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문어발이 되자!
“도련님 화덕을 준비할까요?”
희재와 금산은 말을 하지 않아도 화덕을 만들고 솥을 올릴 준비를 했다.
“하하하 그래 화덕을 만들고 솥을 올리거라. 내가 문어 숙회를 한번 해주마. 진기는 가서 우리 짐에서 굵은 소금과 참기름, 무와 녹차를 가지고 오거라.”
잡힌 문어는 3kg가량 되는 녀석이었는데, 빨판 힘이 좋은 것이 싱싱 그 자체였다.
문어는 낚시에 잡혀 육지에 올라오자마자 먹물을 뿌려댔는데, 큰 대야에 바닷물을 받아 넣어두니 그제야 가만히 있었다.
문어숙회를 하는 업장에서 손질을 위해서 시메작업神経締め(しんけいじめ)이라고, 문어의 눈과 눈 사이에 침을 박아 넣는 포퍼먼스를 보여주는 가게도 있는데, 진짜 이것은 보여주기식 쇼일 뿐이었다.
이 시메작업 자체가 물고기의 뇌수를 파괴하여 몸을 경직시키는 작업인데, 이 경직된 살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흐물흐물 해지지 않아 회의 탄력을 지켜주는 방법이었다.
헌데, 이미 살이 질긴 문어를 그것도 회가 아닌 삶아서 먹는 문어의 살에 시메 침을 꼽고 있으니 아무 소용없는 헛짓이었다.
더구나, 문어의 뇌는 해부학적으로 눈과 눈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눈 뒤에 양쪽으로 위치하고 있어서 이 시메 침을 꼽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저 침을 박아 넣어 문어가 놀라 먹물만 뿜어내게 하는 것이 전부였다.
숙회를 만드는 문어 손질은 물에 들어가 잠잠해져 있을 때 바로 손을 문어의 머릿속으로 집어넣어 머리를 뒤집는 것이 중요했다.
문어의 머리를 뒤집으면 아가미와 그 주위 살, 먹물을 품고 있는 간, 항문과 생식소, 알집, 콩팥과 심장, 위가 있는데, 이게 모두 머리 한쪽에 치우쳐져 있었기에 손질하기 좋았다.
특히나 이런 장기들이 아가미와 주위 살에 다 달라붙어 있기에 양손으로 아가미 주위 살만 잡아 뜯으면 문어 손질의 절반은 끝이 나는 것이었다.
물론, 아가미와 주위 살을 뜯을 때 문어가 살기 위해 난리를 치지만, 물 밖으로 끄집어내면 도망치려는 행동과 엇갈려 오히려 쉽게 떼어낼 수 있었다.
연체동물 특징상 내장을 다 뜯어내도 몸은 그대로 살아 있는데 그때 굵은 소금을 뿌려 몸의 진을 다 빼야 했다.
“빡빡 문지르거라. 특히 빨판 사이에 있는 뻘을 제대로 빼야 한다.”
손힘 좋은 금산이 굵은 소금으로 문어를 문지르니 하얀 흰 거품이 통 가득 일어났다.
그렇게 소금에 씻기자 진이 빠진 문어는 축 늘어졌다.
이후 민물에 문어를 깨끗이 씻어서는 칼로 문어의 입과 양 눈을 떼어냈다.
문어의 입과 눈을 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다지 맛도 없고, 딱딱하여 치아를 다칠 수 있었기에 제거하는 게 좋았다.
문어를 삶는 물에는 녹차를 넣고, 무를 크게 썰어 넣었는데, 녹차와 무에서 나오는 단백질 분해 효소(protease)가 문어를 부드럽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문어는 끓는 물에 넣을 때도 발끝부터 살짝살짝 넣었다 뺐다를 하면 다리가 예쁘게 말리는데, 그 오므라든 모습이 숙회를 썰기에 좋다.”
뜨거운 물에 예쁘게 말려 오르는 다리를 보곤 문어를 솥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어떤 이는 반 각(7분)만 문어를 삶아야 맛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일각(15분)을 삶으라고 하지만, 사실 문어는 오래 익힐수록 연해진다.”
물론, 오래 삶으면 단백질 성분이 빠져 진한 맛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부드러운 식감만을 위해서는 20분 이상 삶아야 질기지 않고 먹기 좋은 쫄깃한 문어가 되는 것이었다.
10분 정도만 삶아서 정말 종잇장같이 얇게 썰어 낸다면 덜 삶겨진 것도 쫄깃함으로 느껴질 수 있긴 했지만, 우리에겐 아직 어린 언년이나 진기가 있다 보니 최대한 부드럽게 삶아야 했다.
20분을 삶아내고 김이 펄펄 나는 문어를 차가운 민물에 담그니 진짜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다리가 사방으로 펴지며 위쪽으로 말려 올라갔다.
“제사상에 놓기 딱 좋은 모습이구나.”
작은형은 영덕의 장인 집안에 오르는 문어의 모습과 같다며 좋아했다.
차가워진 문어를 최대한 얇게 썰어 접시에 내었는데, 참기름과 소금을 섞은 기름장도 같이 내었다.
“기름장에 찍어 먹어 보시고, 쪽파와 마늘, 생강 절임과도 같이 먹어 보시면 될 겁니다. 형님부터 드시지요.”
“으흠. 그럼 먹어 볼까.”
기름장에 찍어 참기름이 줄줄 흐르는 숙회를 원상은 날름 집어 먹었는데, 오돌오돌하게 씹히는 문어의 식감과 참깨와 참기름의 고소함이 어울려 색다른 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크흑. 이 맛이구나 식감과 맛 모두 좋구나. 술 없느냐?”
“형님 여기 있습니다요.”
배다른 동생 진기가 나와서 잔에 맑은 술을 따라 주었는데, 평상시 같으면 천출인 진기를 동생 취급하지도 않았고 형이라 부르지 못하게 했던 원상이었지만, 오늘은 아무 말 없이 술을 받아 마셨다.
“캬아! 좋구나. 아라길(阿喇吉)을 어찌 들고 있는 것이냐?”
원상은 입에서부터 화끈하게 느껴지는 술이 입안을 지나간 이후 향긋한 곡 향이 남는 것에 감탄했다.
“한양에서 상인에게 구한 것인데, 술이 독하여 물에 타 마시는 용도로 가지고 다녔습니다.”
“한잔 더 주거라 술이 독하지만, 이 문어숙회와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참기름의 향기로움과 쪽파의 파삭거림을 한 번에 씻겨줄 만큼 독한 술이니 늘 첫 잔처럼 만들어 주는구나.”
“처음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술이군요.”
현대의 처음처럼의 소주 이름이 늘 첫 잔처럼이라는 의미인데, 지금의 소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다만, 입안이 화끈거릴 정도로 도수가 높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원종도 소주가 당기긴 했지만, 아직 어린 몸이고 센 술을 먹고 난 이후가 걱정되어 먹지를 않았다.
결국, 문어숙회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신 원상형은 금산이에게 실려서 숙소로 돌아갔다.
“쓰러진 소가 낙지를 먹고 벌떡 일어났다고 하듯이 비슷하게 생긴 이 문어는 영양분이 많은 음식이다. 그러니 다들 어서 먹거라.”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어부 출신들은 이미 먹어 보았지만, 다들 내륙에서 살아왔기에 문어숙회를 처음 먹어 보았는데, 참기름의 고소함과 문어의 쫄깃함에 먹으면서도 별미라고 칭찬했다.
“울산에 가면 또 색다른 별미가 있을 것이다.”
“그 미역바위를 보러 가신다고 하셨는데, 이미 미역으로 해 먹을 수 있는 건 다 하지 않았습니까요?”
“그렇지 미역이나 다시마로 해 먹는 건 다 했지. 하지만, 그 미역바위에 가면 아주 색다른 별미가 있을 것이니 기대하거라. 내일 바로 출발하자꾸나.”
***
“도련님. 울산에 들어온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합니다. 사람이 없습니다.”
포항을 떠나 울산에 도착했는데, 해안가의 마을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도련님 제 뒤로 물러나십시오. 변(變)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제야 주위를 살피니 군데군데 부서진 장독이나 부서진 문, 흩뿌려진 핏자국이 보였다.
“화적이나 왜구가 든 거 같은데, 속히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금산은 지팡이로 들고 있던 몽둥이를 앞으로 빼 들며 숨겨져 있던 칼을 빼 들었고, 다른 이들도 주섬주섬 몽둥이 같은 것을 주워들었다.
원종도 그간 연습했던 활을 꺼내 들고 시위를 메겼다.
울산에 오면 미역바위를 보고 염포동의 왜관에 들러 교역을 위한 안면을 익히고 싶었는데, 울산이 전체적으로 이런 상황이면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급히 마을을 벗어나는데, 수확을 끝낸 짚더미에서 소리가 들렸다.
“사...사람 살려주시오... 이보시오...”
입고 있는 옷에는 핏물이 배어 있고, 머리도 봉두난발인 사람이 거적때기 사이로 굴러 나왔다.
큰 변을 겪은 사람이라 여기고 급히 구했다.
“진기야 물에 아라길을 조금 섞어서 다오.”
독한 소주를 물에 섞어 먹이니 남자는 금세 기운을 차렸는데, 우리가 묻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어 되물어왔다.
“마을에서 나오는 걸 보았는데, 혹시, 마을은 괜찮았소?”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소? 사람이 아무도 없던데, 화적이나 왜구가 든 거요?”
“맞소이다. 왜구 놈들이 들었소.”
“염포가 지척이고 왜관도 거기에 있는데 어찌 왜구가 드는 것이오?”
“염포가 지척이니 왜구가 드는 것이오.”
“그렇다면, 교역을 위해 오는 왜인들이 왜구라는 말이오?”
“왜구나 왜인이나 그놈이 그놈들이요. 교역을 위해 염포로 온다고 수영의 군선을 피하지만, 그놈들은 염포로 오가는 길에 마을을 털어먹는 놈들이요.”
“허허. 이런 일을 조정에 이야기했소?”
“이야기하면 뭘 하오. 왜구를 잡지를 못하는데. 군관이나 현감님들은 그저 이런 일이 일어나도 없는 일처럼 덮는 것이 좋으니 그저 쉬쉬하며 아무 일 없었다고 할 뿐인 것을...”
남자는 말을 하다 말고 눈물을 흘렸는데, 왜놈들의 패악과 무능한 관리들의 방만함에 피해를 보는 것은 이런 백성들뿐이었다.
이자의 사정이 딱했지만, 현실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리는 동래로 가는 길인데, 마을로 다시 갈 것이요?”
“흑... 흑... 우선은 난리가 났을 때 마을 사람들이 숨는 곳이 있으니 거기를 한번 가봐야겠소이다.”
남자는 청남이의 부축을 받아 발걸음을 옮겼는데, 인근 산의 돌무덤으로 향했다.
“현돌이 아버지가 왔어요!”
돌무덤 뒤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나왔는데, 남녀노소 해서 십여 명이었다.
마을에 집이 20여 채 있었는데, 여기로 도망친 사람이 십여 명이니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도망치지 못한 것 같았다.
우리가 가진 먹을 것 중에서 얼마 정도 떼어주고 가려고 하니, 봉두난발의 남자가 우리를 붙잡았다.
“나으리. 동래로 가시는 길에 저희들도 같이 가면 아니 되겠습니까요?”
“마을로 가지 않고?”
“더는 무서워서 여기에는 못 있겠습니다. 현이 멀어 제대로 보호받지도 못하고, 그저 잡아먹기 위해 놔두는 작은 마을에서는 도저히 더는 못 있겠습니다. 빌어먹더라도 병영이 있고, 병졸이 있는 큰 고을로 가야 명이나 제대로 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어부를 했다면 동래에 가서도 먹고살 수는 있겠지. 그래. 알겠네. 짐을 꾸릴 시간을 줄 테니 같이 마을로 가세.”
몸이 날랜 청남이를 먼저 보내어 마을을 다시 살펴보게 한 이후 마을로 움직였는데, 왜구 놈들은 완전히 떠난 건지 인기척은 없었다.
“그놈들 배가 작아서 그런지, 잡곡은 조금 남았습니다요. 이거면 동래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든 먹고살며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요.”
모든 걸 다 잃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잡곡으로 다시 일어설 생각을 하는 백성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니, 나중에 임진왜란에서 의병들이 왜 꾸려졌고, 외적과 맞서 싸웠는지를 알 것 같았다.
“동래에서 할 일이 없으면 내 상단에서 일해보는 건 어떻겠나?”
“상단 말입니까요? 소인은 글을 모릅니다요. 평생 고기만 잡았는데, 장사를 하면 아마 무조건 손해를 볼 것입니다요.”
“배우면 되네. 외적에게 다 털리고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그 마음가짐이 마음에 드네.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힘든 일을 겪었으니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힘든 일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도 있을 것이고. 어떤가? 상단에서 일해보는 것이.”
“정말, 소인이나 마을 사람이면 되는 것입니까요? 천것들이라 외려 피해를 드릴까 염려스럽습니다요.”
“그 피해를 보아도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에서 나는 피해일 것이니 자네들 탓을 하지 않을 거네. 그런 걱정은 말게. 난 그저 자네들의 끈질긴 근성이 마음에 든 것이네. 이런 근성이라면 뭘 하든 다 성공할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