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운이 좋군. (3)
“원상 형님. 그러지 않아도 이야기할 게 있습니다.”
“상단 일이라면 이미 아버지께 들었다. 나도 그다지 상관은 없다. 처가야 뭐 원래부터... 아, 아니다.”
“그런데, 큰형은 면신례에서 크게 돈을 쓰고 욕도 봤는데, 작은형은 괜찮습니까?”
“여기야 뭐, 면신례를 하겠다고 나설 사람도 없는데 뭐. 오히려 혼자 일 해야 하는 게 외로울 따름이다.”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가 있네요. 그럼, 건번 일은 잘돼 가고 있습니까? 큰형이랑은 자주 서신을 주고받던데.”
“서신은 말도 마라. 형은 서신으로 내게 이리 해봐라. 저리 해봐라. 말만 많고, 귀찮아 죽을 판이다. 뭐, 덕분에 메밀 함량을 늘리거나 전분을 넣어 잘 부서지지 않는 건번으로 개량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다.”
원상형은 말을 하며 내게 손가락 3개 크기의 건번을 보여주었는데, 현대의 건빵만큼은 아니라도 틀에 찍어 만든 대량 가공 음식의 티가 났다.
“그리고, 나야 문경과 인근 관아를 돌아다니며 상할 것 같은 곡식을 모아 건번을 비축하는 것이 일이지만, 형은 병조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라고 한탄을 하더구나.”
“아니 왜요? 병조라면 이런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건번을 더 좋아할 것 같은데. 배급도 바로 몇 개씩 건네주면 되는 거라 편할 텐데요.”
“그런 거 신경 쓰나. 원래라면 못 먹게 되었다고 처분해서 챙길 수 있는걸 건번으로 만들어 다시 비축할 수 있다 보니 자기 손에 떨어지는 게 줄어드는 거지. 그러니 형이 병조에서 미움을 받을 수밖에.”
“아하! 건번이 또 그런 장점이 있었군요.”
“그래. 벌레가 먹거나 물에 젖어 못 먹게 된 곡식을 갈아서 구워 버리니 낭비되는 곡식을 줄일 수 있는 거지. 아마, 보릿고개 때 이 건번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행입니다.”
“그럼 점심인데, 점심밥이나 같이 먹으러 가자꾸나.”
“뭐 특별한게 있습니까?”
“사기장들이 있는 신기 저수지로 가자. 거기서 건번을 만들고 있다. 사기장들이 원래 불을 다루던 이들이라 그런지 가마도 잘 만들고, 건번도 잘 굽더구나. 꽤나 맛있는 건번도 있으니 그걸 한번 먹어보거라.”
“맛있는 건번요?”
건빵이 맛있어 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은형이 맛있다고 몇 번이나 이야길 하니 따라나섰다.
신기 저수지에 도착하니 장독이나 옹기를 굽는 것인지 검은색의 돌을 옮기고 있었다.
‘응? 검은돌?’
언뜻 보기에는 검은색의 장독을 만드는 것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사기장들이 들고 옮기는 것은 석탄(石炭)이었다.
“혀, 형님. 저걸 언제부터 쓰고 있었습니까?”
“응? 돌 숯 말하는 것이냐?”
“돌 숯요? 네. 저걸 언제부터 썼습니까요?”
“그게... 어디 보자. 갑자기 내가 벼슬을 받아 왔을 때는 안 썼구나. 그러다 건번을 굽는 일이 많아지자 어느 순간 돌 숯을 쓰더구나. 저게 뭔가 큰일인 것이냐?”
원상은 애 어른 같은 느낌으로 늘 진중하던 원종이 갑자기 흥분하여 물어보는 것이 의아했다.
“네. 엄청난 일입니다. 지관은 어디에 있나? 돌 숯은 어디서 가져온 건가?”
점심을 먹으러 왔지만, 이미 점심밥은 원종의 안중에도 없었다.
***
“벽돌과는 달리 건번은 화로에 계속 장작을 넣어야 하기에 장작을 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요. 그러다. 참렬이가 저 산 두 개를 넘어 있는 곳에서 돌 숯을 찾았습니다요.”
“참렬이가 누군가? 속히 거기로 가보세.”
점심을 먹기 위해 온 작은형은 물론이고, 몇몇 사람을 앞세워 석탄이 있다는 곳으로 움직였다.
움직이면서 생각하다 보니, 재미있게 보았던 예능 방송이 떠올랐다.
‘문경 석탄박물관에서 1박 3일 예능을 찍으며 은성 탄광을 조명했었다. 강원도가 아닌, 내륙의 낮은 산에서도 채산성 있는 석탄광산이 있었다고 했었지.’
원종의 기억처럼 참렬이가 찾아낸 곳은 무연탄 광맥이 있는 훗날 은성 탄광으로 알려지는 곳이었다.
몇몇 석탄 바위는 노천 광맥처럼 흙만 덜어내면 바로 채취가 가능할 것 같았다.
“지관은 돌 숯 아니, 석탄에 대해 알고 있었나?”
“아, 저희는 돌 숯이라 부르는데, 석탄이라 부르는 것이옵니까? 사실, 저도 이 석탄이란 것은 이야기만 들었지 처음 보긴 합니다. 자기를 굽는 이들끼리 하는 말에는 명나라에선 나무 장작 대신 돌 숯으로 자기를 굽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보고 한번 불에 넣어보니 아주 잘 타기에 돌 숯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하하하. 그걸 듣고 이 석탄을 썼다는 게 대단하이.”
원종은 양손에 석탄을 들곤 이리저리 살폈다. 검은 때가 손에 묻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산업혁명의 불을 밝혔던 석탄을 나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건번을 구울 때는 냄새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하여 이 석탄으로 건번을 굽고 있고, 벽돌이나 자기를 구울 때도 석탄을 쓰고 있는데, 장작보다 확실히 화력도 세고 오래 탑니다.”
“맞아. 잘했네. 잘했어.”
원종은 이 석탄으로 온실 온도를 쉽게 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고, 강한 화력을 내는 석탄으로 할수 있는 여러 가지 음식이 떠올랐다.
‘중화요리는 강한 화력이 중요하지. 예전 가스 불이 없을 때 석탄으로 불을 피워 중화요리를 했다는데, 청나라의 만한전석(滿漢全席)을 내가 먼저 해버리지 뭐.’
“참렬이라고 했느냐? 너는 가지고 싶은 게 있느냐? 네가 이것을 찾아낸 공이 아주 크다.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들어주마.”
참렬이란 자는 서른 정도로 보이는 비쩍 마른 자였는데, 추워서 그런지 코도 훌쩍거리는 좀 모자란 듯한 느낌이 드는 자였다.
사기장에서 맡은 일이 불 조절하는 일이라 그런지 손이나 팔에 화상 자국도 많았다.
고생을 꽤 했을 것 같았기에 뭐든 해주고 싶었다.
“저기. 도련님 소인은 장가를 가고 싶습니다요. 장가 좀 보내주십시오.”
“장가? 하하하. 우리 집안 소유의 노비를 속신시켜 장가를 보내줄 수도 있고, 아니면 집과 소를 줄 터이니 마음에 드는 처자를 직접 고르거라. 그러면 내가 매파를 보내주마.”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소인 영생을 바쳐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요.”
영생이니 충성이니 지금 상황에 맞는 말은 아니었지만, 30살이 넘어 보이는 노총각에게는 혼인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았다.
장가를 보내주겠다는 말에 참렬이는 기쁜지, 저수지 가마로 돌아와 뭔가를 급히 만들어왔다.
“원종아 저거다. 저걸 점심으로 먹기 위해 여기로 오자고 한 것이다.”
크기가 작은 건번과는 달리 성인 남자 손바닥 크기 정도로 큰 건번이었는데, 먹음직스러운 갈색을 띠고 있었다.
“빵?”
나도 모르게 갈색의 건번을 보자 빵이란 말이 나왔다. 설마 했는데, 진짜 빵이었다.
비록 이스트가 들어가지 않아 부풀어 오르지 않은 빵이었지만, 분명 빵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곡물 빵이었다.
“건번을 만드는 반죽을 크게 해서 1번 구워낸 것이옵니다.”
참렬이는 손바닥 크기의 빵에 된장을 넓게 발라내었는데, 된장이 발린 빵의 모습이 뭔가 웃겼다.
“이건 또 어떻게 만들게 된 것이냐?”
“소인이 건번을 만들며 한눈을 팔다 3번 구워야 하는 것을 1번만 구워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호기심에 한 번 먹어 보니 건번처럼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웠습니다. 그래서 아예 1번만 구워서 먹을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 이렇게 널찍하게 해서 구워내었습니다.”
“아주 좋아. 그런 호기심이 있는 게 아주 좋다.”
“헤헤. 그렇게 먹다 보니 싱거워서 된장을 발라 먹었는데 꽤나 맛이 있었습니다요. 그렇게 한 둘에게 맛있다고 먹이다 보니 저기 나리님도 맛있게 드셨습니다요.”
“된장 발린 거 말고 다른 거도 줘보게 그거 있잖나.”
“아예. 시래기 삶은 것도 올려드리겠습니다요.”
참렬이는 된장을 넣어 흐물흐물하게 푹 삶은 시래기를 잘게 칼질해서 빵 위에 올리고는 빵도 한입에 넣을 수 있게 잘라주었다.
“원종아, 이거다. 이거. 된장 시래기의 짭짭한 맛이 들어가니 이 건번 하나만 먹어도 밥을 먹지 않아도 되더구나.”
원상 형이 맛있다고 극찬을 하기에 나도 한입 먹어 보니 말 그대로 별미였다.
된장 시래기에서 흘러내린 짭짤한 국물이 빵에 스며들었기에 빵의 식감이 더 부드러워졌고, 잘게 썰린 시래기와 빵의 조화가 마치 동양과 서양의 맛을 퓨전한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바로 진짜 조선식 퓨전 요리구나.’
원종 자신이 해왔던 요리는 현대의 레시피에 조선의 식자재를 사용한 현대식 퓨전 요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참렬이가 한 요리는 다른 의미의 퓨전요리였다.
‘조선시대 사람이 현대의 식자재로 만드는 조선식 퓨전 요리가 바로 이거구나.’
“이렇게 시래기를 위에 올려서 먹게 되면 국물이 흘러 먹을 때 불편하지. 이럴 때는 이렇게 한번 해보게.”
원종은 구워진 빵의 옆구리를 잘라 주머니처럼 만들고는 다진 시래기를 넣었고, 다른 빵은 완전히 가로로 잘라 햄버거처럼 그사이에 시래기를 넣어 빵을 쌓았다.
“이렇게 빵을 잘라서 이렇게 변형도 가능하네.”
“도련님. 건번을 한번 구운 것을 ‘방’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요?”
“그래, 방이나 빵이라고 부르네. 이렇게 반을 갈라 여러 가지 재료를 넣게 되면 시래기 빵, 된장 빵, 고기 빵이라고 부르면 되네.”
“아! 그렇게 되는 것이군요. 그럼 어디...”
참렬이는 다진 시래기에 잡곡밥을 비비더니 그걸 옆구리를 잘라 주머니처럼 만든 빵에 넣었다.
“헤헤. 도련님 이러면 시래기 밥 빵입니까요?”
“그래 맞다.”
내가 하는 모습을 보고는 따라 하는 것을 넘어 응용해서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된장을 넣어 된장 빵을 하더라도, 그냥 된장을 넣지 않고, 숟가락으로 된장을 빵 면에 골고루 발라서 만드는 모습에 감탄했다.
‘이건 타고난 거다.’
가르쳐 주거나 어디서 본적도 없을 터인데 저런 색다른 방법으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건 타고난 것이었다.
비쩍 마르고, 서른 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참렬이를 처음 봤을 때는 코를 훌쩍거리는 모습에 좀 모자란 것 같았는데, 지금 보니 손등의 화상 자국까지도 요리하다 생긴 상처로 보일 만큼 요리에 재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참렬이는 나와 같이 한양으로 가지. 너는 내가 한양에서 장가도 보내주고, 성공시켜 주겠다.”
“네에? 건번을 한양에서 구워야 합니까요?”
“아니, 건번이 아니라 빵을 구워야 한다. 물론, 그전에 칼질부터 좀 배워보자. 지관! 이 친구 좀 데리고 가겠네. 그리고, 백미 세 가마를 내리니 다들 나눠 먹게. 다들 수고했네. 수고했어.”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기장들에게 상을 내리고 데리고 오다 보니 참렬이란 이름도 낯설지 않았다.
‘유명한 가수이자 요리판매인(?)이던 그 사람이 생각나는구만. 빵을 제대로 굽게 되면 참렬버거를 만들어야겠어.’
가성비 최악의 음식으로 유명한 이름이었지만, 조선시대에는 그 반대로 갓혜자스러운 음식 이름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대로 된 햄버거를 만들어 먹기 위해 온실에 상추를 심으며, 석탄을 아궁이에 태우니 확실히 장작과는 온도 차이가 났다.
아궁이에서 석탄이 벌겋게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있으니 뭔가 생각날 듯 말 듯 뭔가가 머리를 간지럽혔다.
“그래! 난로! 오븐이 되는 난로를 만들면 일거양득이네.”
조선시대 온돌이 있다고는 하지만, 장작이 부족하다 보니 군불을 때는 것은 늘 밤이었고, 낮에는 밤에 뗀 온기에 의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양반가에서도 집안에 화로를 피워 손을 녹이고 했는데, 석탄이 있다면 쇠로 된 난로를 만들어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난방과 요리 두 개 다 잡는다!”
*
[작가의 말]
석탄은 중국 송나라 때부터 쓰였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은 그때도 인구가 많았고, 평지에서는 나무 장작을 구하기 어려워 석탄을 난방이나 취사에 섰다고 합니다.
원나라 이후 석탄 채굴이 많아지며 보편적인 연료가 되었는데, 마르코 폴로가 이 불타는 돌을 유럽에 소개했습니다.
처음 소개했을 때는 마르코 폴로가 사기꾼으로 몰렸는데, 다들 불타는 돌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시대 불타는 돌에 대한 기록이 있고, 고려 시대 침몰선으로 알려진 태안 앞바다 마도 해저에서 발견된 배에서 석탄이 나왔고, 배 위에서 취를 위해 사용했다는 정황증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대로 석탄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일제강점기 탄전조사를 시작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석탄 광산으로 정식이름 붙는 탄광 개발도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것이 공식 기록입니다.