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잡어 중 최고! (2)
와사비! 와사비의 그 알싸한 맛이 필요해!
아니, 매콤하면서 설탕이 들어가 단맛이 나는 초고추장! 거기에 더해서 쌈장!
아무리 가을의 풍취가 흠씬 묻어나는 청어 초절임 회라곤 하지만, 2% 아니, 10%가 부족했다.
상추에 회를 올리고, 쌈장과 초장, 와사비에 마늘, 고추까지 올려 먹는 그 한입 가득하고 풍성한 그 맛이 그리웠다.
하지만, 지금은 먹어 볼 수가 없는 맛이었다.
그저 언젠가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 볼 거라는 다짐을 하는 게 전부였다.
“식초의 시큼한 맛이 청어에 스며들어서 그런지 청어 맛이 아주 좋구나. 거기다 생강 초절임이 곁들여지니 궁합이 정말 잘 맞는 것 같구나. 청어가 이리 맛있었다니.”
원상은 동생이 썰어준 청어 회가 이제까지 처가에서 먹어 본 그 어떤 생선회보다 맛있다고 느꼈다.
“정말입니다요. 소인도 생선회를 몇 번 먹어 보았는데, 이리 맛있는 생선회는 처음입니다요!”
희재 녀석은 어디서 회를 주워 먹어봤는지는 몰라도 최고의 맛이라며 더 먹고 싶다며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금산이나 진기도 계속 먹고 싶다는 눈빛이기에 남은 두 마리를 모두 썰어 생강 절임과 함께 주었다.
맛이 궁금하다는 부엌어멈들에게도 한 조각씩 돌리고 나니 청어 세 마리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아차! 장인어른을 잊고 있었구나. 이거 어쩌면 좋지.”
원상은 부랴부랴 장인어른이 생각났지만, 이미 원종이 손질하고 초절임했던 청어 세 마리는 없어지고 난 이후였다.
“이거 다시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네. 청어도 없고, 벌써 어두워지고 있으니 오늘은 어떻게 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부엌어멈들이 청어를 스무 마리 넘게 들고 왔지만, 어제 잡은 청어였기에 횟감으로 먹기엔 신선하지 않았다.
“자, 다들 잘 보게나. 이렇게 청어 허리를 들어 흔들었을 때 청어가 힘없이 좌우로 꺾여 움직이면 이건 구워 먹어야 하는 것이지 절대 횟감으로 먹으면 안 되는 것이네. 청어의 허리를 잡고 흔들었을 때 청어의 몸이 꼿꼿하고 탱탱해야 회로 먹을 수 있네.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살이 움푹 들어가는 생선은 구워 먹어야지 절대 날것으로 먹으면 안 되네.”
원종은 자신이 생으로 회 쳐서 먹는다고, 사람들이 그걸 무턱대고 따라서 회로 먹다간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엌어멈들에게 몇 번이고 신선한 생선으로만 회 쳐서 먹으라고 강조했다.
점심나절이 지나자 아침 일찍 고기잡이 나갔던 배가 들어왔는데, 청어가 잘 잡힌다는 말처럼, 무려 청어 50마리를 가져왔다.
그리고, 부엌어멈들이 어떻게 소문을 내었는지 몰라도 동네에 잔치가 난 것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평소 아무 일 없이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마을인데, 양반이 식초에 절인 회를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다들 궁금했을 것입니다. 제가 소금 장수였을 때도 무섭게 생긴 소금 장수가 왔다고 그걸 보겠다고 사람들이 모일 정도였습니다.”
“하하하. 무섭게 생긴 소금 장수가 뭐 볼 게 있다고.”
“그만큼 사람들이 심심해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인(才人) 무리들이 온다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내가 재주를 보이는 재인이 되어야겠구나. 그렇다면 어제와는 좀 다른 것도 보여줘야겠군.”
티비 예능 쇼처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요리를 하기 위해서 넓은 평상을 가져오게 하여 다리를 높인 평상을 식탁 삼아 청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넓적한 평상을 둘러싸고 맨 앞에는 작은형의 장인과 양반 몇이 앉았고, 그 뒤로 사람들이 앉거나 서서 보다 보니 진짜 요리쇼를 진행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그날 잡은 청어의 탱글탱글한 살을 보여주며, 살에 힘이 빠지면 절대 회로 먹으면 안 된다고 식중독에 대해 교육부터 했다.
그리고, 가장 솜씨 좋은 부엌어멈을 옆에 세워 내가 하는 작업을 따라 하게 하며, 청어의 비늘과 잔가시를 제거하는 방법을 꼼꼼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식초에 담가 놓는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깨끗한 바닷물을 큰 솥 가득 길어오게 시켰고, 그 바닷물을 펄펄 끓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할 요리에 필요한 것이라고 이야길 하곤 여진족 출신 김고도개에게 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 불을 지피게 시켰다. 그러면서 따로 향이 좋은 향나무 하나를 불붙여 두게 했다.
시간이 되어 식초에 절였던 10마리의 청어는 어제처럼 껍질을 벗기고 칼집을 넣어 생강 절임과 실파를 올려 한 조각씩 사람들에게 먹게 했다.
청어 한 마리에서 여덟 조각씩 80조각이 나왔지만, 40여 명의 사람에게 돌아가니 금세 없어졌다.
사람들은 초절임의 상큼한 맛이 좋았는지 계속 더 달라는 눈빛을 보내었기에 초절임했던 나머지 10마리도 식초에서 꺼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 잔가시를 자르기 위해 십(十)자 칼질을 해주었고, 미리 여덟 조각으로 썰었다.
“부채를 하나 가져오고, 아궁이에서 횃불로 쓸 수 있는 향나무를 두었으니 그 불붙은 나무를 가져오거라.”
바닷물을 끓이던 김고도개가 기다란 횃불을 들고 왔는데, 원종은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엔 부채를 부쳐가며 청어 위에서 횃불을 움직였다.
‘아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청어 횟감에 부채질을 한다고?’
횃불을 들고 온 김고도개도 황당했지만, 횃불에 부채질을 하는 원종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가스 불을 뿜어내는 토치가 있었다면, 이럴 필요가 없었겠지만, 토치가 없었기에 횃불을 들고 부채질하여 청어의 껍질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토치만큼 바로바로 잘 익혀지진 않았지만, 십자로 썰린 청어의 껍질이 불길에 익으며 겉면이 먹음직스럽게 움츠러들었다.
겉면이 익으며 움츠러들자 십자 칼질한 것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한참 후 횃불로 불 향이 제대로 입혀진 것 같자, 도드라진 칼집 사이로 생강과 실파를 꽂아 넣어 마무리했다.
“불맛을 입힌 것입니다. 한번 드셔보시지요.”
사장어른과 그 친우들이 내가 한점씩 건넨 청어회를 입에 넣었다.
“오오! 횃불로 부채질을 할 때는 무슨 짓인가 했으나, 이거 불 향이 장난 아니구만. 그리고 그 뒤로 식초의 산미가 느껴지니 너무나도 풍성한 맛이오.”
“불에 익은 기름진 육고기의 맛이 나더니, 그 뒤로 다시 청어의 맛이 올라오다니 이것은 음양(陰陽)의 조화가 된 음식이로구나! 캬아! 술 한잔이 생각나는구나.”
“맞소. 맞어! 물에서 나고, 음(陰)한 음식인 생선이 양(陽)의 기운인 불에 쐬어 음양이 맞게 되었으니 술이 생각날 수밖에 없음이오!”
“불 향에 이어 씹었을 때 흐르는 기름기가 청어의 고소함을 증폭시키니 내 청어가 이리 맛있는 생선인 줄 몰랐소이다.”
수염을 기르고 체통을 지킬 것만 같은 나이 많은 양반들이 맛있다고 감탄성을 내지르자, 그 뒤로 앉아 있던 자들도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원종이 횃불로 불 향을 입히면 부엌어멈이 사람들에게 나누어줬는데, 불에 익어가며 흘러내리는 기름기가 사람들의 식욕을 더 자극했다.
“아, 불에 익어 흐르는 기름기가 정말 청어의 고소한 맛을 더 진하고 농후하게 만드는구나. 누가 이걸 먹기 불편한 청어라고 할 것인가.”
“청어는 불에 구워 먹는 것이 최고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불 향만 입히는 것이 최고였을 줄이야!”
사람들의 극찬 속에 횃불로 불 향을 입힌 청어 10마리도 금세 사람들의 입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끝이 났습니다. 더 드시고 싶으신 분은 이제 집에서 해 드시면 될 것입니다. 다들 제가 하는 것을 보았으니 집에서 하셔도 될 겁니다.”
사람들은 이제 더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는 말에 실망의 기색이 떠올랐지만, 이야길 듣고 보니, 자신도 방금 했던 것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그저 청어를 손질하고, 식초 물에 담그고 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횃불로 불맛을 입히는 것 또한 그저 횃불에 부채면 된다고 생각되어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돈도령. 그럼 저 서른 마리의 청어는 어찌할 것인가?”
“네. 사장어른. 이 서른 마리 청어는 장기간 보관해서 먹을 수 있는 염청어(鹽靑魚)를 만들 것이옵니다.”
“염청어? 그걸 만들려고 하면 소금이 많이 들지 않나? 청어를 보관하기 위해 소금을 그리 쓰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터인데...”
사장어른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청어를 염장할 정도로 소금을 써서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 소금을 내다 팔아 먹을 것을 사 오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현대에서는 남아도는 천일염 소금이 아직 조선에선 비싸게 거래가 되니 생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당시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유럽의 몇몇 지역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천일염이 남부 유럽에서 만들어지며 유럽 전역에 그 방법이 전해졌음에도 북유럽 국가 대부분은 일조량 자체가 부족하여 천일염을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소금의 부족과 식량 부족을 한 번에 해결한 이가 있었는데, 네덜란드의 빌럼 뵈컬손(Willem Beukelszoon)이라는 어부였다.
그는 청어를 잡는 어부였는데, 청어의 창자를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손칼을 만들기도 했고, 소금 없이 바닷물로만 청어를 염장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인물이었다.
바로 바닷물을 끓여 바닷물의 소금 농도를 올린 함수(鹹水)로 청어를 절이는 방법이었다.
큰 솥에 바닷물을 끓여 물의 양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면 그 함수에 머리와 창자를 제거한 청어를 넣어 절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절인 청어는 ‘하링(Haring)’이라는 음식이 되었는데, 양파와 오이피클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네덜란드는 물론이고 유럽과 그 이민자들이 있는 북미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이 하링이라는 음식이 단백질 섭취가 어려운 시절의 네덜란드를 부강하게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청어가 많이 잡히는 지금 시기의 조선에서도 함수로 염장하는 청어를 비축한다면, 고질적인 보릿고개를 넘어가기가 쉬워질 터였다.
김고도개가 끓여 물이 줄어든 바닷물에는 소금 결정이 언뜻 보이고 있었고, 한번 찍어 먹어 보니 소금 소태가 따로 없었다.
함수가 제대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청어를 손질하며 함수가 식길 기다린 후 작은 항아리에 손질된 청어를 넣고, 함수를 부었다. 그러곤 항아리를 김장김치 묻듯이 땅에 묻었다.
“다들 보셨겠지만, 청어가 많이 잡힐 때는 이렇게 바닷물을 끓여 청어를 염장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보릿고개가 아무리 힘들다고 하여도 쉽게 넘어갈 수 있으실 겁니다.”
“비싼 소금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꽤 괜찮은 방법이구먼.”
보통 부엌 천장에 청어를 매달아 아궁이 연기로 말려 먹거나, 겨울에는 상하지 않기에 그냥 밖에 매달아 두었는데, 새롭게 염장하는 방법을 알게 되자 어부들은 잘 배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식초에 절여 회로 먹는 것을 알았으니 저렇게 염장할 청어가 있으려나 모르겠구만. 그전에 다 먹어버릴 것 같은데 하하하.”
어부들의 이야길 듣고 보니, 저 말도 맞을 것 같았다.
짚으로 만든 그물로는 청어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잡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맛있게 먹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으니, 그 맛있는 생선을 더 잡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사장어른. 대마초(麻)를 한번 키워보시겠습니까?”
*
[작가의 말]
이 청어라는 고기가 요리하는 사람들에게는 잡어 중 최고의 맛이라고 합니다.
잔가시가 귀찮지만, 등 푸른 생선의 기름기가 고소하여 맛이 참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이 청어가 있었기에 유럽이 발전할 수 있었고, 임진왜란에선 이순신 장군과 수군이 버틸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청어가 40~70년 주기로 많이 잡힐 때가 있고, 안 잡힐 때가 있다는 것인데, 자산어보에도 이런 청어의 주기적인 출현에 관해 서술되어 있습니다.
근래에는 60~80년대에 한반도에서 청어가 잡히지 않았기에 청어로 만든 과메기가 없어지고, 꽁치로 만든 과메기만 남았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다시 청어가 돌아와 어획량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청어 고기 자체에 잔가시가 많아 호불호가 있다 보니 소비가 잘되지 않아 냉동창고에 몇 톤씩 쌓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깃값도 저렴하여 청어를 잡을수록 적자가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올가을에는 전어 대신 청어를 좀 드셔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