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어구를 만들다. (4)
고려 말기 왜구가 한반도의 곳곳에서 약탈을 일삼고, 설치자 고려 조정은 왜구들에게 왜구 짓 하지 말고, 교역으로 먹고살라고 유화책으로 3개의 포(浦)를 열어 주었다.
그것이 내이포(진해 안골동), 염포(울산 염포동), 부산포(부산 초량)였다.
이 삼포에는 왜관을 두어 왜인들이 머물 수 있게 해주었는데, 고려 말 왜구의 혼란을 어느 정도 가라앉히는데 효과가 있었다.
물론, 왜구들의 전진기지와 같은 대마도를 조선 초에 정벌하였기에 약탈을 일삼는 왜구들이 교역하는 왜인으로 변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원종도 지금은 명나라와의 교역에 집중하고 있지만, 명나라에서 사 온 비단을 일본에 파는 중계 무역으로도 돈을 벌 수 있었기에 왜관에 들려 왜인들과의 안면도 익혀 둬야 했다.
대충 날짜를 계산해 보니 누전선을 받고 선원들을 준비시키면 해외무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터였다.
“말린 가자미 살은 쫄깃한 게 좋군.”
희재가 말린 기름가자미를 석쇠로 구워 반찬으로 올렸는데, 두툼한 살은 없지만, 마치 쥐포를 먹는 듯이 얇은 살의 쫄깃함과 고소함이 좋았다.
입안에서 고소함을 느끼며 어떻게 왜관을 이용할지를 고민했다.
***
포항에서 와서도 작은형은 천인 천자문을 받으러 다녔고, 나는 포항의 어부들에게 신량역천의 기회가 있다며 어부들의 아들들에게 상선 선원을 모은다고 말을 퍼트렸다.
하지만, 영덕처럼 지역 유지의 친척이라는 보증이나 삼으로 그물을 만드는 그런 것을 보여 주지 못했기에 뜨내기 양반의 헛소리로 치부되어 선원이 되겠다고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형을 따라 양반가에 들리게 되면 공맹의 도가 어쩌고저쩌고하며 천인 천자문의 글자를 받기 전에 유학을 논해야 했는데, 그 시간이 귀찮아 포항 양씨 가문의 사랑방에 드러누워 있었다.
하지만, 드러누워 있는 것도 이틀이 지나니 지겨워서 밖으로 나섰다.
“금산아 희재나 다른 이들은?”
“낚시하러 갔습니다요.”
“낚시?”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어구를 잊고 있었다. 그 누구든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낚싯대를 개선하는 게 가장 큰 효과가 있을 터였다.
희재와 사람들이 낚시하는 곳으로 가니, 역시나 대낚시대로 바다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릴도 없는 대낚시로 고기를 여러 마리 잡아두고 있었다.
“희재야 나랑 뭘 좀 만들자.”
“네? 이제 고기가 올라와서 재미가 있는데, 뭘 만드시려고 하는 겁니까요?”
“낚싯대. 공구를 들고 따라오거라.”
낚시를 잘하고 있고, 대나무 낚싯대 여분이 있는데도 낚싯대를 만든다고 하니 희재는 뭔가 느낌이 왔다.
“도련님. 어떤 낚싯대입니까요?”
“네가 좋아하는 톱니바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낚싯대이니 따라오거라. 아마, 이걸 만들면 지금 잡히는 것보다 배는 더 잡을 것이다.”
돌아가는 낚싯대를 만든다는 소리에 다른 이들도 낚시를 접고 따라나섰다.
원종은 산으로 올라 팔뚝보다 굵은 나무를 한그루 베어내고, 잔가지를 정리했다.
“나무를 가로로 잘라 그루터기처럼 둥근 원형으로 만들거라. 그리고 중앙 부분을 파내어 공(工)자 모양으로 만들거라.”
희재는 특별한 도구도 없이 작은 조각칼 하나로 기막히게 잘린 나무의 단면을 깎았는데, 영어로 H 모양의 나무토막이 깔끔하게 만들어졌다.
릴의 몸체인 드랙과 줄이 감기는 스풀을 만든 것이었다.
잘라낸 잔가지로 불을 피우고 두꺼운 못의 앞부분을 붉게 달구었는데, 못으로 드랙 중심을 찔러 태우며 구멍을 뚫었다.
이 드랙이 낚싯대에 고정되어 회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후 드랙의 바깥에 핸들 노브를 만들어 붙였는데, 역시나 작은 나무 조각에 못으로 구멍을 뚫고 드랙에 박아 넣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낚싯대에 드랙 중심을 뚫은 못을 막아 넣어 고정했고, 나무 낚싯대의 앞엔 대나무 낚싯대를 꽂아 넣을 수 있게 구멍도 뚫었다.
나름 2단 분리형 낚싯대였다.
철사로 대나무 대에 묶어 낚싯줄 가이드까지 둥글게 만들어 주자 꽤 그럴듯한 낚싯대가 만들어졌다.
영덕에서 만들어 가져온 삼베 줄을 연결하고, 봉돌로 쓸 작은 돌까지 달아 붙이니 바늘이 20m는 날아갔다.
“오, 도련님 이거 대단합니다. 물레처럼 돌아가는 것을 낚싯대에 다실 생각을 하시다니 대단합니다. 이렇게 낚싯줄을 감을 수 있으면 고기를 잡기도 편할 것입니다.”
희재를 비롯해 어부였던 청남이도 이 릴의 장점을 바로 알아보았다.
릴 없는 대낚시는 바위 근처에만 찌를 던져 잡아내어야 하기에 그 한계가 있었는데, 이렇게 긴 줄을 감아주는 장비가 있으면 그 거리가 몇 배나 늘어난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었다.
첫 시험작이 만들어지자, 다들 희재가 했던 데로 나무를 깎고, 불에 달군 못으로 릴을 만들었다.
그리고 바람이 강하여 포항 사람들도 배를 타지 못해 낚시하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렸는데, 거기서 릴 물레가 달린 낚싯대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거기다 낚싯대는 하나지만, 줄 끝에 낚싯바늘을 3~4개씩 쓰는 방법도 알려주었는데, 다들 낚싯대 하나에 낚싯바늘 하나라는 고정 관념을 벗어난 낚시 방법에 다들 놀랐다.
이제까지 민물에서 낚시하던 방식 그대로 바다낚시를 했었던 조선에 새로운 낚시 방식이 만들어 진 것이었다.
사실, 조선에서는 오래전 옛날부터 낚시를 하긴 했으나, 잘 잡히지 않는 낚시보다는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잡는 것을 더 좋아했다.
물웅덩이의 경우에는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았고, 냇물의 경우에는 대나무로 통발을 만들어 길목으로 몰아 잡는 방법으로 고기를 잡았었다.
바다의 경우에도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의 경우에는 물때에 맞춰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았다.
낚시는 이러한 방법들을 쓸 수 없을 때나 하는 방법이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풍류를 즐기려는 방법으로 낚시를 했는데, 조선 정조대왕은 창덕궁 연못에 고기를 풀어두고, 신하들과 낚시를 하는 상화조어(賞化釣魚) 잔치를 열어 누가 더 많은 고기를 잡는지 내기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릴이 보급되어 바다낚시로 고기를 잡아낸다면 풍류를 위한 낚시보다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낚시가 되어 먹고 사는데 여유가 생길 터였다.
다들 고기를 잡아 대기에 나도 낚싯대를 던져두고 세월을 낚기 시작했다.
“좀 잡히었느냐?”
“이제 막 던졌습니다. 형님은 글자를 다 받았습니까?”
“그래. 이제 포항에서 글자를 받을만한 사람은 다 받았구나. 울산과 동래까지 가면 천자문을 다 채울 것 같구나.”
“다행입니다.”
“나도 다행이다. 사실, 네가 그물을 만들 때 장인어른이 뭐라고 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긴 했었다.”
“그물로, 어부들의 어획량을 늘리는데, 사장어른이 뭐라고 하셨겠습니까?”
“장인어른이 조금은 유하신 분이라 넘어가신 것이다. 오늘 글자를 받으러 간 집에서 이야길 하다 영덕에서 그물을 만들었다고 하니 역정을 다 내더구나.”
“네? 왜 역정을 냅니까?”
“공자님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것이지.”
“아니 그물을 만들어 고기를 잡는 게 왜 공자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까요?”
“논어 술이 편에 ‘공자님은 낚시질은 하되 그물질은 하지 않으셨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걸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장인어른은 뭐 그냥 그런 구절이 있지. 로 끝이 났지만. 이곳 양반들은 먹을 만큼 낚시질을 하는 것이지 그물질을 하게 되면 필요 없는 생선까지 잡게 되어 생명을 천시하는 풍조가 만들어 진다며 그물을 쓰는걸 좋지 않게 보더구나.”
“허...”
작은형이 전해 준 양반들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한 건데, 생명 천시가 무슨 말인가.
한때 유럽에서 대구를 잡는 것을 줄이자고 했을 때 ‘대구의 수는 상상할 수 없이 많기에 앞으로 그 어느 어장이라도 제약할 필요가 없으며, 인간이 잡는 건 진화론적으로 늙거나 약해진 개체가 도태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강하고 재빠른 개체는 살아남아 진화할 것이니 아무리 대구를 잡아도 자연은 그에 맞춰 강화될 것이다.’라고 대구를 멸종시킬 뻔했던 토마스 헉슬리 같은 이들에게나 맞는 이야기를 양반들이 하고 있었다.
근대 유럽처럼 바닥까지 박박 긁어 가며 잡는 어업이 아니라, 짚으로 만든 그물로 잡고 있는데도 생명 천시의 풍조가 생긴다고 하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먹는 그 생선은 그물이 있기에 싸게 먹을 수 있는 것인데, 필요 없는 생선까지 잡으면 안 되니 낚시로만 잡아야 한다는 말에, 뭔가 현대의 인권팔이들이 떠올랐다.
있지도 않은 2D의 캐릭터 인권과 범죄 가해자의 인권을 지켜야 한다며 난리를 치던 인권위의 사람들과 생명 경시 풍조가 생긴다며 그물을 만든 것에 역정을 내는 이들이 겹쳐졌다.
그물을 영덕에서만 생산하게 하려고 했는데, 좀더 빠른 보급을 위해 한양에서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희재야 언년아. 삼 그물을 만드는 것과 이 낚시 물레를 만드는 법을 그림과 글로 써서 한양으로 보내거라. 이것도 대량 생산해서 삼베 줄과 낚싯바늘까지 한 조(組)로 만들어 팔라고 전해라. 이것은 생선을 잡기 위한 도구이니 이문이 박하더라도 만들어 팔라고 해라.”
“네에. 이게 보급되면 생선이 많이 잡힐 테니 어포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알아보라고 전하겠습니다요.”
이제는 하나를 말하면 다음 일도 알아채는 희재였다.
“엇 뭐가 왔구나!”
낚싯대를 잡은 손에 무게감이 느껴지자 급하게 릴을 감았는데, 물고기가 도망치기 위한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역 같은 해초가 붙은 것인가 싶었는데, 낚싯대를 보던 금산이가 깜짝 놀라 외쳤다.
“장거(章巨)이옵니다! 장거가 올라왔습니다!”
장거라는 말에 그게 뭐지 싶었지만, 문어를 부르던 다른 말이라는 생각에 신이 나서 릴을 감았다.
낚시로 문어가 잡히긴 하지만, 문어는 고기와 달리 미끼에 걸린 것이 아닌지라 빨리 끌어 올리지 않으면 금방 놓칠 수 있는 생물이었다.
눈 좋은 금산이 덕분에 문어인 것을 빨리 알아보았기에 도망치기 전에 문어를 물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었다.
“앗싸 문어(文魚)를 낚시로 잡긴 또 처음이구나. 하하하.”
그물 만든 것으로 역정을 내던 양반들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이 낚시 한 번으로 씻은 듯이 날아갔다.
“문어요? 이건 장거이지 않습니까요?”
“그래 장거이면서 문어지. 사람의 머리 모양을 닮았는데, 먹물을 머금고 있으니 그 모습이 문인(文人)이나 마찬가지이지 않느냐.”
“아, 그렇군요.”
사실 장거라는 이름도 이 문어와 같은 뜻이긴 했다. 문어가 글을 아는 사람의 머리와 닮았고, 기다란 다리를 펼치면 거대했기에 글 장(章)에 클 거(巨)를 써서 장거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런 먹물을 머금은 문어는 조선과 중국에선 문인으로서의 이름을 붙여주며 친근하고 맛있는 먹거리였지만, 서양에서는 다리가 여럿 달린 기형의 모습과 같은 외형에 탐욕이나 괴물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런 선입견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헐리우드에서 만드는 마블 영화에서도 닥터 옥토퍼스가 나왔고, 하일드라의 상징도 문어와 해골로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캐러비안의 해적 영화에서도 데비 존스가 문어 머리를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선입견이 서양에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양에서 문어는 그저 맛있는 숙회꺼리 일 뿐이었다.
*
[작가의 말]
어릴 때 낙동강에서 해병대 나오신 아버지 후배분에게 저 릴을 만드는 법을 배웠었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는데, 그때는 손재주 많은 사람들이 참 신기해 보였습니다.
물론, 저 릴로 고기는 못 잡았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