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내실을 다진다. (2)
“흠흠. 우리 상단 사람이 제조 어르신의 농장에도 방문했나 봅니다. 상도의 없이 마구잡이로 들려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모르고 한 것이니 괜찮네. 그리고, 닭털은 송상에 팔기로 했으니 왕십리의 닭 농장에서 사 가도록 하시오. 같이 벌어먹어야 하지 않겠나. 헌데, 충고하자면 한번 나이기온을 산 자는 다음 해에는 나이기온을 잘 사지 않을 것이네.”
“개의치 않아 하신다니 배포에 감읍할 뿐입니다. 헌데, 나이기온을 한번 산 사람은 다시 안 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 그대네. 나이기온이 비싸기도 하지만, 나이기온 옷이 떨어져서 구멍이 나지 않는 한 한 벌이 있는 사람들은 또 사지 않는다는 말이네.”
현대 한국이었다면 패션을 위해 패딩 점퍼를 색깔별로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세탁을 위해 여벌 한 벌을 더 사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조선 시대에 그렇게 여러 벌의 패딩 옷을 구매할 사람은 몇 없을 터였다.
“음. 그 부분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는 한양에서 판매가 성공하여 경기나 하삼도에도 알려졌기에 올겨울에는 전국적으로 팔 수 있게 준비한다고 털들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제조 어르신의 말처럼 한번 사고 안 산다면 그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송상의 행수 자리는 거저 얻는 게 아니라는 듯이 바로 말을 알아들었다.
“조선에서 다 팔게 되면 이후로는 중국에 파는 것도 고려해보시오. 중국은 땅이 넓고 추운 곳이 많아 몇백은 더 팔 수 있을 것이오.”
“네. 저희도 준비는 하고 있사옵니다. 제조 어르신께서 하신 것처럼 유력자들에게 공을 들이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확실할 것 같아 북경의 관리들과 친분을 넓히고 있사옵니다.”
말을 하고 나서 진 행수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았는지 급히 말을 이었다.
“아, 이게 제조 어르신의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보니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하. 이거 나를 분석했구만. 그럼 가패는 가봤소? 그건 어떻게 생각하오?”
“사실 소인은 가패가 문을 열기 전날 대군마마들께서 오셨을 때 밖에 있었사옵니다. 그때 가패는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문을 열기도 전에 가서 줄을 섰었습니다.”
“이거 진짜 완전히 분석 당하고 있었구만. 그래 맛을 보고 하니 어떻든가?”
진 행수는 내가 따라 하기나 분석 당하는 것을 웃으며 넘어가자 졸이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전하께서도 칭찬하였다는 가수저라를 먹어 보고는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상단의 웃어른들도 다들 한 번씩 들려 파파빵과 건번을 맛보고 했습니다.”
“그래 다들 뭐라고 하던가?”
“저, 그것이...”
“사실대로 말해주게나. 장사하는 사람의 진솔한 감평이 궁금하네. 다들 칭찬만 해서 부정적인 걸 들어본 적이 없네.”
진행수는 진짜 다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진솔한 감평이 필요하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사실대로 아뢰겠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맛이 있다고, 이런 달달한 것은 처음 먹어 본다고 입을 모았으나 두 번째 갔을 때는 다들 부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어떤 것이 부정적이었나?”
“너무 비싸고, 곡식 낭비라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었습니다. 가수저라 다섯 조각이 닭 10마리 값이나 하니 천하의 낭비가 아니냐고 이야길 했습니다.”
“그래 맞아. 가격이 비싸지. 또 다른 건?”
“...그리고, 어매일가노를 들고 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할 일 없는 한량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배부른 양반들의 헛짓이라 일축했습니다. 이것이... 그저 천한 장사치의 말이니 흘려들어 주십시오.”
“다 맞는 말이구만. 돈을 낼 수 있는 부자들만이 그런 여유와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이지. 좋아. 그 말을 누가 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참겠네.”
“송구하옵니다.”
송상 사람들이 했다는 말은 사실 다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현대 한국에서도 있었다.
밥값보다 더 비싼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찾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여자들을 ‘된장녀’라고 지칭하며 비하를 했었다.
물론, 시간이 흘러 그 비싼 커피에서 얻는 여유와 만족감이 밥을 먹는 만족보다 정신적으로 안정감과 자기만족을 준다는 결과들이 나오자 된장녀란 비하적 의미는 다른 행동의 의미로 바뀌게 되었었다.
“다 맞는 말이니 송구할 것 없네. 저렴하게 양민들도 즐길 수 있는 것을 준비 중이니 그때도 송상 사람들이 맛보고 나중에 이야기해주게나.”
“제조 어르신의 넓은 배포에 감읍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봄이 오고 했으니, 공랑 점포를 비워주게나. 아, 물론, 감평에서 한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이제는 비워 줄 때가 된 것이라 하는 말이네.”
원종이 아무 상관없다고 이야길 했지만, 이야길 듣는 진 행수는 자신의 입 때문에 이렇게 나가라고 하는 거라고 자기 입을 때리고 싶었다.
“이 공랑 점포에다가 여인네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가패를 열 것이네. 지금의 춘봉가패는 여자가 와도 되지만, 어느 여자가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가패에 들어가겠는가.”
“휴... 그건 그렇지요. 그럼 이달 말까지 점포는 비우도록 하겠습니다요.”
“아참, 이미 가패에도 웃어른들이 와 봤다면 또 따라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아,아이고, 그건 아닙니다요. 정말, 순수하게 가수저라가 궁금했었습니다요.”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진 행수는 크게 당황해했는데, 왠지 내가 핵심을 찌른 거 같았다.
“하하하. 그럼 되었네. 헌데, 갑자기 송악에 가패가 생기고 하면 참 마음이 아플 것 같거든. 만약에 가패를 한다고 하면 미리 언질이나 좀 주게나.”
“아닙니다요. 정말 그건 아닙니다요. 믿어주십시오.”
“그럼 믿겠네. 하하하.”
얌체처럼 따라 하는 송상에게 이리 이야기했으니 가패를 열기 전에는 찾아오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가패에서 난로에 빵 굽는 것을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신분의 문제로 말을 놓아야 했지만, 어찌 보면 새어머니이기도 한 아버지의 첩이라 무턱대고 반말을 쓰기가 어색했다. 해서, 최대한 말을 평어체로 쓰려고 했다.
“네 도련님. 나이기온이 판매되고 하는 것이 송상의 물건들 위주로 하다 보니 바느질 일이 줄어 뭐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가패에서 배웠습니다요.”
다희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보통은 일이 없으면 노는 것이 대부분인데, 다희는 자기가 할 일을 찾아서 했기에 여성용 가패 일을 맡길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진기와 향희는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생각해 둔 게 있습니까?”
아버지는 첩의 아이들이라고 거의 신경을 안 쓰니 나라도 챙겨줘야 했다.
물론, 이제 8살인 아들 진기와 7살인 향희의 진로를 정하기엔 이른 감이 있었지만, 출사를 목표로 한다면 지금부터 글을 배우고 해야 했다.
“아이들은 저와 참렬 요리장이 하는 것을 보고는 둘 다 빵을 많이 먹을 수 있는 부엌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참렬이처럼 요리의 재능이 있다거나 재능은 없더라도 뜻을 세운 게 있다면 요리를 배우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빵을 배불리 먹기 위해 하고 싶다는 이유라면 그렇게 추천하고 싶지 않았다.
“요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보는 게 한정적이니 그렇게 이야길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진기를 1년 정도 제가 데리고 다니겠습니다. 보는 시야를 넓혀주면 생각도 달라질 것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이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면천도 시켜주시고, 이렇게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나이기온 파는 공랑 점포를 가패로 만들려고 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여기라면 육조 거리 끝에 있는 춘봉가패보다도 목이 좋습니다. 무조건 잘될 것이옵니다.”
“여기에 만들려는 가패는 춘봉가패와 같은 게 아니라. 춘봉가패에 출입하기 어려운 여인네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가패가 될 것이네.”
“음... 그렇다면 좋지 않습니다.”
“아니 왜? 조금 전엔 잘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인네들 전용 가패라면 여기서는 아니 됩니다. 먼저, 여기에는 ‘작은집’을 더 만들 수가 없습니다.”
“작은집? 아!”
작은집이란 화장실을 에둘러 이야기하는 말이었다.
여자의 마음은 여자만 안다더니 다희에게 여성 전용 카페를 만드는 걸 물어보길 잘한 것 같았다.
가패를 만드는데 화장실에 대한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데, 듣고 보니 여성 전용에선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다.
현대처럼 화장실 셀카를 찍고 하는 일은 없겠지만, 확실히 남자보다 여자들에게는 화장실이 중요했다.
“공랑 점포는 작은집을 공용으로 쓰옵니다. 다른 점포의 사람들도 쓸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군요. 생판 모르는 이들이 작은집 앞에서 얼쩡거리면 마음이 불편할 것이고 그러면 오기가 힘들 것이니. 그러면 공랑 점포자리에는 여성 전용 가패를 열 수가 없겠군요.”
손님뿐만 아니라 일꾼들도 다 여자들로 꾸릴 예정이라 화장실이 문제였다.
지금 있는 곳에 화장실을 더 만들려고 해도 공랑점포 특성상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재래식이 아닌 수세식 화장실 변기를 설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여인네 전용 가패를 만들 장소를 새로 알아볼 테니 내일부터 진기는 내보내십시오.”
***
여성 전용 가패를 만들려고 하다, 수세식 변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유기그릇을 만드는 공인과 목장을 불러들였다.
“도련님이 그려주신 모양대로 구멍이 길게 뚫린 부분은 유기로 만들 수 있습니다.”
“유기그릇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건 쉽습니다요. 헌데, 이것이 볼일을 보는 용도로 쓰이는 것입니까요?”
“맞네. 혹시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
“네. 이것과는 모양이 다르지만, 그 일을 위한 것은 몇 개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 누가 주문을 했었는지 알 수 있겠는가?”
나 말고도 수세식의 화장실을 만들려고 했던 이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공조의 군기감승으로 있는 최공손 대감댁입니다.”
“최공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걸터앉을 수 있는 변기를 이미 쓰고 있다는 말에 그 노하우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댁으로 안내 좀 해주게나.”
목장을 앞세워 움직이니 도성 밖 중랑천을 지나 장한평이었다.
목장이 대문을 두드려 방문 사실을 이야기하니 잠시후 문을 열어줬는데,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코안으로 훅 들어오는 냄새에 그제서야 최공손이 누구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윽! 무슨 냄새가 이리... 도련님은 괜찮으십니까요? 무슨 냄새이기에 이리 심한 냄새가...”
“화약 냄새이니라.”
현대에서 폭음탄이나 화약 권총 같은 흑색화약이 들어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사람이라면 흑색화약 특유의 냄새를 기억할 터였다.
집안 자체에 흑색화약 냄새가 배있을 정도고, 최씨의 성씨라면 최무선의 후손밖에 없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에도 나오는 최무선의 아들이 최해산이었다는 건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그 손자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원종도 이름을 듣고서는 누구인지 바로 알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측간 틀을 주문했다고 나를 보고 싶어 한다니 특이하구만. 뉘시오?”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30대가 나왔는데, 작업복 같은 옷을 입은 것으로 봐서는 그가 최공손인 것 같았다.
“사옹원 제조로 있는 전원종이라고 합니다. 목장이 만들었다는 틀이 궁금해 왔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측간 틀로 모은 변으로 염초를 만드시는 겁니까?”
염초라는 말에 최공손은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