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동래지점. (1)
“저희를 좋게 봐주시니 참으로 기쁩니다만, 나으리가 사람을 좋게 보시고 쉽게 마음을 주시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무슨 걱정이 된다는 말인가?”
“상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이리 사람을 잘 믿으시면 나중에 크게 속임을 당하실까 봐 그게 걱정이 됩니다.”
“하하하. 벌써 걱정을 해주는 건가? 사람을 믿지 못하고 속일 궁리만 하는 자는 그 행동에서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아 표가 나니 걱정 말게나. 그리고 정 안되면 저기 금산이를 보내 속인 놈의 허리를 분질러 버리면 되는 것이지.”
농담처럼 웃으며 허리를 분질러 버리면 된다고 하는 말을 듣고 보니, 그제야 삼정이의 눈에 양반들과 종들의 면면이 보였다.
마을이 왜구의 침탈을 당하고 정신이 없었기에 제대로 생각할 수 없었는데, 꼬마 양반과 일행들을 보니 예사 양반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동래에 먼 친척이 있다곤 하지만, 이 양반을 따라가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일 것이다. 종이에 수장(手掌)을 찍으라는 것만 하지 않으면 자매(自賣)되어 노비는 안 되겠지.’
“그런데, 나으리는 무엇을 주로 거래하시는 것입니까요?”
“동래에 차리는 지점에서는 왜에서 유황과 은, 물소 뿔을 가져오고, 왜에는 도자기와 문방사우, 북방의 가죽을 팔 것이네. 왜구 놈들에게 원한이 있더라도 왜놈들의 말을 익혀야 할 것이야. 그러니 사람들과 이야길 해보고 따를 것인지 아닌지를 확답을 주게나.”
삼정이는 마을의 생존자들과 이야길 했는데, 마을에 살아남은 이들 중에서 마흔 살인 삼정이가 가장 웃어른이라 다들 삼정이의 의견을 좇기로 했다.
“나으리. 다들 상단에서 일하는 것에 찬성했습니다요.”
“하하 좋네. 춘봉상단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네. 우선은 움직이세. 동래에 도착하여 집을 구하고 환영식을 하도록 하지.”
삼정이는 왜놈들이 가져가지 못한 소와 나귀를 끄집어내어 남은 곡식을 실었고, 닭과 오리도 다리를 묶어 일일이 손에 들었다.
돼지도 두 마리나 있었는데, 아이들이 나무 꼬챙이로 두들겨가며 움직이다 보니 동래 부에 도착하는 데 이틀이나 걸렸다.
***
“마당이 넓어서 좋긴 한데, 이리 넓은 곳이 필요하겠느냐?”
원상은 동생이 귀한 은자를 써서 초가 여덟 채를 사는 것이 괜한 낭비로 보였다.
뒤로는 산이 인접해 있어 밭을 일굴 수는 있을 것 같았지만, 쓸데없는 곳에 은자를 쓰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왕 상단으로 쓰는 건물이라면 동래현의 알짜 땅을 사든지 아니면 왜관이 있는 초량 인근으로 샀어야 하지 않느냐? 왜 그 둘과 어중간하게 떨어져 있는 남천동에 자리를 잡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구나.”
“그렇게도 볼 수 있으나, 저는 바로 배에서 물건을 내리기 위해 여기로 했습니다. 남천(南川)이 옆에서 흘러가기에 물을 구하기 쉽고 저쪽 바닷가에 누전선을 바로 댈 수 있어서 여기가 딱 맞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해 보면 동래와 초량의 중간쯤이니 그쪽에서 오기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니 할 말은 없구나. 동래 부에 갈 것인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
“네. 품직이 더 높은 이가 나이로는 어리니 서로가 불편할 것입니다. 다만 왜관개시에 참여할 수 있게 상단 대리인으로 희재를 좀 데리고 가주십시오. 호조에서 내어준 행장(行狀)이 있으니 수월하게 개시에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알았다. 내 천자문 글자를 받으면서 왜관개시에 참여하는 권한을 달라고 이야기해보마. 그리고 한양에 있는 춘봉가패 부산 지점을 여기에 만들 예정이라고 그것도 살짝 귀띔해 두마.”
“네 형님 부탁드립니다.”
이 시대 왜국과의 거래는 통신사 같은 정기적인 사행무역이나 공무역이 있었지만, 그보다도 왜관 내에서 벌어지는 개시대청(開市大廳) 혹은 왜관개시(倭館開市)라고 불리는 사무역이 훨씬 더 활발하였다.
초량왜관 안의 대청 앞에서 열린다고 하여 개시대청이라 불렀는데, 대청 앞으로 동서로 줄지어 조선 상인과 대마도 왜인들이 마주 앉아 가져온 물건을 내놓고, 가격을 흥정하여 거래를 했다.
조선 초에는 월 3회로 십일장으로 열렸으나, 광해군 이후로는 왜인들의 요청으로 월 6회 열리는 오일장으로 바뀌었다.
이 개시 자체가 왜관 안에서 이루어졌기에 개시에 참여하는 조선 상인은 동래 부의 색리(色吏 향리의 한 계층으로 가장 낮은 향리를 뜻한다)들의 물품 검수를 반드시 받아야 개시에 참여가 가능했다.
색리들은 나라에서 금지하는 금, 은, 화약 등의 거래를 막는 역할을 했는데, 실제로는 상인들이 파고 사는 물건을 기록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일이었다.
동래 부 색리의 점검을 받은 자들만이 개시에 출입할 수 있었기에 사무역이라고 할지라도 일반인들은 그 참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개시에 참여하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단의 큰 이권이 되었다.
이러한 이권을 위해 한양의 경강상인이나 송도의 송상들도 동래에 상관을 만들어 왜관개시에 참여하였다.
그러다 보니 동래의 상인집단이라는 내상(萊商)의 속을 들여다보면 진짜 동래 사람은 몇 없고, 외부의 상단들이 동래 내상입네 하며 이름을 올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원종의 춘봉 상단도 그런 상인들처럼 지점을 만들어 내상이 되려는 것이었다.
초가 여덟 채를 채별로 두르고 있던 싸리비 담장을 치우고, 전체를 아우르는 돌담을 쌓게 시켰는데 일을 시키곤 저 멀리 광안리 바닷가를 보았다.
현대의 빌딩이 늘어서 있고 비치파라솔, 광안대로가 놓여 있지 않은 광안리(廣岸里)는 그 한자 이름 그대로 모래가 쌓여있는 넓은 해안일 뿐이었다.
‘부산 광안리 하면 등킨 도나츠에 콩나물국밥인데 말이지. 밀가루나 콩이 제대로 수급이 되려나.’
대마도의 왜인들이 조선에서 구매해가는 물건은 중국에서 들여온 비단실과 도자기, 책을 포함한 문방사우였고, 조선의 인삼 같은 약재도 많이 구매해갔다.
하지만, 이런 물건들은 대마도가 아닌 왜국의 본토에 되팔리는 물건으로 비싼 만큼 소량 거래였고, 고가품을 판매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상인들만 구매했다.
왜관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물건은 곡식이었는데, 대마도 자체에서 생산하는 식량이 부족했기에 조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왜국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규슈지방에서 곡식을 가져오는 것보다 조선에서 가져오는 것이 훨씬 더 가깝고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이러한 곡식 사정이 정확한지 확인해 보기 위해 금산이와 왜관을 구경하기 위해 나섰다.
***
“왜인들의 옷을 입은 자가 왜관 밖에서 막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없군요.”
“왜관을 만든 이유가 그것이다. 왜인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막고자 왜관 안에서만 있으라고 지어준 것이지.”
“그럼, 왜인들과의 통교(通交)는 어찌 하는 것입니까요? 왜관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시에는 동래 부에서 허락한 사람들만 들어가는데, 어찌 왜인들과 안면을 트고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입니까요?”
“그건 내일 아침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온 것은 아침에 장사할 공간이 있는지를 확인하러 온 것이다.”
원종은 왜관의 입구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그 근방의 분위기를 확인하곤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동래 부로 갔던 형과 희재도 돌아와 있었다.
“동래 부사 이강현은 호조의 행장(行狀)을 보곤 바로 개시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만 춘봉 상단에 배정된 품목이 영 좋지 않다. 뒷돈이라도 쥐여줘야 하는 건가 싶다.”
원상형의 말대로 개시 허락의 서류에는 춘봉상단이 가져와 팔 수 있는 물품들이 쓰여 있었는데, 곡식류와 어패류였다.
“뭐. 괜찮습니다. 왜관에서 큰돈을 벌기보다는 그들을 통해 왜국과의 거래 안면을 트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시 외에도 왜국 상인들을 만날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희재는 나랑 뭘 좀 만들자.”
“또 톱니바퀴로 뭘 만들어야 합니까요? 한양서 만들어 온 톱니바퀴는 다 써서 없는뎁쇼.”
“바퀴긴 바퀴인데 톱니바퀴가 아니라 수레바퀴로 수레를 만들 것이다.”
“수레를요?”
원종은 수레를 만들 수 있는 목장(木匠)에게서 작은 수레바퀴를 사 왔고, 그 위로 사람의 허리께까지 오는 높은 단을 만들었다.
“이 단의 안쪽에는 재고를 놓을 수 있고, 이 단 위에는 바로 팔 수 있는 것을 올려두면 된다. 그리고, 손으로 밀고 다닐 수 있게 손잡이와 비가 와도 비에 맞지 않게 지붕을 만들어 달거라.”
“도련님. 이렇게 하단이 부실하고 단을 높인 수레는 험한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요.”
손재주 있는 희재는 이렇게 만들면 무거운 물건도 실을 수 없고, 조선의 좁고 험한 길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며 부정적으로 보았다.
“이 수레는 짐을 싣는 수레가 아니다. 장사를 하기 위한 포장 수레일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밟아 다져진 평평한 길에서만 움직일 것이니 이런 구조라도 상관이 없다.”
“수레바퀴가 달린 장사 수레라... 아 그럼, 수레바퀴가 달려 움직일 수 있는 공랑 점포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요?”
“맞다. 오일장에 팔 수 있는 물건을 바닥에 놓지 않고, 이렇게 물건을 놓을 수 있는 단을 만들어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일장이 있는 곳마다 움직이려면 더 튼튼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요?”
“예시를 오일장으로 든 것이지 오일장에 쓰지 않고, 매일 열리는 아침 장에 쓸 것이다.”
“매일 열리는 아침 장이 있습니까요?”
“그래 조선에서 유일하게 매일 열리는 아침 장이 있다. 바로 왜관 앞길에 매일 열리고 있다. 원래는 이러한 아침 장이 없었지만, 왜인들이 신선한 채소와 먹거리 같은 생필품을 왜국에서 가져오기 힘들어 동래부사에게 간청하여 매일 아침 반 시진씩 생필품 거래를 위한 장이 선다고 하더구나.”
“아하! 그럼, 아침 장사를 하고 나면 다시 수레를 끌고 어딘가에 두었다가 다시 다음 날 아침에는 왜관 앞으로 끌고 가서 장사하면 되는 것이군요.”
“그렇지. 남천(南川) 옆에 늘어선 여러 텃밭에서 나는 작물을 저렴하게 구매하여 아침 장에 한 번 팔아보며 상황을 보자구나.”
아침 잠시간 열리고 닫히는 시장에는 이런 포장마차가 최적이었다.
단순한 상품을 파는 것뿐만 아니라 휴대용 화덕을 들고 가 먹거리 장사를 한다면 이 포장 수레를 테이블로도 쓸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 장사를 하며 왜국의 상인들과 안면을 터서 대마도나 규슈의 거래 끈을 만들어야 했다.
***
해가 뜨기 전 이른 아침부터 포장 수레를 끌고 오니 왜관 입구에 채소와 과일, 곡식을 파는 이들이 줄 서 있었다.
왜관에 상주하는 인원이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500명 이상은 늘 있었기에 그 500명이 매일 먹어대는 식자재와 생필품의 양이 만만치 않았다.
“왜관 문이 열립니다!”
백여 명의 왜인들이 어슬렁거리며 나왔는데, 길에 늘어선 좌판을 보곤 이리저리 움직여 물건들을 보고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조선어를 쓸 수 있는 왜인도 있었고, 왜어를 쓰는 조선 사람도 있다 보니, 작은 임시 시장이었음에도 글로벌한 국제 마켓의 느낌이 나는 것 같아 재미가 있었다.
“도련님 포장 수레 쪽으로 왜인들이 옵니다요. 역시 포장 수레 지붕에 매단 안내 문구 현수막이 눈에 띄는가 봅니다.”
포장 수레 1호에는 남천 인근에서 구매한 채소를 팔았고 2호에는 낚시로 잡은 생선을 팔았는데, 왜인들은 물건을 한번 보곤 채소를 파는 희재와 진기, 생선을 파는 청남이와 김고도개를 힐끗 쳐다보곤 그대로 가버렸다.
첫 손님이 그렇게 가고, 이후로도 몇 명의 왜인들이 왔다 갔지만 제대로 물건을 보는 왜인은 없었고, 물건을 파는 네 사람을 힐끗 보곤 지나가는 게 전부였다.
물건값이 비싼 건가 싶어 다른 좌판 상인들의 흥정 소리를 들으며 확인했지만, 가격이나 품질은 오히려 이쪽이 더 좋았다.
“그러고 보니, 왜인들이 물건값을 아예 안 물어보는구나.”
“네 도련님. 물건값도 안 물어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는 걸까요?”
금산이의 말에 우리 포장 수레가 왜인들에게 별로인가 싶어 다른 좌판들을 살폈고, 왜인들이 몰려서 서로 사려는 좌판 상인들을 체크했다.
임시로 열리는 아침 장이 끝날 때까지 살펴보자 그제야 왜 장사가 되지 않았고, 왜인들이 물건값조차 물어보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햐아, 이 왜놈 새끼들 이거 안 되겠네 이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