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08화 (108/327)

108. 내실을 다진다. (3)

“영성부원군의 후손이 아니십니까?”

“맞소이다. 헌데, 사옹원이라면 염초와는 상관이 없을 터인데, 무슨 일이오?”

최공손은 아직 어려 보이는 이가 제조라는 말에 의심을 하였지만, 그 의관이 단정한 것을 보고 의심을 거두었다.

“목장에게 볼일을 보기 편한 것을 주문하였는데, 이미 비슷한 것을 만든 사람이 있다고 하여 찾아온 것입니다. 혹시, 나무로 된 틀을 만든 이유가 변을 받아 염초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까?”

“맞소이다. 허면, 왜 그걸 물어보는지 내가 되물어도 되겠소? 염초의 제조는 나라에서 중히 여기는 사안이오.”

“먼저 하나 더 물어보겠소이다. 영성부원군이 남기신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이란 책을 가지고 있소이까?”

최공손이 물어오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원종은 되려 화약수련법이란 책을 가지고 있는지 되물었다.

최무선이 죽으며 어린 아들 최해산에게 주었다는 책인데 화약과 화포를 만드는 방법이 쓰여있다고 알려진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후대로 전해지지 못했는데, 원종은 그 책을 손자인 최공손이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음... 안으로 듭시다. 듣는 귀가 많소. 덕쇠는 다른 이가 듣지 못하게 방 입구를 지키거라.”

최공손은 사랑에 들어가자마자 목소리를 깔며 이야기했다.

“화약수련법 책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군기시에서 가져갔소. 헌데, 그 책의 존재를 어찌 아는 것이오? 그 책을 혹시 궁에서 보셨소?”

“아, 그럼 책이 없다는 거군요.”

최공손의 말을 들으니 어디선가 일이 꼬여 화약수련법이 후대에 전해지지 못한 것 같았다.

세종대왕 시절 화약을 잘 만들었기에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은 횡령과 비리, 근무 태만 등 여러 잘못을 저질러도 세종대왕께 모든 것을 용서받았고, 당상관으로 천수를 누리다 죽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서나 교양프로그램에서는 최해산 이후 그 후손들에 관한 이야기나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최해산이 양반이 되었으니 화약 만드는 일을 후손들이 하지 않았다고 여겼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최공손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집안에서 전해 내려져 오던 화약수련법 책을 조정에 올린 것이었고, 이후 그 맥이 끊어져 화약과의 연이 후손들과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이런 부분이 너무 안타까웠다.

후손은 그때의 기술을 재현하기 위해 똥오줌을 받기 편한 목가구를 만들어가며 노력하고 있는데, 훗날 임진왜란 때는 화약이 없어 화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미래를 아는 입장에서 속이 너무 갑갑했다.

“나도 그 책이 전해졌다는 것만 들었기에 영성부원군의 후손을 만나게 되어 물어본 것이오. 책이 조정에 있다고 하니 내가 한번 확인해 보겠소이다. 헌데 그 책의 내용을 아예 모르는 것이오?”

“보긴 보았으나, 너무 어릴 때 보았기에 다 외우지 못했소이다.”

그러고 보니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도 최무선이 50넘어 본 자식이었다.

그래서 최해산이 화약수련법 책을 받은 것이 15살이었고, 책을 보고 독학으로 염초를 만들고 화포를 만들었다고 알려졌었다.

“아버님이 워낙에 노시는 것을 좋아하고, 화약을 만들다 죽어간 이들이 많다 보니 내게 제대로 알려주시지 않으셨소이다. 책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셨소.”

“그랬군요. 그럼 지금은 아예 화약을 못 만드는 겁니까?”

“그건 아니오. 지금은 군기시에 남아 있는 방법으로 만들고 있소이다. 허나, 그 결과로 나오는 수량이 아버님이 하셨을 때와 비교해서 절반도 채 되지 않소. 그래서 내가 이리 연구를 하는 것이요. 그 책을 다시 보기만 하면 생산량을 확 늘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휴우...”

“아는 관리들은 없소이까? 그들을 통해 책을 확인하면 되는 것 아니오?”

“아버님과 인연이 있던 장인이나 별주들이 책을 보고 싶다고 간청을 해도 권한이 없어 볼 수가 없다고 하오. 고관을 몇 번 찾아가 간청을 드렸으나 아버지가 말년에 했던 행동 때문인지 내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소이다.”

“그럼 군기시도 아예 그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군요.”

좋은 기술이나 방법이 있는데, 그걸 쓰지 않고 더 안 좋은 방식으로 화약을 만드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제조의 직에 있으니 혹여 아는 고관이 있다면 책을 좀 볼 수 있게 해주게나.”

“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원래의 목적이었던 화장실을 확인하고 돌아오며 생각하니, 최공손은 전형적인 공돌이 스타일의 사람 같았다.

나였다면 책이 궁에 있는데 볼 수 없다면 여러 관리를 찾아가 안면을 넓히고 인맥을 만들어 그 책을 볼 수 있게 노력을 했을 터였다.

한데, 최공손은 그런 영업적인 성격이 아닌지 혼자서 화약을 굽고 연구만 하고 있으니, 그 노력의 방향이 잘못된 것 같았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바로 궐로 들어가 신숙주를 찾았다.

“화약수련법? 그 책은 왜 찾는 것인가?”

“우연히 영성부원군의 후손을 만났사온데, 화약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헌데, 그 책의 내용을 알 수 없어 효율이 좋지 않은 옛날 방식으로 화약을 만들고 있다고 하더군요. 후손이 선조가 남긴 책을 보고 싶다고 하는데, 방법이 없겠습니까?”

“흠. 최해산이 세종대왕 시절 죽고 그 책을 군기시에서 가져갔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네. 나도 그때 있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네.”

“그럼. 어찌 된 연유입니까?”

“최해산의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여 대왕께서 직접 최무선이 남긴 책을 가져오라고 하셨네. 최해산의 재주는 대왕께서도 인정하셨지만, 그 인성은 아니었거든. 대왕께서는 그가 말년에 눈이 어두워 책을 타국에 넘길까 걱정을 하셨네. 그래서 그에게서 책을 빼앗은 것이지.”

“그 정도였습니까?”

“그렇네. 그 정도로 품행이 좋지 못했어. 그리고 그 책에 나와 있는 방법은 반대로 너무 뛰어나니 그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대왕께서는 걱정하셨네. 오죽했으면, 그가 타국에 염초 제조법을 알릴까 두려워 한양에 집을 주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할 정도였어.”

신숙주의 이야길 듣고 보니 최해산 이란 자가 대단하긴 했고, 그런 자를 포용한 세종대왕도 대단했다.

“헌데 그 후손은 좀 다르다고 하니 책을 돌려줘도 좋을 것 같구만. 그런데, 왜 이리 화약과 최씨 집안에 신경을 쓰는 건가? 설마, 화약이나 염초를 장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니겠지?”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나라를 지키는데 필요한 화약은 상거래의 대상이 아니옵니다.”

“하하하. 그렇지. 우리 손녀사위가 그럴 위인이 아니지. 내 조만간에 최공손이라는 자를 불러 확인해 보고 인물됨이 괜찮다면 그 책을 돌려주도록 하겠네. 화약의 증산이 곧 조선의 부강함이니깐.”

“제가 감사드립니다.”

***

“도련님. 장사를 해보지 않은 제가 점포를 맡아도 되겠습니까? 손해가 날까 두렵습니다요.”

착호갑사를 꿈꾸던 달유에게 나이기온을 팔던 공랑 점포를 맡겼다.

우리가 취급 가능한 물건은 직접 생산하는 문경 도자기와 나이기온, 남는 곡식으로 만든 건번이 있었고, 안성에서 들고 오는 유기그릇과 붓이 있었다.

그리고, 가패에서 들어오는 이승포와 오승포까지 쌓아두고 팔고 있었기에 그냥 잡화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들 처음이 있는 법이네. 물건 가격은 주위 가격과 비슷하게 해서 팔면 될 것이네. 자체 생산품이 있으니 웬만해서는 손해가 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올 연말에는 초도 팔 수 있게 될 터이니 손해는 걱정하지 말게나.”

“네. 어떻게든 손해가 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요.”

“도련님. 종각에는 공랑점포가 없는 곳입니다요. 가패 자리가 없습니다요.”

박복이가 한양에서 이제 좀 살았다고 공랑 점포 자리를 다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래 알고 있다. 헌데 말이다. 여인네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가패는 공랑점포가 아닌 일반 민가를 사서 만들 것이다.”

“네? 그러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요? 그리고, 이 앞은 피맛골입니다요. 여염집 아낙도 아닌 귀인들이 오기에는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요?”

“그래 네 말도 맞다. 하지만, 저 앞에 있는 게 뭐냐?”

“의금부(義禁府)입니다요. 아! 그럼.”

“맞다. 여인네들이 왔다 갔다 하기에 가장 안전할 수 있는 곳이 의금부 앞이지 않겠느냐. 의금부 앞에 여인네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가패를 만들 것이다. 공랑 점포가 아니라고 위에서 뭐라고 하면 안전이나 작은집 문제로 어쩔 수 없었다고 배짱을 한번 튕겨 볼 것이다.”

“그럼 저 초가집부터 집을 팔 수 있는지 물어보고 오겠습니다요.”

그렇게 의금부 앞의 민가 3채를 구매하여 허물고는 벽돌로 새집을 지었는데, 춘봉가패와는 달리 외부 테라스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에 유기와 나무틀로 만든 변기를 설치한 화장실을 3개나 만들었고, 그 앞에 동경까지 두어 옷매무새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창문에는 나무창 안에 발을 설치하여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그 틈새로 밖을 구경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나머지는 이미 춘봉가패를 만들며 해본 일이기에 난로 오븐의 설치나 불판의 설치도 금세 이루어졌다.

다희를 따라 바느질하던 아낙 두 명이 가패에서 일하기 위해 왔고, 가패 안에서 일할 사람을 찾으니, 탁자와 의자를 만들어 주는 목장의 아내와 딸들이 찾아와 일하고 싶다고 매달렸다.

좋은 일자리라는 것이 소문이 난 것 같았다.

교육과 위생은 관기였던 채월이가 맡아 진행을 했고, 메뉴판을 보기 위해 언문과 숫자를 익히는 것은 박복이와 언년이가 맡았다.

이제는 인력들이 알아서 척척 돌아가는 것을 보자 프랜차이즈의 초기형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도련님. 이곳이 의금부가 바로 앞이라지만, 여기에도 금산 아저씨처럼 질서를 정리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춘봉가패도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금산 아저씨가 줄을 세웠다고 하던데.”

박복이는 가패가 거의 완성되자 호위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여기는 여인네들만이 오는데, 설마 그렇게 되겠느냐?”

“귀인들은 그렇게 몸싸움하고 하지는 않겠지만, 몸종들은 다르옵니다. 주인이 시키는 일에는 빈틈이 보이면 바로 머리부터 집어넣고 볼 것입니다.”

말을 듣고 보니, 양반 여인네들도 몸종을 시켜 줄을 세우거나 하다 보면 드잡이질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금산이같은 남자 호위를 세웠다가는 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지원을 데리러 가야겠구나. 의금부로 가자.”

박복이와 언년이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의금부로 당당하게 들어가는 원종을 뒤따랐다.

***

의금부 도사(都事) 이청룡은 황당함에 입이 벌어졌다.

사옹원의 제조가 갑자기 찾아와 의금부의 수사직책 중 가장 높은 자를 보고 싶다고 하여, 자신이 급히 나온 것이었다.

한데, 다짜고짜 의금부에서 식사나 차를 끓이고 대접하는 잡일을 하는 관비인 다모(茶母)를 두 명 내놓으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전 제조가 영의정 어르신과 친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소이다. 허나, 관에서 일하는 관비를 임의대로 줄 수는 없소이다.”

“아니,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니라 파견을 해달라는 거요.”

원종은 사대부의 양반이나 돈 좀 있는 중인들의 여인네들이 올 곳이기에 의금부의 다모를 아예 파견해달라고 온 것이었는데, 말이 안 통했다.

“그게 그거 아니오? 결국 관비를 노비로 부리려고 하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참으로 대단하오. 의금부의 관비를 데려다 부리려 하다니. 허허. 이거 참 어이가 없소이다.”

어이가 없다는 도사 이청룡의 말에 그제야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모를 노비로 부리려는 게 아니오. 정보 탐색과 내사, 질서 유지에 쓰기 위함이오. 여인네들밖에 없는 곳이다 보니 다모가 그런 일에 딱 맞지 않겠소?”

“응? 그게 무슨 말이오? 다모를 정보 탐색이나 내사에 쓴다니. 차나 끓이고 식사를 준비하는 계집종을 왜 거기에 쓴다는 말이오?”

“그건 또 무슨... 다모는 원래 여인네들의 범죄에 수사관으로 쓰이는 것 아니었소?”

“어디서 해괴한 이야기를 듣고 오신 것이오?”

도사 이청룡의 말에 내가 기억하는 드라마 다모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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