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09화 (109/327)

109. 미인초(美人醋).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여인네들이 거하는 규방의 범죄는 의녀들을 동원하지, 다모를 동원하는 일은 없소이다. 아무리 의금부의 다모라고 해도 그런 일을 하지 않소.”

“차를 내어왔습니다.”

마침 차를 내어오는 다모가 들어 왔는데, 차(茶) 엄마(母)라는 말처럼 덩치가 후덕하신 아주머니분이었다.

도사 이청룡은 그런 다모를 턱짓하며 이야길 했다.

“방금 했던 소리가 얼마나 어이없는 소리인지 직접 보셨으니 이제 아시겠소?”

“허허허. 이거 내가 착각을 한 거 같소이다. 크흠.”

“벼슬은 높다지만, 젊은 사람이 어찌 그리 정신이 없는 것이오. 관비에게 범죄 수사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쯧쯧쯧.”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며 부끄러워 일어나려는데, 말을 독하게 하는 도사 이청룡 때문에 오기가 생겼다.

의금부에 있는 다모에는 하지원 같은 이가 없고, 다모 드라마가 다 허위라고 하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그 다모를 지금 만들면 될 거 아니냐는 그런 오기가 솟구쳤다.

“어찌 보면 그 생도 고정관념이요! 다모가 수사를 하거나 범죄 현장에 투입될 수 없다는 그런 고정관념을 우리는 버려야 하는 것이오. 다모는 여기에 좀 앉아보시오.”

후덕한 아주머니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방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원종이 억지로 의자에 앉히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앉았다.

“도사도 보시오. 규방의 범죄자 중에서 이 다모를 보고 경계를 하는 자가 있을 것 같소? 차를 내어주고 이야기 상대를 해주다 보면 그 푸근함에 친해져 속에 있는 말까지 다 이야기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소?”

“흐음... 그렇게 생각하면 또 일리는 있어 보이는구랴.”

“그것이오! 허허실실이 바로 이런 때 쓰기 위한 것 아니겠소? 전혀 경계심이 들지 않는 다모를 범죄 수사에 투입한다면 범인들은 자신들이 수사를 당하는지도 모르고 이야길 하며 정보를 토해낼 것이오.”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요. 나 같아도 옆집 아주머니 같은 외모의 다모를 보고는 경계심을 가지지 않을 것 같소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오.”

도사 이청룡은 말을 듣고 보니 범죄 수사에 다모를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다모야말로 가장 범죄 수사에 최적화된 사람들이지 않겠소? 동의한다면 의금부의 다모 4명을 교대로 해서 우리 가패에 파견해 주시오.”

“그런데 말이오. 그 가패란 곳에 범죄자가 확실히 있는 것이오? 육조거리에 있는 그 가패에서도 범죄가 일어났소?”

“어허, 범죄는 언제 일어날 거라고 예약을 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지 않소. 범죄는 미리 경계하고 막을 준비를 해야 범죄를 막을 수 있는 법이요.”

“하지만, 범죄가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곳에 인력을 보내는 것인데, 아무리 관비라고는 하나, 인력의 낭비라고 감찰이 올 수도 있는 법이오.”

“범죄는 예방이 중요한 것 아니겠소? 이번에 만드는 가패는 규방 처자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여성 전용 가패이기에 그런 규방 처자들을 노리는 놈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오. 만약 범죄가 일어나 규방 처자의 청백 지신이 더럽혀진다면 그건 어찌할 것이오? 그리고 그런 일을 당한 처자가 고관의 딸이라면 어찌할 것이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 다모를 보내지 않아 일어났다고 하면 감찰에서 욕을 듣는 거보다 더한 일을 당할 것이오.”

도사 이청룡은 감찰에서 딱이는 것과 나중에 일이 벌어져 양반가의 탄원을 받는 것을 비교해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관비인 다모를 보내는 것이 확실히 범죄 예방이 되는 것이오? 다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면피가 되겠소?”

“쇠도리깨를 허리에 차고 단복을 입힌 다모를 가패에 투입하여 경계를 시킬 것이오. 그렇게 경계하는 다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는 기를 펴지 못할 것이오.”

“흠. 그 말이 맞긴 하는데. 다모가 정녕 도움이 되겠소? 이제까지 관비로 차를 준비하고 식사를 차리던 여인인데 범인을 제대로 잡을 수 있겠소? 청송댁은 쇠도리깨를 허리에 차고 범인을 잡으라고 하면 잡을 수 있겠소?”

“쇤네가 잡아야 하는 것이 쇤네의 일이 된다면 범인을 잡아야지요.”

‘잡아야지요’ 하며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청송댁을 보니 방금까지만 해도 이웃집 아낙의 펑퍼짐한 몸매로 보였는데, 다시 보자 씨름 장사의 듬직한 몸매로 보였다.

“흠. 우선은 알겠소이다. 사실 도성 내 사대부의 동향을 살피는 일이 의금부의 주된 업무 중 하나이긴 하오. 그 일에 의금부의 관비를 쓰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오. 하지만, 내 선에서 결정할 수가 없소이다. 내 위에 이야기해 보겠소.”

“의금부의 다모가 범죄 수사의 정보를 모으고 하는 일에 쓰였다면 새로운 업무가 생긴 것이기에 자연스레 실록에 기록이 남게 될 것이오. 그런 큰일에 이 도사의 이름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니 한번 잘 추진해 주시오.”

일부러 실록에도 남겨지는 큰일이라고 이야길 하자 도사 이청룡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위에 보고할 때 그냥 가패로 파견을 나간다고 하면 되겠소? 가패에 따로 이름이 있소?”

“여자라면 봄·여름·가을·겨울 항시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춘하추동 가패로 이름을 지소이다. 육조거리에 있는 가패와는 다른 모습의 가패가 될 것이니 나중에 한 번 들려서 확인하고 가시오.”

***

“해서. 오늘부터 의금부 다모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우리 춘하추동 가패에서 근무하기로 했소이다. 다들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다모를 환영해 주시오. 다들 박수!”

다희를 비롯한 여자 일꾼들과 오픈 준비를 돕고자 온 춘봉가패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을 해주었다.

며칠 전 차를 내어준 풍채가 좋았던 청송댁과 그 반대로 키가 크고 마라서 성격있어 보이는 홍단이라는 다모가 배치되었는데, 도사 이청룡은 관비 중에서 몸집이 큰 다모를 골라서 보내주었다고 생색을 내었다.

다모에게는 검은색의 바지와 검붉은 색의 상의를 맞춰 입혔고, 남자 무사처럼 상투를 틀게 해서 이마에 검은색 건을 둘러쓰게 했다.

그러곤 허리에 오랏줄과 쇠도리깨를 차고 있게 하자 웬만한 남자들도 눈을 내리깔게 하는 외향이 만들어졌다.

하지원 누나의 그 다모는 아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다모란 여자 수사관을 만들었다는 게 중요했다. 이 기록이 후대에 전해져 소설도 되고 사극도 될 거라는 상상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도련님 그런데, 여성 전용 가패라고 하지만, 이름 빼곤 다 똑같은 거 아닙니까? 뭔가 다른 게 있어야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차림 판을 보고 차림이 똑같자 참렬이가 아쉬워했다.

“모든 게 다 똑같아. 다만, 춘하추동만의 특별한 빵과 음료가 하나씩 추가될 것이다.”

“그게 어떤 겁니까요?”

“과일속빵과 미인초(美人醋).”

“음. 과일속빵은 아마도 잘게 자른 과일을 넣은 빵일 것 같고, 미인초는 식초로 뭘 하는 겁니까?”

“그래. 미인초는 말 그대로 미인들이 마시는 식초 물이다.”

“식초 물이면 독한 냄새는 어찌 없애신 겁니까요? 도련님이 이름을 붙이고 차림으로 내놓으실 정도라면 맛도 좋을 것 같은데. 이건 어찌 만드는 것입니까요?”

“참렬아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일단 한번 마셔보거라 그게 가장 빠를 것이다. 책임자인 다희는 이미 마셔보았으니...거기 다모 두 분도 이리 와서 이거 한번 마셔보시오.”

흰색 손잡이가 달린 사기 컵에 노란색, 흑색, 붉은색의 미인초가 담겨 나왔다.

“이 잔도 특이하군요. 그럼 우선 노란색은 제가 마셔보겠습니다. 식초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살짝 나지만 마실만은 합니다.”

흑색 미인초는 청송댁이, 붉은색의 미인초는 홍단이 들고 마셨는데, 둘 다 처음에는 벌칙 게임처럼 살짝 입을 대어보고 맛을 보더니 두 번째 모금부터는 수월하게 미인초를 들이켰다.

“도련님 이건 매실주를 발효시켜 만든 식초인 겁니까? 거기에 꿀물을 탄거 같은데, 맞습니까?”

“그래 맞다. 그런데, 참렬이 너는 이제 음식이든 음료든 분석적으로 먹는구나.”

“그럼, 이 흑색이나 붉은색은...”

“좀 기다려라. 다모들이 마시고 있지 않느냐.”

원종은 미인초를 마시고 다시 입가심을 할 수 있게 튀긴 건번을 몇 개 내놓았다.

“저치의 말을 따르자면 혹시 이 검은색의 식초는 오디로 만든 것이 아닙니까? 쌉싸름한 단맛이 산과 들에서 따먹던 그 오디의 맛과 비슷한 거 같습니다.”

“오! 청송댁도 혀가 살아있구만. 오디로 술을 담그고, 그걸 발효시킨 것이네. 어떻던가? 먹을 만한가?”

“오디의 맛에 꿀의 단맛 그리고 식초의 시큼한 맛까지 한 번에 다 느껴지니 맛은 확실히 있사옵니다. 뭔가 식후에 마시기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게 오디로 만들었다면 제 혀나 입안이 검게 되었을 것 같은데 그게 걱정입니다.”

청송댁은 오디 열매를 많이 따먹어보았기에 안다는 듯이 입안의 색이 검게 물들었을까를 걱정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물로 희석했기에 색이 남지는 않을걸세. 홍단은 어떤가? 이 미인초가 뭐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겠는가?”

“그게. 송구하게도 잘 모르겠습니다. 뭔가 여러 가지 맛이 나는데, 그 맛이 다 식초의 시큼한 맛에 날아가 버려서 이게 무슨 맛인지 모르겠습니다. 헌데, 달고 시고 해서 입안이 깔끔하긴 합니다.”

키가 크고 삐쩍 마른 홍단은 자신이 마신 미인초가 뭐로 만들어졌는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맛은 있다고 남은 것까지 다 마셨다.

“그렇게 느꼈다면 정확하네. 여러 가지 맛이 느껴졌다면 그게 맞아. 이 붉은색은 오미자로 만든 것이거든.”

“아, 그래서 여러 가지 맛이 난 거군요.”

홍단이 마신 오미자(五味子)는 그 이름처럼 단맛, 신맛, 매운맛, 쓴맛, 짠맛을 다 가지고 있었기에 홍단의 말처럼 여러 가지 맛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섯 가지 맛 중에서 신맛이 가장 강했는데, 홍단의 품평처럼 식초와의 궁합이 가장 좋은 열매였다.

“그래 돈 주고 사서 먹을 만한가?”

“흠. 닭 반 마리 값이라 부담이 되긴 하지만, 아주 못 먹을 값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인초를 마셔서 그런지 배가 출출한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이거 소화가 잘되는 그런 기능도 있는 것입니까?”

홍단은 미인초를 마셔서 배가 고파졌다며 건번을 주워 먹었다.

“식초의 시큼함이 식욕을 끌어 올리고 소화가 잘되게 해주니 그것도 맞네. 더 먹게. 참렬이는 흑초와 홍초까지 마셔본 소감이 어떠하냐?”

“좋습니다. 어매일가노와는 완전히 다른 맛의 음료이기에 색다른 것을 찾는 사람이라면 아주 좋아할 것 같습니다. 헌데, 이 흰색의 잔도 새로 만든 것이옵니까?”

“그래. 음료 잔이라고 새로 만든 것이다. 문경에서 만들어 왔다면 좋았겠지만, 거리가 멀다 보니 사옹원 소속 사기장에게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다. 어매일가노를 담아주는 유기잔에 식초가 들어가게 되면 변색이 올 수 있기에 초 성분이 들어간 음료는 반드시 이런 사기잔에 담아줘야 한다.”

참렬이는 손잡이가 달린 머그컵이 신기하다는 듯이 위아래로 살펴봤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자기를 구워왔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더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도자기 잔에 손잡이가 달리고 이렇게 큰 것은 처음 봅니다. 손잡이가 이렇게 달려있으니 아주 쓰기가 편합니다. 음료 잔도 가패나 점포에서 팔면 좋을 것 같은데, 손잡이가 잘 깨지겠지만... 한번 써보니 아주 편하고 마음에 듭니다.”

참렬이의 말처럼 이 당시 술잔은 현대의 소주잔보다 좀 더 작거나, 아니면 다리가 달리고 주둥이를 잡아 마시는 큰 술잔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니면 대접이나 밥그릇으로 물이나 술을 마셨었다.

차를 마시는 잔도 마찬가지로 손잡이가 달린 찻잔은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찻주전자에는 손잡이가 있었으니 손잡이를 만들지 못해 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후대에서 추정하기로 유교적인 이유로 인해 잔에 손잡이를 붙이지 않은 게 아닐까 추정할 뿐이었다.

손잡이가 있으면 두 손을 쓰지 않고, 한 손으로 잔들 들게 되는데 그것이 다도(茶道)나 예법에 어긋나기에 일부러 손잡이를 달지 않았다고 여길 뿐이었다.

머그잔이라 불리는 손잡이가 달린 컵은 서양에서는 흔하디흔했지만, 아시아에서는 희귀했고, 따로 부르는 단어도 없었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에 유럽인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컵이 아시아에 퍼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유럽인들이 부르는 컵(cup)이란 단어 그대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음료 잔이 특이하고 마음을 끈다면 만들어 팔아야지. 아예 이 흰색 면에 글과 그림을 넣어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보자구나.”

*

[작가의 말]

카페에는 카페 굿즈도 있어야쥬.

그리고, 하지원 누나가 열연한 드라마 ‘다모’의 여 포두는 상상의 산물에 가깝습니다.

조선 전기에 규방에서 여인네들을 상대로 범죄처리를 하던 이는 다모가 아니라 의녀가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실제 다모들은 관에서 차를 대접하고 식사를 차리는 관비였으며, 범죄 수사에 나선 것은 정말 일부의 케이스 그것도 조선 후기가 되어서 몇 차례 규방에 들어가 여인들을 끄집어내는 임무를 했다는 기록이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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