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47화 (147/327)

147. 어구를 만들다. (2)

사실 한국에서 대게 자체가 인기 있는 먹거리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게’라고 하면 서해에서 많이 잡히고, 간장게장이나 양념게장으로 먹는 꽃게가 가장 먼저 생각날 터였다.

동해에서 나는 대게는 꽃게에 가려져 아는 사람들만 찾아가서 먹는 지역 특산 해산물로 서울에선 구경하기도 힘든 해산물이었다.

하지만, 90년대 말 ‘그대 그리고 나’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그 인지도가 달라졌다.

대박이 터진 드라마에서 최불암 선생님이 대게잡이 어선 선장으로 나왔는데, 그 덕에 영덕 대게가 전국구 먹거리로 떡상을 했고, 영덕은 드라마를 보고 찾아오는 관광객으로 인해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는 다들 알다시피 게장과 탕은 ‘꽃게’로, 쪄서 먹는 것은 ‘대게’로 갈라져 메이저 먹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쪄먹는 대게의 인기로 말미암아 동해의 대게 씨가 말라 버리자 러시아와 캐나다 등지에서 킹크랩이나 여러 아종의 대게들이 수입되었는데, 그 덕에 몰락해가던 러시아 연해주의 경제를 한국이 살려주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제 삼으로 된 그물을 쓰게 되면 이 대게가 많이 잡혀 올라올 것인데, 이 대게를 제대로 먹는 법을 알려주겠네. 우선은 먹기 전에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솔로 몸통을 깨끗이 닦아줘야 하네. 그리고 이렇게 대게의 입을 쪼개야 하네.”

원종은 온도 변화로 인해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대게를 뒤집어 대게의 입에다 칼을 쑤셔 넣었다.

그러곤, 손목을 돌려 칼을 돌리자 다물어진 대게의 입이 강제로 벌어지며 부서져 버렸다.

[따각!]

“민물고기를 먹을 때나 갯벌에서 캔 조개를 먹을 때 해감을 하듯이 대게도 물을 빼야 하네.”

입이 쪼개진 대게를 거꾸로 드니 부서져 쪼개진 입에서 뿌연 물이 흘러나왔다.

“이 녀석은 살아 있기에 이런 뿌연 물이 나오지만, 그물에 걸려 죽은 대게는 냄새가 고약한 물이 나오게 되네.”

원종은 열 마리 대게의 입을 쪼개고 물을 일일이 빼내었다.

그러곤, 우물물을 받아 둔 통에 대게의 배가 보이게 뒤집어 넣었다.

물에 들어가자 처음에는 발버둥을 쳤지만, 금세 죽은 듯이 몸이 굳어져 버렸다.

바다에 살던 대게가 민물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충격이 큰데, 쪼개진 입으로 민물이 들어오니 그 변화에 대게가 기절한 것이었다.

“어엇! 물을 뺏는데도 또 이끼를 씹은 듯한 물을 뱉어냅니다.”

대게가 기절하며 머금고 있던 피를 토해내는 것이었다.

“쪼개진 입으로 피를 다 토해낼 수 있게 배를 눌러가면서 꼭 이렇게 해감을 해야 특유의 비린내가 없어지네.”

해감하는 동안 솥에 물을 받고, 대나무로 만든 채반을 놓았는데, 물이 끓더라도 대게에 닿지 않게 물 수위를 조절했다.

“대게를 쪄먹을 때는 해감을 다 했다고 그대로 솥에 넣으면 아니 되네.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정도로 뜨겁게 된 다음에야 대게를 넣어야 하네.”

“왜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까요?”

요리법을 받아쓰고 있던 언년이가 왜 안되는지 물었다.

“대게들이 기절했다곤 하지만, 처음부터 솥에 넣어 버리게 되면 천천히 올라오는 열기에 정신이 들어 자신의 다리를 다 떼버리거든. 그렇게 다리가 떨어지면 맛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러니 반드시 솥에 김이 피어오를 때 대게를 넣어야 해. 그래야 뜨거운 김에 바로 익어서 다리를 떼지도 못하게 되거든.”

일각 여가 지나자 솥에서 김이 솔솔 올라왔다. 그제야 물속 대게를 잡아 물을 또 토하게 만들었다. 그러곤, 배가 보이게 열 마리를 차곡차곡 솥에 쌓았다.

“대게를 찌는 중간에는 뚜껑을 절대 열면 안 돼. 뚜껑을 열게 되면 밖의 차가운 바람이 들어가 대게 껍데기를 검게 만들어 버리거든. 검어진 껍데기를 보기에도 안 좋고, 맛도 빠져 버리니, 절대 뚜껑을 열면 안 되는 거야.”

“우악스레 집게까지 있는 모습과는 달리 민감한 녀석이었군요.”

“거기에 또 하나 더. 이각(30분)이 지나서 다 익은 것 같아도 절대 뚜껑을 바로 열면 안 돼. 밥을 하듯이 이것도 일각 정도 뜸을 들여야만 해.”

“그럼, 뜸 들일 때도 찬 바람을 맞으면 안 되는 것이겠군요.”

“그렇지. 뜸이 제대로 들어야 껍데기에 붙어 있던 살들이 쉽게 분리가 되거든. 뜸을 잘못 들이면 살들이 껍데기에 달라붙어 먹기가 힘들어져. 젓가락으로 쏙쏙 뽑아 먹지 못하고 가위나 칼로 일일이 자르거나 해야 해서 귀찮아.”

“아, 뜸을 들이는 게 그런 효과를 주는 거군요.”

언년이가 글을 쓰는 동안 양념장을 만들었는데, 간장에 파와 식초 약간만을 사용했다.

대게의 향을 묻어 버릴 수도 있는 참깨와 참기름, 마늘은 아예 준비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대게를 솥에서 꺼내는데 들큼한 특유의 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게살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으며 뒤집어 놓은 대게의 등딱지부터 비틀어 뜯었다.

“이 녀석은 황장을 가졌구나!”

쪄지며 대게의 엑기스가 등딱지에 모이게 되는데, 흰색의 살과 황색의 내장이 기름기를 머금고 먹음직한 색을 만들고 있었다.

대게의 종류에 따라서 속 내장이 황색, 녹색등으로 나누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들어서는 대게가 녹조류를 주로 먹었다면 녹색 장이 나오고, 조개 같은 동물성 먹이를 주로 먹었다면 황색 장이 나온다는 것으로 정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녹조류보다는 다른 조개류를 까먹은 황색 장이 더 맛이 깊고 농후했다.

“대게의 핏물을 빼지 않고, 그냥 쪘다면 우리가 토해내게 했던 대게의 핏물이 여기에 다 모이게 되고, 해산물 특유의 썩는듯한 냄새가 섞이게 된다. 그러면 이 맛있는 향이 줄어드는 것이지.”

대게찜을 파는 가게에서 살아 있는 대게를 사 먹었음에도 암모니아 냄새가 심한 케이스가 바로 이런 케이스였다.

몇몇 업장은 등딱지를 뗐을 때 육수가 많아 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핏물을 빼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 대게의 살과 내장, 핏물이 다 섞여 버려 오히려 맛을 떨어트리는 이유가 되었다.

등딱지를 제거한 대게는 깨끗한 무쇠 가위로 다리를 잘라내었고, 먹기 좋게 다리를 이등분으로 쪼개어서 접시에 담았다.

대게가 워낙에 크다 보니 이게 킹크랩인지 대게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진기와 언년이는 한 마리로 나눠 먹어도 될 것 같아, 작은 형과 사장어른도 불러오게 했다.

“오면서 맡아 보니 냄새가 장난 아니구나.”

원상은 코를 벌렁거리며 나타나 상석을 잽싸게 차지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상도 차려지지 않아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랐다.

“대게는 살을 껍데기에서 일일이 까서 먹어야 하기에 눈 밝고 손이 빠른 젊은 사람이 노인이나 아이에게 먹여줘야 하는 음식입니다. 그래서 장인어른과 겸상을 하셔야 합니다.”

“겸상을?”

독상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과 못 배운 이들이나 겸상을 한다는 것이 사회적인 범례였기에 원상은 망설였다.

이후 도착한 사장어른도 겸상이라는 것에 망설였지만, 웃어른인 노인과 제 앞길을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먹을 수 있게 봉양을 위해 겸상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것이 유교적 가치에 합당하다 느껴 둘이 마주 앉았다.

“형님 쪼개진 다리를 이렇게 가르면 살이 나옵니다.”

“오! 대게의 다리 안에 이렇게 뽀얗고 흰 살이 있을 줄이야. 통통한 것이 마치 백숙의 살과 같구나.”

반으로 쪼개진 대게 다리에 젓가락을 넣어 흰 살을 떠내었는데, 젓가락을 통해서도 대게 살의 탱글탱글함이 느껴졌다.

“안에 뼈도 없고, 살살 씹으셔도 씹히실 겁니다.”

부모님을 봉양하듯이 사장어른의 입에 넣어 드리니 처음 두세 번 씹으시곤 눈이 동그래지셨다.

“이거 사탕(설탕)이라도 넣은 건가... 살이 달구나.”

봉양하듯이 아랫사람이 챙겨주듯이 먹어야 했음에도 사장어른은 젓가락을 들어 직접 게살을 발라내고 먹기 시작했다.

입안에서 탱글탱글한 게살이 흩어지듯이 나풀거리는 식감에 반한 것이었다.

“간혹, 대게가 잡혀 국을 끓이는 데 쓰기나 했지 이리 쪄먹는 방법이 있었다니. 어찌 이런 방법을 몰랐을꼬. 정말 백미(白眉)의 맛이 아닌가!”

“장인어른의 말이 맞습니다. 이건 해산물 중에서도 백미입니다. 이 뽀얀 살이 딱 백미의 그 고사에 어울리는 맛입니다!”

두 양반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게살을 먹을 때, 다른 이들도 대게 다리의 꽉 찬 살에 감탄하며 먹기 시작했다.

몸이 작은 언년이는 대게 다리 3개만 먹었음에도 배가 부르다며 물러났고, 다른 이들도 몸통을 먹기도 전에 다리만 먹고도 배가 부르다며 난리였다.

“언년아 이 집게 살은 꼭 먹어 보거라.”

어린아이의 주먹만 한 대게의 집게를 부수자 봉긋하게 솟아있는 통살이 나왔는데, 그 꽉 찬 살을 본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나도 한입 가득 먹었고, 언년이에게도 하나를 주니 조그만 입으로 조물조물 씹어 먹었는데, 살에서 탄력이 넘친다는 게 언년이의 입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다리 살이 소금의 짭짤한 맛이었다면 집게 살은 조금 싱거운 듯하지만, 고소하고 찰기 넘치는 풍미가 특징입니다. 한 다리에서 두 가지 맛을 가지고 있으니 그 맛을 느끼며 먹는 재미도 있을 겁니다.”

“햐아... 이거 큰일입니다요. 도련님 덕분에 소인의 입만 고급이 되어서 이제는 아무 밥이나 먹고 배부르다고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요.”

금산이가 입이 고급입맛이 되었다며 호들갑을 떨자 다들 웃으며 동의를 했다.

다리에 비해 살을 뽑아 먹기 힘든 몸통도 가로로 가위질하여 주니 다들 젓가락과 입으로 쪽쪽 뽑아 먹었다.

대게 살이 마무리되자 클라이맥스나 마찬가지인 등딱지에 밥을 먹어야 했는데, 대게가 너무 신선하다 보니 향을 해치는 볶음밥 대신 그냥 백미밥과 간장, 파만 넣어서 비볐다.

“마무리로 등딱지 비빔밥입니다.”

배부르다는 언년이를 억지로 앉혀서 숟가락을 들게 했는데, 한번 떠먹어 보더니,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대게가 쪄지며 그 엑기스가 등딱지에 모여 살과 내장의 조화를 만들어낸 맛이었기에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원종도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등딱지 밥이었기에 다른 이를 신경 쓰지 않고 먹었다.

게살과 게 내장 특유의 들큼한 맛이 정말 모든 것을 잊고 음식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몇 번 먹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미 밥이 없었다.

이건 진정한 밥도둑이었다.

“도련님. 마치 앞 보던 봉사가 개안(開眼)을 한 것 같습니다요. 어찌 이런 맛이 있는 것입니까요?”

희재도 게장 비빔밥을 뚝딱 해치우고는 안 먹는 다른 사람 것이 있는지를 이리저리 살폈다.

하지만, 다들 배가 불렀음에도 게 등딱지를 뚫을 기세로 숟가락을 움직여 먹고 있었다.

“이 대게를 청손이가 잡아 왔다고? 이제 너는 다른 고기를 잡지 말거라. 너는 이제 이 대게만 잡아서 매일 들고 오면 그물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따로 삯도 주마.”

사장어른도 대게의 맛에 반해버린 것 같았다.

“사장어른. 이 대게를 먹는 법이 알려지게 되면 팔도의 식도락가들이 다 몰려올 겁니다. 그때 사람들에게 이건 꼭 알려주십시오.”

“꼭 알려야 하는 것이 있나? 찌는 방법은 청손이가 제대로 들었다고 하던데.”

“네 찌는 법 외에도 이 대게를 먹은 후에는 감을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셔야 합니다.”

“대게는 감과 같이 먹으면 안 되는 것인가?”

*

[작가의 말]

대게는 사실 너무 비쌉니다요.

㎏당 3만 원 4만 원 하니 대게 한 마리에 10만 원이 그냥 깨집니다.

이제 대게는 서민들이 진짜 벼르고 벼려서 먹는 음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갓 콧스코에서 저렴하게 게 비빔장이 나왔습니다.

(다른 곳도 파는 곳이 있지만, 가성비, 맛을 봤을 때 콧스코가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뜨끈한 흰쌀밥에 게 비빔장 + 참기름만 넣고 비벼서 김에 싸 먹으면 거기가 바로 천국입니다!

저렴하게 콧스코 게 비빔장으로 천국을 경험하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