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어구를 만들다. (1)
“사장어른. 대마초(麻) 한번 키워보시겠습니까?”
“대마? 대마는 이미 삼베를 짓기 위해 여름에 수확을 다 했을 터인데. 헌데, 그건 왜 키워보라는 겐가?”
대마 재배로 유명한 곳이 전라도나 충청도였기에 이쪽은 키우지 않는 듯하여 재배를 권한 것이었는데, 영덕도 삼베를 지어 옷을 만드는지 대마를 키우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이 시대에는 법으로 막힌 한국과 달리 남는 땅 곳곳에 대마를 심어 집집마다 삼베를 지었다.
“삼을 키워 그 실로 그물을 만들었으면 해서 그렇습니다. 삼으로 질기고 정교한 그물을 만든다면 바다에서 잡히는 고기 어획량이 증가할 것입니다.”
“좋은 어구가 있다면 그리되겠지. 헌데, 어부가 아닌 내게 왜 삼을 키우라고 하는 것인가? 삼으로 그물을 만드는 건 어부들의 일인데.”
“그것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어부들은 삼으로 그물을 만들 만큼의 재정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역의 유지이신 사장어른이 삼으로 그물을 만들어 그것을 어부들에게 빌려주었으면 해서 여쭈어보는 것입니다.”
“삼으로 그물을 만들어 빌려준다라... 그물 만드는데 삼이 많이 들어갈 터인데, 만약 그 그물을 바다에서 잃어버리면 어찌 되겠나? 바다에서 끊어져 버리면 그대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까지 생각해서 내게 만들라고 하는 것인가?”
“네. 우리와 같은 이들은 삼베 그물을 잃어버린다고 하여도 큰 타격이 없지만, 어부들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하여, 지역의 유지들이 나서줘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뭐, 웃어른 대접을 받으려면 그래야 하긴 하겠지만, 끊어져 잃어버리는 게 늘어나면 그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네. 맞습니다. 하지만, 삼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삼은 물을 머금을수록 질겨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삼으로 그물이나 밧줄을 만든다면 다른 그물에 비해 더 오래 쓸 수 있을 것입니다.”
“흠. 잘 끊어지지 않는단 말이지.”
사장어른은 삼으로 만든 그물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사실 천연 섬유 중에서는 삼이 가장 질긴 섬유였다.
면보다 무려 10배 이상 질겼기에 대항해시대 범선에 쓰이는 밧줄들은 모두 다 이 삼으로 줄을 만들었었고 염분에도 강했기에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 줄이 나오기 전까지는 산업용이든 항해용이든 모두 다 삼으로 만든 밧줄을 사용했었다.
물론, 물고기를 잡는 그물도 마찬가지였다.
수심 40m~50m까지 줄을 늘어트려 심해어종을 그물로 잡기 시작한 것도 이 삼으로 그물을 만들게 된 이후부터였다.
“삼으로 그물을 만들어 청어나 다른 생선을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면, 말리거나 함수에 절여 내다 팔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물을 만드는데 들어간 삼 값은 금방 충당이 가능할 것입니다.”
“으흠. 삼으로 베가 아닌 그물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걸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네. 삼으로 실을 만들고 베를 짜는 것만 아는데 그물을 어찌 만들겠나. 그물 만드는 것을 직접 보여주게나. 그걸 보고 내가 그물을 만들어 어부들에게 빌려줄지 말지를 결정하지.”
“네. 그럼 이틀 후 어부들을 모아 주십시오.”
***
“희재야. 한양에서부터 가지고 온 쇠로 만든 톱니바퀴를 꺼내거라.”
“네? 그물을 만드는데 톱니바퀴가 왜 필요하신 겁니까요?”
“줄을 만드는 데 필요하니 모두 내어놓거라. 그리고 김고도개와 진기는 산에 가서 송진을 모아오거라. 그것도 필요하다.”
희재는 비싼 돈을 들여 만든 톱니바퀴를 내놓는다고 투덜거렸지만, 톱니바퀴가 그물을 만드는데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해했다.
현대인의 시선에서 그물을 보면 나일론으로 기계가 자동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이 그물망이 순수한 인간들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장비 중에서는 최고의 테크 중 하나였다.
그래서, 유럽의 전통 축제에는 전통적인 줄틀로 실을 꼬아서 팔찌를 만들어 주는 체험강매(?)가 꼭 있는데, 원종도 거기서 줄틀로 밧줄을 만드는 것을 본 것이었다.
튼튼한 사각의 나무판에 톱니바퀴를 끼운 긴 쇠못을 사각형 모서리 각각에 박아 넣곤, 나무판을 뚫고 나온 못의 끝은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려 실을 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4개의 톱니바퀴 중앙에는 다시 톱니바퀴를 박아 넣어 중앙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면 4개의 톱니바퀴가 같이 맞물려 돌아가게 배치했다.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줄틀이 만들어지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삼베 실을 모았다.
삼베 실은 한여름에 대마를 수확해서 뜨거운 김으로 찌고, 손으로 일일이 줄기를 뗀 이후 삼실을 꼬아 만들었는데, 여러 집에서 삼베 실을 모았음에도 그 실의 굵기가 일정했다.
아낙들이 일일이 자신의 무릎에 삼 줄기를 비벼가며 실을 연결해 만들었기에 아낙들의 피땀이 녹아 있는 실들이었다.
이틀 후 어부들을 모았는데, 작은형의 장인어른이 영덕의 유지이기도 했지만, 질긴 삼으로 그물을 만든다고 했기에 서른이 넘는 어부들이 모여들었다.
줄틀을 놓고, 5m 넘게 마당을 가로질러 맞은편에도 실을 걸 수 있게 나무판을 설치하곤 고리에 삼베 실을 꽂아 넣었다.
이후, 나무판을 고정한 채 중앙의 톱니바퀴를 돌리니, 4개의 고리가 제자리에서 함께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리가 돌아감에 따라 고리에 걸린 실들이 꼬이며 굵어지기 시작했다.
줄이 꼬이며 맞은편에 설치한 나무판이 당겨지자 이제는 나무판의 고정을 풀고 다시 톱니바퀴를 돌렸다.
이제는 4각의 나무판이 돌아가는 것이었기에 4개의 고리에 걸려있던 실들이 서로 꼬여 합사되며 두꺼운 줄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돌려 합사된 줄의 직경이 1cm쯤 되는 것 같자, 양 줄의 끝에 끈적한 송진을 바르고, 그 위에 다시 삼 실로 둘러 감아 묶어 풀리지 않게 매듭을 만들고 줄을 잘랐다.
톱니바퀴를 돌리는 1명의 인력으로 5m 길이의 얇은 삼줄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자 이 줄을 한번 당겨 보시오. 줄을 당겨 끊어 내는 자가 있다면 오승포를 내어주겠소.”
힘 좀 쓴다는 어부들이 다들 나서서 얇은 삼줄을 당겨봤지만, 끊어지지 않았고, 6명이 줄다리기를 하듯이 양쪽으로 나눠서 줄을 당겼음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사장어른 이 줄을 수백 가닥 만들어 그물을 만들 것입니다. 줄을 만들고, 다시 그 줄로 그물을 만들어야 하기에 시간이 걸립니다.”
고기잡이를 가지 않은 어부들과 사장어른댁의 종들이 줄틀 톱니바퀴를 돌려 온종일 움직이자 100여 개의 삼줄을 만들 수 있었다.
다음 날에는 한쪽에선 계속 삼줄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선 가로세로로 한 줄씩 한 뼘의 간격을 두고 그물망 줄을 참매듭법으로 묶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작업도 하루 꼬박 걸렸는데, 매듭으로 줄들을 지그재그로 묶어주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매듭으로 줄과 줄을 엮어야 나중에 한쪽 줄이 끊어지더라도 그 끊어진 부분만 수선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처음을 잘 만들어야 했다.
이틀 동안 만들어진 200여 가닥의 줄을 매듭으로 엮어 10m 면적의 그물이 만들어졌는데, 배에서 끌어당기는 힘을 받는 메인 그물줄은 3배 굵기로 따로 만들어 엮었다.
결국 그물 하나에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사흘 동안 만들어 낸 것이었다.
옷 만드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삼베 실과 사람의 인력이 들어가니, 어부 개인이 삼으로 그물을 만드는 것은 확실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특히나 줄을 쉽게 만들어 주는 줄틀이 없었다면, 한 달 넘게 걸릴지도 모르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튼튼하게 만들었으니 물고기가 많이 걸린다고 해도 줄이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물에 사람 다섯 명을 올리고 양쪽에 사람들이 들어 올려 그물을 털어보는 테스트를 했는데, 출렁이기만 하지 끊어지지 않았다.
다들 짚으로 만든 그물과는 비교가 불가하다고 입을 모았다.
“확실히 삼으로 만든 그물과 밧줄을 쓴다면 지금 짚으로 만든 그물보다 더 많이 잡을 수 있겠군. 청손이 부자(父子)가 이 그물을 들고 한번 고기잡이에 나가보게. 자네가 얼마만큼 잡아 오는지에 따라 삼으로 그물을 만드는 비용을 내가 빌려줄 수 있을 것이야.”
원종은 청손이 부자가 어떻게 그물질을 해서 고기를 잡는지도 보고 싶었지만, 작은 고기잡이배라 안전을 담보하지 못해 구경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해가 질 때쯤 돌아온 청손이의 고깃배에는 100여 마리의 청어가 잡혀 있었다.
“이야! 만선이구만, 만선이야!!”
한 번에 바다에 나가서 10여 마리를 잡으면 성공하는 것이 이 시대의 고기잡이인데, 그물이 바뀌었다는 것만으로 100여 마리나 잡아 오자 다들 놀랐다.
청손이는 삼으로 만든 그물 덕이라고 마음대로 그물을 펴고 다닐 수 있다고 그 튼튼함에 감탄을 했다.
“그물을 더 길게 만들어 배 투척으로 쌍끌이를 하면 더 많이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요.”
“으음. 좋아. 그럼 그물을 만들고 빌려주도록 하지. 그물 삯은 1년 동안 잡는 고기의 2할을 내게 바치는 걸세.”
사장어른의 그물을 만들어 빌려주겠다는 말에 어부들은 감사하다며 고개를 조아렸고, 이날 잡은 100여 마리의 청어와 생선을 먹기 위해 동네에 식초가 동이 날 정도 초절임 회를 썰어 다들 먹었다.
***
“오늘 아침에도 청손이 부자가 바다로 나가 그물질 한 번에 10여 마리를 잡았다고 하더군. 자네 말대로 그물이 바뀌니 확연히 어획량이 달라지는구만.”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명필도 좋은 붓이 있으면 더 잘 쓰는 것 아니겠습니다. 어부들이 삼 그물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레 잡는 게 늘어나 사장어른께 그 이익이 쌓일 것이옵니다. 그리고, 그물을 계속 만들어낸다면 저희 상단을 통해서 삼 그물을 팔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오호! 그렇구만. 만든 그물을 팔 수도 있는 것이구만. 하하하.”
사장어른은 그물을 만들어 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던 듯 그물을 팔 수 있다는 이야기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제가 줄틀을 만들어 드렸으니, 줄틀로 만들어지는 그물이 남으면 모두 제가 팔아 준다는 계약서를 하나 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암 그렇지. 아무리 일가친척이라고 해도 그게 깔끔하겠지. 가격은 들어가는 삼베 실값에 따라 조정하는 것으로 하지.”
“네. 그렇게 하시지요.”
그렇게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그물 위탁생산에 대한 계약을 맺었다.
***
“도련님. 청손이라는 어부가 도련님께 드릴 것이 있다고 찾아왔습니다요.”
“아, 삼베 그물을 처음으로 쓴 어부 말인가? 들어오라 하게.”
“나으리. 부엌어멈에게 듣기로는 이걸 잡수시고 싶으셨다고 하여 그물에 달려 올라온 것을 가져왔습니다요.”
청손이와 그 아들은 새끼줄에 묶인 것을 내게 내밀었는데 내가 영덕에서 먹을 거라고 벼르고 벼르던 영덕대게였다.
“어! 그래. 내가 이걸 아주 많이 먹고 싶었네. 저기 앉아 있게나. 넉넉하게 열 마리나 되니 딱 맞구만.”
대게를 받아 살펴보니, 가을부터 대게 시즌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몸통 크기가 15cm가 넘었고 다리 길이까지 하면 40cm가 넘는 대물들이었다.
현대 한국에서는 러시아에서 수입되는 대게에서만 볼 수 있는 킹사이즈였다.
탈피한 지도 꽤 되었는지 등껍질에 따개비 같은 게 붙어 있었는데, 이런 개체들은 살도 탱탱하게 들어 있을 확률도 높았다.
더구나 오늘 바로 잡은 것이기 때문에 대게가 스트레스를 받아 맛이 떨어지거나 하는 염려도 없었으니 최고였다.
하지만, 그래도 껍질에 이끼라든지 다른 게 묻어 있을지도 몰라 칫솔로 꼼꼼히 닦아주었다.
진짜 동해에서 갓 잡아 올린 영덕 대게의 그 농염한 맛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았고, 조선에 온 이후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을 먹는다는 생각에 입에서 노래가 절로 나왔다.
“도련님이 이리 즐겁게 요리하시는 건 처음 봅니다요. 영덕에는 대게가 안 유명한데 왜 그리 대게, 대게를 외치시며 찾으신 겁니까요?”
희재는 노래까지 부르며 요리하는 원종의 모습이 신기하다며 물었다.
희재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어떻게 보면 이것도 미디어의 영향이었다.
실질 어획량을 따지고 봐도 영덕에서 잡히는 대게보다 인근의 울진이나 속초, 포항에서 잡히는 대게가 더 많았다.
하지만, 대게 하면 영덕이라고 자동으로 머리에 떠올랐다.
그래, 이게 다 최불암 아저씨 때문이지.
*
[작가의 말]
오늘은 이계에 가신다면 도움이 되는 실전 로프 만들기였습니다.
줄틀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유튭에서 ‘Ply split cordmaker’로 검색해 보시면 바로 확인할 수 있으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