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공인(工人)의 삶. (1)
“나리. 이렇게 철판을 얇게 피는 것은 가능한데, 이걸 이렇게 둥글게 하는 것은 제 솜씨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요.”
벌써 세 번이나 들었던 말이었다.
석탄 난로의 몸체를 사각형으로 만드는 건 괜찮았지만, 연통이 문제였다.
둥글게 말리면서 이어 붙일 수 있어야 했는데, 그건 다들 손사래를 쳤다.
“나리. 안성에 있는 유기장들에게 한번 가보시지요. 이렇게 부드럽게 말아져야 하는 것이라면 유기로 만들면 될겁니다요.”
“유기(鍮器)?”
유기란 구리와 주석을 섞어 만드는 청동을 말하는데, 아연을 섞은 황동(黃銅)이나 니켈을 섞은 백동(白銅)도 유기라고 불렀다.
유기로 만든 그릇을 다른 말로는 놋그릇이라고 불렀는데, 구리와 주석 모두 인체에 해가 없기에 오래전부터 그릇으로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는 금속이었다.
“네.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있듯이 안성의 유기장들이라면 나리가 원하는 대로 맞춰 줄것입니다요.”
‘하긴, 삼남(三南 충청, 전라, 경상)에서 올라오는 물산이 1차로 모이는 곳이 안성이니 솜씨 좋은 유기장들이 거기 다 있겠구나.’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기에 금산과 참렬이를 데리고 안성으로 움직였다.
***
“나리 이게 제작은 가능한데 이걸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요? 비용이 꽤 들어갈 것 같은데... 이렇게 둥근 관의 형태라면 유기로 만들기보다는 대나무를 잘라서 쓰는 것이 더 이득이기 때문입니다요.”
“내가 만들고자 하는 건 돌 숯을 때우는 난로네. 그때 나오는 연기를 빼기 위한 관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네. 그래서 대나무는 쓸 수가 없어.”
원종이 그려온 석탄 난로 이미지를 보여주자 유기장 상수는 한참이나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흠. 뜨거운 연기가 지나다니는 관이라면 확실히 대나무는 사용할 수 없겠군요. 저희도 돌 숯을 쓰기에 돌 숯이 내는 열이 얼마나 뜨거운지 압니다. 그러니 이 난로의 몸체는 철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돌 숯의 열을 견딜 수 있을것입니다요.”
유기장 상수에게 난로 2개를 만드는 비용으로 백미 열 가마를 치렀고, 유기 공방을 살피다 보니 쉴 새 없이 주물로 뜬 유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꽹과리나 징은 물론이고, 장에 완성품으로 내다 파는 장내기 유기까지 온갖 것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혹시 이런 것도 제작할 수 있나? 국수틀이라고 하는 것이네.”
원종은 둥근 그릇인데, 그릇의 바닥에 눈곱만한 구멍이 수십 개 뚫려있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그릇의 안쪽 바닥과 딱 달라붙는 모양의 아래로 쳐진 뚜껑을 보여주었다.
“특이한 그릇이군요. 이 그릇의 벽에 가로로 만들어진 이 흠은 무엇입니까요?”
“이 흠은 위의 쳐진 뚜껑이 돌아가게 하는 흠이라네. 왼쪽 방향으로 돌리게 되면 이 흠의 각도에 따라 쳐진 뚜껑이 아래로 내려가고, 오른쪽 방향으로 돌리게 되면 쳐진 뚜껑이 위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네.”
“오! 이 요철 흠을 이용해서 쳐진 뚜껑으로 안에 든 것을 누르는 것이군요.”
“맞네. 바닥에 구멍이 난 그릇에 반죽을 넣고, 그 위로 이 쳐진 뚜껑을 돌려 내리면 내려오는 압력으로 인해 이 눈곱만한 구멍으로 반죽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지. 그게 국수 면빨이네.”
“그러면 이 그릇은 두 사람이 잡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군요.”
“그렇게 두 사람이 해도 되지만, 이 아래 그릇은 나무 판에 끼울 것이네. 그러면 나무판을 솥에 걸쳐 고정할 수 있고, 틀이 고정되니 한 명이 뚜껑을 돌려 국수를 뽑는 작업을 할 수 있네.”
“흠. 그렇다면 아래 그릇의 바깥면에는 나무판에 걸리는 요철을 달아야 하겠군요. 어떤 물건인지 이해했습니다. 만들 수 있습니다.”
잘산군에게 칡 칼국수를 대접했을 때 국수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철판에 못으로 구멍을 내어 누르는 가장 원시적인 국수틀을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면 스크루 방식으로 돌려서 국수를 내리는 국수틀은 야장들이 만들지 못할 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기로 온갖 것을 만드는 유기장을 보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보여줬는데, 그냥 쉽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내가 와 있어도 상관없겠는가?”
“에? 와서 구경하시는 것은 괜찮지만, 양반 나리가 와 있기에는 좀... 불편할 터인데 괜찮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게 내가 앉아 있을 의자까지 들고 오겠네.”
원종은 국수틀과 난로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기도 하였고, 만들면서 이야기한 것과 다르게 만들어질까 염려되어 만드는 것을 꼭 보고 싶었다.
“그럼, 뭐 어쩔 수 없지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유기장의 상수는 별종을 봤다는 생각에 그냥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
“콜록, 콜록... 크으윽, 퉷!”
“켁켁 카악! 퉷!”
아침 일찍 출근한 듯 공방에 나온 원종의 눈에 장인들이 잔기침을 하거나 콜록거리며 가래 침을 뱉는 모습이 자주 보였는데, 어떤 이는 다 죽어 가는 사람처럼 불안한 기침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병색이 완연해 보이던 나이 많은 이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응? 뭐지 이 반응?’
사람이 공방에서 일하다 피를 토하며 쓰러졌는데, 다들 늘 있는 일이라는 듯이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이 쓰러진 이를 들어 방으로 옮길 뿐이었다.
“쯧쯧쯧 폐병이 골수까지 차버렸구먼.”
“에이 시발. 쿨록, 쿨록.”
“남 일이 아니니 기분이 더 나쁘네. 카악 퉷!”
“이보시오. 저게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되겠소?”
“양반 나리도 무슨 바람이 불어 공방 안에 앉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폐병에 걸리기 싫다면 얼른 여기서 나가시오. 유기 방짜 일을 하는 자는 다 폐병으로 피를 토하다 죽게 되오.”
방짜 일을 하면 폐병에 걸린다는 말을 듣고 보니, 그제야 유기 공방 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기를 녹여 주물을 뜰 때 나오는 유독가스에 그대로 노출이 되는 환경이구나.’
공방 한편에서는 구리와 청동을 녹이고 있었는데, 거기서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주물을 뜰 때도 열이 있을 때 두들기기 위해 방짜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제철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쓰는 그런 현대적인 마스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천으로 된 마스크도 아예 쓰지 않고 일하는 환경이었으니 유독가스로 인한 폐병은 어쩔 수 없을 것 같긴 했다.
건강에 좋지 않은 환경을 내가 어떻게 바꿔주려고 해도 뭘 할 수가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어쩌면, 조선 시대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이 이런 공인들일지도 몰랐다.
사농공상이었기에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보다 대우받는 계층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공납으로 만들어 나라에 바쳐야 하는 물량도 많았고, 만들어진 제품을 상인들이 팔아줘야 했지만, 알다시피 조선의 상업 유통은 빈사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만들어도 제대로 팔 수가 없으니 죽지 못해 물건을 만드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조선 중기 이후가 되면 양민으로 있기보다는 먹고살 걱정이 없는 양반의 노비가 되어 물건을 생산하는 공인들이 많아졌다.
“쿨럭, 쿨럭... 이 기침만이라도 안 했으면 좋겠구만.”
“난, 가래라도 시원하게 나와서 뱉을 수 있으면 좋겠어. 크으윽!”
해로운 가스를 마시다 보니 기관지 자체에 병이 들어가는 공인들이 안쓰러웠다.
‘그러고 보니 가래는 시원하게 뱉어낼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뭐였드라... 그래 용각산!’
용각산을 공인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의자를 박차고 나갔다.
“저거 봐 저거. 자기가 이야기한 물건 다 만들 때까지 지켜볼 것처럼 하더니 폐병 걸린다는 소리에 바로 나가버리는구먼. 크학 퉷!”
“그게 양반이지 뭐. 그리고 사실 없는 게 더 편하잖아. 크흐흑.”
***
기관지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용각산(龍角散)은 이름 그대로 하면 용골(龍骨)과 용뇌(樟腦), 녹각상(鹿角霜)을 넣은 약이다.
‘용골’이라 하면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의 뼈(dragon bone)로 한의학에서는 땅속에서 나온 갑각류의 등뼈나 화석화된 공룡의 뼈를 갈아서 사용했다.
즉, 화석을 갈아서 먹는 것이었다. 당연히 영양가는 별로 없다.
‘용뇌’는 녹나무에서 추출한 진액으로 입에 넣었을 때 싸한 느낌을 주는 물질로 목을 시원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녹각’은 사슴의 뿔을 이야기하며 몸에 기운을 북돋아 주는 약재였다.
하지만, 현대 한국과 일본에서 판매되는 용각산에는 이름에 있는 용골이나 용뇌, 녹각이 들어가지 않았다.
실제 용각산에 들어가는 재료는 후한 시대 의원인 장중경이 쓴 상한론(傷寒論)에 나오는 감길탕(甘桔湯)이 기본 베이스였다.
이 감길탕은 감초와 도라지, 살구씨로 만드는데, 기침 환자나 천식 환자에 좋았고, 인후염과 편도염에도 좋았다.
그리고, 감초, 도라지, 살구씨는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원종은 삼도의 물산이 모이는 안성이었기에 약방을 돌며 잘 말린 세 가지를 모았고, 녹나무의 진액을 굳힌 용뇌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이 네 가지를 곱게 갈아 섞어서 약을 만들었다.
대나무로 만든 작은 통에 용각산을 넣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다들 희멀건 가루가 뭔가 싶었다.
“목이 불편할 때 이걸 조금씩 먹으시오. 물과 함께 먹으면 안 되고, 천천히 침으로 녹여 삼키면 가래가 쉽게 나올 것이오. 물론, 기침도 좀 누그러들 거고.”
“그럼, 이게 약이란 말이오?”
“기침을 멎게 하는 약이라고?”
“이거 값을 치루어야 하는 건가? 비싼 건가?”
“공짜요. 내 물건을 그대들이 만들어 주고 있기에 내가 그대들에게 주는 것이오. 한번 먹어 보시오.”
공방의 유해한 작업 환경은 못 바꿔주지만, 이런 약으로나마 공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싶었다.
“응? 뭔가 이 싸하고 후끈거리는 건 뭐지?”
“약이라서 그런지 쓰네. 쩝.”
그렇게, 긴가민가하며 가루를 삼켰던 자들은 얼마 안 가 시원하게 가래를 뱉어낼 수 있었고, 목이 시원해지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목이 시원하다고 약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아니 되오, 대나무로 만든 작은 숟가락으로 하루에 3번에서 6번만 먹어야 하오.”
“저, 저기... 양반 나리. 그럼, 이걸 다 먹게 되면 또 어디서 살 수 있는 것입니까요? 혹시 이 약 이름은 무엇입니까요?”
500ml는 충분히 담을 수 있는 대나무 통에 약을 가득 담아 주었음에도 공인들은 벌써 약이 떨어지면 어찌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약 이름은... 공인산(工人散)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소.”
공기가 나쁜 환경에서 일하는 공인들의 기관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약이니 일본 애들이 만들었다는 용각산이란 이름보다는 공인산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약이 다 떨어지면, 잘 말린 감초, 도라지, 살구씨를 갈아 섞으면 되오. 알싸한 맛을 내는 것은 녹나무의 진액인 용뇌(장뇌 樟腦)인데 이건 좀 구하기가 힘이 들고 값이 나가는 것이니 못 구한다면 넣지 않아도 될 것이오.”
“감사합니다요. 나리.”
“어제 쓰러진 장 노인에게도 먹여봐도 되겠습니까요?”
“약을 삼킬 수만 있다면 먹여도 될 것이네. 아니. 내가 진맥을 한번 해보겠네.”
어제 쓰러진 이후 방에 누워 있는 장 노인은 정신을 차렸지만, 거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순의 영감에게 배운 의술로 맥을 짚어보니 맥동이 약한 것이 기력이 다한 것 같았다.
단순히 기력이 다했다면 기력을 북돋아 주는 약을 쓰면 되었지만, 이런 유해가스에 노출되어 문제가 생긴 병이라면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했다.
그저, 기력을 올려주는 약을 지어 주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가장 저렴하게 기력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약이 뭐가 있을까. 평민들도 쉽게 달여 먹을 수 있는 그런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