위한 안면을 트고 쪽지를 몰래 주고받아야 했지만, 몰려드는 왜인들로 인해 그럴 짬이 나지 않았다.

“다른 상인들은 나무로 된 그릇으로 파는데, 이곳은 옹기에 밥을 담아서 파는군.”

“엇! 그릇 아래를 보시오. 사옹원의 그릇이오.”

“머시? 시장에서 이리 밥을 파는 데 사옹원의 그릇을 쓴다고?”

왜인들은 사옹원의 그릇이라는 말에 밥을 다 먹기도 전에 그릇을 들어 밑면을 보았다.

“정말이다. 도대체 춘봉상단이라는 곳은 얼마나 부자이기에 이리 막 그릇에도 사옹원의 그릇을 쓰는 것이지?”

“정보가 없소이다. 정보가 없어. 우리와 도자기를 거래하는 권리를 가진 송상은 말을 해주지 않고, 이거 원 열불이 나는구만.”

“삑삑! 아침 장을 마칠 시간이오! 왜인들은 어서 왜관으로 들어가시오!”

동래 부의 나졸들이 시간이 지났다며 왜인들을 단속하자 그제야 왜인들은 그릇을 반납하는 체하며 희재와 김고도개 등 포장 수레 직원들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내일 또 사 먹으러 올 테니 나 하야시를 잊지 마시오.”

“나는 스오(周防)가의 나츠오요. 내일 봅시다.”

장사가 끝난 희재가 받은 쪽지를 정리하니 10여 개로 대마도에 소속된 상인들이 일곱 명, 일본 서부의 다른 가문에 소속된 상인이 세 명이었다.

“흠. 나름대로 행동력이 있는 10곳이군. 내일도 밥만 팔고, 쪽지를 받아 누가누가 있는지를 확인해보자. 그리고, 희재는 본자기 건으로 송상에게 다녀오거라.”

***

“흠 그러니깐. 색리의 말에 따르면 한양에서 유명한 본자기라는 도자기를 춘봉 상단의 사람이 가지고 왜관개시에 왔다는 말이냐? 춘봉상단은 도자기를 거래할 수 있는 권리가 없을 터인데.”

“네. 맞습니다. 부사 어른. 본자기를 보고 왜인들이 몰리자 색리들이 막아섰는데, 팔지 않는다고 하여 색리들도 그대로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흠. 그럼, 송상에선 말이 없고? 제 밥그릇을 뺏으려고 하는 것인데 가만히 있더냐?”

“당연히 송상이 난리를 쳐야 하는데, 잠잠한 것이 좀 이상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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